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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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겨, 결혼이요···?!”
이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머리를 어지럽히던 몽롱함이 확 날아가 버렸다.
결혼? 설마 방금 결혼이라 하신 건가? 내가 아는 그거?
벙긋거리던 그녀가 다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은 일 분 정도가 더 지난 뒤였다.
“저, 저기요···그러니까···그러니까 응, 저도 절대 슐리펜 님이 싫은 건 아닌데요. 조금 너무 갑작스럽다고 해야 하나···.”
이릴이 더듬거렸다. 새하얀 얼굴이 복숭아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슐리펜은 여전히 그녀를 끌어안은 채 놓아 주지 않고 있었다.
“그···애초에 저처럼 평범한 여자가 뭐가 좋다 그러세요. 얼굴도 별로구, 귀족분들처럼 막 반짝반짝하지도 않구···이, 일단 슐리펜 님보다 나이도 훨씬 많잖아요. 분명 금방 싫증 나실 거에요···.”
“아니,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습니다···제 심장의 주인은···오직 당신뿐입니다.”
슐리펜이 취한 듯 중얼거렸다. 그의 칼솜씨만큼이나 강력한 일격이었다. 치사량에 근접하게 빠져 나간 피는 떠오르는 말을 뇌를 거치지 않고 지껄이게 해 주었다.
“아, 아이 차암···.”
이릴이 양손으로 볼을 감쌌다. 설마 동생의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한 그녀가 슐리펜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신 거에요? 기껏해야 저희 로난이랑 같은 나이면서···나, 나이 많은 여자를 놀리면 못 써요!”
“사랑···합니다.”
“또, 또 그런···!”
참다 못한 이릴이 슐리펜의 가슴을 툭툭 때렸다. 더 듣고 있다가는 얼굴이 뜨거워지다 못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구원자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건 또 참신한 기분이군. 왠지 는 모르겠지만 저 슐리펜이라는 친구를 죽이고 싶어졌어.”
“참으셔야 합니다.”
아데샨이 그를 말렸다. 과거 그녀와 함께 근무했던, 딸아이를 둔 군인들과 별다를 것 없는 반응이었다. 구원자가 주억거렸다.
“알고 있네. 나는 그럴 자격이 없지. 내가 이릴에게 아비 노릇을 해주지 못한 것이 저 친구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군.”
아무리 애인의 수준이 높다고 해도 일단 다리를 부러뜨리고 보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심정이었다. 견디다 못한 이릴이 슐리펜을 뿌리쳤다.
“이, 일단 알았어요···알겠으니까 치료 먼저 해요! 세상에, 이런 상처를 달고 어떻게···.”
기분은 썩 괜찮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털썩. 슐리펜은 이릴에게서 떨어지자마자 바닥에 쓰러졌다.
“어···슐리펜 님?”
이릴이 당황했다. 꼭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 같았다. 멋쩍게 웃으며 일어설 거라는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결과였다. 눈을 깜빡거리던 그녀가 다급하게 슐리펜의 몸을 흔들었다.
“슈, 슐리펜 님? 정신 차리세요! 슐리펜 님!”
슐리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의식은 이미 바동거리던 이릴에게 가슴팍을 맞았을 때부터
암전되어 있었다.
그래도 할 말을 다 해서인지 표정 하나는 후련해 보였다. 그를 낑낑거리며 앉혀 놓은 이릴이 눈물을 글썽였다.
“세상에, 이 피 좀 봐! 주, 죽으시면 안 돼요···!”
숨소리가 너무 미약해서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검붉은 피 웅덩이가 그가 앉은 자리에 고여 있었다. 대주교들과의 싸움에서 얻은 상처는 하나하나가 크고 깊었다.
한계에 봉착한 슐리펜의 몸은 더는 주인의 허세에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다. 이릴이 옷이라도 찢어 지혈에 나서려던 차였다.
불현듯,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죽지 않았다.”
“···네?”
고개를 든 이릴이 눈썹을 치켜떴다. 거대한 웨어타이거 한 마리가 그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을 본 이릴이 입을 틀어막았다.
“지, 지파 님!”
“자이파다.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군.”
자이파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환각에서 깨어나자마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왔다. 머지않아 상황을 파악한 자이파가 이릴을 보며 끄덕거렸다.
“···그렇군. 네 능력이었던 건가.”
마냥 아름다운 인간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엄청난 힘을 품고 있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고맙다.”
“네? 뭐가요···?”
갑작스러운 감사에 이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자신이 사람들을 잠들게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자이파는 그것이 잠시나마 죽은 아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음에 대한 감사라는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런 게 있다.”
“뭐,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제가 도움되었다니 기뻐요. 그, 그보다 슐리펜 님이···!”
“그거라면 걱정 마라. 이미 의료반이 와 있으니까.”
그리 말한 자이파가 엄지로 뒤편을 가리켰다. 환각에서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막 정신을 차린 시타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뺘우우웅···.”
“이봐, 새. 충분히 잤으면 내 제자를 치료해다오.”
자이파가 말했다. 동물은 사람보다 정신을 차리는 것이 빨랐다. 주변이 부상자로 뒤덮인 것을 확인한 시타가 네 장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뺘앗!”
붉은 파문이 번져 나갔다. 파아아···! 전장에 널브러진 핏물이 모두 방울이 되어 떠올랐다. 제각기 알아서 분류된 혈액은 주인들의 몸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으윽···으으으···.”
“피, 피가···?”
죽어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유별나게 상처가 깊은 중상자는 따로 특별 조치를 받았다.
상처를 치유하는 적색 기운이 슐리펜의 몸을 휘감았다. 외상이 아물고 뼈가 붙었다. 그의 호흡이 안정된 것을 확인한 이릴이 탄성을 흘렸다.
“다, 다행이다···고마워요!”
“감사는 그 녀석이 깨어나면 해줘라. 너를 구하기 위해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걸었던 놈이니까.”
“그, 그런···.”
자이파는 벙쪄 있는 이릴을 뒤로 하고 몸을 돌렸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활기가 돌아온 전장에서는 쓰러졌던 사람들이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그런가···발자크. 꿈이었나.”
【크하하하! 어떠냐, 나바르도제. 이 오르세 님이야말로 진정한 패자라는걸 알겠···으음?】
“허허···완전히 의식을 잃은 건 9서클에 도달한 이후 처음이군요.”
연합군의 주 전력들도 하나둘씩 눈을 떴다. 그들은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거인들과의 전투에 참전했다. 뒤늦게 자신이 거대한 별의 가호를 세우고 있는 것을 깨달은 아셀이 비명을 내질렀다.
“히에에엑! 이, 이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거야?!”
“대, 대단해. 아셀.”
전열을 가다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데샨은 사람들이 정신 차리는 것을 돕고, 필요한 명령을 내린 뒤 그림자의 마나를 거두었다.
‘···이 정도면 됐나.’
능력을 너무 많이 써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가 숨을 고르던 차였다. 옆에 있던 구원자가 맹렬한 기침을 터트렸다.
“쿨럭! 커헉···!”
“괜찮으십니까?”
토해내는 핏덩이의 양이 심상치가 않았다. 몇 번이고 상체를 들썩거리던 구원자는 손을 들어 괜찮다는 뜻을 표했다. 간신히 진정에 성공한 그가 아데샨에게 물었다.
“이제 됐네···후우, 자네는 내 아들과 사귀고 있지?”
“···네?”
뜬금없는 질문에 아데샨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걸 뭐라 대답해야 할지. 머뭇거리던 그녀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일단은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아니기는 합니다만.”
“피는 못 속이는군. 흐흐, 나도 아내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에 미쳤었거든···.”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신 겁니까?”
“내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네. 이제는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서 말이지.”
구원자가 미소 지었다. 어쩐지 후련해 보이는 웃음에 아데샨이 입술을 비틀었다.
그런가. 처음 봤을 때부터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결국 그렇게 되는 건가. 구원자가 말을 이었다.
“나는 전함으로 가야겠어. 기왕 가져온 건데 충분히 써먹어야지. 자네는 어떻게 할 텐가?”
“저도···곧 가겠습니다.”
아데샨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다시 한 번 웃어 보인 구원자가 터덜터덜 발걸음을 올렸다. 땅에 처박혔던 전함 다인하르가 당장에라도 이륙할 것처럼 굉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 너머로는 한층 더 격해진 전투가 눈에 들어왔다. 드래곤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원소의 폭풍이 하늘과 땅을 휩쓸고 있었다. 빛의 창이 하늘을 가로지를 때마다 드래곤이 몇 마리씩 추락하고 있었다.
“···이제 됐나.”
구원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데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자신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근처의 바위에 기대 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더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다행이군. 더 늦기 전에 소임을 다할 수 있어서.’
거인과의 전투를 지켜보던 아데샨이 옅게 미소지었다. 비등해 보였지만 금세 결판이 날 터였다.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굉음이 싸움이 절정에 치달았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더는 자신이 할 일은 없어 보였다. 아데샨이 세수하듯 얼굴을 쓸어내렸다. 호흡을 고르던 그녀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중얼거렸다.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건···나도 마찬가지거늘.”
구원자를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의식이 조금씩 흐려져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구름이 사라진 밤하늘에는 별이 찬란했다. 가장 밝은 별에 시선을 맞춘 아데샨이 조용히 읊조렸다.
“세니엘이여···이제 됐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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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거인의 왕이 중얼거렸다. 동족들과의 연결이 빠르게 끊어지고 있었다. 그는 본인을 포함하여 남아 있는 거인이 채 열 명도 되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이 안 되기는 뭐가 안 돼.”
그때 발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검을 역수로 고쳐 잡은 왕이 방어 자세를 취했다. 카아아앙-! 예리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얼씨구, 또 막아?”
로난이 혀를 찼다. 다 죽어가는 주제에 몸놀림이 잽싼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왕을 끌어내린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지상에서 전투를 진행하고 있었다.
카가각! 대검과 비적거리던 라만차가 다시 내질러짐과 동시에 수십 개의 불씨가 허공에서 피어났다. 왕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을 물러났다.
『필멸자 따위가 감히···!』
왕이 이를 악물었다. 점점 약해지는 자신과는 달리 로난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몸에 남아 있던 저주는 봄을 맞이한 설원처럼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날려 버려라, 로난!】
그때 하늘 위에서 나바르도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는 왕이 소환한 사역마 수백 마리를 홀로 상대하고 있었다. 진홍색 화염이 하늘을 휩쓸 때마다 빛으로 이루어진 맹수들이 입자로 화하며 소멸했다.
다른 거인들의 사역마와는 격이 다른 개체들인데,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몇 합을 더 겨누던 왕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건방진···.』
이대로 밀리기만 하면 답이 없었다. 로난은 아직도 과다출혈을 노리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었기에 장기전이 될수록 자신이 불리해졌다.
‘···후퇴해야 하는 건가.’
생각하는 것만으로 수치스러웠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고향 행성에 모아 놓은 힘을 끌어 오면 이런 버러지들은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지만, 고작 작은 별 하나 삼키자고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고뇌하던 왕이 결단을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심장을 쓰다듬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그를 엄습했다.
『뭣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누군가 그의 근원이 되는 힘을 건드리고 있었다. 헛숨을 들이킨 왕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 보았다.
고향과 이어진 마법진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머지않아 침입자의 기척을 파악한 왕이 탄식하듯 내뱉었다.
『아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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