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4)
35. 땅속의 비명(2)
#35
“이런 씨발.”
로난이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란 카파도키아를 떠나던 날 들은 것과 같은 이상한 소리. 그리고 희미한 비명이 저 아래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험악해진 표정을 본 아셀이 어깨를 움츠렸다.
“왜, 왜 그래 로난?”
“아무래도 아랫동네에 뭔 일이 생긴 것 같다.”
로난은 화로의 뒷면을 마구잡이로 눌러댔다. 어느 순간 특정 구간이 꾹 들어가며 바닥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로난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너무 느려···.”
하강하는 속도가 지나치게 느렸다. 로난은 벽에 걸려 있는 전투 망치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승강기의 한 귀퉁이를 마구 내려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난데없는 로난의 행동에 놀란 마르야가 소리쳤다. 속이 비어 있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돌조각이 튀었다. 마르야와 눈이 마주친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힘은 너가 제일 셌지. 힘 좀 써라.”
“어, 엇?”
로난이 마르야에게 전투망치를 던졌다. 망치를 받아든 마르야가 로난과 망치를 번갈아서 쳐다보았다. 로난이 버럭 소리쳤다.
“젠장, 빨리해. 네 돈이랑 무기 받아야 할 거 아냐!”
“아 진짜, 알았다고!”
마르야가 망치 자루를 움켜쥐었다. 자루를 타고 스며든 마나가 망치의 머리부분에 뭉쳤다.
망치를 정수리 위까지 들어 올린 그녀가 승강기 바닥을 내리찍었다. 콰아앙! 푸르스름한 호가 그려짐과 동시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주먹밥 영감 말이 맞았군. 너한테는 역시 이런 쪽이 맞아.”
승강기의 귀퉁이가 부서져 내리며 검은 공간이 나타났다. 한 줌의 빛도 찾아볼 수 없는 완연한 암흑이 발치에 드리워 있었다.
훅 올라온 서늘한 공기가 로난의 앞머리를 젖혔다. 계란이 썩는 듯한 악취를 맡은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유황 냄새···.”
“우욱!”
아셀과 마르야가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일반적인 유황보다 훨씬 강렬한 냄새였다.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린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용암이 들끓는 지하, 유황 냄새, 대지를 파헤치는 드워프.
세상을 떠돌며 축적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결코 좋은 미래는 떠오르지 않았다. 로난이 아셀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가자, 아셀.”
“응? 어? 어어?”
“마르야. 너는 필레온으로 돌아가서 상황을 알려. 특히 기도칸한테는 꼭 말하고.”
“기도칸이라면···그 사냥술 교관님? 디디칸의 형이라던?”
“그래. 사람 찾는 데는 일가견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 교수진들 수준이면 그 대장간의 정체 정도는 알고 있겠지. 아무튼 서둘러.”
“로, 로난? 갑자기 나를 왜 잡는···.”
로난은 아셀의 후드를 움켜쥐었다. 익숙한 불길함을 느낀 아셀이 뒷걸음질치려던 차였다. 발을 내디딘 로난이 그대로 구멍 속으로 뛰어내렸다.
“끄아아아악!”
“꺄아아악!”
어둠이 소년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저 위쪽으로 마르야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시타가 날개를 접은 채 로난과 아셀을 향해 강하했다.
“뺘아아아아!”
순식간에 소년들의 곁에 도달한 시타가 로난의 등을 움켜잡았다. 네 장의 날개가 펼쳐지며 추락하는 속도가 미약하게 줄었다.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은 아셀이 주문을 영창하려는 순간이었다.
“이, 이, 인비저브···읍!”
“아직 안 돼.”
로난이 손바닥으로 아셀의 입을 덮었다.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와중에도 로난의 표정은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침착했다. 그가 아셀의 후드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지금 멈추면 안 돼. 거의 다 내려가서 멈추는 거야. 알겠어?”
“으으읍···! 으읍!”
“제대로 해야 돼. 이번에 실수하면 빈말이 아니라 진짜 다 죽어. 알았으면 고개 끄덕여.”
로난이 되물었다. 아셀이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가에서 샘솟은 눈물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마침내 발아래가 밝아지나 싶더니 그란 카파도키아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썅, 늦었네.”
“이, 이게 다 뭐야?!”
참담한 풍경이었다. 거대한 암석들의 호우가 공동을 휩쓴 것 같았다. 질서정연하던 건물들은 누군가 한 번 밟고 지나간 모래성처럼 반파되어 있었다.
고여 있던 용암은 범람하여 길 위에서 식어가고 있었다. 빽빽하게 돋아나 있던 종유석과 석순들이 대부분 부러져 있었다. 더욱 강해진 유황 냄새를 맡은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슬슬 준비하자.”
“으, 응!”
강철로 된 지지대가 소년들의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아셀이 눈을 감았다. 포효하는 바람 속에서 나지막한 영창이 울려 퍼졌다.
“슬로우 존.”
“뭐?”
처음 듣는 주문이었다. 아셀이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추락이 예상되는 지점에 기하학적인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추락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오오.”
로난이 입을 둥글게 말며 감탄했다. 점점 느려지던 소년들의 몸뚱이는 지상과 5m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거의 정지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벌어진 아셀의 입에서 익숙한 주문이 흘러나왔다.
“인비저블 핸드!”
곧이어 보이지 않는 손이 느려진 몸뚱이들을 낚아챘다. 아셀의 염력은 두 사람의 몸뚱이를 빠르고 안전하게 지상까지 내려놓았다.
땅에 발을 디딘 로난이 아셀의 등을 퍽퍽 두드렸다.
“제법인데 아셀. 그런 건 또 언제 배웠어?”
인비저블 핸드 말고 다른 마법을 쓰는 아셀이라니. 굉장히 참신하면서도 대견했다. 아셀은 숨을 몰아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익! 윽! 이, 이번 주 수업에서···잘 돼서 다행이야.”
다행히도 들어야 하는 무게가 가벼운 탓에 무사히 성공할 수 있었다. 그때, 근처에서 미약한 신음이 들려왔다.
“으···으으으으···.”
소년들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신음은 널브러진 종유석 아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서둘러 달려간 로난이 종유석을 밀었다. 앞치마를 둘러맨 드워프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커헉, 컥! 허어억···!”
드워프의 얼굴을 알아본 로난의 눈이 커졌다. 예전에 투명 스크롤이 어쩌고 하면서 디디칸에게 성을 냈던 그 드워프였다.
“다, 다리가···웁.”
기괴한 각도로 돌아가 있는 다리를 본 아셀이 헛구역질을 했다. 로난은 아직도 등에 붙어 있는 시타를 툭툭 건드렸다.
“시타.”
“뺘.”
회답하듯 지저귄 시타가 드워프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자그마한 마법진이 허공에 그려짐과 동시에 비틀어져 있던 다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통증이 잦아드는 것을 느낀 드워프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다···다리가···? 잠깐, 너희는 분명 전에 디디칸과 함께 왔던···.”
“맞아요. 영감님,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물어볼게요. 단순 암반 사고, 존나 화난 바위 정령, 동굴 거인. 셋 중 뭐에 당한 거예요? 개인적으로 두 번째랑 세 번째는 아니면 좋겠는데.”
로난이 그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드워프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 세 번째 같네···갑자기 갱도 깊숙한 곳에서 몰려와서는···.”
“젠장, 뭔가 그럴 거 같았어요.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요.”
아무래도 갱도를 파헤치다가 동굴 거인의 거처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정말 깊은 지하에 살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마주칠 일이 없는 몬스터인데, 하여튼 난쟁이라는 족속들은.
로난이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차였다.
“이, 이보게···잠깐만···!”
드워프가 후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로난의 바짓단을 붙든 채 말을 이었다.
“도, 도와 주게···동료들이 납치당했어. 도론 그 늙은이도 잡혀갔다네···.”
“니미, 도론 영감도요?”
“그, 그래···멍청한 늙은이가 틀어박혀 있을 것이지. 싸우겠다고 설치다가···디디칸 그 아이가 구하러 갔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로난이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돌덩이들이 들이닥친 지 얼마나 지났어요?”
“어, 얼마 되지 않았다네. 기껏해야 몇 시간이야.”
“그나마 다행이네. 여기서 기다려요.”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굴 거인의 습성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몇 시간이라면 아직 희망이 있었다. 그들은 납치한 먹이들을 거처로 데려가 두고두고 아껴 먹는 습성이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드워프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부, 부탁하네···두 사람 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되는 인재들이야···특히 디디칸 그 녀석은···”
“노력해 볼게요.”
로난은 드워프를 바위에 기대 놓은 뒤 주변을 살폈다. 동굴 거인들이 이동한 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남아 있는 거대한 발자국들은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염병···아셀, 혼자 감당할 수 있겠어?”
“해, 해 볼게. 그런데 너무 넓어서 마나가 부족할 거 같아.”
“역시 그렇지. 젠장, 시간이 없는데.”
로난이 침음을 흘렸다. 잡혀간 사람들을 구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렇다고 금방 숨이 끊어질지도 모르는 생존자들을 방치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셀에게 모두를 구하라기에는 현장이 너무 넓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를 부상자를 찾아 염력을 휘두르다가는 금방 마나가 동날 터였다.
사람들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만 알아도 훨씬 일이 편해질 텐데. 빠르게 결단을 내린 로난이 씁쓸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금방 올 테니까 최대한 구하고 있어봐.”
“응.”
아셀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줄곧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시타가 아셀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시타?”
“빠야.”
별안간 네 장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붉은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머지않아 바위 더미 곳곳에서 붉은 빛줄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로난의 눈이 커졌다.
“뺘아아!”
“이거 설마···.”
로난은 가장 가까운 빛줄기로 달려갔다. 불룩하게 솟아 있는 흙더미를 털어 내자 털이 북슬북슬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워프가 흙과 돌멩이를 뱉어내며 기침했다.
“쿨럭! 쿨럭!”
“허, 시타 너 이 새끼···.”
로난이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드워프의 양쪽 콧구멍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붉은 빛줄기는 거기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흘린 피로 위치를 추적하는 마법이라니,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로난이 아셀을 돌아보며 외쳤다.
“아셀, 빛 올라오는 곳만 염력으로 파헤쳐!”
“아, 알았어!”
“시타 너는 이거 계속하면서 다친 사람들 좀 고쳐 줘. 할 수 있어?”
“뺘!”
시타가 자신감 넘치게 울었다. 아셀이 빛줄기들을 향해 주문을 영창했다. 각종 잔해가 떠오르며 깔려 있던 드워프나 인간의 모습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괘, 괜찮으세요···?”
“으···으으으···내 팔이···.”
시타는 동굴 안을 선회하며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곳곳에 흩뿌려진 혈흔이 방울의 형태로 떨어져 나와 시타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로난은 곧장 발자국을 따라가는 대신 도론의 대장간으로 달려갔다. 떠나기 직전, 앞치마를 두른 드워프가 남긴 말 때문이었다.
– 이보게 잠깐···! 아직 할 말이 남았다네···.
– 뭔데요? 시간 없어요. 도론이고 디디칸이고 이미 그 돌덩이들 똥으로 나왔을지도 모른다고요.
– 그, 그래도 이건 말해야겠네···도론 그 늙은이의 작업실에 자네들의 무기가 놓여 있어.
– 우리 무기요?”
– 그래. 틀림없이 도움이 될 걸세···도론이 그렇게 신나하는 모습은 오랜만에 봤거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여기 온 이유도 무기를 수령하기 위함이었다.
로난은 머지않아 정육면체 형태의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잔해가 된 다른 건물들에 비해 나름대로 건재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안 그래도 칼이 잘 안 박히는 놈들인데. 잘 됐네.’
잘 만들어진 검이라면 확실한 도움이 될 터였다. 출입문까지는 불과 100m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쿠구구···! 갑자기 바로 옆에 쌓여 있던 잔해더미가 불쑥 솟아올랐다. 거대한 인간에게 각종 광석을 덕지덕지 붙여서 만든 듯한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잔해를 떨치며 일어난 동굴 거인이 로난을 향해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
“니미.”
공동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높이가 5m에 이르는 거대한 놈이었다.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독한 유황 냄새에 로난이 이를 악물었다.
“니 친구들은 다 밥 먹으러 갔는데 왜 너만 남아 있냐?”
거인은 대답하는 대신 오른발을 높게 들어 올렸다. 로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쾅! 거인의 발이 그대로 로난이 있던 자리에 떨어졌다.
“크웍?”
하지만 거인의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끄러지듯 다리 사이로 빠져나온 로난이 거인의 왼쪽 발목에 연속해서 검격을 날렸다. 퍼걱! 퍼걱! 퍼걱! 돌 부서지는 소리가 연쇄적으로 울려 퍼졌다.
“더럽게 단단하네.”
“크워어억!”
공격이 먹히기는 했으나 손이 징징 울렸다. 헛발질한 거인이 로난을 잡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 로난은 거인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계속해서 같은 곳에 검격을 날렸다.
총 스물 다섯 번을 휘두르고 나서야 갑주 역할을 하는 광석들이 모조리 떨어져 나갔다. 로난은 마침내 드러난 진회색 속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얼린 고기를 베는 듯한 감촉과 함께 누런 피가 치솟았다.
“크아아아악!”
다시금 쩌렁쩌렁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균형을 잃은 거인이 휘청이며 쓰러졌다.
로난은 거인의 얼굴이 바닥에 닿기 무섭게 눈구멍 깊숙이 검을 쑤셔 넣었다. 푹 들어간 검끝이 무언가 말랑한 것을 꿰뚫은 게 느껴졌다. 크웍..! 단말마의 비명을 내뱉은 거인이 발버둥을 멈추며 늘어졌다.
“징그러운 새끼들.”
덩치 큰 놈들을 상대하는 게 익숙해서 다행이었다. 검을 뽑은 로난이 뿌리듯이 팔을 휘둘렀다. 누런 피와 육편으로 범벅이 된 검신은 벌써 날이 상해 있었다.
아직 남아 있는 거인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로난은 최대한 빠르고 은밀하게 도론의 대장간으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건물 내부로 들어갈 때까지 새로운 거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문득 로난의 머릿속에 의문이 스쳤다.
‘그런데 내 무기가 뭔 줄 알고 가져가지?’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걸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고민한다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로난은 대장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병장기로 이루어진 둥지는 여전했다. 둥지의 가운데는 이 사단에도 불이 꺼지지 않은 화로와 새하얀 모루가 놓여 있었다.
“저건···?”
모루에 시선이 닿은 로난의 눈이 커졌다.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칼 한 자루가 모루 위에 누워 있었다.
로난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칼을 향해 다가갔다. 칼자루는 짧았고 폼멜은 없다시피 했다. 검은빛을 띠는 기다란 검신은 뒤가 비쳐 보일 정도로 얇았다.
“이게 검이라고?”
로난은 그것이 자신의 무기인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예기를 확인해 보기 위해 칼날에 손가락을 얹는 순간이었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검지에 얇은 자상이 생겼다.
“씁!”
말도 안 되는 날카로움이었다. 손가락을 따라 흘러내린 피가 검신에 떨어졌다. 핏방울은 맺히거나 미끄러지는 대신 그대로 검신에 스며들었다. 로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먹밥 영감쟁이···도대체 뭘 만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