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398)
2-20. 대반격(7)(수정)
#20
아벨의 주문과 함께 빛이 몸을 휘감았다.
예상외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한순간 암전됐던 세상이 다시 밝아졌다.
“···동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돌로 이루어진 벽과 천장이었다.
공기가 건조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나는 여기가 짐승의 둥지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바위 아래의 굴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주변을 한창 둘러보던 참이었다.
“허억···운이 좋군. 놈들의 시선이···헉, 닿지 않는 곳에 떨어지다니···.”
“아벨.”
아벨은 벽을 짚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안색이 파리해진 채 헉헉대는 것이 완전 군장 차림으로 행군이라도 하고 온 사람 같았다.
“뭐야, 왜 그래?”
“설마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괴물 같은 놈. 너는 카인의 자식이 틀림없구나.”
아벨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실소했다.
그러고 보니 공간을 이동했음에도 속이 뒤집히는 부작용이 없었다.
“원래 이런 거 아냐? 일반적인 공간 이동 마법보다 훨씬 나은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저길 봐라.”
아벨은 굴 안쪽으로 턱짓했다.
인기척이 느껴지던 방향이었다.
나머지 세 사람이 어둠 속에서 몸을 비틀고 있었다.
쿵!
쿵!
판타시온은 벽에 머리를 박아 대고 있었다.
뿔이 하얀 석벽을 때릴 때마다 굴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우엑! 에에엑!”
르탄시에는 배를 처음 타본 농부처럼 속을 게워 내는 중이었다.
호쾌하게 쏟아내는 모습을 보아하니 맛난 걸 많이 먹어 두라는 내 말을 실천한 것 같았다.
“그으···그으으으···!”
오르세는 이를 악문 채 내용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있었다.
품위는 가까스로 지키고 있었지만, 그 대가를 치르듯이 눈과 코에서 보라색 불꽃을 내뿜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 무서운데, 그냥 시원하게 토해 버리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뭐야 시발.”
멀쩡한 것은 정말 나 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오히려 평소보다 기운이 넘치는 것 같았다.
“왜들 저러는 거야? 거의 죽으려 하는데.”
“당연한 결과다. 수천만 광년을 넘어서 온 거니까. 저 정도의 부작용으로 그친 것을 천운이라 생각해라.”
“광년?”
“하아···빛이 일 년에 가는 거리다. 아무리 다인하르보다 발전이 더디다지만 이런 기본적인 개념조차 상용화되어있지 않다니. 역시 미개하기 짝이 없는 원숭이 놈들이···컥!”
복부에 주먹을 꽂자 아벨이 고꾸라졌다.
주제 파악을 못하고 틱틱대는 걸 보면 역시 악당은 악당이었다.
예절 주입을 위해서는 르탄시에처럼 주기적으로 패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아벨의 태도와는 별개로 정보 자체는 흥미로웠다.
“세상에 씨발, 그럼 대머리들은 매번 이렇게 먼 곳에서 오는 거야? 참 할 짓도 없는 새끼들일세.”
“쿨럭, 쿨럭! 네놈이 감히···!”
“사람 대우 받고 싶으면 싹바가지부터 고치쇼. 그래서 여긴 어딘데?”
“젠장, 나도 모른다.”
“뭐라?”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칼자루에 손을 얹자 아벨이 움찔거렸다.
멀쩡한 척 해도 그의 몸은 겨울의 뿔 위에서 보낸 아름다운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벨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모르는 걸 모른다 했을 뿐이다! 다섯 명을 한번에 옮기면서 좌표를 지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신이 와도 불가능해. 아무도 흩어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라.”
“누가 뭐래냐.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면 더는 돌이킬 수 없다. 버러지들, 정신 차려라!”
아벨이 외쳤다.
지금까지 그가 낸 목소리 중에 가장 컸다.
입가의 토사물을 닦아낸 르탄시에가 울먹거렸다.
“흐윽···으으···여긴 어디죠? 동굴?”
“너희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 왔다. 서둘러 목적을 달성하고 도망치는 것만이 살 길이지. 멍청한 사슴이랑 도마뱀도 영혼을 빼앗기고 싶은 게 아니라면 어서 일어나라!!”
“감히 누구더러···크으, 도마뱀이라는 거냐···!”
오르세가 고개를 들었다.
판타시온도 머리 박아대는 것을 멈추고 아벨을 노려보았다.
이게 악의 카리스마라는 걸까.
확실히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스킬이 남달랐다.
“우리 목표는 두 개다.
하나는 놈들이 ‘그 분’이라 부르는 종족의 왕을 사냥하는 것, 두 번째는 ‘근원’을 파괴하는 거다.”
“근원?”
“침략자 종족의 원천이 되는 힘의 덩어리다. 지금까지 놈들이 우주를 돌며 수집한 영혼과 생명력이 응집되어 있지. 근원을 파괴하면 놈들은 모조리 소멸한다. 왕을 포함해서.”
“그렇다면 왕은 무시하고 근원만 파괴하면 되는 것 아닌가.”
판타시온이 끼어들었다.
평정을 되찾은 그의 눈빛은 다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벨이 끄덕거렸다.
“아주 똑똑하시군 판타시온. 확실히 근원만 파괴하면 될 일이지. 그런데, 우리가 근원에 도착할 때까지 놈들의 왕은 옥좌에서 뜨개질이라도 하고 있을 것 같나?”
“······.”
“당연히 그럴 일은 없다. 왕은 어지간해서는 행차하지 않지만 근원이 위협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 놈은 무조건 개입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결국에는 왕과 싸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작전 성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목표 달성까지 불필요한 전투 횟수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놈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곳에서는 아무리 죽여 봤자 별 의미가 없으니까. 즉, 잠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새 우리는 아벨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설명이 일목요연한 것이 필레온 아카데미의 교수진과 맞먹는 강의력이었다.
그는 검으로 바닥에 그림까지 그려 가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한 명에게라도 들키면 안 된다. 다행히도 놈들은 본거지에서는 경계를 풀고 있으니 어지간히 소란을 피우지 않고서야 발각될 일은 없을 거다. 죽은 듯이, 르탄시에와 마룡의 비행을 이용해서 근원까지 가는 거다.”
“수가 적으면 그냥 죽여버리면 될 일 아닌가?”
“멍청하기는. 기본적으로 놈들은 감각을 공유한다. 뇌의 구조가 우리와는 완전히 달라. 한 놈에게 위치를 들키는 순간, 전 우주에 있는 거인들에게 발각당했다고 생각해라.”
이건 나도 아는 내용이었다.
선왕을 미끼삼아 선전포고한것도 바로 그 특징 때문이었으니.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미션이었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못난 삼촌이 근원이 자리한 곳을 알고 있었으니까.
몸을 돌린 내가 땅굴의 출구를 가리켰다.
“좋아. 그럼 바로 출발하자. 이 자식 말대로 미적거릴 시간이 없어.”
“여, 역시 해야겠죠? 그런 거겠죠? 후우···저는 준비 됐어요.”
르탄시에가 각오를 다졌다.
잔뜩 겁먹었음에도 용기를 짜내는 모습이 기특했다.
오르세와 판타시온은 이미 몸이 아릴 정도의 살기를 분출하며 임전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영 비실대길래 불안했는데, 괜한 걱정이었군.
아벨이 말했다.
“근원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 지형을 알아야 한다. 나가자마자 달려라. 나무나 바위 같은 지형지물에 몸을 숨기면서 가는 거다.”
“괜찮은 거 같네. 그럼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출발하는 거야. 하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긴장감이 맴돌았다.
르탄시에가 주문을 영창하자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몇 달간 함께 싸우다 보니 센스가 많이 늘었다.
굴의 입구에서 불어온 바람이 앞머리를 뒤집는 차였다.
“셋!”
우리는 질풍처럼 굴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사막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창백한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백색 모래와 잿빛 그림자로 이루어진 사구가 지평선까지 뻗어 있었다.
색채의 결여는 악마가 그린 풍경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쯧.”
아벨이 혀를 찼다.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는 탓이었다.
마음 놓고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오직 앞만 바라보며 질주하던 와중이었다.
불현듯, 섬뜩한 기척이 머리 위에서 느껴졌다.
“뭐야?”
일행 중 누구도 반응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나만 느낀 것 같았다.
고개를 들었다.
기괴하게 꾸무럭거리는 구름은 이따끔씩 뇌운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늘에 시선을 둔 채 달리던 찰나였다.
갑자기 구름 한구석이 원형으로 흩어지며 광선 하나가 이쪽으로 쏘아졌다.
“씨발, 피해!”
“네?”
르탄시에가 갸웃거렸다.
아쉽게도 부연설명을 해줄 틈은 없었다.
나는 판타시온의 뿔을 박차며 도약했다.
발도와 동시에 광선이 좌우로 갈라졌다.
두 개로 나뉜 빛줄기가 일행의 양 옆으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물보라처럼 솟구친 모래가 하늘을 가렸다.
모래의 비 사이로 두 개의 거대한 구덩이가 드러났다.
제비를 돌며 착지하는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무도한 침입자들의 처형을 집행하겠다.』
광선이 날아온 지점에서, 깊고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뭐라고?!”
그제야 일행은 고개를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위를 향하는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하늘을 뒤덮고 있던 구름층이 폭발하듯 흩어졌다.
가려져 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비롯한 전원이 석상이 된 것처럼 굳어 버렸다.
“아.”
『그대들은 그대들의 죄를 알렸다.』
다시 한 번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말을 걸어온 것은 날개가 여섯 장 달린 거인이었다.
네 장 달린 놈들에 비해서 확연히 덩치가 컸다.
두 쌍의 팔에는 빛으로 이루어진 검이 한 자루씩 쥐어진 채였다.
하지만 일행은 저 대머리 때문에 얼어붙은 게 아니었다.
수백 명의 거인이 우리 머리 위의 상공에 원형으로 포진해 있었다.
“허허. 이건 참.”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예상을 벗어나는 상황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이렇게 시원하게 벗어나면 오히려 유쾌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여기 오는 것을 알고 있던 건가?
씨발, 층층이 쌓여 있는게 결혼식 케이크를 보는 것 같았다.
“끄, 끝이야···.”
하늘을 바라보던 르탄시에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딱딱 부딪히는 이빨은 호두도 깔 수 있을 것 같았다.
알아듣지 못할 말을 뇌까리던 그녀가 아벨을 홱 돌아보았다.
“아벨! 역시 네가!”
“생사람 잡지 마라. 나도 놈들과 싸웠다는 걸 잊어버린 거냐.”
“그, 그럼 저 대머리들이 어떻게 알고 여기 온 건데!”
“나야 모르지. 그냥 운이 없는 걸지도.”
아벨이 냉소를 머금었다.
말투나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정말 몰랐던 것 같다.
특유의 허세 넘치는 웃음,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그의 결백을 증명하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계획이 매우, 몹시도 꼬였다는 것.날개 여섯 달린 대머리가 검 끝으로 우리를 가리켰다.
『어리석은 자들아. 감히 별의 아이들의 땅에 발을 들인 것을 후회하며 소멸해라.』
『소멸해라.』
날개 네 장 달린 대머리들이 복창했다.
원체 수가 많아서 목소리만으로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손을 뻗자 새하얀 입자가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수억 마리의 반딧불이 연회를 벌이는 듯한 장관이었다.
“···아름답군.”
“어, 어서 도망을!”
아벨이 감탄했다.
르탄시에가 머리카락을 쥐어싸맸다.
이윽고 빛의 창이 각 거인들의 손에 쥐어졌다.
수백 개의 창은 우리 쪽 세상에서 본 것보다 몇 배나 더 크고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머리들도 자기네 집에서는 더 강해지는 듯했다.
‘살벌하네.’
도저히 도망칠 곳은 보이지 않았다.
각오를 다지고 온 특공대조차 절망에 빠뜨릴 정도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굉장히 귀찮은, 하지만 확실한 방법이.
“린.”
먼저 린에게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응. 힘낼게.”
회답하듯 검신이 웅웅 진동했다.
칼자루를 쥐자 노을의 색채가 칼날을 타고 차올랐다.
천천히 검을 들어올린 내가 날개 여섯 달린 대머리를 겨냥했다.
“어이. 다림질한 불알.”
『······?』
거인이 나를 내려보았다.
선전 포고를 한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없는 취급은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저 특유의 깔아 보는 눈빛은 언제 봐도 참 마음에 안 든다.
“내려와라.”
나는 칼자루를 양 손으로 움켜쥐었다.
이렇게 크게 쓰는 건 전쟁 이후 처음인데, 어떻게든 되겠지 뭐.
『무슨···』
대머리가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검신에 응축되어 있던 노을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파아아아아—!!
온 하늘이 주홍색으로 물들었다.
빛에 휩싸인 거인들이 당황하며 퍼덕거렸다.
확실히 수가 많아서 그런지 힘이 많이 들어간다.
내 이마에 핏줄이 불거지고, 팔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하아아아아아!!”
그래도 해내야 한다.
이를 악물었다.
묵직해진 검을 땅을 향해 휘둘렀다.
붉은 꼬리를 끌며 떨어진 칼날이 바닥에 닿는 순간이었다.
『!!!』
콰과광!!
노을에 삼켜진 거인들이 바닥에 일제히 내리꽂혔다.
모래기둥이 솟구친다.
날개 부러지는 소리가 산발적으로 울려 퍼진다.
굉음을 일으키며 추락하는 대머리들은 마치 강풍에 떨어지는 나무열매 같았다.
칼을 치켜든 내가 일행을 향해 외쳤다.
“다들 정신 차려 병신들아! 계획 변경이다!”
“흐아악?!”
“우린 좆됐어! 그것도 상당히!”
패닉에 빠져 있던 르탄시에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두 덩치와 아벨도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이쪽을 돌아보았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걸 보니 이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냥···”
말꼬리를 끌었다.
다시 머리를 굴려 봤지만 역시 이거 말고는 없다.
나는 머나먼 지평선을 가리키며 목청껏 내질렀다.
“정면 돌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