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84)
287. 총공세(1) >
#287
[아데샨. 위험하다.] “아윽···!”갑작스러운 두통에 아데샨이 이마를 쥐어 싸맸다. 또 그 여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이렇게 집중력을 요하는 상황에서 들려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서 뭐가 더 위험하다는 건데요···!”
그녀가 저도 모르게 혼잣말했다. 대답은 역시나 돌아오지 않았다. 이쯤 되면 슬슬 짜증이 났다. 이미 지금은 경고 따위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전장 곳곳에서는 함성과 비명, 광기 어린 포효가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희석액을 더 가져와라! 분산시키지 말고 한 점을 노려야 한다!”
“한 방에 날려버려야 해. 당장 마탑에 지원 폭격 요청···"
콰아앙! 요새를 포위한 병사들의 대화가 폭발음에 삼켜졌다. 사각을 노리고 날아온 빛의 창이 진형 한가운데 직격한 것이었다. 포연이 가라앉은 자리에서 토막난 고깃덩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빌어먹을···!”
“다, 다리! 내 다리가!”
고통 어린 비명이 울려 퍼졌다. 즉각적으로 발동된 방어 마법이 그들의 머리 위를 감쌌다. 쾅! 쾅! 연달아 떨어진 빛의 창이 방어막에 맞으며 폭발했다.
추가적인 피해는 없었으나 기습적으로 당한 한 발에만 벌써 수십 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병사가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바로 위에 세 놈이다!”
아데샨이 고개를 들었다. 병사의 말마따나 인공 거인 세 마리가 창을 번갈아 가며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석궁을 꺼내 든 그녀가 가장 가까이에서 나는 거인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떨어져.”
후방에 자리를 잡고 있는 터라 거리는 멀었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 쇠뇌가 인공 거인의 미간에 적중했다. 퍼석-! 로난의 피로 벼려진 화살머리는 거인의 뇌 깊숙이 파고든 채 폭발을 일으켰다.
【컥···!】
이마 윗부분이 사라진 거인이 힘없이 추락했다. 곧바로 재장전한 아데샨이 연달아 두 발을 더 쏘았다.
푹! 푹! 이번에도 미간과 관자놀이에 적중이었다. 작은 폭발음과 함께 추락한 거인들은 방어막 위에 부딪히며 튕겨져나갔다. 신 들린 듯한 저격 솜씨에 병사들이 환호했다.
“지, 지휘관님이 잡았다! 만세!”
“절대로 불리하지 않다! 밀어붙여!”
사기가 충만해진 연합군이 돌진했다. 아데샨이 다시금 전략을 다듬던 차였다. 병사 한 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 지휘관님!”
“음?”
황급히 고개를 돌린 아데샨의 눈이 커졌다. 별의 가호를 몸에 두른 사내 한 명이 단검을 꼬나쥔 채 달려오고 있었다.
“네년이 머리더구나. 죽어라!”
요새에서 몰래 빠져나온 교단의 암살자였다. 동남 지부의 장을 맡던 사내는 연합군 측의 장교들을 한두명씩 살해하고 있었다. 아데샨이 입술을 짓씹었다.
“큭···!”
“위대한 별의 이름으로!”
피하기에는 늦었다. 그녀가 황급히 정신 장악을 시도하려던 차였다. 우르릉! 지면이 부풀며 솟아난 석벽이 그녀와 암살자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당황한 암살자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염병, 이게 무슨···.”
그가 몸을 빼려던 순간이었다. 거대한 손의 형상으로 변한 바위가 암살자를 움켜쥐었다. 으직! 으스러지고 터지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커억!”
벌어진 암살자의 입 안쪽에서 걸쭉한 핏덩이가 튀어나왔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즉사였다. 쾅! 쾅! 무말랭이처럼 변한 그의 시체가 던져짐과 동시에 동일한 바위 손아귀가 수십 개씩 솟아올랐다. 벙쪄 있던 아데샨의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나?”
“자, 자로딘 교수님?”
아데샨이 헛숨을 들이켰다. 비쩍 마른 사내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서 있었다. 익히 보아온 필레온 아카데미의 자로딘 교수였다. 그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그 녀석의 말마따나 너는 연합군의 참모 중 하나다. 내 생각에는 조금 더 후방으로 빠져도 될 것 같군.”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아데샨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대로 등을 돌린 자로딘이 손가락을 튕겼다. 쿠르릉! 거대한 바위손들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거인들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요새의 외벽을 때리기 시작했다.
“···대단해.”
아데샨이 감탄했다. 마법의 위력도 위력이었지만 저런 큰 마법을 연달아서 사용함에도 마나의 낭비가 거의 없었다. 매일 연구실 안에만 있어서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정말로 만월 마탑의 탑 메이지가 맞는 것 같았다.
철옹성 같던 별의 가호에도 조금씩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요새에서 네뷸라 클라지에의 신도들이 화살이나 마법을 쏘아 대며 저항하고 있었지만 그런 것으로는 노도 같은 연합군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
총공세는 예상했던 대로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연합군은 최소한의 병력만 제외하고 전원이 투입되어 아홉 요새의 성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이릴과 교주가 있는 창백한 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이 무지몽매한 것들이···!”
“대주교님들이 오실 때까지 버텨라!”
네뷸라 클라지에의 신도들은 그런 연합군을 상대로 결사적인 항전을 펼치고 있었다. 인공 거인들이 원체 지랄 맞은 데다, 주교나 지부장급 강자도 제법 있었기에 돌파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연합군에게 불리하냐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오랫동안 벼려온 칼날은 충분히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을 뿐이었다. 아데샨이 중얼거렸다.
“그런데…대주교들은 다 어디 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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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범해요.”
로난이 툭 내뱉었다. 해주 의식을 마치고 몬스터 몇 마리를 썰어 봤음에도 딱히 체감되는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몸이 약간 가벼워진 정도일까? 손목과 발목을 돌려 보던 그가 말을 이었다.
“정말 저주가 사라진 거 맞아요? 잘 모르겠는데.”
“의식은 분명하게 성공했다. 아직 저주가 분해되는 중이라 그런가 보군. 틀림없이 격통을 느낄 것이라 예상했는데, 아직까지 멀쩡하다니···적응력이 남다르구나.”
“격통을 느낀다고요? 왜?”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를 긁적거리던 구원자가 약간은 면목없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저주를 걸어 두었거든. 평범한 인간이라면 편린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지독하고 사악한 것을.”
“거 참 고맙네요.”
“크건 작건 틀림없이 나중에는 고통이 닥쳐올 테지. 어쨌든 지금 당장 멀쩡하다면 됐다. 어서 들어···커억!”
불현듯 구원자가 왼손으로 입을 막으며 기침했다. 소리가 물기가 섞인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당황한 로난이 그를 부축했다.
“뭐야, 괜찮아요?”
“그래···괜찮다.”
구원자는 은근슬쩍 왼손을 바짓단에 문질러 닦았다. 붉은 얼룩이 묻어나왔지만, 워낙 동작이 교묘해서 로난은 눈치채지 못했다.
“제기랄,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니까 왜 이런 곳을 오자고 해서.”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튼 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 아저씨였다. 구원자는 아직 쉬어야 한다는 엘시아의 권고를 극구 무시하고 여기 다인하르까지 왔다. 두 사람을 태우고 온 시타가 걱정 섞인 울음소리를 냈다.
“뺘우웅···.”
“봐봐, 얘도 걱정하잖아요. 그냥 나 혼자 다녀온다니까요.”
“그건 안 돼.”
구원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로난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이 한둘이 아녔다. 아픈 것은 둘째 치더라도 지금 당장 누나가 그 정신병자들에게 무슨 짓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이 오지를 경유하다니. 구원자가 말을 이었다.
“반드시 네가 봐야 할 것이 있단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거 진짜.”
로난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개소리하지 말라며 한 방 먹인 뒤 도망치기에는 눈빛이 너무 진지했다. 하나뿐인 딸을 갖고 장난 칠 사람은 아니기도 하고. 아랫입술을 질겅이던 로난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알았어요.”
“고맙구나.”
“대신 늦어서 누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댁은 내 손에 죽는 거에요.”
“그건 걱정 마라. 빠르면 빨랐지 더 늦게 도착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 친구도 제법이긴 했지만 말이지.”
시타를 힐긋 돌아본 구원자가 자신 있게 말했다. 로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무슨 짓을 벌일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는 믿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로난이 시타의 목을 긁어 주며 말했다.
“시타. 너는 정찰 좀 해줘.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하고.”
“뺘잇!”
명령을 들은 시타가 날아올랐다. 두 사람은 몇 걸음 걷지 않아 다인하르의 코앞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로난이 질렸다는 듯이 탄식했다.
“여긴 어째 달라진 게 없네.”
간만에 본 다인하르는 변함없이 무지막지한 모습을 자랑했다. 유적을 둘러싼 채 자라난 바위와 금속의 산은 마치 사막에 피어난 불처럼 보였다.
로난과 슐리펜을 내쫓은 뒤 발동한 방어막은 여전히 다인하르를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다. 불현듯 3년 전의 기이한 경험이 아른아른 떠올랐다. 미 식별자가 어쩌고 하더니 저절로 쫓겨났었지.
“뭐가 뭐였는지 참.”
온갖 일을 겪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했다. 그가 과거를 회상하던 차였다. 다인하르의 바위산 부근에서 웬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 로난? 너 설마 로난인가?”
“엉?”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까무잡잡한 원주민 청년 한 명이 바위산 틈새에서 머리를 쏙 빼고 있는 게 보였다. 로난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꿈꾸는 천둥?”
“로난! 정말로 로난이다!”
청년이 호들갑을 떨며 바위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났지만 확실히 기억났다. 과거 다인하르에서 만난 원주민 소년인 꿈꾸는 천둥이었다. 구원자가 다소 놀란 투로 물었다.
“설마 이곳의 원주민과 연이 있다니. 잘 아는 사이니?”
“네. 예전에 조금.”
로난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뷸라 클라지에의 간부인 테라닐과 유리아에게 쫓겨서 달아난 것을 그와 슐리펜이 구해 주었었다. 그의 형인 성난 돌풍과는 유적의 중심까지도 갔었는데. 표정이 한결 밝아진 로난이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우리 전부 잘 지냈다! 침입자 그 이후로 아무도 없었다!”
꿈꾸는 천둥이 외쳤다. 확실히 삼 년 씩이나 지나서 그런지 덩치가 커진 게 눈에 보였다. 그는 부족민과 유적이 모두 무사하다고 했다.
네뷸라 클라지에가 몇 번인가 더 찾아왔지만, 모조리 새롭게 생긴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는 말도 덧붙여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로난이 입을 열었다.
“거 다행이네. 이제 우리 좀 들여보내 줘!”
“안 된다!”
“뭐라?”
로난의 미간이 구겨졌다. 너무 단호해서 한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입가에 손을 말아 가져다댄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왜 안되는데!”
“투명한 막 안 사라진다! 우리 부족 아니면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한다!”
“니미.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진짜다! 우리도 나가기 전에 어떤 여자한테 허락 맡고 나가야 한다!”
바위산을 기어내려오던 천둥이 마침내 모래 위에 착지했다. 그는 긴 팔다리를 휘저어 가며 로난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여자라니, 저건 또 무슨 소리래? 로난이 방어막을 툭툭 두드리는 순간이었다.
[허가받지 않은 사용자입니다. 출입을 금지합니다.] “아 시발. 깜짝이야.”파직! 찌릿거리는 감각과 함께 머릿속에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로난이 황급히 손을 뗐다. 과거에 내쫓겨질 때도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천둥의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당시의 축객령은 아직도 진행중이었다. 스르릉···! 로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제까짓 게 아무리 두꺼워 봐야 마나로 이루어진 방어막일 터였다.
그가 막 팔을 쳐드는 차였다. 로난의 손목을 붙잡은 구원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흥분하지 말거라. 당연한 일이니까. 그리고 지금 네가 방어막을 박살내 버리면 중요한 순간에 제 기능을 못 하게 된단다.”
“당연한 일이라고요?”
“그래. 과거에도 다인하르는 지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는 장소였거든. 저 문신을 보아하니 다행히도 명맥이 살아 있는 모양이구나.”
구원자의 시선은 천둥의 몸에 새겨진 문신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원주민들은 남녀노소 모두가 저런 문신을 새기고 있었다. 그리움 섞인 눈빛으로 다인하르를 훑어 보던 구원자가 방어막 위에 손을 올렸다.
“여기도 오랜만이군. 정말로.”
파아아···! 손바닥과 맞닿은 부위에서 은은한 빛무리가 새나왔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자리에 있는 모두의 머릿속에서 다시금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등록된 사용자입니다. 방어 체계를 한시적으로 해제합니다.] “허억?!”동시에 다인하르 전역을 감싸고 있던 방어막이 사라졌다. 역장 내부에서 체류하고 있던 마나가 훅 밀려왔다. 달려오던 꿈꾸는 천둥이 화들짝 놀라며 모래 위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구원자가 로난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서 가자꾸나. 그래야 내 딸을 구하는 김에 겸사겸사 세상도 구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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