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38)
외전22. 푸른 봄을 그대에게(4)
#A22
보름달이 밝았다.
고도가 높아서 별이 훨씬 더 잘 보였다.
아드렌의 부둣가에 정박한 비공정들은 날개돛을 접은 채 쉬고 있었다.
“휴, 겨우 끝났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바렌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는 입국 심사에 이어 막 학생들의 인원 체크를 마친 참이었다.
아드렌의 입국 심사는 거의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인원이 원체 많기도 했거니와, 심사관의 성격이 원체 꼼꼼한 탓이었다.
백발 노인의 모습을 한 심사관이 입을 열었다.
“문제 없군. 너무 큰 소란만 피우지 마시게나.”
과거 로난 일행을 심사했던 화이트 드래곤 바나르티에였다.
최후의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그는 여전히 아드렌의 관문을 지키고 있었다.
바렌이 자신의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걱정 마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하긴 그 세 사람의 후학들이 말썽을 부리지는 않겠지. 믿고 있다네.”
바나르티에가 주억거렸다.
세 사람이란 로난과 아셀, 슐리펜을 칭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드렌이 멸망할 뻔했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애제자들의 이름을 들은 바렌이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물론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
“끄아아아악!!! 사, 사람 살려!”
정확하게는 미소지으려던 차였다.
학생들이 모여 있는 광장 쪽에서 우레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바렌의 갈기가 바짝 곤두섰다.
겁에 질린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순식간에 피어난 황금빛 섬광이 그의 허벅지를 감쌌다.
“잠깐, 자네···”
근력 전반을 향상시키는 바렌의 오러였다.
바나르티에가 뭐라 할 새도 없었다.
내디딘 자리가 음푹 파임과 동시에 그의 형체가 사라졌다.
거진 500m남짓 되던 거리가 눈 깜짝할 새 좁혀졌다.
쾅!!!
학생들의 앞에 착지한 바렌이 으르렁거리며 외쳤다.
“여러분! 무슨 일입니까?!”
“교, 교수님···뒤, 뒤에!”
겁에 질린 학생들이 검지를 뻗었다.
고개를 돌린 바렌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화려한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 한복판에서, 온몸이 강철로 뒤덮인 드래곤 한 마리가 광장에 모인 학생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당신은···.”
헌데 그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고속 비행에 특화된 유려한 몸체와 인공으로 만들어진 날개.
아름다운 백청색 눈동자에서는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드래곤을 마주보던 바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아···나란소니아 님이었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올해도 당신이 왔군요 바렌. 인사나 하러 왔을 뿐인데 너무 호들갑이 심한 것 아닌가요.】
“저는 괜찮지만 학생들은 놀랄 만 합니다. 보통 사람이 드래곤과 마주칠 일이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니까요. 하다못해 바로 앞에 착지하시면···.”
맥이 탁 풀렸다.
바렌의 허벅지를 휘감은 오러가 가라앉았다.
거의 동시에 드래곤의 몸이 빛에 휩싸이더니 사라졌다.
이윽고 제복을 입은 여인이 빛 속에서 걸어 나왔다.
이명은 강철의 여제.
가장 빠른 드래곤 나란소니아.
비늘을 닮은 그녀의 회백색 머리카락이 밤바람 속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듣고 보니 그렇군. 미안하다.”
“아닙니다. 저희 학생들에게 언질을 미리 못 한 제 탓이지요.”
“나도 평소 같으면 이 모습으로 왔을 터지만 화염궁을 경계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 워낙에 중요한 시기니까.”
“중요한 시기라 하심은···?”
바렌이 갸웃거렸지만 나란소니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말해줄 수 없다는 뜻이었다.
눈치가 빠른 바렌은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넘어갔다.
“이해합니다. 하긴 화염궁 내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부분 기밀이었죠.”
“고맙군. 대신이라 하기는 뭐하지만, 내가 용의 도시를 안내해 주겠다.”
“예? 그, 그러실 필요까지는···”
뜻밖의 제안에 바렌이 손사래쳤다.
가이드를 맡기에는 너무 과분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나란소니아는 그가 말릴 새도 없이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필멸자 여러분.】
“히이익?!”
【불의 어머니와 용왕 폐하를 모시는 나란소니아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드렌에 머무는 기간 동안 안내를 맡을 예정이니 잘 부탁드려요.】
심지어는 인간이 아닌 드래곤의 목소리로.
바짝 얼어붙은 학생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나, 나란소니아라면 마지막 전쟁에도 참전했던 드래곤 아니야?”
“그런 거물이 왜 우리한테···?”
당황한 것은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나라의 장관급 인사가 안내역으로 나선 꼴이었으니까.
나란소니아는 친히 그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단순한 호의니까. 그동안은 바빠서 안내해주지 못했지만, 저는 필레온에서 온 필멸자들을 썩 좋아한답니다.】
그 말을 방증하듯 나란소니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평소에 그녀와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면 놀라서 까무러칠 일이었다.
사실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기는 했다.
아드렌과 용왕, 더 나아가서 세상을 구원해준 인물들이 바로 필레온 출신이었으니까.
나란소니아가 말했다.
【여러분의 일정은 대강 확인했습니다. 우선 배가 고플 테니 레스토랑 알리브리헤로 이동할 거에요. 여러분과 같은 필레온 아카데미 출신인 로난과 마룡 오르세가 조우했던 곳이죠. 원래는 작은 주점이었지만, 전투로 인해 부서진 뒤에 식당으로 개조를 거쳤어요. 식사를 한 다음에는 아셀 광장으로···】
그녀는 아드렌의 주요 관광 코스에 대해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셀이 추락을 막았던 아셀 광장, 거인 두아루와의 결전이 벌어졌던 추모 공원 등.
이게 본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질이 좋은 안내였다.
사근사근한 태도가 이어지자 학생들의 경계심도 서서히 누그러졌다.
설명이 끝날 무렵,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학생 한 명이 손을 들며 질문했다.
“저기, 나란소니아 님.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혹시 나바르도제 님은 며칠째에 알현할 수 있나요? 꼭 만나뵙고 싶어서요.”
한순간 나란소니아의 얼굴이 굳었다.
비단 질문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질문한 소녀의 얼굴은 자신이 아는 마법사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입을 뗐다.
【당신. 대마법사 아셀의 딸이군요.】
“앗, 들켰다. 에헤헤, 맞아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유감스럽게도, 알현은 불가능합니다.】
“엑?”
세치카의 눈이 커졌다.
화염궁에서 불의 어머니를 알현하는 것은 매년 수학여행마다 벌어지는 행사이자, 그녀가 가장 기대하던 일정 중 하나였다.
헌데 갑자기 알현이 불가능하다니?
세치카를 제외한 학생들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다급히 바톤을 넘겨 받은 바렌이 입을 열었다.
“아아,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불의 어머니께서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손님을 맞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 그럼 아예 못 만나뵈는 건가요? 일주일 내내?”
“···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럴 수가···!”
세치카가 탄식했다.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한참 충격에 빠져 있던 와중이었다.
【미안해요. 당신 아버지에게는 아드렌이 큰 빚을 졌는데.】
“나, 나란소니아 님? 어느 틈에···.”
세치카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멀찍이 서있던 나란소니아가 어느새 그녀의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새삼 느끼지만 정말 닮았어. 핏줄이란 참 무섭네요.】
“어어···우리 아빠를 잘 아시나요?”
【알다마다요. 저는 대마법사가 아드렌의 추락을 멈출 때 함께 있었거든요. 그 아이가 벌써 딸을 가지다니···인간의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가는군요.】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아셀과 똑 닮은, 튤립 같은 빨간색을 띄고 있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날이 떠오르는 듯했다.
미쳐버린 용왕, 유성우처럼 하늘을 수놓던 거인의 창.
곤두박질치는 아드렌과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려 가며 주문을 영창하던 어린 마법사.
그날 아셀이 없었다면 용의 도시는 지금쯤 바다 깊은 곳에 처박혀 있을 터였다.
그 딸에게 이런 푸대접을 하게 되어 미안할 따름이었다.
나란소니아가 세치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시 한 번 사과하겠습니다. 원한다면 용왕 폐하에게라도 알현을 요청드리죠. 시간이 나실지는 모르겠다만···.】
“아,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어요. 진짜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요.”
【후후, 마음씨가 고운 것조차 닮았군요. 아드렌에서 좋은 기억만 가져갔으면 좋겠어요···맞아, 바렌에게 듣자하니 로난의 자식도 왔다는데.】
“아하. 란세요?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세치카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어쨌든 란세와 둘이 얽히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원래는 생각 없었는데 둘이서 용왕님이나 뵈러 가자 할까?
란세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눈썹을 치켜떴다.
“뭐야. 얘가 어디 갔어?”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
“아뇨, 그게 분명히 방금 전까지···.”
말꼬리를 흐린 세치카가 눈을 감았다.
마나로 이루어진 레이더가 펼쳐졌지만 끝내 란세는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비공정에서 내리고 입국 심사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있었데.
그러고 보니 새로 사귄 친구인 나로 또한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라진 사람은 두 명 뿐이었다.
한순간 세치카의 머릿속에 작은 불씨 하나가 피어올랐다.
취향이 매우 확고한 란세.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미모의 전학생.
나로의 피지컬은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자신보다 아주아주 약간 뛰어난 듯했다.
물어보기도 전에 나온 그녀의 대답이 머릿속을 스쳤다.
– 안심해라. 네 남자친구에게는 관심 없으니까.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금언과 함께.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던 세치카가 아랫입술을 질겅였다.
“······에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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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여기가 맞는 거냐.”
“확실해. 여기가 아니면 애초에 불가능하다 말했어.”
란세가 끄덕였다.
나비로제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묵묵히 그를 따라갔다.
로난이 술을 마시고 지껄인 말이라면 무조건 진실일 테니까.
자신에게 열대 과일을 많이 먹어서 그렇게 몸매가 좋은 거냐고 물어봤던 일화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란세가 감탄을 흘렸다.
“그나저나 대단하다···이게 하수도라니. 역시 드래곤이라는 종족은 근본부터가 다른 것 같아.”
그들은 아드렌의 하수도를 거닐고 있었다.
물비린내가 퀴퀴했다.
어지간한 운하만큼 넓은 배수로가 통로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조금만 목소리를 크게 내도 메아리가 울려서 거의 속삭이듯 말해야 했다.
이전에 로난 일행과 오르세가 하늘탑에 잠입할 때 사용했던 통로였다.
“혹시 모르니까 투명화 포션은 미리 먹어 두자.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순찰하는 사람이나 노숙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지.”
합리적인 의견이었다.
그들은 챙겨온 투명화 포션을 꺼내서 마셨다.
서서히 의미해지던 두 사람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서로를 인식하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나비로제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란세 역시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였으니까.
나비로제가 어이가 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전혀 메스껍지 않은 걸 보니 아주 단단히 준비했군. 수업에도 이 정도 정성을 쏟았으면 얼마나 좋아.”
“아하하···면목 없네.”
“다른 두 놈 말이다. 너는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어.”
“응? 네가 그걸 어떻게···?”
란세가 갸웃거렸다.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나비로제가 입을 다물었다.
생면부지의 소녀를 연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젠장, 이건 수습할 필요가 있겠어.
“······이모님이 종종 네 이야기를 하시더군. 그나마 싹수가 보이는 학생이라고.”
“뭐? 정말?!”
“목소리를 낮춰라.”
“미, 미안해. 너무 기뻐서 그만···정말로 그 나비로제 교관님이 내 칭찬을 하셨다고?”
란세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강아지처럼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 정도로 기뻐할 줄은 몰랐는데, 내가 너무 엄하게 가르친 건가.
나비로제가 멋쩍게 대답했다.
“그래. 칭찬했다.”
“우아아, 엄청 기쁘다. 나는 솔직히 졸업할 때까지 그런 말 못 들을 줄 알았거든. 오히려 나를 싫어하시는 줄 알았어.”
“······싫어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냐.”
“그야 나는 영웅 로난과 아데샨의 아들이니까···나비로제 교관님은 두 분을 가르친 스승이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 따위는 성에 안 차 하실 것 같았거든.”
란세의 목소리는 조금 먹먹해진 채였다.
세상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부모님이었지만 그게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었으니.
잠깐 벙쪄 있던 나비로제가 헛웃음을 쳤다.
“하, 어이가 없군.”
“응?”
“잘 들어라 란세. 나비로제 님이 평소에 칭찬을 하지 않은 것은 네가 오만해지는 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금 전에는 일부러 줄여서 말했지만, 나는 너를 꽤 높게 평가하고 있다.”
“···나?”
“말이 헛나왔다. 나비로제 님은.”
나비로제가 제 입술을 톡톡 쳤다.
하여튼 연기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
“너는 그 자체만으로 훌륭하다 란세. 로난과 아데샨이 워낙에 난 놈들이기는 하지만 결코 기죽지 마라. 지금처럼만 한다면 분명 두 사람의 경지. 어쩌면 더 위까지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교, 교관님이 그런 말까지 하셨어?”
“그래. 의심하지 말고 정진해라. 나는···아니, 나비로제 교관님은 너를 믿고 있으니까.”
“······고마워. 나로.”
란세가 끄덕였다.
미세하게 코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교관님이 나를 믿으시는데, 실망시키면 안 되겠지.”
“흥. 당연한 소리. 이 말 때문에 해이해졌다가는 내가 다 일러바칠 거다.”
나비로제가 웃었다.
이 순간만큼은 어려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관일 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고충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조금 더 세심해질 필요가 있는 듯했다.
“그런데 남자들은 큰 가슴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냐. 거추장스러운 지방 덩어리일 뿐이거늘.”
“그, 그건···심오한 이야기인데, 굳이 여기서 말해야 할까?”
“됐다. 나는 모르는 무언가 있는 거겠지. 딱 지금 크기만 되었어도 불편하지는 않았을 텐데···.”
두 사람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화염궁과 가까워질수록 마나의 밀도가 짙어지고 있었다.
슬슬 란세가 말했던 지점이 나올 무렵이었다.
“잠깐.”
갑자기 나비로제가 란세의 뒷덜미를 당겼다.
얼떨결에 멈춰선 란세가 비명이 나올 뻔한 입을 틀어막았다.
“깜짝이야. 갑자기 왜 그래?”
“앞에 누가 있다. 한두 명이 아닌데.”
“뭐?”
란세가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비로제의 시선은 저 앞쪽의 모퉁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참 운도 지지리 없군.”
정신을 집중하던 그녀가 입술을 비틀었다.
낯선 목소리들은 나바르도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 완벽해. 누가 봐도 제국의 특사다.
– 기회는 오늘뿐이야. 아무리 불의 어머니라 해도 탈피할 때는 무방비하기 마련이지.
– 폭탄도 정상이군. 출발하자.
다만 비공정에서와는 달리, 대화 주제가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