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51)
외전35. 짐승들(7)
#A35
“야, 근데 니는 진짜로 아깝다. 운만 쬐까 좋았어도 성공했을 텐데. 베스퍼 그 가시나는 어떻게 꼬신 거고?”
블란타가 물었지만 바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기분도 아니었거니와 답할 이유도 없었다.
레테가 말했다.
“미남계를 쓴 거겠지. 베스퍼는 얼굴을 밝히잖나.”
“와, 레테 니가 보기에도 임마가 잘생겼나? 내는 진짜 모르겠는데.”
블란타가 헛웃음을 쳤다.
인간의 미적 기준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두 사람의 수다를 듣던 바렌이 이를 악물었다.
“크으윽···!”
아무리 힘을 써도 역부족이었다.
뒷목을 짓누르는 발바닥이 바위처럼 무거웠다.
그는 온몸을 사슬로 결박당한 채 블란타의 발 아래 깔려 있었다.
인간으로 변한 뒤에도 신장이 2m에 육박하는 그였지만, 오러를 사용하지 않고서야 수인과의 완력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었다.
심지어는 이 표범을 떨쳐내서 해결될 상황도 아니었다.
“난 또 바깥이 소란스럽길래 뭔가 했어. 파리가 꼬였었군.”
“그래도 여기까지 들어온 파리는 처음 아닙니까?”
방에는 블란타 외에도 두 명의 수인이 더 있었다.
웬 웨어울프와 웨어베어 한 마리가 손님용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블란타와 마찬가지로 번듯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몸에 걸쳐진 가운은 최고급 실크로 만들어져 있었다.
연기를 내뿜은 웨어베어가 입을 열었다.
“후우···그럼 나는 슬슬 돌아갈게. 괘씸하다고 끌려가서 두들겨 맞았다는 핑계는 너무 많이 썼는데, 뭐 적당히 둘러댈 거리 없나?”
“오랜만에 당근을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말린 대구 한 묶음을 줄테니 인부들과 나눠 먹어라. 고된 노동을 치하하는 특식을 받았다 하면서.”
“생선은 비린내가 나서 싫긴 한데…뭐, 그렇게 하지. 체면치레하기는 좋겠어.”
웨어베어가 몸을 일으켰다.
가운을 벗은 그가 후줄근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검댕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걸로 유추하건데 광산에서 입는 옷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지간한 인간보다 큰 곡괭이를 집어든 웨어베어가 방을 나섰다.
“그럼 또 보자고. 레테 두목.”
“그래. 한숨 돌리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라.”
“저도 오래 쉬었으니 돌아가겠습니다. 할당량은 어떻게든 채워 볼테니 안심하시길.”
“고맙군. 늘 자네를 믿고 있어.”
웨어울프가 뒤따라 퇴장했다.
털에서 바다 냄새가 풍기는 걸로 봐서 낚싯배나 염전에서 일하는 듯했다.
그는 웨어베어와는 다른 문으로 나갔는데, 당장 눈에 보이는 출입구만 다섯 개인 걸로 봐서 이 장소가 모종의 광장 역할을 하는 듯했다.
세상 협조심 넘치는 태도를 본 바렌이 그대로 벙쪄 버렸다.
‘어째서?’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이파 친위대로 모자라서 붙들려 온 수인들도 한통속이라니.
레테가 실소했다.
“놀랐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군. 참고로 저 친구들은 시키지 않아도 내게 반동 분자와 문제 사항을 보고해 주지. 무리에 불만이 터지려 하면 알아서 해결하기도 해.”
“왜 그런 짓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자기들에게는 잘해주니 협조해 주는 것 뿐이야. 지옥에서 구르던 놈들에게 천국의 단맛을 한 번이라도 보여주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못하는 법이거든. 계속해서 대우를 받고 싶으니 무슨 일이라도 하는 거지.”
요컨대 노예들을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한 앞잡이를 뽑았다는 뜻이었다.
레테는 수인들이 나간 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조금 역겹기는 하지만 상관없어. 짐승을 조련할 때도 당근과 채찍을 같이 쓰잖나? 저렇게 노예 중에서도 우리 편이 있어야 조직 관리가 쉬워지는 법이라고.”
“수인은···짐승이 아닙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짐승이라 여기는 편이 여러모로 낫더군. 부하들의 죄책감도 덜해지고 말이야. 짐승이라 여기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하겠나?”
레테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우습게도 그의 외모는 썩 차분하고 신사적이었다.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미중년의 얼굴은 사악한 조직의 두목보다는 어디 은행의 장이나 외교관에 어울렸다.
바렌은 목덜미가, 정확히 갈기가 있던 자리의 털이 오소소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사악하다. 인간이 이리도 사악할 수 있다니.’
본능에서 기인한 불쾌함이 치솟았다.
카리볼로의 밀렵꾼들과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것이, 원래의 몸으로 조우했더라면 통성명도 하기 전에 머리를 날려 버렸을 터였다.
‘힘을 더 모아야 한다. 아직은 부족해.’
바렌은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살의를 억눌렀다.
오러를 쓸 수는 있었지만 상황을 뒤집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레테를 죽이더라도 세크리트를 무사히 구출해서 탈출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쿨럭, 쿨럭!”
“교수님…!”
심지어 세크리트의 상태는 바렌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곳곳에 멍이 들고 이빨도 몇 개 나간 것이 제대로 두들겨 맞은 듯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테가 코웃음쳤다.
“엄살 부리지 마라, 저주술사. 너희 짐승놈들은 그 정도로 죽지 않아.”
“크으으윽···으으···.”
“”저주학자 너는 말뚝을 다시 만들어줘야겠다. 바르카 터르겅이 썼던 것보다 훨씬 강한 걸로. 경고하건데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
래테가 경고했다.
오만한 말투에서는 너희 수인들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자신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자신감이 강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세크리트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우선 따라와라. 너희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으니.”
****
하늘이 희었다.
융단처럼 깔린 구름이 굵직한 눈송이를 게워내고 있었다.
바렌과 세크리트는 나란히 사슬로 묶인 채 어딘가로 연행당하는 중이었다.
요새를 벗어난지 벌써 30분 정도가 지났는데, 얼마나 더 갈지가 의문이었다.
두 사람을 이끌던 블란타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씨, 빨리 안 오나. 진짜 드럽게 느리네.”
“블란타.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영광스러운 친위대이던 당신이···!”
바렌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들과 레테의 거리가 꽤 떨어져 있거니와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바렌이 진정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레테가 아닌 블란타였다.
그 자이파에게 실력을 인정받은, 전사 중의 전사인 그가 왜 이런 잡배들의 조직에 가담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 영광이라···내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 좆빠지게 힘들기는 했는데 확실히 폼은 그때가 더 살았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아니. 내는 지금이 좋다.”
블란타가 칼처럼 말을 끊었다.
꽃처럼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꼬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살랑거리고 있었다.
즉, 거짓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어째서입니까?”
“여서 깨달았다. 본능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내는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잔다. 당연히 싸고 싶으면 쌀 수도 있고. 참을 필요 따위는 없제. 이게 행복이 아이고 뭐겠나?”
“하지만 그건 사람이 아닌 짐승의 삶입니다!”
바렌이 한탄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블란타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어 보일 뿐이었다.
“짐승이면 뭐 어떻노. 겁나 즐거운데. 그 미치광이 호랑이 아래로 다시 들어가느니 일주일에 좆밥 세 명 정도만 화려하게 해치우면서 살끼다…근데 니는 씨바 왜 은근슬쩍 기어오르는데?”
갑자기 블란타가 사슬을 잡아당겼다.
두 사람은 아무 저항도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수인의 괴력은 버틴다고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커억!”
“또 주제넘는 소리하면 내한테 뒤진다.”
“교, 교수님. 괜찮으십니까?”
“바···렌.”
먼저 일어난 바렌이 세크리트를 부축했다.
레테는 엄살 부리지 말라 했지만, 가녀린 웨어폭스의 몸은 당장에라도 죽어버릴 것처럼 떨려오고 있었다.
이름을 불린 바렌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교수님?!”
“자네······.그새 살이 많이 빠졌군.”
“···예?”
“쿨럭, 역시나 데려오기 잘했어···내가 말했지···인간으로 변하면 쏙쏙 빠질 거라고···.”
세크리트가 흡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바렌은 그대로 벙쪄 버렸다.
산책 중에 별똥별을 머리에 맞아도 이거보다는 덜 당황스러울 것 같았다.
“맙소사, 꼭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셔야겠습니까?”
“흐흐···으하하하···.”
세크리트는 실성한 듯한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머리를 더 많이 맞은 것 같았다.
바렌이 뭐라 말하려던 찰나, 선두를 이끌던 레테가 멈춰섰다.
“다 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절벽 위였다.
시야가 탁 트여 있어서 주변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검푸른 해안선을 따라 제법 큰 규모의 마을이 세워져 있었다.
“여기는…?”
“우리 북풍단의 고향이다. 너희들의 노력 따위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장소지. 저 아래를 봐라.”
레테의 손가락은 바닷가의 마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듣자하니 돼지 너는 세크리트와 함께 북부 재건 운동을 하고 있었다면서? 종족간의 악감정을 해소하고, 저주를 푸는 뭐 그런 거.”
“······!”
“다 부질없는 짓이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바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레테의 말을 듣지도 못했다.
마을 앞의 해안에서, 줄줄이 늘어선 인간 아이들이 창검으로 허수아비를 찌르고 있었다.
“다같이 복창해라! 수인은?”
“짐승이다!”
“북부는?”
“인간의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훈련이었지만 그 내용이 문제였다.
쓸데없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허수아비에는 제각기 다른 가죽이 씌워져 있었다.
웨어울프와 웨어베어, 자그마한 웨어 폭스까지.
각 종족의 체구에 맞게 허수아비의 크기가 다른 점에서 다분한 악의가 느껴졌다.
“너희들은 북부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언젠가 수인과 인간은 다시 화합할 수 있다고 믿으니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아···아아아···.”
“하지만 저 마을의 코흘리개들은 대부분 수인을 미워한다. 해코지를 당하기는커녕 제대로 본 적조차 없음에도 마치 부모의 원수 대하듯 하지. 아마 우리 대에 북부 정벌이 실패하더라도 저 아이들이 대신 이루어 주겠지.”
“어떻게 사람이 이런 짓을!”
바렌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노호했다.
지금까지의 악행도 끔찍했지만 이건 격이 달랐다.
그 반응을 본 레테가 세상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어젖히던 와중이었다.
“후우…잘 봐두게. 바렌. 이게 저주야.”
“…교수님?”
“이 증오의 연쇄야말로 진정한 저주일세. 선조의 피를 후손이 씻고, 다시금 그 후손의 적이 피를 부르지.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이유 없는 증오가 되물림되는 이 저주에 비하면 바르카가 남긴 말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죽어가던 세크리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발음이 조금도 새지 않는 것이 아까와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가 마을에 시선을 둔 채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일세. 북풍이 아무리 차가울지언정 사람들의 마음마저 얼려 버리면 안 돼. 눈보라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다 자라기 전에 모피의 따스함을 알려 줘야 해.”
“···갑자기 말이 많아지셨군, 저주학자. 역시 꾀병이 맞았지?”
“아주 꾀병은 아니었네. 맞을 때는 정말로 아팠거든.”
“그걸 꾀병이라 부르는 거야. 헌데 계속 골골거려서 동정표라도 사는 것이 낫지 않았나? 이제 와서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이렇게 나오는 거냐.”
“지금은 부릴 수작이 없다네. 미리 해놓기는 했지만. 슬슬 도착할 때가 됐거든.”
“도착?”
레테가 갸웃거렸다.
이 여우가 너무 맞아서 돌아버린 건가?
문득, 코를 벌름거리던 블란타가 흠칫거렸다.
“쓰으읍…레테. 아무래도 우리 좆되뿐 거 같은데.”
“왜 그러지?”
“우리 대장 냄새다.”
“뭐?”
레테가 흠칫거렸다.
블란타가 대장이라 부르는 인물은 한 명 뿐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스산함을 느낀 그가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콰아아아앙!!
갑자기 천 개의 벼락이 떨어진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북풍단의 요새 첨탑 하나가, 비스듬이 잘린 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무슨···!”
레테의 눈이 커졌다.
줄곧 여유 넘치던 얼굴에 처음으로 구김이 생겼다.
첨탑의 단면 위로 우주처럼 새카만 균열이 그어져 있었다.
공간 자체가 잘려나간 흔적은 소싯적에 북부를 방랑하던 동안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었다.
“꺄아아악! 뭐, 뭐야?!”
“기습! 기습이다!”
요새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비명과 절규가 산발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불현듯 첨탑 위로 육중한 그림자 하나가 착지했다.
언월도를 고쳐 잡은 그림자가 세크리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술친구, 아직 살아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