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9)
40. 로돌란(2)
#40
에두온과 시릴라의 모습을 본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백 명에게 보여주면 장님을 제외한 아흔아홉 명이 구토하거나 졸도할 만큼 끔찍한 몰골이었다.
심문관의 새 부리 가면 아래에서 익살맞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좋은 꿈들 꾸셨나.”
정사각형의 방에는 창문이 없었다. 공간을 구성하는 여섯 면은 모두 칙칙한 회백색 석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일한 광원(光源)인 자그마한 등불이 천장의 한가운데서 아롱이고 있었다.
“꺼흐억···허어어억···!”
“아우···아아아아···.”
에두온과 시릴라는 강철로 된 의자에 단단히 결박되어 있었다. 열 걸음 정도의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두 사람 옆에는 길쭉한 협탁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3단으로 구성된 협탁에는 심문, 혹은 해부에 특화된 도구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뒷짐을 진 심문관이 에두온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유감스럽게도, 내 자네들에게 아직 비밀이 남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네.”
에두온의 사지는 여전히 잘린 채였다. 검은 천이 뒤덮여 있는 네 절단면에서는 더는 촉수가 자라나지 않았다.
대신 입을 제외한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촉수가 빠져나와 꿈틀거리고 있었다. 심문관이 그의 눈구멍으로 나온 촉수 한 가닥을 잡아당기자, 골수를 비트는 듯한 비명이 에두온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덕분에 귀한 손님들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야.”
“흐, 흐아아아악!!”
에두온이 몸부림쳤다. 심문관이 촉수를 손가락에 돌돌 감으며 말했다.
“이 에두온이라는 친구는 흑마법을 배웠더군요.”
“흑마법이요?”
“네. 워낙에 잔혹하고 끔찍한 면이 많아 제국에서는 자취를 감춘 마법이죠.”
흑마법. 속성을 타고나는 다른 계열의 마법과는 달리, 기량만 뒷받침된다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에두온의 신체가 재생하는 것도 흑마법의 일종이었다.
“문제는 이 늙은이도 한때 흑마법을 공부했다는 점이지요.”
음산하게 웃은 심문관이 다시금 촉수 한 가닥을 꼬집었다. 경련을 일으키던 에두온이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흐어억···! 그, 그만, 그만해! 난 전부 말했다고요!”
“후후, 촉수가 자라나는 방향을 바꿀 수 있을 줄은 몰랐을 겁니다.”
심문관은 촉수의 가닥마다 그의 통점이 쏠려 있다고 설명했다. 존댓말까지 사용해 가며 자비를 호소하는 에두온의 행색에서 예전의 의리나 여유 같은 것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쥐고 있던 촉수를 놓은 심문관이 인자하게 물었다.
“그런가? 전부 말한 건가?”
“꺼흐으윽···그래! 전부 말했어요···! 전부 말했다고요···! 교단의 이름은 네뷸라 클라지에, 저 여자는 8지부의 간부 시릴라 레마티온! 우리가 했던 짓까지 전부, 전부 말했잖아요···!”
“그렇다면 묻지. 별의 도래가 무엇인가?”
그 말을 들은 에두온이 헛숨을 들이켰다. 짧지만 묵직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콱! 정확히 삼 초를 기다린 심문관이 그의 얼굴에서 나온 촉수를 한 번에 움켜쥐었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쥐어뜯기 시작했다.
“크으아아악! 아아악! 흐아아악!”
“젠장.”
나비로제가 혀를 찼다. 에두온의 발버둥에 강철 의자가 넘어질 듯 들썩거렸다.
뿌리 깊은 잡초를 뽑는 듯한 소리와 함께 꿈틀대는 촉수들이 튀어나왔다. 가차 없이 촉수를 뽑아내는 심문관의 모습은 마치 선물 포장을 뜯는 아이 같았다.
“꺼어어어어···.”
머지않아 텅 비어버린 눈구멍이 드러났다. 비명을 지르다 기절한 에두온의 의자 밑으로 각종 육편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자네에겐 실망일세 에두온. 벗끼리는 비밀이 없다는 옛 금언을 모르는가?”
촉수를 죄다 뽑은 심문관이 등을 돌렸다. 발소리를 들은 시릴라가 몸을 움츠러트렸다. 그녀가 앉아있는 의자 다리를 타고 누런 소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릴라 양은 내 벗이겠지?”
“제, 제발. 제발 죽여주세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시릴라의 사지는 왼팔과 오른 다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붉은 자국이 선명한, 눈 위로 두툼하게 감긴 붕대는 그녀가 더는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각각 절반씩도 남지 않은 양쪽 귀였다. 엘프의 특징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길쭉한 귀는 흉측한 다각형으로 오려져 있었다.
협탁을 훝던 심문관이 원예할 때나 사용하는 전지가위를 집어들었다. 그는 시릴라의 왼쪽 귀를 가윗날 사이에 끼운 채 로난을 바라보았다.
“고통은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예?”
“엊그젠가 시릴라 양의 나이를 물어봤습니다. 이백하고도 스물두 해를 살았다는군요. 이 늙은이의 네 배 가량 되는 삶을 향유한 엘프마저도 한계를 넘은 고통 앞에서는 아이와 다름없이 비명을 지릅니다. 심지어 그 기나긴 수명을 포기할 권리를 달라 부르짖으면서 말이죠.”
심문관은 그리 말하며 시릴라의 귀 한쪽을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잘랐다. 싹둑. 막 건져낸 생선처럼 튀어 오른 그녀가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키아아아아아악!”
“이제 자를 귀도 얼마 남지 않았다네 시릴라 양. 도대체 별의 도래가 무엇인가?”
시릴라는 비명만 내지를 뿐 대답하지 않았다. 낮은 웃음을 흘린 심문관이 협탁의 맨 아랫칸에서 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이 그리도 대단한 비밀인가? 내 기쁜 소식을 알려주지.”
그는 병에 든 액체를 시릴라의 귀에 부었다. 그러자 피고름이 맺혀 있던 상처가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심문관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들은 비밀을 전부 뱉어내기 전까지는 이 로돌란에서 나갈 수 없어. 살아서든, 죽어서든.”
“아···아아아!···아아아아!”
새하얗게 질린 시릴라가 절망에 찬 비명을 질렀다. 다시 로난과 나비로제에게 몸을 돌린 심문관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거···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걸릴 거 같군요. 감추고 있는 비밀이 남아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으니 우선 돌아가시겠습니까? 추후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런가. 너는 어떻게 하고 싶나, 로난.”
로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동공에서 엿들은 두 사람의 대화와 작금의 상황을 교차해 가며 생각하고 있었다.
– 유감스럽지만 그 질문만큼은 대답해줄 수가 없구나.
– 죽여 주세요···!
이상했다. 처음에는 그저 잡아떼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정보는 다 털어놓고도 별의 도래라는 단어는 입에 담지도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이 없는 경우의 수가 머릿속을 스쳤다. 만약 에두온의 말이 있는 그대로의 의미였다면? 턱을 매만지던 로난이 자신이 추론한 바를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혹시···마법 같은 게 걸려 있는 거 아닐까요?”
“네?”
“아뇨, 뭔가 이상해서요. 조져놓는 이틀 내내 다른 건 다 말했는데 그것만은 죽어도 안 뱉고 있잖아요. 진짜로 말 못 하는 거 아닌가 해서요. 조직원이 아닌 사람에게는 말을 못 한다든가···뭐 그런 마법이 걸려 있는 거 아닐까요?”
한순간 적막이 감돌았다. 머쓱해진 로난이 머리를 긁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편리한 마법이 있을 리가. 그때 심문관이 들고 있던 가위를 떨어뜨리듯 내려놓았다.
“···이거, 자존심이 제대로 상하는 날이군요.”
“예?”
“아직 남아 있는 비밀이 있다는 사실에 제가 충격을 받기는 했나 봅니다. 아니, 사실 이것도 핑계지요. 그런 당연한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니···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목소리가 묘하게 들떠 있었다. 다짜고짜 심문관이 방을 나섰다.
쾅! 문이 닫히자 다시금 적막이 찾아왔다. 어두침침한 방 안에는 시릴라가 흐느끼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로난이 헛웃음 쳤다.
“뭐랄까···정말로 일을 잘 하는 영감님이네요.”
행동이나 말 하나하나에서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줄곧 팔짱을 끼고 있던 나비로제가 로난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렇지도 않나?”
“아, 조금 역겹긴 한데 버틸만 해요.”
물론 심문관의 작품이 끔찍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 시릴라와 에두온의 모습은 악의라는 망치와 정으로 깎아낸 조각상과 다름 없었으니까.
하지만 전장을 뒹굴다 보면 더 심한 꼴도 몇 번이고 마주치기 마련이었다. 로난의 옆얼굴을 응시하던 나비로제가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너는 정말 특이한 학생이군. 저 늙은 심문관이 혐오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나?”
“전혀요. 누군가는 손을 더럽혀야 하니까요.”
되려 로난은 그 늙은이가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더러운 일을 도맡아서 해야 했던 징벌병의 경험에서 온 동질감 때문일까? 몇 분 뒤,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 좆···아니, 거지같이 생긴 건 뭐죠?”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돌아온 심문관의 양손에는 사과만 한 덩어리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꼭 종양처럼 생긴 고깃덩이의 가운데에는 큼직한 눈깔이 하나 박혀 있었다.
금색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대는 꼬라지가 영 혐오스러웠다. 심문관이 덩어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저주를 먹는 몬스터, 커스 아이입니다. ”
“몬스터? 저주요?”
“네. 각종 저주로 말문이 막힌 죄인들을 심문할 때 사용하지요. 방금 로난 님이 언급하셨던 금제 마법···그런 종류의 마법은 저주라는 개념으로 따로 분류한답니다.”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심문관은 커스 아이를 들고 에두온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재생된 촉수가 그의 귀와 눈구멍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에두온의 고개를 앞으로 숙이게 한 심문관이 그의 뒤통수에 커스 아이를 올려놓았다. 철썩! 문어처럼 들러붙은 커스 아이의 눈동자가 번쩍 떠졌다.
“흐어어억!”
“자아, 마음 편히 먹게. 자네를 얽매고 있는 저주를 없애주는 중이니까.”
커스 아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에두온의 입에서 지속적인 신음이 흘러 나왔다. 로난은 저 똥경단의 눈동자 색이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우루룩.”
마침내 커스 아이의 눈동자가 완전한 푸른색으로 변했다. 흡족스레 웃은 심문관이 에두온의 턱을 잡고 들어 올렸다.
“자, 에두온. 이걸로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마음의 벽이 없어졌으리라 믿네.”
“허억···헉, 허어어억···!”
“다시금 질문하지. 별의 도래가 도대체 뭔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숨을 내쉰 심문관이 다시 그의 촉수로 손을 가져갈 무렵이었다. 에두온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별이···도래하는 날. 저희 교단이 꿈처럼 그리고 있는···운명의 날입니다.”
로난의 눈이 커졌다. 에두온의 목소리를 들은 시릴라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에두온, 안 돼요!”
“닥쳐.”
퍽! 로난이 시릴라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구역질한 그녀가 몸을 고꾸라트렸다. 에두온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너무나도 나약합니다···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도, 산맥과 함께 늙어가는 엘프도···결국에는 모두 허무한 종말을 향해 달려갈 뿐입니다···저희 네뷸라 클라지에는···허억, 영원이라는 별빛 아래 모인 횃불입니다···.”
별빛이라는 단어가 다시 나왔다. 로난은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심문관과 나비로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별의 도래는···하늘 너머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는···날. 우리의 숙원은···부질없는 발전을 늦추면서···미개함이라는 칼끝을 별에게 겨누지 못하게 하는···것.”
“장황하군. 내가 늙어서 그런지 알아듣기가 힘들구먼. 요약하자면 그 날 하늘에서 뭔가 내려온다는 건가?”
“그건···.”
에두온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참다못한 로난이 심문관을 제치며 앞으로 나섰다.
“잠깐만요.”
“로난 님?”
로난이 심호흡했다. 그는 얼굴을 에두온의 귓가에 바짝 들이대며 말했다.
“아하유테라는 이름을 알고 있나?”
한순간 에두온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는 천천히 로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요 섞인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나왔다.
“어, 어디서···그 이름을···욱!”
그 순간 에두온의 이마가 부풀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순식간에 팽창한 머리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변했다. 썰어 버려야 하나? 로난이 칼자루에 손을 올리려는 차였다. 심문관이 로난의 어깨를 잡아 뒤로 당겼다.
“물러나시지요.”
“끄에에에..으으으엑!”
심문관이 마나 실드를 전개했다. 펑! 부풀던 에두온의 머리가 폭발했다. 뇌수와 뼛조각, 찢어진 촉수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하지만 마나 실드 덕에 세 사람과 시릴라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심문관이 실드를 해제하자 허공에 눌어붙어 있던 육편과 액체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심문관의 가면 아래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음. 생각보다 저주가 강력했나 보군요. 몇 개가 더 걸려 있었거나.”
“제기랄, 이런 일이 자주 있어요?”
“금제를 어기면 죽는 경우 자체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지요.”
차라리 밥 먹다 반찬을 흘린 사람이 더 당황할 것 같았다. 심문관은 머리 없는 시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커스 아이가 저주를 다 흡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랍군요. 족히 일 년은 굶긴 놈이었는데···.”
커스 아이는 누군가에게 걸려 있는 저주를 먹이 삼는 몬스터였다. 배가 가득 찰 때까지 에두온의 저주를 먹었음에도 저주가 풀리지 않았다는 것은, 한 마리로 해결이 안 되는 강력한 저주였거나 다른 저주들이 뒤섞여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말을 곱씹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조직원이 아닌 작자들한테 별의 도래에 대한 정보를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 첫 번째. 그 저주를 해제하고 심층적인 정보를 싸지르면 머리가 폭발한다는 게 두 번째 저주겠네요. 몇 개 더 걸려 있을 수도 있고요.”
“확실히 그게 가장 신빙성 있는 추론이지요. 헌데···아까부터 느꼈지만, 로난 님에게는 심문관의 재능이 엿보입니다.”
별안간 심문관이 가면을 벗었다. 그는 로난에게 악수를 청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나중에 로돌란에서 일해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제 이름은 카라카입니다.”
“내 제자에게 이상한 물을 들이지 마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비로제가 으르렁거렸다. 짙은 눈썹 아래 번득이는 눈이 매서웠다. 카라카가 멋쩍게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진정하시길, 전대 검성이여. 그냥 제안이었을 뿐입니다.”
“제안해줘서 고마워요 카라카. 귀가 먹으면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요.”
로난은 피식 웃으며 카라카와 악수를 나누었다. 거절의 의사가 담긴 행동이었지만, 나비로제는 그조차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나저나 한 마리를 잃은 게 안타깝군요. 어지간한 환상종보다 잡기 힘든 놈들인데···.”
나비로제의 눈치를 살피던 카라카가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 에두온에게 붙였던 커스 아이는 그대로 폭발에 휩쓸려 죽었다.
카라카는 남아 있는 커스 아이 한 마리를 두 사람의 앞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자세히 보면 꽤 귀엽답니다. 한 번 만져보시겠습니까?”
“거절하지.”
“으, 저도요.”
돈이라도 주면 모를까, 절대로 그냥 만지고 싶지는 않은 물건이었다.
“우로로록!”
그때 얌전히 카라카의 손바닥 위에 웅크리고 있던 커스 아이가 로난에게 달려들었다. 꾸물럭거리며 펼쳐지는 빨판을 본 로난이 반사적으로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에이 썅, 깜짝이야!”
라만차가 허공에 획을 그었다. 툭. 반으로 갈라진 커스 아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카라카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허어억···!”
커스 아이는 반으로 갈라진 뒤에도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뒤늦게 환상종만큼 귀하다는 말을 떠올린 로난이 둘러대듯 말했다.
“제기랄, 못 물어 줘요. 이 자식이 먼저 달려드는 거 봤잖아요.”
“이, 이건···?”
별안간 카라카가 로난의 오른팔을 움켜잡았다. 그는 로난이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커스 아이의 시체를 로난의 손에 가져다 댔다.
반토막난 커스 아이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푸른빛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