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22)
8. 신대륙에서(2) >
#A8
“놈들의 첩자가 분명하다. 죽여라!”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외쳤다. 동시에 복면인들이 일제히 무언가를 투척했다. 카가각!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수리검 수십 개가 아셀의 방어막을 두드렸다.
“흐아아악!”
아셀이 비명을 내질렀다. 물론 단 하나의 수리검도 그의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복면인들의 입에서 당혹 성이 터져 나왔다.
“젠장, 검에 이어 원거리 공격도 통하지 않는 건가.”
“아무래도 평범한 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사술이라 해도 약점은 있을진데···.”
“혹여 적대 문파가 아니라 복마전에서 파견된 자 아닐까요?”
그들은 알아듣지 못할 단어를 남발하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사술, 문파에다 복마전까지. 전부 제국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참다못한 아셀이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그, 그러니까 저는 여러분과 싸울 생각이 없다니까요!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에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신대륙에 온 지도 보름이 다 되어 가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아셀은 혼자 밤 산책을 하던 와중 저 복면인들에게 습격을 당했다.
카라벨 상단의 캠프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때 아셀의 말을 들은 복면인 우두머리가 코웃음을 치며 외쳤다.
“웃기지도 않구나. 싸울 생각이 없다고? 네가 기르는 검은 괴조가 나찰을 봉인한 석상을 물고 도망치는 것을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거, 검은 괴조?”
“그래! 네 장의 날개로 퍼덕거리는 괴물 말이다.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지!”
“그, 그런···.”
아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검은 괴조의 모든 특징이 시타와 일치했다. 바로 엊그제 있었던 일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큰일 났다.’
한창 마르야와 함께 마을을 돌아볼 즈음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시타가 입에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조각상을 물고 돌아와서 자랑스레 보여 주었다. 아무래도 봉인석이란 그걸 말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신대륙에 처음 와본 시타는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수집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아셀이 굵은 침을 삼켰다.
“그···나찰이라는 게 뭐죠?”
“네놈 같은 악인들의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괴물이지. 다 알면서 시치미를 떼는구나!”
“아니, 그, 저는 정말 몰라서···.”
“닥쳐라! 복마전의 끄나풀이 아니고서야 이런 사악한 짓을 할 리가 만무한 터! 영월림 수호자의 명예를 걸고 네놈을 처치해 주마!”
복면인이 분개했다. 아셀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지만 지금은 호소 따위가 먹혀들 상황이 아니었다. 다시금 거리를 좁힌 그들이 검을 뽑아드는 찰나였다.
“위, 위험해!”
위험을 감지한 아셀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쾅!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거목 하나가 복면인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나무가 떨어진 자리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기습이다!”
“뭐, 뭐지!?”
다행스럽게도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복면인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산개한 덕이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나무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발견한 복면인 한 명이 삿대질하며 기겁했다.
“저, 저길 봐!”
“설마···!”
복면인들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웠다. 그들이 지나온 계곡 저 멀리서 무언가 거무튀튀한 것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던 중이었다. 짐승의 단말마를 연상시키는 괴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키에에에엑!”
동시에 어둠에 가려져 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5m에 육박하는 인간형 괴물이었다. 누군가 외쳤다.
“나, 나찰이다!”
나찰이라 불리운 괴물은 꿈에 나올까 두려운 끔찍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흑요석으로 이루어진 몸뚱어리에는 금을 녹여 쓴 글씨로 빽빽하게 뒤덮여 있었다. 날카로운 손발톱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 저게···!”
아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지난 몇 년간 로난과 모험을 해오면서 온갖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를 만났지만 저런 건 처음이었다.
전혀 다르게 생겼다고 해야 할까, 여지껏 보아온 몬스터와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공황 상태에 빠진 복면인들은 아셀의 추격을 중지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제 다 끝이야···.”
“내가 시간을 벌 테니 다들 도망쳐라!”
“장 형, 내 어찌 그러겠소!”
그들의 면면은 하나같이 목숨을 건 사람처럼 비장하게 굳어 있었다. 나찰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드래곤에 버금가는 강력한 존재인 것 같았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아셀이 울먹거리며 나찰을 바라보던 도중이었다.
“···응?”
의구심을 느낀 아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찰에게서 느껴지는 마나가 생각보다 미약했다. 무시무시한 겉모습과는 달리 품고 있는 힘 자체는 오우거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었다.
가빠졌던 아셀의 호흡이 서서히 진정되었다. 의외로 해볼 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낸 아셀이 입을 뗐다.
“저, 저것만 해결되면···.”
“뭐라고?”
“저 괴물만 처치하면 그만 쫓아오실 건가요?”
복면인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대장 역을 맡은 사내가 코웃음 쳤다.
“하! 웃기는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망명 높은 도사들이 달려들어 겨우 봉인한 저 나찰을 너 같은 계집이 처치하겠다고?”
부하들이 뒤따라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무리 새외의 사술을 쓴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계집이라는 말을 들은 아셀이 사내들의 오류를 정정해 주려던 차였다. 등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셀-! 거기서 뭐 해?”
“마, 마르야?!”
여간 익숙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깨를 움츠린 아셀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대검을 한쪽 어깨에 짊어진 마르야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한참 찾았잖아. 뭐 하고 있는 거야?”
풍성한 금발이 밤바람에 철썩이고 있었다. 졸려 보이는 그녀의 몸에는 붉은 비단옷이 걸쳐져 있었다. 신대륙 원주민들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산 물건이었다.
“이, 이분들이 계속 따라와서···상단에 해가 될까봐 떨어뜨려 놓으려고 했어.”
“으이구 이 답답아. 딱 봐도 도적떼 같은데 적당히 날려 버리고 올 것이지. 너는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마르야가 혀를 쯧쯧 찼다. 도적이라는 말을 들은 복면인 대장이 버럭 소리쳤다.
“도적떼라니! 감히 누구를 두고 그러는 거냐!”
“어라? 아니었어요?”
“당연하지! 우리는 위대한 영월림의 수호자들이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새외의 무뢰배들이···”
“영월림?!”
그가 뭐라 말을 잇던 차였다. 갑자기 손뼉을 친 마르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쾅! 한달음에 달려온 그녀가 대장의 앞에 멈춰섰다.
“잘생긴 대협. 방금 영월림이라고 하셨는지요?”
“소, 속도가···.”
대장이 기겁했다. 그의 눈에는 한순간 마르야의 형체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한쪽 볼을 부풀린 마르야가 그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되물었다.
“영월림 소속이냐고 여쭤봤어요.”
“그, 그래. 그렇다면 어쩔 테냐! 너도 사술을 쓰는 걸 보니 저 계집과 한패구나!”
“와아, 그렇게 찾아 헤맸는데 여기서 마주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저는 카라벨 상단의 부단장인 마르야 카라벨이라고 해요.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퀘에에엑!”
순식간에 영업 모드로 변한 마르야가 사근사근하게 말을 잇던 중이었다. 다시금 괴성을 내지른 나찰이 팔다리를 기괴하게 비틀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복면인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허어어억! 그, 그딴 소리는 집어치우고 썩 비켜라!”
“아 진짜. 성가시게.”
마르야가 미간을 좁혔다. 그제야 나찰의 존재를 눈치챈 그녀가 몸을 돌렸다. 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업 이야기를 방해하는게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저것만 치우고 마저 이야기하시죠.”
복면인이 뭐라 할 새도 없었다. 툭 내뱉은 마르야가 갑자기 땅을 박차며 뛰쳐나갔다. 쾅! 발을 디딘 자리에 균열이 생기며 판석이 튀어 올랐다.
“퀴리릭?”
나찰의 눈이 커졌다. 단 세 번의 도약으로 거리를 좁힌 마르야는 어느새 그의 발치까지 도달해 있었다. 위기를 감지한 나찰이 팔을 높게 치켜드는 찰나였다.
“하아압!”
대검을 양손으로 고쳐 쥔 마르야가 횡으로 몸을 비틀며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파쇄음과 함께 나찰의 다리 하나가 통째로 잘려 나갔다.
균형을 잃은 거체가 앞으로 넘어지는 순간이었다. 급정지한 마르야가 그대로 대검을 위쪽으로 올려 벴다. 서걱! 육중한 호를 그린 대검이 나찰의 머리를 반으로 가르며 지나갔다.
“쿠에에···!”
“뭣이!”
복면인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쿵! 다리에 이어 머리까지 잘려나간 나찰이 굉음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일처리를 마친 마르야가 싱긋 웃음지었다.
“이제 됐죠?”
“저, 저 소저는 도대체···.”
복면인 몇몇이 쥐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꿈에서나 볼 법한 무공이었다. 그때, 기괴한 포효성이 첩첩산중에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아!”
“케레레레렉!”
아까와는 달리 한 마리가 아니었다. 수만 마리의 새가 달밤의 숲 위로 날아올랐다. 나무가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 거대한 무언가 땅을 내딛는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마르야가 눈살을 찌푸렸다. 불현듯 거대한 그림자 여러 개가 도로 위로 드리웠다. 고개를 든 복면인들이 얼어붙었다. 족히 열댓 마리는 되어 보이는 나찰이 양쪽 절벽 위에서 자신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그르르륵.”
“마, 말도 안 되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듯한 광경이었다. 저마다 다르게 못생긴 나찰들은 하나하나의 덩치가 작은 언덕만 했다. 몸 곳곳에 제멋대로 붙어 있는 눈동자가 사람들을 훑고 있었다.
“···우린 이제 다 죽었소.”
“한 마리가 끝이 아니었나.”
복면인들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웠다. 어찌된 일인지 의문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아무리 금발 소저의 무공이 뛰어나다 해도 이런 수를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마르야의 얼굴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평온했다. 가만히 나찰들을 올려 보던 그녀가 픽 웃었다.
“너희는 참 운도 없다.”
“그르륵?”
“나만 있을 때 왔으면 그나마 승산이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우리 귀염둥이가 있을 때 같이 와서는.”
마르야가 고개를 내저었다. 진심으로 동정심이 묻어나는 말투에 복면인들이 당황했다. 귀염둥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 조금 전까지 있던 붉은 머리 계집이 보이지 않았다.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 나찰 하나가 마르야를 짓밟기 위해 다리를 들어올리는 순간이었다. 콰앙! 보이지 않는 주먹이 나찰의 가슴을 강타했다.
“그웍.”
오우거보다 훨씬 큰 거구가 조약돌이라도 된 것처럼 날아갔다. 반대쪽 절벽에 처박힌 나찰이 고개를 떨구었다. 강철로 이루어진 가슴팍이 분화구처럼 파여 있었다.
“이, 이건···!”
복면인들이 굳었다. 운석에라도 맞은 듯한 상흔이었다. 대검을 내린 마르야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아셀. 부탁할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나찰들이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녹 업 프로스트.”
평범하게 말을 거는 듯한 어조였다. 영창이 맺어짐과 동시에 일곱 나찰의 발아래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들이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이었다. 콰아앙! 마법진이 빛을 뿜으며 눈보라로 이루어진 기둥이 솟구쳤다.
“허어어어억!”
복면인들이 경악했다. 일곱 개의 얼음 폭풍은 달빛을 찢으며 단숨에 밤하늘까지 솟아올랐다. 머지않아 폭풍이 가라앉은 자리에서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 나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끝났네.”
마르야가 웃었다. 나찰은 일곱 개의 얼음 조각상이 되어 있었다. 아셀이 마법을 해제하는 순간이었다. 쩌저적! 바위가 쪼개지는 듯한 소리와 함게 나찰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휴우우우···.”
단번에 상황을 종식시킨 아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보다 나찰들이 더 약해서 마나를 거의 쓰지 않고 끝낼 수 있었다.
천천히 지상에 착지한 그가 마르야에게 가려던 차였다. 순식간에 주변을 둘러싼 복면인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소저! 부디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저, 저는 남자에요.”
<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