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96)
299. 결전(7) >
#299
“세, 세상에···!”
마르야가 경악했다. 자이파가 후려친 자리에 균열이 가 있었다. 매우 미약하기는 했지만 일단 유의미한 손상을 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쩍 벌어진 그녀의 입에서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새나왔다.
“자, 자이파 님은···검성 아니었어요? 어째 맨손이 더 강한 것 같은데···.”
“모든 수인은 손에 열 자루의 검을 지니고 태어나지. 아무리 좋은 무기라 해봐야 이것과 비교하면 쇠토막일 뿐이다.”
“그, 그렇군요. 대단하네요.”
“나도 감회가 새롭군. 지금까지 이걸 꺼내게 한 것은 나비로제 그 여자밖에 없었다. 지금에야 유력한 후보가 두 명 더 있기는 하지만.”
눈치 빠른 마르야는 그것이 로난과 슐리펜을 지칭하는 말임을 눈치챘다. 손을 몇 번 쥐었다가 핀 자이파가 그녀에게 눈짓했다.
“이제 비켜라. 걸리적거리니까.”
“아, 넵.”
마르야가 물러섰다. 자이파의 몸이 다시금 부풀었다. 짐승처럼 포효한 그가 별의 가호를 연달아 가격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으윽···!”
지켜보던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았다. 콰아앙! 쾅! 발톱이 장막을 긁을 때마다 섬뜩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오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공격을 멈춘 자이파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후우···제기랄.”
“자, 자이파 님. 손이···!”
달아오른 자이파의 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브라움의 눈이 커졌다. 그토록 억세던 손아귀가 걸레짝으로 변해 있었다.
털이 모조리 벗겨진 손가락을 타고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장담하건대 로난의 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손톱 두어 개가 덜렁거리는 것을 본 마르야가 기겁하며 외쳤다.
“이, 이제 그만하세요!
“비켜라. 아직 멀었어.”
부풀어 오른 자이파의 꼬리가 바닥을 쾅쾅 때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 새겨진 균열은 분명 아까보다는 커져 있었지만 아직 부서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이렇게 해도···안 되는 건가.”
자이파가 원통하다는 듯 으르렁거렸다. 손상된 장막 너머로는 바깥 풍경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고 있었다. 무언가 요란하게 번쩍거리고는 있었는데, 시야가 좁고 소리가 들려오지 않으니 도통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비키라고 했다.”
“악!”
퍽! 자이파가 꼬리를 휘둘러 마르야와 브라움을 튕겨냈다. 그가 다시 가호를 공격하려던 차였다. 갑자기 장막 건너편에 웬 소년의 얼굴이 훅 올라왔다.
“너는?”
자이파가 눈썹을 치켜떴다. 붉은 머리의 소년은 맨몸으로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매우 낯이 익는 것이 그 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아는 얼굴이었다. 자이파와 눈이 마주친 소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
피투성이가 된 채 으르렁거리는 웨어타이거는 별로 심장에 좋은 볼거리가 아니었다. 잠깐 아래로 추락했던 소년이 다시 올라왔다. 뒤늦게 그를 발견한 마르야가 펄쩍 뛰어올랐다.
“아, 아셀?!”
“맙소사, 여길 어떻게!”
뒤따라 브라움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틀림없는 아셀이었다. 거인들의 폭격을 막아낼 때 입은 부상은 어찌어찌 치료한 모양이었다. 한달음에 달려온 마르야가 별의 가호에 철썩 들러붙었다.
“아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응? 다들 무사해?!”
“···!”
마르야를 본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셀은 마르야를 향해 손짓 발짓을 해가며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전음도 차단되었기에 그것이 최선이었다.
“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알아듣겠어?”
“아니···나도 잘.”
그 뜻을 알 리가 없는 사람들이 갸웃거렸다. 그냥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유일하게 마르야만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뜻을 알아듣는다는 티를 내고 있었다.
“아하. 그렇구나. 응, 응.”
“이봐. 지금 저 꼬마가 뭐라고 말하는 거지.”
“잠깐만요. 방해하지 말아 보세요. 아···그런.”
참다 못한 자이파가 물었으나 마르야는 손을 휙휙 휘저어 그를 돌려보냈다. 머지않아 의견 전달이 끝났다. 가호에서 얼굴을 떼어낸 마르야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좋은 소식이에요. 우리를 여기서 꺼내 주겠대요. 균열이 일어나는 걸 포착하고 온 거래요.”
“뭐야, 로난이 같이 오기라도 한 건가?”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든 될 것 같아요. 자이파 님이 고생해주신 것도 있어서···.”
마르야가 주억거렸다. 터무니없는 강도의 방어막이었지만 아셀의 말대로 한다면 아마 돌파가 가능할 것 같았다.
다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자이파를 따라온 여성 특공대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이릴을 건네주며 말했다.
“잠깐만 받아 주세요. 조심해서.”
“네, 네에?”
“미안해요. 남자들한테 함부로 맡겼다가는 노발대발할 사람이 있거든요.”
마르야가 면목 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성의 최상층을 올려보았다. 슐리펜이 일으킨 폭풍은 여전히 잦아들 기색 없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대주교들의 기술로 추정되는 마법과 폭발음이 연달아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발 무사해.”
그녀가 작게 읊조렸다. 어차피 슐리펜의 성격 상 지금 도우러 간다 해도 회오리를 거두지 않을 터였다. 이제 아셀과의 양동작전을 실행할 때였다. 대검을 들어 올린 그녀가 장막 쪽으로 걸어나갔다.
“잠시 비켜 주세요. 자이파 님.”
“네가 나보다 더 나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알아요. 그런데 지금은 아셀이랑 합을 맞춰야 해요. 장담컨대 이 부분에서만큼은 제가 더 나을 거에요.”
“거 참.”
마르야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이파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비켜섰다. 성큼성큼 걸어간 마르야가 방어막 앞에 멈춰섰다. 아셀은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럼, 갈게.”
마르야가 말했다. 그녀의 입 모양을 읽은 아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한 번에 부숴 버려야 했다.
“후우우우···.”
눈을 감은 마르야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대검을 타고 푸른 빛무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체내를 순환하던 마나가 모조리 대검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부족한 기량을 알고 있었기에, 몸에 남아 있는 거의 모든 여력을 신체와 대검을 강화하는 데 투자했다.
“···제법이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자이파가 눈썹을 으쓱였다. 완력 하나만은 로난이나 슐리펜을 초월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파아아···! 어느덧 대검이 마르야의 마나를 모조리 빨아 마셨다. 이제 그것은 검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길고 넓은 빛줄기로 변해 있었다. 심호흡한 그녀가 양손으로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참격을 날렸다.
“하아아아압-!!”
쩌렁쩌렁한 기합성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반대편에 있던 아셀이 눈을 질끈 감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보이지 않는 주먹이, 넓은 호를 그리며 날아간 대검이 동시에 같은 지점을 강타했다. 콰차아앙-!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균열이 간 부분이 폭발했다.
“이럴 수가!”
“깨, 깨졌다!”
지켜보던 이들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차단되어 있던 전장의 공기가 훅 밀려오며 그들의 앞머리를 젖혔다. 방어막이 깨진 것을 확인한 아셀이 더듬거리며 외쳤다.
“서, 성공했다···! 다들 이쪽으로!”
“어엇···!”
이제는 목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모든 특공대원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아셀이 손짓하자 그들은 낚싯바늘을 문 물고기처럼 훅 끌려왔다. 성을 빠져나온 사람들이 감탄을 흘렸다.
“저, 정말로 내가 살아나다니···꼼짝없이 죽을 줄 알았는데···!”
“로르혼 님의 제자로 들어간다는데, 그럴 만하군.”
살아날 거라 확신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셀은 순식간에 그들을 연합군의 후방에 내려놓았다. 부상자들이 모여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 이제 됐어요. 일단은 안심이에요.”
모두 무사한 것을 확인한 아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슐리펜이 아직 나오지 않았고, 절반 정도는 성내에서 전사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놀라운 성과였다. 그때 바로 뒤쪽에서 마르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셀!”
“마르야? 읍···!”
아셀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마르야에게 붙잡힌 그의 다리가 지면에서 떠올랐다.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졌다. 안 그대로 커다란 아셀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갈라지고 터진 마르야의 입술에서는 피 맛이 났다. 그녀는 삼 초 정도가 지난 뒤에야 아셀을 제자리에 내려 놓았다.
“마, 마, 마, 마르야?”
얼어붙어 있던 아셀이 간신히 입을 뗐다. 아직 입술 위에 온기가 남아 있었다. 눈웃음치던 마르야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최고였어! 너는 정말 최고의 마법사야!”
“이, 입술이···입술이 닿았어···.”
“네가 아니었으면 다 안에서 죽었을 거야. 정말이지 너는···!”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 섞여 있었다. 아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신음에 비슷한 소리만 줄줄 흘렸다. 그의 어깨에 눈물을 닦아낸 마르야가 고개를 들었다.
“윽, 너무 좋아했네. 나머지는 다음에 이어서 하자.”
“나, 나머지?”
의미심장한 발언에 아셀이 얼어붙었다. 마르야는 혀를 삐죽 내밀어 보이는 것으로 말을 맺었다.
짧은 환호가 끝났으니 이제 다시 진지해질 때였다.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대원에게 다시 이릴을 넘겨 받았다. 숨이 막힐 듯이 아름다운 모습에 아셀이 헛숨을 들이켰다.
“구, 구해냈구나. 정말로.”
“응. 슐리펜이 구했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눕힐 만한 곳이 없을까?”
“이, 임시 막사는 저쪽이야. 그런데 왜 누나 표정이···.”
“응?”
아셀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갸웃거린 마르야가 그녀를 내려 보았다. 발견 당시부터 평온하게 잠들어 있던 이릴이 고통 섞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으응···으으으···.”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러시지?”
마르야가 당황했다. 척 봐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새하얀 뺨을 타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셀이 말했다.
“빠, 빨리 가자. 심상치가 않아.”
“응.”
마르야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사람은 야전 병동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이파와 브라움이 호위하듯 곁을 지켰다. 문득 마르야의 시선이 미처 보지 못했던 전장에 닿았다.
“세상에, 저게 무슨···!”
“이거 아무래도 바깥이 더 재밌었던 것 같군.”
자이파가 헛웃음을 쳤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곳곳에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하늘을 종횡무진하던 거인들의 절반 이상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죽어 있었다.
산처럼 거대한 돌덩이가 공중에 머물러 있었다. 돌덩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반구형의 별의 가호가 연합군 진영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총본산을 감싸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였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띠는 것은 단연 하늘에 생겨난 초 거대 마법진이었다. 기존에 보았던 마법진을 모두 합쳐도 저것만큼 클 것 같지는 않았다.
하늘을 자욱하게 뒤덮은 구름층 너머에서는 뇌광을 연상케 하는 빛무리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쿠르릉! 쾅! 빛이 한 번 터져 나올 때마다 발현되는 충격파가 천지를 뒤흔들고 있었다. 마르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 방어막은 누가 세운 거고, 거인들은 왜 저렇게···.”
“별의 가호는 내가 설치했다. 저 덩치들을 치운 건 내 아들이고.”
“캬아아악!”
하마터면 이릴을 떨어뜨릴 뻔했다. 갑작스레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마르야가 비명을 지르며 멈춰섰다.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든 그녀가 눈썹을 치켜떴다. 하얀 머리의, 로난과 몹시도 닮은 중년인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다, 당신은 누구죠? 어째 로난과 닮은 것 같은데···.”
“그래. 나는 카인, 로난의 아버지란다.”
“네에에?!”
구원자가 끄덕거렸다. 성에 갇혀 있느라 카인을 보지 못했던 이들이 경악했다. 그가 말했다.
“내 딸을 구해줘서 고맙구나. 이제부터는 내가 맡을 테니 그만 쉬러 가거라.”
“가, 갑자기 그렇게 말하셔도 믿을 수가···그럼 로난도 여기에 온 건가요?”
“그래. 바로 저기서 세상의 운명을 건 싸움을 하고 있지.”
구원자는 팔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콰아앙-! 다시금 빛이 번쩍이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따라서 시선을 올린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방금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섬광 너머로 엄청나게 거대한 인간의 형체가 드러난 것 같았다. 못 해도 기존 거인보다 열 배 이상 커 보이는···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마르야가 겨우 입을 뗐다.
“바, 방금 그건···도대체 뭐였죠?”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정체는 예상이 가.”
“정···체?”
구원자가 잠시 침묵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몸에 무리가 오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둘 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숨을 고르던 그가 입을 뗐다.
“거인들의 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