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95)
298. 결전(6) >
#298
“저는 당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슐리펜이 읊조렸다. 폭풍에 휘감긴 검신이 진동하고 있었다. 목을 베였던 버미니온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크억···가, 감히···.】
목에 그어진 자상에서는 아직도 피가 울걱울걱 솟아나고 있었다. 다만 베였을 당시와 비교한다면 확연하게 그 양이 줄어 있었다.
‘너무 빠르군.’
슐리펜이 미간을 좁혔다. 회복력 또한 증대되었을 것이라 예상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빨리 나을 줄은 몰랐다. 한 번에 죽여야 하는 건가. 고개를 치켜든 버미니온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내 목에 상처를 내-!】
동시에 버미니온의 형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슐리펜이 반사적으로 검을 쳐들었다. 카아앙-! 작렬하는 금속음과 함께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어쭈, 막아?!】
“으음…!”
슐리펜이 이를 악물었다. 방어만 했는데도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짐승에게 치인 것 같았다.
【아까처럼 한 번 더 해 보라고, 엉?!】
버미니온의 공격이 이어졌다. 거칠면서도 정교한 격투술이었다. 마나를 휘감은 정권과 발차기가 날아올 때마다 슐리펜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제비를 돌며 물러난 그가 자세를 다잡으려던 차였다. 뒤쪽에서 웬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빨리 쫓아가야 해서 말일세.】
목덜미의 털이 곤두섰다. 슐리펜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코코넛만 한 크기의 빛나는 구체들이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맞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막 몸을 빼는 순간이었다. 슐리펜을 주시하고 있던 대주교 르탄시에가 누르는 듯한 손동작을 해 보였다.
【어딜.】
“윽···.”
보이지 않는 힘이 슐리펜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의 동작이 흐트러지는 찰나였다. 콰아아앙! 발치에 떨어진 빛의 구체가 폭발을 일으켰다.
“커억!”
이번에는 막지 못했다. 튕겨 나간 몸뚱이가 굉음을 일으키며 벽면에 처박혔다. 느낌으로 미루어 보아 갈비뼈가 두 대 정도 나간 것 같았다.
기절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누워 있을 시간은 없었다. 슐리펜이 옆으로 구르며 몸을 일으켰다. 콰직! 동시에 버미니온의 발뒤꿈치가 그 자리에 떨어졌다.
【흥, 알론 영감의 피를 이어받았다더니 속도 하나는 쓸만하군.】
바닥에서 다리를 뽑아낸 그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발이 들어간 깊이로 보아 맞았다면 틀림없이 즉사였다.
간격을 벌린 슐리펜이 구체가 날아온 쪽을 돌아보았다. 등 구부정한 노파 한 명이 지팡이를 짚은 채 서 있었다. 폭발을 일으켰던, 빛나는 구체 수십 개가 그녀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슐리펜과 눈이 마주친 노파가 감탄성을 흘렸다.
【오오, 죽지 않았나?】
“너는···.”
【대주교 마론이라고 하네. 잘생긴 젊은이. 저 회오리를 치워 줄 생각은 없나? 그렇다면 목숨 정도는 살려 줄 수 있네만.】
마론이라는 노파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슐리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마론의 뒤에서 피투성이가 된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래. 네 용맹을 봐서 선처해줄 수도 있어. 빌어먹을,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바람인 거야?】
사내가 투덜거렸다. 아나퀴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대주교는 조금 전에 슐리펜이 설치한 회오리를 맨몸으로 돌파하려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몸을 뒤덮고 있는 끔찍한 상처들이 바로 그 증거였다.
【호호···아마 로난인지 뭔지 하는 애송이의 피 때문이겠지. 위력을 보아하니 비교적 최근에 피를 바른 모양이구나.】
【어쩐지. 더럽게 아프더군.】
【아이야. 회오리를 거두거라. 어차피 여기까지 올라왔을 정도면 피도 거의 남지 않았을 터.】
마론이 웃었다. 예리한 분석에 슐리펜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실제로 그가 보유한 로난의 혈액은 방금 칼에 들이부은 것이 끝이었다. 위력이 지속되는 시간으로 미루어 보아 다섯 대주교를 처리하기에는 몹시 부족한 양이었다.
슐리펜이 입술을 비틀었다. 사실 목숨을 구할 기회는 이게 마지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다섯 명을 모조리 해치울 가능성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용의 도시에서도 비슷한 짓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솔직히 여기서 한 명씩만 상대해도 이길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어쩔 수 없나.’
마침내 결단을 내린 슐리펜이 눈을 질끈 감았다. 스아아···탑을 둘러싸고 있던 회오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아나퀴엘의 얼굴이 밝아졌다.
【오오.】
【그렇지. 역시 생김새처럼 머리가 좋은 아이···】
마론이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회오리에 소모되던 기력을 끌어온 슐리펜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페일 로드의 검신이 바람의 형태로 흩어졌다.
【음?】
이어서 온몸에 힘을 준 그가 한 바퀴를 회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넓은 원을 그린 칼바람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콰아앙! 바람이 베며 지나간 방의 윗부분이 통째로 썰려 나갔다. 절단면을 따라 미끄러진 벽면과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하하, 그런 얕은수를 모를 줄 알았느냐?】
하지만 피해를 당한 대주교는 아무도 없었다. 마론이 웃었다. 진작에 낌새를 눈치챈 그들은 이미 염력이나 도약으로 공중에 몸을 띄우고 있었다. 아나퀴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기회를 걷어차 버리다니. 소원대로 죽여주는 수밖에.】
곳곳에서 비웃음이 돌아왔다. 하지만 슐리펜은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노리던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으니까. 쾅! 곧장 앞으로 치고 나간 슐리펜이 마론의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우윽!】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공중에 머물러 있던 그녀는 미처 대응하지 못한 채 뒤로 튕겨났다. 이어서 애초에 자신을 살려 줄 생각이 없었던, 뒤를 노리고 달려드는 버미니온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젠장, 눈치챘었나?】
버미니온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화아악! 갑작스레 불어닥친 강풍이 그를 뒤로 날려 버렸다. 두 사람의 몸은 머지않아 조금 전까지 회오리가 불어오던 영역에 이르렀다. 줄곧 여유롭던 마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서, 설마!】
【왜 그래 할멈? 이까짓 거 그냥 돌아가면···】
끝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버미니온이 갸웃거렸다. 마론이 절박하게 외쳤다.
【르탄시에 양! 우리를 당겨 주게, 어서!!】
뒤늦게 슐리펜의 의도를 깨달은 르탄시에가 헛숨을 들이켰다. 칼을 한 바퀴 돌려 잡은 슐리펜이 검 끝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콰아아아아! 잦아들던 회오리가 격렬하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흐어어억!】
【끄, 끄하아아악!】
【세상에, 마론···!】
르탄시에가 팔을 뻗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처절한 비명이 바람 속에서 울려 퍼졌다. 아직은 약발이 살아 있는, 별의 가호조차 찢어버리는 칼바람이 두 대주교의 육신을 남김없이 갈아 버렸다.
“후우···.”
슐리펜이 한숨을 내쉬었다. 두 명을 처리하기는 했으나 아직도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임은 변화가 없었다. 갈비뼈는 여전히 부러져 있었고, 남은 대주교들은 먼저 간 두 명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물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기는 했다. 바닥에서 검을 뽑아낸 그가 입을 열었다. 회오리를 거둬 달라는 권유에 대한 늦은 답변이었다.
“거절한다.”
【죽여! 죽여 버려요!】
르탄시에가 격분하며 외쳤다. 남아 있는 대주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슐리펜이 다시금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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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펜···!”
마르야가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창백한 성의 최상층에 머물러 있었다. 슐리펜이 일으킨 폭풍이 고탑을 휘감은 채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잠시 잦아드나 싶더니 오히려 더 격렬해진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서걱! 한 팔로 대검을 휘두른 마르야가 뒤에서 달려들던 신도를 두 동강 냈다.
“커억···!”
이걸로 주변에 배치되어 있던 병력은 모조리 처리했다. 고탑에서 뛰어내린 두 사람은 성벽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시 위쪽을 올려본 마르야가 입을 열었다.
“틀림없이 죽을 거야. 우리가 도와야 해.”
“하, 하지만 이릴 양의 신변 보호가 우선이다. 이대로라면 슐리펜의 희생이 헛되이 하게···”
“그건 나도 알아 이 문어 대가리야! 당연히 언니부터 먼저 데려다 놓을 건데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고민 중이잖아! 그리고 희생 같은 재수 없는 소리 할래?!”
마르야가 빽 소리쳤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성내에 메아리쳤다. 화들짝 놀란 브라움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왜, 왜 화를 내고 그러나.”
“···미안.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으음, 진짜 어떡하지.”
사과한 그녀가 머리를 쥐어 싸맸다. 워낙에 사안이 중대한지라 심신이 예민해져 있었다. 이릴은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깨지 않았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은 더없이 평온해 보였다.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문득 성벽 바깥쪽을 돌아본 마르야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벨이 일으킨 별의 가호가 너무 두꺼워서 외부의 상황을 확인할 수 없었다. 뭔가 요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는 있는 것 같긴 한데. 침음을 흘리던 브라움이 입을 열었다.
“우리 하수도로 한번 가 보는 건 어떤가? 지하에는 저 방어막이 없을 수도 있으니.”
“오, 그거 좋은데?”
마르야의 얼굴이 밝아졌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보통 하수관은 외부로 이어져 있고, 이런 거대한 성이라면 하수 시설도 분명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클 터였다.
“당장 출발하자. 너는 피 좀 남아 있지?”
“그래. 미미하기는 하지만···.”
브라움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마르야가 막 움직이려던 차였다. 갑자기 성벽 아래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살아 있었나.”
“자, 자이파 님?!”
시선을 내린 마르야가 경악했다. 시커먼 웨어타이거 한 명이 그녀를 올려보고 있었다. 함께 진입했던 특공대원 네 명이 자이파의 주변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행색으로 미루어 보아 저쪽도 만만치 않게 고생한 듯했다. 피로에 쩔어 있는 사람들은 다들 핏물로 목욕이라도 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문득 자이파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 여자는···.”
자이파의 시선은 마르야의 품에 안겨 있는 이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한 번의 도약으로 성벽 위에 도달했다. 세 사람을 번갈아서 쳐다보던 자이파가 헛웃음을 쳤다.
“아무래도 너희는 성공한 모양이군. 이거 수치스러운걸.”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에요! 혹시 돌아다니면서 하수도 같은 거 봤어요?”
“있다. 하지만 너희가 기대하는 상황은 아냐. 막혀도 아주 단단히 틀어막혀 있더군.”
자이파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와 부하들은 막 하수도까지 갔다가 올라온 참이었다. 탈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를 품은 특공대를 맞이한 것은 바글바글한 적과 더욱 두꺼워 보이는 별의 가호였다.
“그, 그럴 수가···.”
마르야의 얼굴이 굳어졌다. 희망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제는 정말 방법이 없었다. 잠시 침묵하던 자이파가 입을 뗐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역시 그 여자는 광신도들에게 빼앗기면 안 되는 거겠지?”
“네. 아마 확실하게요.”
“흠···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무리를 조금 해 보는 수밖에.”
자이파가 혀를 찼다. 언월도를 내려놓은 그가 별의 가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의미심장한 행동에 마르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하려구요? 언월도는 왜···.”
“어떻게든 뚫어 봐야지 어쩌겠나. 모두 그 애송이의 피를 내게 넘겨라.”
“···네?”
마르야가 물었지만 자이파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따라 온 사람들과 브라움에게서 로난의 피를 갈취해 손에 바를 뿐이었다.
“그, 그걸 왜 손에다가···.”
브라움이 당혹성을 흘렸다. 로난의 피로 적셔진 자이파의 손은 지옥의 불꽃과도 같은 암적색을 띠었다.
하나의 길이가 단검만한 손가락 위로 갈고리 같은 손톱이 자라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두꺼운 팔뚝이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설마.”
“흐으읍!”
그가 할 행동을 눈치챈 마르야가 눈썹을 치켜떴다. 동시에 쏘아진 자이파의 주먹이 별의 가호를 강타했다. 콰아아앙-! 철판을 돌덩이로 후려치는 듯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역시 단단하군.”
“세상에···!”
자이파가 혀를 찼다. 마르야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그의 손톱은 별의 가호를 미약하게나마 파고들어 있었다. 손톱이 박힌 자리 주변으로 거미집 같은 균열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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