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0)
31. 재회(1)
#31
바렌이 입을 열었다. 시선은 여전히 마르페즈와 시타에게 고정된 채였다.
“가운데는 바르샤바 혈족의 뱀파이어, 오른쪽은 아티아 페어리입니다. 각각 피를 다루는 마법을 다루고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오르세는 알아보겠는데 나머지는 모르겠네. 이게 다 시타에게 영향을 줬을 만한 놈들이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외형은 블랙 드래곤을, 능력은 나머지 둘을 닮았더군요. 환경이 아닌 생물에게 영향을 받았다 가정하면 말이지요. 하지만···뭔가 이상합니다.”
바렌이 드디어 로난을 바라보았다. 금빛 털로 뒤덮인 눈가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로난은 쟁반만한 쿠키를 씹으며 되물었다.
“뭐가 이상한데요?”
“전체적으로 모순이 있습니다. 우선 해츨링을 닮은 외형부터 그렇지요. 블랙 드래곤은 폴리모프를 즐기는 드래곤도 아니고, 만약 본 모습으로 마르페즈의 근처를 지나가가기라도 했다면 모를 리가 없었을 테니까요.”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마르페즈의 실종 기간과 장소 등을 추론해 봤을 때, 드래곤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없다시피 했다. 바렌이 말을 이었다.
“외형은 드래곤에게서 따왔다 가정하더라도 능력이 이상하지요. 혈마법과 치유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줄 아는 드래곤은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게다가 뱀파이어는 제국령 내에서는 씨가 마르다시피 했고, 페어리들은 훨씬 더 문명과 동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니···”
“음, 그러면 별로 진척은 없는 거네요.”
“송구하지만 그렇습니다. 다만, 제가 가설을 하나 세워봤습니다.”
“가설이요?”
로난이 눈을 끔뻑였다. 목을 한 번 가다듬은 바렌이 시타를 가리키며 말했다.
“꿈새가 알을 낳기 전에 흡수하는 것은···어쩌면 마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꿈새는 환상종 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편에 속합니다. 알려진 정보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요.”
그 말과 함께 바렌이 두꺼운 공책 한 권을 가져왔다. 40년간 마르페즈와 함께 생활하며 기록한 노트였다. 이 한 권에 여지껏 세간에 꿈새에 대해 알려진 정보의 8할 이상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시타가 부화하기 전부터 보여준 현상은 여지껏 알려진 정보와 아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일을 기점으로 꿈새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알 상태에서도 마나를 흡수했다. 그걸로 모자라 피까지 마셨다.
깨어난 뒤의 행색도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소리 없는 고속 비행, 피를 다루는 마법, 상처 치료 등. 이렇게 근본 없는 동물도 없을 터였다.
“마나가 아니라면 뭘 흡수할까요?”
“글쎄요. 저는 보다 추상적인 개념일 가능성도 있다 생각합니다. 감정이나 영혼···뭐 이런 것들···음.”
별안간 바렌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사실 전부 불확실한 소리지요. 교수로서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어째 갈수록 무능함만 드러내는군요. 연구는 꾸준히 진행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에이, 상관 없어요. 이미 이름까지 지어줬는데 재미있게 잘 지내 봐야죠.”
손사래를 친 로난이 휘파람을 불었다. 시타는 마르페즈를 든 채 로난에게 날아왔다. 아직 팔 힘이 약한지 몇 번이고 놓칠 뻔 했지만, 결국은 로난의 무릎 위에 마르페즈를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피이이~
“빠야!”
“그렇게 좋냐, 이 털뭉치들아.”
로난이 두 꿈새를 쓰다듬었다. 검고 푸른 깃털의 촉감이 썩 괜찮았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로난이 바렌을 보며 말했다.
“참, 보고는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요?”
대략 한달 전. 로난은 출장 중인 바렌의 집무실에 쪽지 한 장을 던져놓고 나왔다. 시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스케치, 그리고 밀렵 조직 카리볼로와 접촉했다는 메시지가 적혀 있는 쪽지였다.
바렌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네.”
로난은 바렌의 눈빛이 한순간 달라졌던 것을 포착했다. 그는 실수로라도 발톱이 드러나지 않게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자켓 주머니를 뒤적이던 바렌이 얼룩덜룩한 쪽지 서너 장을 꺼내들었다.
“아주 상세하게 적혀 있더군요. 큰 일을 하셨습니다.”
“지맥, 그러니까···페나르도 샘 일은 안타깝게 됐어요.”
“아닙니다. 덕분에 일찍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자, 확인해 보세요.”
쪽지를 받아든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밀렵 조직 카리볼로, 그곳의 말단인 발루스가 보낸 첩보였다.
로난이 발루스에게 첩보를 보내라 알려준 주소가 바로 바렌의 집무실이었다. 쪽지에는 카리볼로 각 지부들의 움직임이나 명단, 굵직한 계획 등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발루스 이 새끼, 나랑 시타가 어지간히도 무서웠나 보군.”
“제국 산림 순찰대가 역대급 실적을 올리고 있다는군요. 이대로 가면 정말 제국령에서 카리볼로를 뿌리 뽑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바렌은 발루스의 첩보를 바탕으로 제도의 산림청에 신고를 전달했다. 하도 정보가 정확한 탓에 자칫하면 의심을 살 수도 있었지만, 필레온 아카데미의 교수라는 신분이 그러한 의심을 무마시켜 주었다.
현재 두 개의 지부가 궤멸당했고, 카리볼로의 심장 역할을 하는 본부에 대한 단서도 조금씩 드러나는 중이라고 했다. 난데없이 바렌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군요. 로난 님···아니, 학생을 만난 이후로 제 삶이 달라져 가는 기분입니다. 이 답례는 반드시···”
“아아, 됐어요.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저번에 말한 거 기억나요? 동아리 말인데”
-벌컥!
로난이 지난번에 했던 이야기를 꺼내려던 차였다. 갑자기 집무실의 문이 확 열리더니 익숙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암녹색 제복. 등에 비스듬히 매어진 대태도, 비검(飛劍)우루사가 눈에 들어왔다. 로난을 본 여인이 입을 열었다.
“여기 있었군. 로난.”
“나, 나비로제 교관님? 여긴 어쩐 일로···.”
바렌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성큼성큼 다가온 나비로제가 대뜸 로난의 귀를 움켜잡았다. 로난의 입에서 꼬리 밟힌 원숭이가 지를 법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갸아아아악!!”
“실례했습니다 바렌 교수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힘이 어찌나 센지 조금만 당기면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나비로제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바렌은 두 사람을 번갈아서 쳐다보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로난이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제기랄, 이거 놔요! 바렌, 나 좀 도와줘요!”
“시끄럽다. 따라와라.”
“빌어먹을, 당신 웨어라이온이잖아! 덩칫값을 하란 말이에요! 아악! 비틀지 마!”
나비로제는 그대로 로난의 귀를 붙잡은 채 집무실을 나섰다. 쿵! 문이 닫힌 뒤에도 로난의 고통어린 비명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로난과 나비로제가 떠난 뒤에도 바렌과 꿈새 두 마리는 멍하니 닫히 문을 쳐다보았다. 바렌이 갈기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거 참.”
****
나비로제는 갈레리온 본관에 다다라서야 로난의 귀를 놓아 주었다. 불에 데인 것처럼 뒷걸음질친 로난이 귀를 붙잡으며 외쳤다.
“다짜고짜 이게 무슨 짓이에요! 젠장, 학생 하나 병신 만들 일 있어요?”
“왜 나를 찾아오지 않는 거지? 무기가 마련되는 대로 수업에 들어오라 했을 텐데.”
목소리가 싸늘했다. 밀림을 연상케 하는 녹색 눈동자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로난은 나비로제가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거 잘못 개기면 진짜 뒈지겠는데?’
잠시 잊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전생에서 만나거나 이름을 들은 기억은 없지만, 나비로제는 전대 검성이자 소드마스터. 지금 로난의 수준으로서는 결코 이기지 못할 강자였다.
‘내 팔다리를 자른 뒤 발가락을 핥으라 한다면···울면서 핥아야겠지.’
힘의 격차를 깨닫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로난이 격양되어 있던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아, 아직 무기가 안 만들어졌으니까 그렇죠···완성되어야 가져오든 말든 할 거 아니에요.”
“네 허리춤에 차고 있는 건 이쑤시개라도 되는 건가?”
“이건 임시로 받은 칼이에요. 정말 제대로 된 무기가 마련되는 순간 찾아가려고 했다니까요.”
“장인의 도시 로디움까지 가서 사 와도 이거보다는 덜 걸리겠더군. 그란 카파도키아에 제작 의뢰라도 맡긴 건가?”
로난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엥? 어떻게 알았어요?”
“이제 거짓말까지 하는군. 그게 뭔지도 모를 텐데.”
나비로제가 손을 뻗었다. 로난이 양쪽 귀를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시발, 귀는 안 돼! 진짜 안다니까요. 교관님 칼도 도론인지 오론인지 하는 영감님이 만든 거잖아요!”
“···네가 그걸 어떻게?”
나비로제가 멈칫했다. 로난은 그란 카파도키아에서 겪은 일을 간추려서 설명했다.
낡은 대장간과 지저로 이어지는 승강기. 종유석 사이를 오가는 드워프들.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나비로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결코 그냥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닐 터인데. ’
그란 카파도키아에 개인 의뢰를 맡기는 조건은 매우 까다로웠다.
이미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이들, 혹은 운 좋게 잠재성을 증명한 이들만이 지저의 장인들에게 의뢰를 맡길 수 있었다. 게다가 도론이라면 그 중에서도 최고로 꼽는 대장장이가 아닌가.
‘나 말고도 재능을 알아본 사람이 있는 건가.’
나비로제가 옅게 웃었다.가만히 로난을 바라보던 그녀가 등을 돌렸다.
“···알았다.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라.”
저항 의지는 진작에 꺾였다. 로난은 얌전히 그녀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웅장한 복도를 따라 몇 분을 걸었다.
이윽고 생전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대문이 나타났다. 두 발로 걸어다니는 모든 종족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비로제가 문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제 1 대련장. 기억해라. 내 수업은 항상 이곳에서 진행된다.”
나비로제가 살짝 힘을 주자 대문은 물이 흐르듯 부드럽게 열렸다. 교실이라기보다는 투기장을 연상케 하는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쇳소리가 밀폐된 공간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돌바닥이 깔린 드넓은 투기장에서는 수십 명의 학생들이 조를 짜서 대련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익숙한 면면도 있기는 했다.
“흐아아압!”
“힘은 좋지만 여전히 느려 브라움!”
브라움의 대검이 파괴적인 호를 그리고 있었다. 마나를 두른 레이피어가 사납게 쇄도하며 빈틈을 파고들었다. 2학년의 수석과 차석인 브라움과 나스도였다.
“오늘도 열심히시군···음? 저 자식도 있네?”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투기장의 한구석에는 슐리펜이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그는 다른 동기들처럼 대련을 하는 대신 가만히 검을 쥐고 있기만 했다.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남들 다 대련하는데 저 새낀 혼자 뭐 하는거야?”
“마나를 연공하는 중이다. 어차피 상대가 되는 학생이 없으니 나만 가끔씩 검을 봐 주는 수준이지.”
나비로제가 말했다. 그녀는 슐리펜이 언젠가 자신을 뛰어넘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열한 살에 오러를 개화한 재능도 재능이었지만, 강함에 대한 집착이 정상범주를 아득하게 넘었다. 슐리펜의 코어를 살피던 나비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 나중에 마나를 운용하게 된다면 슐리펜을 본받아라 로난.”
“노력해 볼게요.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가능성이 있다. 나는 교육자로서 네가 재능을 낭비하게 두지 않을 거다.”
나비로제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진지했다. 그녀는 아마도 자신의 후계자가 될 두 소년과, 몇 년 동안 소드 익스퍼트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소녀 한 명을 떠올렸다.
“세상에는 갖지 못해 슬픈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워낙 조용한 읊조림이었던 탓에 로난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로난은 다른 사람의 대련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생전 보지 못한 흥미로운 무기술이 오가고 있었다.
“시원하게 검기로만 승부하는 거 어때?”
“좋지. 방어막이나 쳐.”
개중에는 아예 검기만으로 승부를 보는 이들도 있었다. 넥타이 색이 아예 다른 것을 본 로난은 그들이 3학년 이상의 선배들이라는 것을 어렵잖게 눈치챌 수 있었다. 나비로제가 말했다.
“원래는 소드 익스퍼트 이상의 경지에 이른 학생만 내 수업을 들을 수 있었지.”
“지금은 아닌가요?”
“그래···작년부터는.”
스르릉. 별안간 대태도를 뽑은 나비로제가 천장을 향해 검기를 쏘았다. 초승달 모양으로 날아간 검기는 천장에 붙어 있는 거대한 종에 직격했다.
뎅-!
웅장한 종소리가 잡스러운 소음을 모두 집어삼켰다. 자연스레 하던 일을 멈춘 학생들이 고개를 돌렸다. 나비로제가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집합.”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자켓을 벗어던진 학생도, 아예 상의를 탈의하고 있는 학생도 있었지만 나비로제는 딱히 복장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녀가 뒷짐을 진 채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수업을 함께 듣게 될 거다. 로난, 앞으로 나와라.”
로난이 머리를 긁으며 앞으로 나섰다. 1학년이 매는 붉은 넥타이에 학생들의 시선이 쏠렸다. 2학년을 제외한 상급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쟤가 걔야? 이번 신입생 차석? 잘 생기긴 했네.”
“눈빛이 영 마음에 안 드는데. 건방져 보여.”
“특별한 건 딱히 안 느껴지는데···나비로제 교관님이 잘못 데려오신 거 아냐?”
딱히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다 들리는 크기였다. 로난이 나비로제를 힐긋 바라보았다. 그는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한번씩만 주물러 주면 안 돼요?’
나비로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로난. 지금까지 필레온에서 무슨 과목을 배웠지? 전투 과목만.”
“예? 음···그러니까. 일단 제국 검술이랑, 제국 창술이랑, 기본 방패술이랑···”
“그만. 여기서 하나씩 시연해 봐라. 무기와 방패는 전부 마련되어 있으니.”
“그럴까요.”
실력 행사라. 말뜻을 이해한 로난이 검을 뽑았다. 스르릉! 도론이 준 롱소드가 백색 검신을 드러냈다.
‘다시 봐도 참 잘 만들었어. 며칠 뒤가 기대되는군.’
습작 취급을 받는 물건이라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은 검이었다. 분을 다소 가라앉힌 로난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럼 뭐, 할게요.”
로난은 배운 대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총 아홉 종류의 검술, 백 하고도 두 개의 초식이 선배들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심드렁하던 반응은 서서히 감탄으로, 감탄은 압도에서 비롯된 침묵으로 변해갔다.
“이게···재능?”
“···말이 안 나오는군.”
“젠장, 방금 내가 말한 거 못 들었겠지?”
나비로제는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쓸데없는 텃세를 지우기 위해서는 실력 행사만한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투기장의 대문이 살짝 열리며 장신의 소녀 한 명이 뛰어들어왔다.
“죄, 죄송합니다 교관님! 남아서 보충 수업을 한 탓에···!”
“괜찮다. 그보다 저 학생의 동작을 봐라. 어떠냐?”
나비로제가 턱 끝으로 로난을 가리켰다. 그는 지금 창을 들고 제국 창술의 2초식을 막 펼치는 중이었다. 소녀가 양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감탄했다.
“와아아···! 쟤, 쟤는 뭐죠? 붉은 넥타이를 보니 신입생인데 어떻게 저런 투로가···.”
“어느 부분이 대단한지 알아보겠나.”
“그럼요. 우선 힘의 배분이 완벽해요. 창을 휘두르다 보면 흔히들 하는 실수가 있는데···균형을···어라? 혹시 지금 마나를 안 쓰고 있는 거 아닌가요?”
소녀는 로난의 무예가 어째서 훌륭한지 정확하게 짚어서 설명했다. 어지간한 교관보다 예리한 분석이었다. 나비로제가 씁슬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실력이 통찰력의 반만큼만 되어도 좋으련만.’
나비로제는 그제야 소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키 차이가 제법 나서 그녀가 고개를 들어야 했다.
“세상에 몇 없는 행운아들 중 하나지. 잘 봐 두도록 해라. 순식간에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올라가 버릴 테니까.”
밤처럼 검은 머리칼, 새하얀 피부와 높은 콧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비로제가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아데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