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39)
외전23. 푸른 봄을 그대에게(5)
#A23
“포, 폭탄?”
“쉿. 목소리를 낮춰라.”
나비로제가 주의를 줬다.
란세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천만다행히도 들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인기척은 아직 모퉁이 너머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흡···미안. 너무 갑작스러워서.”
“이거 아무래도 귀찮은 일에 휘말린 것 같군.”
나비로제가 혀를 찼다.
그녀의 동물적인 청각은 물소리와 괴한들의 대화를 완벽하게 분리해 냈다.
추정 인원은 다섯.
목적은 제국의 특사로 위장하여 화염궁에 폭탄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더라니. 탈피 중이셨던 건가.’
얼떨결에 나바르도제가 알현을 취소한 이유도 알게 되었다.
드래곤은 파충류와 마찬가지로 일정 기간마다 탈피를 하는데, 때마침 그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괴한들에게는 지금만한 기회가 없을 터였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보름까지 이어지는 탈피 과정 동안, 드래곤은 사실상 수면이나 다름없는 무방비 상태에 빠져 버리니까.
물론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무모한 계획이었다.
드래곤도 병신이 아니고서야 탈피 대책 정도는 세워 두거니와, 여기는 용들의 본진인 아드렌이었으니.
더군다나 그들의 목표는 불의 어머니 나바르도제였다.
그렇다면 왜 실패할 것이 뻔한 일을 하는 걸까?
란세가 이를 악물었다.
“···나쁜 자식들. 어떻게 드래곤이라는 종족이 마음을 열었는데.”
“오호. 눈치챈 거냐?”
나비로제가 설핏 웃었다.
아무래도 이 똘똘한 제자는 괴한들의 의도를 눈치챈 것 같았다.
“폭탄의 위력은 상관 없어. 중요한 건 제국 사람이···아니, 인간이 화염궁에 테러를 저지른다는 거지. 사상자가 없어도 분명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될거야.”
“정확하다.”
나비로제가 주억거렸다.
나이에 맞지 않게 훌륭한 통찰력이었다.
이런 면은 확실히 어머니인 아데샨을 닮은 듯했다.
“역사 시간에 배웠어. 나바르도제 님이 기거하는 화염궁은 하늘탑이 무너진 자리 위에 세워졌다고. 네뷸라 클라지에와의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극복했음을 알리는 평화의 상징 중 하나라고. 그런 곳에서 폭탄이 터진다면···.”
“그래. 곧바로 드래곤들과 적대관계가 되지는 않겠지만, 싸늘해질 것은 분명하지.”
“절대로···용서 못 해.”
란세는 진심으로 화가 나 있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 태어났지만, 지금의 평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찾아왔는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장아장 기어다닐 때무터 로난과 아데샨의 이야기를 동화 대신 들으면서 자라온 덕이었다.
인식 저해 스크롤을 꺼내든 란세가 말을 이었다.
“나로. 이걸 쓰고 왔던 길로 돌아가.”
“허?”
“투명화까지 했으니까 들킬 일은 없을 거야. 최대한 빨리 가서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 놈들은 내가 어떻게든 막아볼 테니까.”
목소리가 비장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표정도 그러할 터였다.
방금 이 애송이가 지금 나한테 뭐라 한 거지?
왔던 길로 돌아가라고?
잠시 벙쪄 있던 나비로제가 헛웃음을 쳤다.
“어이가 없군. 마음은 고맙게 받으마.”
“뭐?”
란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콰직!!
보이지 않는 주먹이 그의 복부 깊숙이 꽂혔다.
내장 전부를 바닥에 패대기친 것 같은 충격에, 란세의 몸이 앞으로 무너졌다.
“커억!”
“기절하지 않았나. 역시 우수하군.”
나비로제가 감탄했다.
과연 무예과 수석이라 그런지 맷집이 남달랐다.
소리 없이 위액을 게워내던 란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나로···왜 이런···.”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지. 왔던 길로 돌아가서 이 사태를 알려라.”
인식 저해 스크롤은 란세의 눈앞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자신을 앞질러 걸어가는 나로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일어나서 말리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로···!”
“걱정 마라. 네가 생각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고운 마음씨는 훌륭하다만 아직 시기상조였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역할이, 어른에게는 어른의 역할이 있는 법이었다.
다시 한 번 어려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었다면 란세를 따라올 일도 없었을 거고, 이런 음모를 포착할 일도 없었을 테니.
괴한들은 작전이라도 짜고 있는지 아직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무게를 잡는 건 어른의 특권이다.”
그 한 마디를 내뱉은 나비로제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
“음?”
“뭐야, 왜 그래?”
“아니···방금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내가 잘못 들었나?”
턱수염 난 사내가 갸웃거렸다.
미약하게 발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쳐다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제국 특사 옷을 입은 여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쥐새끼라도 지나갔나 보지. 청소 기간도 아닌데 이런 곳을 누가 돌아다니겠어?”
“그건 그렇지. 내가 너무 긴장했나 봐.”
“뭘 그렇게 쫄아 있냐? 정 긴장되면 오늘을 위해 노력한 날을 떠올려 봐. 연습처럼만 하면 돼. 연습처럼만.”
여인이 시시덕거렸다.
기이할 정도의 자신감이었지만 사내를 포함한 동료들은 누구도 딴지를 걸지 않았다.
최상급 모험가인 그녀는 오늘 하루의 거사를 위해서 십 년이라는 세월을 바친 사람이었으니까.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 역시 최상급 모험가였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이런 길은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지.”
“노력과 운의 합작품이지. 나도 화염궁을 둘러싼 호수에 빠지고 나서야 알아냈다니까? 궁전 1층과 곧장 이어진 길이 그딴 곳에 있을 줄은 몰랐어.”
“훌륭해. 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찬 뒤에 도망치기에 완벽한 위치야.”
“맞아. 그리고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반은 성공한 거야. 나바르도제가 탈피할 때 화염궁의 경호 병력은 모조리 외부에 배치되거든.”
그녀의 말마따나 지금의 화염궁은 텅텅 빈 채였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경호 인력은 물론 나란소니아를 비롯한 중책들마저 궁 외부로 이동한 상태였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비장의 무기도 있고 말이야. 확실히 준비했겠지?”
“당연하지. 젠장, 이거 구하는 데 쓴 돈을 생각하면···.”
턱수염 사내가 끄덕였다.
그는 물건이 든 안주머니를 툭툭 치며 투덜거렸다.
저택 한 채를 사고도 남을 돈이 들어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체제가 없기도 하거니와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으니.
시계를 확인한 여인이 비장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가볍게 굴자는 건 절대 아니야. 다들 모험가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임하자. 죽더라도 임무만 성공하면 다시 우리의 시대가 오는 거야.”
“영웅과 모험의 시대가 말이지.”
“그래. 평화는 세상을 지루하게 만들 뿐이야. 사람과 드래곤의 관계가 파탄나는 것은 정체를 깨는 초탄이 되겠지. 사람들은 다시 우리를 찾게 될 거야.”
“흐흐···좋구려.
물론 나는 의뢰주님의 보상이 더 기대되지만.”
애꾸눈 노인이 클클거렸다.
그 의견에도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다.
그들에게 이번 의뢰를 맡기는 자는 말 그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막대한 보상을 약속했으니까.
심지어 의뢰인은 그 보상을 지불할 능력이 되는 자였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모험가들이 입꼬리를 올렸다.
특사 옷을 입은 여인이 손을 내미는 찰나.
“좋아. 그럼 우리 파이팅이라도 하고······컥.”
“어?”
휘어져 있던 여인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서슬 퍼런 칼날이 그녀의 가슴팍을 찢고 튀어나와 있었다.
정확하게 심장을 관통한 날붙이 아래로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 건···?”
몸이 빠르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시선을 떨궈 쳐다본 검신 위로 진녹색 빛무리가 휘감겨 있었다.
그녀가 목구멍을 타고 치민 피를 뱉어내기도 전이었다.
촤악!
흉곽을 사선으로 찢으며 나온 칼날이 옆에 있던 노인의 목을 베어냈다.
“허어어억!”
“씨발! 이게 무슨 일···!”
괴한들이 경악했다.
검은 쥐고 있는 사람 없이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치솟았던 노인의 머리가 배수로에 빠졌다.
다시금 날아든 주인 없는 칼날이 또다른 괴한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
이번에도 비명은 없었다.
또 하나의 머리가 폐수 속으로 사라졌다.
어깨 위가 허전해진 몸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그제야 괴한들은 검의 주인을 볼 수 있었다.
“너, 너는?!”
“아. 들켰나.”
나비로제가 눈썹을 으쓱였다.
사방으로 흩뿌려진 피 탓에 모습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
물론 별 상관은 없었다.
칼을 고쳐 잡은 나비로제가 자세를 숙이며 쇄도했다.
“어디서 튀어나온 애새끼냐!”
남은 사람은 두 명이었다.
그들은 살인귀의 정체가 아직 성년식도 안 치른 소녀라는 것을 알자마자 용맹한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죽어라!!”
양손에 단검을 움켜쥔 대머리가 나비로제의 등을 내려찍었다.
발도 자세를 취하고 있던 그녀는 가볍게 어깨를 비틀어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서걱!
허공에 녹색 반원이 그려지며 대머리의 몸이 좌우로 분리되었다.
충혈된 눈이 허옇게 뒤집혔다.
피와 내장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히이익···!”
여기까지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홀로 남은 턱수염이 헛숨을 들이켰다.
그는 뭐라도 해 보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내장을 썰며 튀어나온 나비로제가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르자 사내의 팔다리 위로 녹색 선이 그어졌다.
“아.”
사지의 감각이 사라졌다.
네 개의 선이 위아래로 갈라지며 깔끔한 절단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팔 두 짝과 다리 두 짝, 몸통만 남은 사내가 역겨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쏟아졌다.
뒤늦게 찾아온 고통이 그를 엄습했다.
“끄, 끄아아아아아악!!!”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풍뎅이 유충처럼 변한 사내는 팔다리가 있던 흔적을 휘적거리며 노면을 뒹굴었다.
딱히 경청하고 싶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나비로제가 그의 목을 짓밟았다.
“다물어라.”
“끄아아아아!! 끄아···컥!”
사내의 몸부림이 멈췄다.
극도의 공포는 팔다리가 모조리 잘린 고통조차 잊게 했다.
자신을 깔아 보는 나비로제의 눈빛은 도마 위의 고기를 대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괴, 괴물···.”
“너희는 누구지? 누구의 지시로 그런 짓을 한 거냐.”
나비로제가 사내의 오른쪽 눈에 검을 겨누며 물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간신히 호흡을 고른 사내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러니까···그건···.”
“아직 정신을 덜 차린 모양이군.”
“크하아악!”
하지만 나비로제는 더듬거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검끝이 그대로 눈을 파고들었다.
성대를 찢어발기는 듯한 절규가 울려 퍼졌다.
“흐윽, 흐아아아악!! 눈, 내 눈이···!”
“삼 초 주겠다. 주모자의 이름을 말해라.”
검을 안와에서 빼내자 끈적한 액체가 쭉 늘어졌다.
나비로제는 곧장 반대편 눈을 겨누며 물었다.
한계에 다다른 턱수염이 울먹거렸다.
“으흑, 말하겠습니다···말한다구요 씨발! 저희는 붉은 죽음의 의뢰를 받았습니다.”
“붉은 죽음?”
나비로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이명이었다.
로난의 입에서 나왔던 것 같다만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인간의 이명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녀가 심문을 이어나가려던 차였다.
“······수해.”
“음?”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나비로제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처음에 상반신을 썰어 놓은 여인이 알아듣지 못할 단어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사망을 지연시키는 약이라도 먹었던 듯했다.
핏기 없이 창백한 손에는 스크롤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임무를···완수해···.”
나비로제는 즉시 검을 휘둘렀다.
검로를 타고 쏘아진 검기 다섯 개가 그녀의 몸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르며 지나갔다.
콰아아앙!
지면에 닿은 검기가 폭발하며 시체들이 산산조각났다.
다시 뒤를 돌아본 나비로제가 혀를 찼다.
“이런.”
턱수염 사내가 사라져 있었다.
공간 마법의 잔흔만이 남아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사내의 기척은 저 멀리 천장.
그러니까 화염궁 쪽에서 미세하게 전해져 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일을 귀찮게 만드는지.”
공간 마법 스크롤로 동료를 전송시킨 것이었다.
쓰레기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사명감이었다.
그냥 다 죽일 걸 그랬나.
증언용으로 살려뒀더니만.나비로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팔다리 다 잘린 놈이 뭘 할수 있겠냐만은.’
그녀는 곧장 화염궁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무게를 잡는 건 특권이었지만, 책임을 지는 것은 어른의 의무였다.
붉은 죽음이라는 이명이 신기루처럼 나비로제의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정말 누구였더라. 기억이 도통 안 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