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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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크아아아아!】
나바르도제가 포효했다. 입을 벌린 그녀가 숨을 내뱉는 순간 진홍색 불길이 해일처럼 쏟아져 나왔다.
화아아악! 어지간한 국가도 단번에 불살라 버릴 화염은 시야를 뒤덮었다. 한참 뒤 불길이 사그라들자, 이전과 변함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번에도인가.】
숨을 고르던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전후좌우 어디라 할 것 없이 새하얀 공간에서는 균열이나 그을림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벌써 수백 번째 탈출 시도를 하고 있었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녀는 아벨과의 전투 도중 이 아공간에 유폐되었다. 그가 무슨 술수를 쓴 것 같았는데 자세한 전말은 알수 없었다.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던 찰나, 아벨이 무슨 돌 같은 걸 꺼내들었던 것만 기억이 났다.
【아이들이···위험한데.】
나바르도제가 침음을 흘렸다. 모두가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자신이 없다면 현재로서 연합군 측에 아벨을 감당할 만한 인물은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나약함에 괴로워하던 차였다. 갑자기 아래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나?”
【너는···!】
나바르도제가 시선을 내렸다. 만신창이가 된 아벨이 눈에 들어왔다. 팔다리를 각각 한 쪽씩 상실한 아벨은 검을 지팡이 삼아 딛고 서 있었다.
【이놈!】
콰아아앙-! 주저 없이 발을 쳐든 그녀가 아벨을 깔아뭉갰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나바르도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용없다. 나는 진짜가 아닌 관념체에 불과하니까. 혹시나 싶어서 보러 왔는데, 거 참 끈질기시군.”
그때 아벨의 형체가 나바르도제의 발 옆에서 다시 나타났다. 정령처럼 반투명한 몸이 그의 말이 사실임을 방증하고 있었다. 쾅! 다시 한번 아벨을 짓밟은 나바르도제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네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여기 가둔 거냐!】
“네가 너무 강한 걸 유감스럽게 생각해라. 딱 하나 있는 봉인석을 써 줬는데 영광으로 알아야지. 원래는 네년에게 쓸 물건이 아니었거늘···.”
아벨이 끌끌 혀를 찼다. 실제로 그가 나바르도제에게 사용한 봉인석은 따로 임자가 있는 물건이었다.적절한 시기에 등장한 로난이 생각보다 강해서 다행이었다.
“어쨌든 너는 절대 여기서 탈출하지 못할 거다. 아마 내가 풀어주지 않는다면 영원히 갇혀 있겠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일을 마치는 대로 친히 죽여줄 테니까.”
【헛소리 말고 당장 내보내란 말이다!】
“그럼 곧 다시 보자.”
아벨은 그녀의 호통을 무시하고 작별인사를 건넸다. 흐릿해지던 그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화를 참지 못하고 불을 뿜어 대던 나바르도제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
나바르도제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빛에 휘감긴 그녀의 몸이 인간의 형태로 돌아왔다. 천천히 숨을 고르던 그녀가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하아아아···.”
힘을 절약하기 위한 소형화였다. 물론 조금 쉬다가 다시 탈출 시도를 이어나가기는 할 테지만, 이쯤 부딫혀 보니 아벨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정말로···이렇게 있어야 하는 건가.”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시간을 살아왔지만 이런 위기는 처음이었다. 그녀가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눈앞의 백색 공간 위로 검은 가로선 하나가 쭉 그어졌다.
“음?”
지금껏 본 적 없는 현상에 나바르도제가 눈썹을 치켜떴다. 가로선은 시야를 완전히 양분하고 나서야 멈춰섰다.
이어서 해당 선을 중심으로 세로선 하나가 더 그어졌다. 그 다음에는 대각선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그어지기 시작했다.
“···뭐지?”
영문 모를 일이었다. 꼭 원을 그리는 것 같았다. 머지않아 선으로 뒤덮인 눈앞의 풍경은 온통 검은 색으로 변해 버렸다.
우주의 심연을 연상케 하는 색채였다. 흥미를 느낀 나바르도제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는 차였다. 어둠 안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아, 열렸군. 정말 다행이야.”
“뭐?”
나바르도제의 눈이 커졌다. 호탕한 목소리는 분명 과거에 들어본 적이 있었다. 머지않아 어둠 한복판에서 웬 사내 두 명이 걸어 나왔다. 그들과 마주친 나바르도제가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너희들은···!”
****
[제 3, 5부대. 발사!]아데샨이 외쳤다. 현장에서 재조직된 별동대가 사격을 개시했다. 거인의 왕과 싸우는 로난을 돕기 위한 지원 사격이었다. 눈이 탁하게 물들어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아데샨에게 정신을 장악당한 이들이었다.
콰광! 쾅! 온갖 투사체와 파괴적인 마법이 거인들을 향해 쏘아졌다. 수백 개의 덩어리가 하늘을 가르는 광경이 나름 장관이었다. 대부분은 빗나갔지만 거인들을 견제하는 역할은 확실히 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필멸자들이여. 저항을 멈춰라.』
『부질없는 짓을.』
거인들은 깔보는 태도와는 별개로 공격을 피하거나 최대한 방어하고 있었다. 로난의 피가 듬뿍 묻어 있어서 마냥 가호만 믿고 날뛸 수가 없었다.
아데샨이 남아 있는 로난의 피를 모조리 별동대에 투자했기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위력 자체가 달랐다. 어쩌다가 피격 당한 이들이 고통 어린 침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으음···!』
[숨 돌릴 틈을 주지 마라. 제 1, 2, 4부대. 발사!]
『당장 그만두지 못할···윽.』
굉음이 작렬할 때마다 푸른 피가 튀었다. 물론 거인들도 머저리가 아니었기에 반격이 돌아왔다. 쉬이익! 지상을 향해 내리꽂히는 빛의 창은 하나하나가 모든 부대를 전멸시킬 위력을 품고 있었다.
[자리를 지켜라.]별동대는 요격을 위해 아셀이 세운 장막 바깥으로 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데샨은 부대를 나눠서 배치하기는 커녕 다닥다닥 밀집시켜 놓았다.
빛의 창들이 일정 범위 내로 들어온 것을 감지한 그녀가 구원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알고 있네.”
마나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킨 구원자가 손을 뻗었다. 허공에 생성된 육각형의 방어막이 빛의 창들을 가로막았다.
콰아아앙! 폭발과 함께 역광이 드리웠다. 연합군 전체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수였기에 부상 당한 구원자도 그들을 지켜줄 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래···이렇게라도 도움이 되서 기쁘군.”
어찌어찌 회복한 구원자는 마지막 여력을 짜내고 있었다. 땅에 처박혀 있던 전함 다인하르도 다시 가동 중이었다. 바윗덩이 곳곳에서 쏘아지는 수십 발의 광선이 그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내 딸은···아직 잡지 못한 건가?”
“예. 워낙에 움직임이 변칙적이라 추격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도 포위진을 구성하고 있으니 금방 해결될 겁니다.”
“그래···쿨럭, 그 부분은 자네만 믿겠네.”
구원자가 끄덕거렸다. 현재로서 지상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이릴을 잡아서 능력을 해제시키는 것이었다. 로난이 기필코 거인들의 왕을 처치하리라 믿으면서.
‘역시 대단한 사람이야.’
아래를 슬쩍 내려본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십만 남짓한 인원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형이나 동작의 정교함만 본다면 오히려 사람들이 제정신일 때보다 나을 지경이었다.
‘하긴, 원래는 백만 명을 지휘하던 사람이었지.’
대장군의 실력은 지난 삶에 비해서 전혀 쇠퇴하지 않았다. 관전만이 허용된 네 번째 삶에서도 느끼고 배운 것이 있는지 오히려 더 발전해 있었다. 불현듯 앞쪽에서 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 비겁한 필멸자야···!』
“엉. 불렀냐.”
로난이 고개를 들었다. 거인의 왕이 으르렁거리며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그의 목과 가슴에 난 상처에서는 아직도 푸른 피가 조금씩 새나오고 있었다. 처음과 비교한다면 많이 아물어 있었지만, 원체 깊어서 낫게 하는 것이 쉽지 않은 듯했다.
더군다나 왕의 몸에는 못 보던 자상 수십 개가 새겨져 있었다. 모조리 두 번째 전투가 시작된 뒤 로난이 새겨 놓은 것이었다.
자잘한 상처들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목과 가슴의 상처를 틀어막느라 다른 곳을 돌보지 못하는 탓이었다. 로난은 그 사실을 알아낸 뒤로 계속해서 방어하기 힘든 곳에만 검격을 그어 대고 있었다.
‘원래 덩치 큰 짐승은 이렇게 잡는 거지.’
과다출혈은 거인 종족에게도 치명적이었다. 달라진 로난의 전투 방식은 매우 효과적으로 왕의 화를 돋구고 있었다. 그가 여덟 장의 날개를 단번에 펼치며 소리쳤다.
『장난하지 말고 제대로 맞서라! 조금 전의 당당한 기개는 어디로 간 거지!』
“개한테 줬어.”
『이 미물이 감히···』
왕이 뭐라 말을 이으려던 차였다. 로난이 검 끝을 왕에게 겨누었다. 노을색 빛무리가 짙어짐과 동시에 인력이 강해졌다.
파아아앙! 왕을 향해 쏘아져 나간 로난이 다시 한 번 참격을 날렸다. 몸이 굼떠진 왕은 이전처럼 잽싸게 움직이지 못했다. 긴 꼬리를 그리며 날아온 라만차는 왕의 종아리를 베며 지나갔다.
『크윽!』
“오, 같은 자리.”
피가 솟구치는 것을 본 로난이 휘파람을 불었다. 왕은 정말로 강했지만 원래 승부라는 것은 예측이 불가능한 변수로 인해 결판이 나는 것이었다. 후우우웅! 왕의 검격을 가볍게 피한 로난이 입을 열었다.
“그 공격을 허용했던 순간 끝난거다. 너는 졌어.”
『방종이 도를 넘었구나. 그런 헛소리를···억!』
로난은 왕이 말을 맺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참격을 날렸다. 이번에는 팔꿈치 부근에서 피가 튀었다.
『크아아악-! 』
촤자작! 연속해서 다른 부위를 공격당한 왕이 노성을 터트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이대로라면 정말 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그가 대검을 높이 쳐들며 외쳤다.
『오냐, 그렇다면 네가 지키고자 하는 것부터 소멸시켜 주마! 어디 한 번 막아 봐라!』
“뭐?”
로난의 눈이 커졌다. 어쩐지 대사가 심상치 않았다. 콰아아아아···! 사방에서 모여든 빛의 입자가 대검을 휘감으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가 외쳤다.
“빌어먹을, 멈춰!”
왕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닫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로난과 마찬가지로 작전을 바꾼 그는 지상의 세력을 먼저 날려 버리려 하고 있었다.
‘젠장, 아껴 놓은 기술인데.’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아셀과 아데샨이 버티고 있었지만 저만한 게 떨어진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버티지 못할 터였다. 숨을 고르던 그가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기회는 한 번.’
아무래도 비장의 수를 써야 할 것 같았다. 원래는 마무리지을 수 있는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쓰려 한 기술이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거리를 가늠한 그가 전신의 마나를 활성화시키려던 순간이었다. 퍼어어엉-! 하늘을 가리던 구름이 폭발하듯 흩어졌다.
“젠장, 뭐야?!”
화들짝 놀란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넓고 짙은 그림자가 대지 위로 드리웠다.
목덜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은 로난이 고개를 돌렸다. 별 가득한 밤하늘 저편에서, 거인왕이 작아 보일 정도로 거대한 레드 드래곤 한 마리가 바람을 가르며 강하하고 있었다.
“나바르도제···!”
『뭐?』
로난의 눈이 커졌다. 틀림없는 불의 어머니였다. 힘을 끌어모으던 왕이 한발 늦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콰직!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쇄도해온 나바르도제가 뒷발로 그의 가슴을 내리 찍었다.
【이게 놈들의 우두머리인가!】
『커어어억!』
나바르도제가 외쳤다. 왕의 입에서 피가 왈칵 터져 나왔다. 불행히도 그가 얻어 맞은 자리는 로난에게 깊숙히 베인 곳과 일치했다.
나바르도제는 왕을 짓밟은 모양새 그대로 지상까지 추락했다. 콰아아앙-! 화산이 터졌다고 해도 믿을 법한 굉음이 지천을 흔들었다. 힘을 거둔 로난이 탄성을 내뱉었다.
“정말로 살아 있었어···!”
기적적인 생환이었다. 아데샨의 말마따나 나바르도제는 죽지 않았다. 로난이 그녀의 빠른 일처리와 유능함에 감탄하던 와중이었다. 벙쪄 있던 아데샨이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아직···별동대를 안 보냈는데.”
이릴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해서 아직 나바르도제에게는 인원을 배정하지 않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지 알 수가 없었다.
『폐하···!』
지상을 공격하던 거인들이 당혹성을 터트렸다. 그들이 왕을 돕기 위해 서둘러 몸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콰아아아-! 구름 뒤편에서 쇄도해온 두 갈래의 광선이 거인들을 휩쓸었다.
『허어억!』
『컥···!』
고통 섞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대부분이 지상군과의 전투에서 가호를 상실해 버린 탓이었다. 밤도 낮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한 광선은 거인들의 피부에 극심한 화상을 입혔다.
나바르도제가 내려온 하늘 위에서, 어느 사내와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행히도-】
【아주 늦지는 않은 모양이군.】
“이 목소리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말투였다. 머지않아 나바르도제와 비견되는 거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흉터로 뒤덮인 황금빛 비늘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쌍두룡의 모습에, 로난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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