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08)
311. 종막(2) >
#311
『드디어. 죽었나.』
익숙한 목소리가 하늘 위에서 울려 퍼졌다. 섬뜩한 기시감에 로난이 고개를 들었다. 텅 빈 백색 공간만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벨···!”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그것은 틀림없는 아벨의 목소리였다. 로난이 눈을 부릅뜬 채 하늘을 노려 보던 와중이었다.
『참으로 부질없군.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결국은 본인이 사랑하던 이들과 같은 꼴이 되었어.』
갑자기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시선을 내린 로난이 헛숨을 들이켰다. 어느샌가 나타난 아벨이 구원자의 시체를 살펴 보고 있었다.
“뭐.”
『이제 그만 주무시오. 어리석은 형님.』
움직임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짓씹듯이 한 마디를 남긴 아벨이 구원자의 눈을 감겨 주었다. 기도하듯 감고 있던 눈을 뜬 그가 마침내 로난을 돌아보았다.
『또 보는구나. 조카야.』
아벨이 싱긋 웃었다. 잘랐던 팔다리가 다시 자라나 있었다. 부서졌던 검도, 반쯤 시체라고 해도 좋을 몸뚱이도 원래대로 수복되어 었다.
“너 이 씨발새끼!”
로난이 반사적으로 참격을 날렸다. 인지를 벗어난 속도로 쏘아진 칼날이 그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카앙-! 사나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뭐···”
『급하기는. 어차피 다 죽을 텐데 명을 재촉할 필요가 있나?』
로난의 눈이 커졌다. 어느새 검을 뽑아든 아벨은 여유가 넘치는 표정으로 라만차를 막고 있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발도하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로난의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팔다리를 잘라 버릴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아벨에게서 전해져 오는 느낌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너무 서두르지 말자고. 너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지금 내가 기분이 꽤 좋거든.』
온몸의 털이 바짝 곤두섰다. 나바르도제나 아하유테, 심지어 거인의 왕과 처음 조우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본능이 도망치라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거인의 왕에게서 느껴지던 기운이 고스란히 놈에게서 묻어나고 있었다. 놈들이 단번에 소멸한 것과 무언가 관련이 있는 건가?
‘지금 싸우면 진다.’
로난이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섵부르게 굴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아벨이 픽 웃었다.
『역시 너는 머리가 좋구나.』
아벨 역시 조용히 칼을 집어 넣었다. 상황은 즐기는 건지는 몰라도 반질해진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로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뻐해라. 내 오랜 계획이 마침내 성공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은 해냈지.』
“오랜 계획이라고?”
『그래. 으스대던 대머리들은 모두 죽었다. 자기네들이 여지껏 흡수해 온 다른 영혼들과 함께 내 일부가 되었지.』
그리 말한 아벨이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거인들의 힘과 생명을 모조리 흡수했다는 것 같았다. 별안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가 감탄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형님은 정말 굉장하군. 나름 힘을 준 건데 한 마리도 죽지 않았을 줄이야. 이거 알고 있나? 방금의 일격으로 너희 별의 3할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뭐?”
로난의 얼굴이 굳었다. 이게 무슨 좆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제도의 3할도 아니고, 전 세계의 3할이 파괴되었다니. 아벨이 말을 이었다.
『아슬아슬하게도 제국은 빗나갔지만 족히 두 자릿수의 나라가 멸망했다. 기쁘지 않느냐. 이 기세라면 금방 일이 끝날 테니까.』
“도대체 너는···뭘 하려는 거냐?”
침묵하던 로난이 이를 악물었다. 아벨의 목적이 도통 짐작 가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틀림없이 빡빡이들에게 별을 바쳐서 그 종족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헌데 아벨은 그 거인들까지 멸망시키고, 자신이 왕 비스무리한 존재로 등극해 버렸다.
『···하긴 슬슬 말해줘도 되겠지. 어차피 종장에 다다랐으니까. 너희들은 분명 내게 감사하게 될거다.』
질문을 들은 아벨이 클클거렸다. 음산한 웃음소리에 뼈마디가 저릿거렸다. 그가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불현듯 아벨의 뒤편에서 격노에 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놈!!】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시커먼 그림자가 불길의 형태로 쇄도해 오고 있었다. 로난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저건···!”
어느새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꼬리를 늘어뜨리며 다가오는 붉은 안광은 틀림없는 그림자 대공의 것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지랄이라니. 로난이 다급하게 외쳤다.
“등신아, 멈춰!”
분노로 눈이 먼 것은 알겠지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로난이 아벨을 저지하려 했으나 그는 이미 땅을 박차며 요격에 나선 뒤였다. 순식간에 대공의 앞에 다다른 아벨이 검을 뽑아들었다.
『모기 놈이군. 난 너희 종족이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무슨···!】
아벨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속도에 대공의 눈이 커졌다. 스각-! 장작이 쪼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두 개로 갈라졌다. 반으로 쪼개진 대공의 몸뚱어리가 기다란 핏자국을 만들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커헉!】
“이 개새끼가 진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검을 쳐든 로난이 막 뛰쳐나가려는 차였다. 웃어젖히던 아벨이 눈살을 찌푸렸다.
『···음?』
그가 제자리에 멈춰섰다. 땅을 뚫고 자라난, 거대하고 검붉은 촉수들이 몸을 휘감고 있었다. 혈마법의 일종으로 보이는 촉수들은 아벨이 몸을 움직여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불현듯, 상반신만 남은 대공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크···크흐흐···꼼짝하지 못할 거다···.】
“대공?”
로난의 눈이 커졌다. 그는 머지않아 대공이 자신의 몸을 미끼 삼아 강력한 마법을 발동한 것을 눈치챘다.
『이제와서 이런 게 소용없다는 건 네놈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아벨이 코웃음치며 촉수를 잘라내던 차였다. 푸확!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무언가 아벨의 가슴을 꿰뚫었다. 눈을 끔뻑거리던 그가 시선을 내렸다. 나선형의 창날이 자신의 흉곽을 부수고 튀어나와 있었다.
『이건···조금 따갑군.』
【망할 놈. 아픈 척도 안 하다니.】
중상을 입었음에도 아벨은 태연했다. 창을 던진 방향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혀를 차고 있는 오르세가 눈에 들어왔다.
“오르세?”
【뭐 하고 있는 거냐 멍청아. 얼을 완전히 빼놓고.】
로난을 본 오르세가 으르렁거렸다. 극도로 긴장한 동공이 세로로 좁혀져 있었다. 로난은 그가 두려움을 애써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콰드득! 불현듯 아벨이 밟고 있는 지면이 뒤집히며 그를 덮쳤다.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던 흙과 바위는 구체의 형태로 뭉쳐서 아벨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이어서 나무와 풀, 견고한 얼음이 그 감옥을 포장하듯 뒤덮었다.
“이건.”
로난이 멈칫거렸다. 누가 한 짓인지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쁜 숨을 고르던 로르혼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참. 일이 힘들어지겠군요.”
늘 당당하던 대마법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지금의 아벨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느끼고 있었다.
로르혼이 손짓하자 구체가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우악스러운 소리와 함께 구체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완전히 으깨 버릴 심산인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표면 위로 기하학적인 마법진 수십 개가 빈틈없이 떠올랐다. 로난도 익히 알고 있는 피해 증폭 마법이었다.
불현듯 로난의 머릿속에서, 아데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이다. 몰아쳐라!]로난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아벨을 가둔 바윗더미가 빠르게 저 높은 공중으로 솟구쳤다. 동시에 누워서 비실거리던 병사와 드래곤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우아아아아!”
“젠장, 장님 되는 줄 알았잖아!”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눈에는 모두 탁한 잿빛이 감돌고 있었다. 아데샨의 능력으로 인해 강제로 사기를 끌어올려졌다는 증거였다.
내질렀던 함성이 메아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하늘에 고립되어 있는 구체를 향해 수만 개의 화살과 투사체 마법이 쏘아졌다.
【사라져라!】
“이,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게 해 줘!”
“개자식아! 네가 날려버린 숲에는 우리 마을이 있었단 말이다!”
콰과광-! 쾅! 각양각색의 폭발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굉음이 연달아서 울려 퍼졌다. 연합군 병사들은 물론, 부상을 입은 드래곤들까지 무리를 해 가며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허억···허어억···우웁!”
그림자의 마나를 운용하던 아데샨이 입을 가리며 구역질했다. 힘을 과다하게 사용한 탓이었다.
별안간 멀찍이 떨어져 있던 그녀와 로난의 눈이 마주쳤다. 소매로 입가를 닦아낸 그녀가 육성으로 외쳤다.
“로난···! 허억, 지금 잡아야 한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해···!”
“대장군님.”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짓눌리면 안 돼. 지금 우리가 믿을 사람이라고는 귀관밖에 없다!”
처절하게마저 느껴지는 말투였다. 상황을 파악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벨을 향한 일괄적인 기습은 모두 아데샨이 계획한 것이었다.
가장 먼저 위험성을 간파한 그녀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승부를 내려 하고 있었다. 전장에 존재하는 모든 아군이 전력을 다해 공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썅!”
이제야 머리가 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과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해진 아벨에게 위압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수치와 함께 찾아온 분노가 몸을 휘감았다. 타오를 듯 선명한 적색이 라만차의 검신을 타고 차올랐다. 마력으로 각력을 강화한 로난이 땅을 박차며 도약했다.
콰아아앙!! 동시에 아벨을 구속하고 있던 바윗더미가 폭발했다. 사람들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었다. 여유로운 표정은 모든 노력을 비웃고 있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아벨은 상처 하나 없이 건재했다.
【빌어먹을···.】
오르세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던졌던 나선창이 놈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다시금 전후좌우 모든 방향에서 치명적인 투사체들이 날아왔지만, 아벨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참격을 난무함으로서 공격들을 무력화시켜 버렸다.
『말했을 텐데. 다 허튼 짓이라고.』
“닥쳐! 이 천하의 호로 새끼야!”
절망에 빠져 있지 않은 것은 로난 뿐이었다. 간격은 어느새 완전히 좁혀져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아벨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 거사를 치르기 전에 몸을 좀 푸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창을 던져 버린 아벨이 자신의 검을 똑바로 쥐었다. 그와 로난의 팔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참격이 만들어낸 두 호선이 하늘에서 격돌했다. 카아아아앙-!! 섬뜩하리만치 경쾌한 금속음이 한때 숲이었던 황무지 위에 울려 퍼졌다. 아데샨이 두 괴물의 격돌에 시선을 둔 채 입을 열었다.
“···전음으로 하신 말이 사실입니까?”
“그래.”
알리브리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장의 혼란을 틈타 아데샨에게 슬쩍 다가와 있었다.
인간 청년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그의 손에는 둥그런 돌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침음을 흘리던 아데샨이 다시 질문했다.
“가급적이면 쓸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하실 수 있겠습니까?”
목소리에 섞인 우려가 무거웠다. 대답은 주저 없이 돌아왔다.
“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