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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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아하유테가 형을 집행한다.』
낮고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그의 손을 떠난 창이 지상에 꽂혔다. 콰아아아앙-!! 아드렌의 하늘탑도 무너뜨린 대폭발이 일대를 휩쓸었다.
하지만 그것은 원래 아하유테가 겨냥했던 연합군의 진형이 아닌 백색 대지의 머나먼 공터 위에서 일어났다. 창이 원래 떨어졌어야 할 부근의 상공에는 작은 차원문 하나가 열려 있었다. 공간을 뒤틀어서 공격을 흘려보낸 로르혼이 피를 토했다.
“···쿨럭.”
“대, 대마법사님! 괜찮으십니까!”
“그래···쿨럭, 괜찮다네.”
로르혼은 무거운 기침을 반복했다. 너무 연달아서 강력한 공간 마법을 많이 사용한 탓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경악했다. 소매로 입가의 피를 닦아낸 로르혼이 그들을 내려보며 말했다.
“미안허이. 이렇게 될줄은 몰랐어.”
“그, 그건 대마법사님 잘못이···.”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지 않나. 어서 도망치기나 하게.”
경직된 로르혼의 얼굴에서는 평소의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제야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깨닫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총사령관이 외쳤다.
“전군, 후퇴하라-!”
[후퇴하라!!]
다른 지휘관들은 전음으로 퇴각 명령을 복창했다. 다시 봐도 승산은 없었다. 하늘을 찢으며 내려오고 있는 거인의 수는 아무리 못해도 서른 명은 넘어 보였다.
거인과 싸우게 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상정하지 못했다. 후방에 있던 병사들부터 몸을 돌려 퇴각하려던 차였다. 갑자기 빛의 창 몇 개가 조금은 생뚱맞은 방향으로 쏘아졌다.
연합군이 아니라 저 멀리 빈 공간을 향해서. 가장 먼저 그 의도를 눈치챈 아데샨이 절규를 내뱉었다.
“아, 안 돼!”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빛의 창 세 개가 연합군이 진격해온 차원문 부근에 직격했다. 콰아아앙! 폭발음과 함께 솟구친 흙먼지가 하늘을 가렸다. 정교하게 유지되던 마법이 일그러지며 차원문이 소멸했다.
“아아···!”
“이럴 수가.”
병사들의 얼굴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일말의 희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들의 유일한 퇴로가 사라져 버렸다.
크라티르가 탈진한 지금 차원문을 복구할 사람은 없었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거나 울음을 터트리는 이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불현듯 성벽 위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하! 저 표정들 좀 보라지. 이봐, 진짜로 너희가 이길 줄 알았어?”
병사들이 고개를 들었다. 르탄시에의 옆에 못 보던 여인이 나타나 배를 붙잡고 깔깔거리고 있었다. 눈빛이 형형한 것이 보통 미친년이 아닌 것 같았다.
“저 복장은···!”
그녀가 다른 대주교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르탄시에가 질문했다.
“티에리아. 체통을 지키세요. 의식은 끝난 건가요?”
“아직 하는 중. 그런데 나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왔어.”
“당신 정말···아니지.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차피 끝난 것 같은데 딱딱하게 굴지 말자구. 이거 성녀인지 뭔지는 필요도 없겠는데?”
대주교 티에리아가 키득거렸다. 그녀는 대주교들을 주체로 진행하고 있는 강림 의식에서 몰래 빠져 나왔다. 왜냐하면 이 편이 더 재밌을 것 같았으니까.
절망으로 일그러진 사람들의 면면을 본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정확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얼어 있던 부관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 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나, 나는···.”
총사령관이 더듬거렸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한때 제국의 대장군까지 역임하며 온갖 산전수전을 거쳤지만 이런 건 전례가 없었다.
이제는 마법진을 완전히 빠져나온 거인들이 창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아귀로 모여드는 빛의 입자가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부관이 총사령관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고 흔들었다.
“사령관님!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그, 그래···피해를 분산시켜야 하니 모두 산개하면서 퇴각하는 방향으로···”
사령관이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모든 거인의 손에서 빛의 창이 쏘아졌다. 벼락을 연상케 하는 수십 개의 빛줄기는 정확히 연합군을 노리고 쏟아지고 있었다.
“크흐으으음..!”
막거나 흘려 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로르혼은 포기하지 않고 주문을 영창했다. 허공에 차원문들이 연달아 벌어지며 빛의 창들을 집어삼켰다. 미처 막아내지 못한 것들은 두 검성이나 슐리펜 같은 인재들이 요격을 시도했다.
“젠장,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다들 도망쳐라, 뭐 하는 거냐!”
막 창 네 개를 베어낸 나비로제가 인상을 쓰며 외쳤다. 자이파와 자신이 각각 네 개를, 슐리펜이 다섯 개를 베어서 무력화시켰지만 그럼에도 창은 남아 있었다.
결국 방공망을 돌파한 빛의 창 두 개가 연합군 진형 한복판에 작렬했다. 쾅-! 콰아아아앙-!!! 천지가 흔들리는 굉음과 함께 빛의 기둥이 솟구쳤다. 섬광이 가라앉은 자리를 본 병사들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아아아···!”
“이건···이건 말도 안 돼.”
거대하고 깊은 구덩이 안쪽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수백 명이 살아 숨쉬던 공간이었다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못 해도 오백 명이 증발해 버렸다.
“아아아아악! 흐아아악!”
“사, 살려 줘! 다리가!”
참상은 되려 구덩이 가장자리에 펼쳐져 있었다. 재수 없게 즉사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사지 일부나 하반신을 잃어버린 이들은 벌레 같은 꼴로 기어 다니고 있었다.
아마 운 좋게 살아서 돌아간다 해도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할 터였다. 하지만 불행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장교 한 명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사, 사령관님이 전사하셨다!”
“다, 다른 지휘관들도 저기 있었는데···!”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인원을 파악하던 그들은 연합군의 머리를 담당해야 할 고위급 지휘관들이 방금의 폭격에 증발해 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머릿속으로 지휘 체계를 정리하던 그가 아데샨을 돌아보았다.
“4 야전 지휘관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뭐, 뭐라고요?”
“현재 최고 명령권자십니다. 더 위의 분들도 남아 계시기는 하지만 부상을 당하셨거나 공황 상태라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그런···!”
“소탕 작전이 진행되는 몇 달간 쭉 지켜봐 왔습니다. 지휘관님의 실력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어서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장교가 외쳤다. 거인들은 다시 창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날개를 퍼덕거릴 때마다 빛나는 깃털이 하늘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땅에 닿는 순간 사람을 찢어발길 괴물로 변할 사역마의 씨앗이었다.
“저, 저는···.”
아데샨이 말꼬리를 끌었다. 시간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이렇게 나오면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머리가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었다. 뭘 해야 하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또, 또 던진다!”
그때 어느 병사가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데샨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온전한 형태를 갖춘 빛의 창들이 거인들의 손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그녀가 뭐라 외치려던 찰나였다. 쉬이이익! 다시금 수십 개의 벼락이 지상을 향해 쏟아졌다.
“···아.”
마르야가 탄식했다. 옆에 있던 브라움이 방패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두 사람을 비롯한 모두가 머지않아 닥쳐올 최후를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나바르도제는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그와 아벨이 자아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파열음만이 머나먼 어딘가에서 불규칙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지금 그들을 구원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쿨럭! 쿨럭!”
그럼에도 가만히 기다릴 수는 없었다. 다시금 피를 뱉어낸 로르혼이 주문을 영창하려던 차였다. 저 하늘 위에서 새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정신 차려요!”
“어···?”
익숙한 음성이었다. 탓! 목소리의 주인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연합군 진형 한복판에 착지했다. 아데샨의 눈이 커졌다.
“아셀···?”
“정신 차려요! 아직 안 끝났어요!”
아셀이 눈앞에 있었다. 그와 함께하던 오르세는 곡예 비행을 펼치며 거인 몇 명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창의 수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아셀이 부탁한 것이었다.
빛의 창들은 이제 바로 머리 위까지 다가와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숨을 깊게 들이마신 아셀이 하늘 높이 팔을 쳐들었다.
“하아아압!”
동시에 반짝거리는 마나가 소용돌이치며 모여들었다. 구름이 사라진 하늘에서는 별이 보였다. 우우웅! 별빛에서 기인한 마나의 폭풍은 허공으로 치솟으며 넓은 역장을 형성했다.
거인들의 전매특허인 별의 가호였다. 콰과과광! 마침내 당도한 빛의 창들이 장대비처럼 방어막을 두들겼다.
“카학!”
아셀이 배를 걷어차인 것처럼 구역질했다. 과도하게 마나를 소모한 탓이었다. 천지가 흔들리고 있었지만 별의 가호는 파괴되지 않았다.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올린 그가 아데샨을 돌아보며 말했다.
“흐으으···포기하면 안 돼요.”
“아셀.”
“모두가 믿고 있어요···지휘관, 아니 선배님은 답을 찾을 수 있어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요.”
연합군의 목숨을 짊어진 그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 아름다운 눈동자는 용의 도시를 구했을 떄와 같은 결의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직 방어막이 건재한 것을 본 로르혼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거라면···모든 마법사는 메이지 아셀에게 힘을 모아라!”
대마법사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아셀이 다루는 별의 가호야말로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 그래···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내 마나를 가져가라, 어린 친구!”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 마법사들이 자신의 마나를 아셀에게 전달해 주기 시작했다. 각양각색의 마나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넘어질 듯 휘청거리던 아셀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후우우···다들 고마워요.”
“이상한 짓을 하네.”
대주교 티에리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감히 거인들의 힘을 다루는 것도 거슬렸지만, 면면에 희망이 떠오른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숨을 고르던 아셀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선배. 어서.”
“···그래.”
아데샨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제야 머리가 식어가고 있었다. 퇴로도, 승산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답을 찾아내는 것이 지휘관의 역할이었다.
그래. 나는 대장군이 되기로 했었지.
“하아아아···.”
눈을 감은 아데샨이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의 발아래로 검은 기운이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생물의 정신을 지배하는 그림자의 마나였다. 그림자는 빠르게 퍼져 나가며 인근의 연합군 병사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 어라?”
“뭐야, 방금 뭔가가···.”
마나의 영향을 받은 병사들이 당혹성을 흘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더는 싸우는 게 두렵지 않았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그들의 가슴 속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크···으으으···!”
아데샨이 이를 악물었다. 높은 콧망울 아래로 피가 흘러내렸다. 두려움만 소거시키는 것은 정신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과 비교하면 간단한 일이었으나 머릿수가 너무 많았다.
물론 도중에 그만둘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기어코 전 병력에게 그림자의 마나를 덧씌웠다. 이제 거인들은 진형까지 갖춰 가며 창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 연합군의 머릿속에 아데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라! 전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총본산으로 진입하라!] “뭣이···!”로르혼의 눈이 커졌다. 그가 생각하던 것과 정반대의 전략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데샨이 말을 이었다.
[도망칠 곳은 없다! 어차피 여기서 패배하면 모든 게 끝이야, 거인들이 놈들의 심장부를 타격하게 해라!] “와아아아아-!!”우레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기가 강제로 끌어올려진 병사들은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명령을 들은 자이파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야 좀 말 같은 소리가 나오는군.”
“이릴 양.”
슐리펜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들은 애초에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다시 한 번 거인들의 폭격이 방어막을 두드림과 동시에 마지막 돌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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