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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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도착했어요.”
로난이 멈춰 섰다. 다인하르의 성지. 혹은 심장이라 불리는 장소는 3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백색 타일로 뒤덮인 공간 가운데서 어지간한 농가보다 거대한 마석 덩어리가 부유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보니 엘시아가 살고 있는 종자 보관소인지 뭔지 하는 건물과 양식이 비슷한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구원자가 감탄을 흘렸다.
“아···세월은 지났지만 그대로구나. 과연 별에 가장 근접했던 이들이 남긴 유적이군”
“여기가 도대체 뭐 하는 장소인데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배의 함교이자 동력부지. 지금 봐도 굉장하군.”
“배?”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원자는 대답하는 대신 손가락을 뻗어 수정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음에도 어째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가 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로난은 우선 그가 시키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과거 테라닐과 싸웠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수정 앞에 도착한 구원자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게 바로 엔진이란다. 거대한 선체를 움직이기 위해 필수적인 동력 기관이지. 당대의 천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개발해 냈단다.”
“엔진···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심장 같은 거라는 거죠?”
“그래. 심장이지. 네 원주민 친구들의 비유는 정확했어.”
구원자가 끄덕거렸다. 불현듯 뒤쪽에서 천둥과 돌풍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억···헉, 드디어 잡았다!”
“로, 로난! 같이 간다!”
고개를 돌리자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고 있는 원주민 형제의 모습이 보였다. 마나도 제대로 못 다룰 텐데 이렇게 빨리 따라온 것이 제법 대견했다. 구원자는 그들의 몸에 새겨진 문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친구들의 몸에 새겨진 문신은 일종의 식별 코드란다. 과거에도 이 배는 아무나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니었거든. 유전자 개조를 거쳐서 감응력을 높인 이들만이 선원이 될 수 있었고, 그 핏줄을 이어받았다는 증거를 대대손손 몸에 새긴 거야.”
“그···시발 아까부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일단 배가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에요?”
“내가 실수했구나.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빠를 터인데. 잠깐만 기다리거라.”
갑자기 구원자가 허공에 손을 올리더니 뭐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바로 앞의 타일이 뒤집히며 거대한 직육면체 하나가 솟아났다. 매끈한 표면에는 수십 가지의 기계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이건···.”
틀림없이 기억이 났다. 분명 유적의 비밀을 품고 있다는 직육면체였다. 성난 돌풍이 저걸 조작한 이후로 다인하르는 완전히 요새화가 되었다.
원래는 어떤 계단 아래에 놓여 있었는데 구원자가 불러온 것 같았다. 막 로난을 따라잡은 성난 돌풍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외쳤다.
“그, 그건 손 대면 안 된다! 약속의 날에만 만질 수 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일세.”
구원자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계장치에 손을 댔다. 쿠구궁···! 버튼 몇 개를 누른지 머지않아 지진이 난 것처럼 발아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니미. 도대체 뭘 하려는···어억?!”
로난이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몸 깊숙한 곳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일어났다. 가슴을 부여잡은 그가 무너질 것처럼 휘청거렸다. 아들을 힐끔거린 구원자가 픽 웃었다.
“그렇지. 드디어 시작됐구나. 부작용이 없을 리가 없지.”
“씨팔, 이게 무슨···.”
“내가 말했잖느냐, 해주의 부작용이 있을 거라고. 지금 네 몸속에서 분해된 저주들이 체외로 배출되고 있는 거란다. 아마도 어마어마하게 아플 거야.”
로난은 말을 잇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장기가 끓어오르는 것 같은 끔찍한 통증은 도저히 근성으로 버틸 만한 것이 아니었다. 화들짝 놀란 돌풍과 천둥 형제가 로난을 부축했다.
“로, 로난. 정신 차려라!”
“죽으면 안 된다!”
구원자가 눈을 감았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유적을 흔드는 진동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엔진인지 뭔지 하는 검은 마석이 미친 듯이 점멸하고 있었다.
“통증은 머지않아 가라앉을 테니 걱정 마라. 알을 깨기 위한 새의 몸부림이라 생각하면 편할 게야. 로난. 너는 애초부터 나를 능가하는 무재를 타고났다.”
“커억···컥!”
“이릴과 비교하며 깎아내린 감이 있지만, 그 또한 아주 무시무시한 힘이지. 그런 힘을 남용하지 않을 착한 아이로 자라 줘서 감사할 따름이란다.”
로난은 고개만 겨우 들어 구원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왜소한 어깨 위로 반짝거리는 마나가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었다. 양이 방대한 것이 사람보다는 작은 화산을 보는 것 같았다.
그가 혼잣말로 뭐라 흥얼거리고 있었으나, 주변의 소리가 워낙 커서 잘 들리지가 않았다.
“···날아라. 다시 날아.”
다만 어딘지 모르게 위태로워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늙은 화산의 마지막 분화를 보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용암을 모조리 토해 내면 그대로 싸늘하게 식어버릴 것만 같았다.
“······!”
뭐라 한마디를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 다시 한 번 들이닥친 격통이 로난의 오감을 휩쓸었다. 심장을 옥죄고 있던 저주들이 사멸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들을 슬쩍 돌아본 구원자가 노랫말을 맺었다.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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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건 말도 안 된다···.”
주교 테레지아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요새의 성벽 위에 올라 교단의 몰락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결코 뚫리지 않을 거라 믿었던, 요새를 지키는 별의 가호가 부서지려 하고 있었다.
“여기가 마지막이다. 절대 물러서지 마라!”
“빌어먹을 광신도 놈들, 죗값을 치르게 해 주마!”
연합군은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요새 두 개를 동시에 공략하고 있었다. 병사들의 함성이 새하얀 대지를 뒤흔들고 있었다. 투석기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희석액으로 절여진 탄두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쏘아지고 있었다.
쾅! 쾅! 갖가지 투사체가 방어막을 두들길 때마다 굉음이 작렬하고 있었다. 벌떼처럼 우글거리는 연합군을 본 신도들이 절망 어린 탄식을 내뱉었다. 인공 거인들의 활약과 공성전으로 인해 수가 제법 줄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십만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피에 취한 그들의 기세는 하늘을 찢어발길 것처럼 드높았다. 이미 함락당한 일곱 개의 요새에서는 연합군의 깃발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사방에 널브러진 인공 거인의 시체가 보랏빛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냐···!”
테레지아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연합군의 전력은 교단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지금까지 수백 년에 걸쳐 진행해온 방해 공작이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비장의 무기였던 인공 거인들은 초기에만 선전했을 뿐, 연합군 측의 강자들을 이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승리하기는커녕 대주교들이 버티라 지시했던 시간조차 엄수하지 못할 것 같았다. 불현듯 하늘 위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버러지들 말고, 교주를 데려와라!】
익숙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쳐든 테레지아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유례없는 학살이 하늘 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인공 거인들의 단말마가 산발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커억!】
【무지몽매한 용아. 어찌하여···크악!】
나선창을 쥔 오르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마다 인공 거인들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형태에서 날개만 펼친 채 고속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잠깐···】
퍼석-! 우왕좌왕하던 거인의 가슴 위로 거대한 바람구멍이 뚫렸다. 보라색을 띠는 피와 내장이 오르세의 몸에 붙어 나왔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거인이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기도 전에 바로 뒤에 있던 거인의 머리가 폭발했다.
“마룡···!”
으득. 테레지아의 입 안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저 놈 하나가 인공 거인의 반을 죽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르세는 전설 속의 마룡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은 대활약을 펼치며 전장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때 성벽 근처에서 다시금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나와라!”
테레지아가 다시 고개를 내렸다. 이번에는 시커먼 웨어타이거 하나가 언월도를 쳐든 채 달려오고 있었다. 서슬 퍼런 창날 위로는 검은 마나가 요동치며 일렁거리고 있었다.
오러를 충분히 끌어모은 자이파가 언월도를 휘둘렀다. 콰아아앙! 별의 가호 위로 검은 선이 그어지며 거대한 균열이 발생했다. 공간을 힘으로 찢어 버리는 그의 오러는 공세가 시작된 이후 벌써 세 자릿수의 목숨을 앗아갔다.
“저쪽으로 간 게 아니었나.”
테레지아가 중얼거렸다. 7번 요새를 공략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로 왔을 줄이야. 위태롭게 흔들리는 방어막의 모습에, 테레지아의 옆에 있던 신도가 울먹거리며 외쳤다.
“주, 주교님! 이대로라면 돌파당합니다. 후퇴해야 합니다!”
“닥쳐라!”
촤악! 테레지아가 그대로 손에 있던 검을 휘둘렀다. 후퇴를 주장한 신도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주변에서 동요하던 신도들이 한순간 얼어붙었다.
“우리는 버텨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야. 만약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저 나바르도제가 불을 토하는 순간 우리의 본부마저도 날아가 버릴 거다!”
검을 쳐든 테레지아가 하늘을 가리켰다. 피로 번들거리는 칼 끝은 허공에서 날갯짓하고 있는 나바르도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전히 드래곤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그녀의 입 속에서는 태초의 불꽃이 응축된 채 일렁거리고 있었다.
원체 빛과 열기가 강해서 또 하나의 태양이 떠오른 것을 보는 것 같았다. 아홉 요새가 모두 무너지는 순간 총본산을 향해 토해낼 초탄이었다.
아무리 대주교들의 가호가 튼튼하다 해도 저런 것을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사실을 재인지한 신도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싸, 싸우겠습니다. 교단을 위해서!”
“바로 그거다! 나 테레지아가 그대들과 함께한다!”
테레지아가 들고 있던 검을 더 높이 쳐들었다. 어떻게든 사기를 끌어올려서 다행이었다. 답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사실 그녀 또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항전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어떻게든 해 주실 거다. 어떻게든···.’
교주와 자취를 감춘 대주교들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의지를 다진 그녀가 다시 수성에 집중하려던 차였다. 파삭! 방어막 한구석에 작은 구멍이 뚫리더니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 이게 뭐야?”
“허억!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지독한 어둠이었다. 곳곳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정신을 차린 테레지아가 권능 중 하나인 광풍을 발동하려던 찰나였다. 불현듯 그녀의 귓가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주는 어디 있나.”
“헉···.”
테레지아가 그대로 마비되었다. 피가 얼어붙을 정도로 섬뜩한 음성이었다. 그러고 보니 신도들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팟! 사방을 휘감고 있던 어둠이 한순간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테레지아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성벽 위에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대화하던 백여 명의 신도들은 모두 비쩍 마른 미라가 되어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안색이 창백한 남녀들이 시체 위를 서성거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밤의 아이들.”
그들의 정체를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흡혈귀. 그것도 가장 강력하다 알려진 바르샤바 혈족의 흡혈귀들이었다. 테레지아의 뒤편에 서 있던 그림자 대공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다시 묻지. 교주는 어디 있나.”
“모, 모른다! 이거 놔···”
그녀가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그림자 대공이 펼친 손에 힘을 주었다. 퍼석-!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테레지아의 머리가 터졌다. 피와 뇌수, 두개골 박힌 뇌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손을 닦아낸 대공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발자크.”
그의 눈동자는 동생을 잃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테레지아는 말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뻔했다. 교주라는 놈은 틀림없이 저 창백한 성에 있을 터였다.
“문을 열어 줘야겠지.”
그리 중얼거린 대공이 성문으로 향하던 차였다. 콰아아앙!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요새의 성문이 폭발하듯 무너졌다. 기어코 방어막을 부숴버린 자이파가 성내로 진입했다. 언월도를 한 바퀴 돌려 잡은 그가 입을 열었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와아아아아!!”
병사들이 썰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아직 남아 있던 신도들은 대부분 저항을 포기하고 달아나기 시작했지만 이미 도망칠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요새를 뒤덮던 별의 가호가 산산이 바스라지고 있었다.
이것으로 하나를 제외한 요새가 모두 함락되었다. 총공세가 시작된 지 일곱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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