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0)
41. 로돌란(3)
#41
카라카가 로난의 오른팔을 움켜잡았다. 그는 로난이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커스 아이의 시체를 로난의 손에 가져다 댔다.
반토막난 커스 아이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몸 안의 무언가가 빨려나가는 듯한 불쾌한 감각에 로난이 팔을 휘둘렀다.
“젠장, 무슨 짓이에요?”
탁! 튕겨나간 커스 아이의 시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눈동자를 잠식한 푸른색은 점점 그 영역을 넓혀 가더니 흰자와 몸통까지 물들이기 이르렀다.
“오로록···.”
이윽고 거품처럼 부글거리던 시체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우웩.”
머지않아 시체가 있던 자리에는 푸르딩딩한 액체만이 남았다. 로난과 커스 아이였던 액체를 번갈아서 쳐다보던 카라카가 입을 열었다.
“로난 님.”
“못 물어준다니까요.”
“그게 아닙니다. 괜찮으십니까? 몸에 아무런 변화도 안 느껴지십니까?”
“네? 딱히···그런 건 없는데요.”
눈이 좀 간질거리기는 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카라카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계신 겁니까?”
“예?”
에두온의 머리가 폭발할 때도 평온하던 얼굴이 당혹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로난을 위아래로 훑은 그가 한층 더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로난 님은 지금 저주에 걸려 계십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뭐라?”
듣고 있던 나비로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로난이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헛웃음 쳤다.
“저주요···? 내가요?”
“네. 무슨 저주인지는 모르겠지만···감히 제가 뭐라 조언을 드리지도 못할 만큼 강력한 저주입니다. 커스 아이가 먼저 달려드는 건 한두 번 본 적이 있어도, 저주를 감당하지 못하고 녹아내리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저주의 과부하로 말미암은 커스 아이의 융해. 수백 년 묵은 학술서에서나 전례를 찾아볼 수 있는 희귀한 현상이었다.
카라카는 아마 커스 아이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져다 댔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라 말했다. 로난이 푸르죽죽한 액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젠장,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자고 일어나면 저런 파란 설사로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품은 채 매일을 살아가야 하나요?”
카라카가 고개를 내저었다.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느냐마는···저주의 종류를 모르니 뭐라 확답을 해 드리기가 어렵군요. 혹시 살면서 특정한 행동이나 말에 제약을 느낀 적도 없으신가요?”
“제약이요?”
“네. 일단은 금제 계열이 가장 흔하니까요. 달리기를 할 수 없다든지, 철을 만질 수 없다든지···뭐가 됐든 간에 남들은 당연하게 해내는데, 본인만 못 하는 무언가···.”
로난과 나비로제는 거의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물어보지 않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회귀한 이후로도 로난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정체불명의 현상. 정제되지 않은 마나를 볼 수도, 느낄 수도, 다룰 수도 없는 마나 불능 상태.
나비로제의 눈빛을 읽어낸 로난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딱히 없어요.”
“흐으음···그렇습니까? 이런 강력한 저주를 달고도 여지껏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게 기적이군요. 꼭 전문가를 찾아가 보시길 바랍니다.”
카라카는 그 이후로도 로난에게 붙어 있을 수도 있는 저주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단명, 뒤늦게 발현하는 불치병,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면 폭발하는 신체 등.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카라카는 다시 한 번 전문가를 찾아가볼 것을 당부하며 말을 끝맺었다. 그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시릴라의 귀를 매만지며 미소 지었다.
“아무튼 잡아온 게 두 명이라 다행이군요. 남아 있는 이야기는 우리 시릴라 양에게 들으면 되니까요.”
“아···아아아···안 돼···제발···.”
“후후, 머리를 터트리지 않고 비밀을 캐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시릴라는 이미 정신이 붕괴된 것처럼 보였다. 모든 금제가 풀리고 비밀을 남김없이 뱉어낼 때까지 그녀는 로돌란에서 해방되지 못할 터였다. 카라카의 말마따나 살아서든, 죽어서든.
물론 로난이 알 바는 아니었다.
“뭐, 조금 걸려도 되니까 확실하게만 알아내 주세요.”
“물론이지요. 헌데, 제가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로난이 옷매무새를 다듬던 차였다. 불현듯 카라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가 로난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아하유테가 뭡니까?”
“네?”
“에두온에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려다가 머리가 폭발하더군요. 네뷸라 클라지에라는 조직의 심층적인 정보 같은데, 어떻게 그런 걸 알고 계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로난의 말문이 한순간 막혔다. 의도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아···그거요?”
아직 진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동화의 소재로 쓰기에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사실 나는 십 년 뒤의 미래에서 왔고, 날개 달린 대머리 셋이 하늘을 찢으며 내려옵니다. 아하유테는 그 중 한 명이고요. 와하하. 참 병신 같은 이름 아닙니까?
···이딴 소리를 어떻게 맨정신으로 지껄이겠는가. 의혹을 풀기는커녕 시릴라의 옆에 나란히 앉게 될지도 모른다. 대답을 기다리던 카라카가 눈썹을 으쓱였다.
“로난 님?”
‘좆됐다.’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기억의 편린들이 그의 쾌검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머릿속을 번득였다. 마침내 최선의 답변을 도출해 낸 로난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벌써 몇 년 전이네요.”
“흐음?”
로난의 얼굴에 갑자기 수심이 드리웠다. 카라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이어 흘러나온 로난의 말에 나비로제의 표정이 굳었다.
“부모님과 함께 나란다에 살았었어요. 대화재가 일어나기 전까지.”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로난은 그 나이까지 님버튼을 떠나 본 적이 없었거니와 부모님은 얼굴을 본 기억조차 없었다. 잠시 뜸을 들인 로난이 슬픈 미소를 머금었다.
“서쪽에서 시작된 화마는 동남풍을 타고 밀밭을 휩쓸었어요. 한 줌의 밭이 재산 전부였던 부모님은 물이 든 양동이를 들고 불 속에 뛰어들었죠. 그리고···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여기까지 말한 뒤 로난은 카라카의 눈치를 살폈다. 무덤덤한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제기랄, 역시 로돌란의 심문관이라 이건가? 로난은 한층 더 눅눅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불이 다 꺼지고 나서야 사위어버린 밀밭에 발을 들였어요. 그때 처음으로 봤죠. 이 시릴라라는 엘프가 입고 있던 것과 같은 로브를 입은 사람들을.”
“호오···.”
“아하유테라는 이름은 거기서 들었어요. 다른 대화는 잘 안 들렸지만, 그 이질적인 단어만큼은 확실하게 들렸죠.”
굳어 있던 카라카의 얼굴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실감 나는 거짓말의 비결은 진실이 반드시 어느 정도는 섞여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로난은 방랑객 시절 나란다 지방에 방문했던 것을 천운으로 여기고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곳의 사람들은 네뷸라 클라지에가 저지른 방화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알고 있던 거예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
로난의 열변은 적당한 개연성을 충족시킨 채 마무리되었다. 어차피 고아 출신인 것은 사실이라 들킬 일도 없을 터였다.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카라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그토록 집착하신 것도 이해가 갑니다. 잔악무도한 범죄자들 때문에 안타까운 일을 겪으셨군요.”
“대답이 늦어서 미안해요.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라.”
“사과는 제가 드려야지요. 직업 특성 상 저도 모르게 추궁하듯 질문을 하게 된답니다.”
카라카의 얼굴이 다시 부드럽게 풀렸다. 로난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라카는 협탁에서 꺼내 든 서류에 오늘 알아낸 정보를 기재했다.
“그럼,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되셨나요?”
“네.”
로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든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별의 도래’가 강림 사태를 의미한다는 것. 그 배후가 네뷸라 클라지에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더군다나 교단의 정체를 제국에서 알게 되었으니 조만간 대대적인 소탕 작업이 시작되겠지.
‘네뷸라 클라지에를 더 잡아 족치는게 급선무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강림 사태 자체가 벌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네뷸라 클라지에의 근거지를 박살내거나 조직원을 잡아서 로돌란에 처넣으면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용무는 거기서 마무리되었다. 카라카는 로난과 나비로제를 다시 요새 밖으로 안내해 주었다. 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거친 바닷바람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두 분 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말씀드렸다시피, 로돌란에서 알아낸 정보는 문서로 정리되어 조만간 각계에 발송될 겁니다.”
“신세를 졌다. 기억하지.”
“별말씀을요. 만사의 주인을 뵈서 영광이었습니다. 로난 님은 꼭 저주에 능통한 이들을 찾아가 보시길.”
“알았어요. 고마웠어요 카라카.”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나비로제와 로난은 로돌란을 떠났다. 승차감이 거지 같은 그리폰 마차가 두 사람을 제도까지 데려다 주었다.
장애물이 없는 하늘길을 탄다 하더라도 제도에 도착하는 데는 제법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로돌란 요새는 정말로 작은 암초처럼 보였다.
붉은 석양이 여명해의 물비늘 위로 부서지고 있었다. 로난은 창밖에 시선을 둔 채 입을 열었다.
“제가 마나를 못 다루는 게 저주 때문인 걸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흠. 그런 저주를 받을 만한 업보를 쌓은 기억은 없는데.”
“······”
나비로제가 하려던 말을 삼켰다. 그녀는 로난과 대련했던 카르단의 머리카락이 다시는 자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전해들었다. 로난이 눈을 비비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좀 무섭긴 해요. 그때 카라카 표정 봤어요? 젠장, 내가 똥을 싸서 벽에 던졌어도 그렇게는 안 놀랐을 거예요.”
“짐작가는 사람은 전혀 없나?”
“···네.”
로난이 침음을 흘렸다. 아직 코흘리개던 시절에 저주에 걸렸다는 건데, 전생의 기억까지 되짚어 봐도 이런 무시무시한 저주를 걸 만한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폰의 날갯짓을 감상하던 로난이 다시 나비로제를 바라보았다.
“참, 일러 줘서 고마워요.”
“뭘 말이냐?”
“카라카에게 제가 마나를 못 쓴다는 걸 알리지 말라 했잖아요.”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전사의 기본이니까. 그나저나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거지?”
“거짓말? 아하, 눈치챘어요?”
나비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로난이 카라카에게 늘어 놓았던 과거사를 지칭하고 있었다. 하여튼 소름끼치는 통찰력이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다 방법이 있다. 한두 번 거짓말을 해 본 솜씨가 아니더군. 로돌란의 심문관이 속아넘어갈 정도면 말은 다 한 셈이지.”
“음. 그냥 진실을 말해도 안 믿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교관님한테는 말해 드릴까요?”
“됐다. 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나비로제는 그 말과 함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보면 볼수록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의문 하나가 고개를 쳐들었다.
‘이런 사람이 왜 강림 사태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거지?’
사실 꾸준히 해 온 생각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위인들 중 강림 사태 당시 모습을 비춘 이는 매우 드물었다.
나비로제도, 필레온의 교장 크라바 크라티르도, 현 검성 자이파 또한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징벌병 시절에는 전혀 이상함을 못 느낀 부분이었다.
‘네뷸라 클라지에가 무슨 수작을 부린 건가.’
하긴 십 년이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로난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발생하는 의문에 신경질적으로 눈을 부볐다. 그 모습을 본 나비로제가 미간을 좁혔다.
“아까부터 왜 자꾸 눈을 비비나.”
“모르겠어요. 그 종양이랑 닿은 이후로 계속 간지럽네···.”
“···너는 돌아가자마자 저주에 대해 알아봐라. 필레온에 그쪽 분야의 전문가가 한 명쯤은 있겠지. 내 조수에게도 말해 놓겠다.”
“네···고마워요.”
“그만 비벼라.”
로난과 나비로제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필레온에 도착했다. 로난은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나비로제의 수업이 진행되는 제1투기장으로 향했다. 열심히 병장기를 정리하고 있는 아데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이에요 아데샨.”
“아, 빨리 왔네 로난. 금방 정리할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줄래?”
아데샨이 손을 들어 인사했다. 작업 때문에 묶은 머리카락 아래로 새하얀 목덜미가 드러나 있었다. 문득 재회 첫날을 떠올린 로난이 입을 열었다.
“요즘은 어때요.”
“음? 어떻냐니?”
“그 카르단인지 뭔지 하는 병신이 안 괴롭혀요?”
“아아, 카르단은 수업에 안 들어온 지 꽤 됐어. 눈치를 보던 다른 애들도 하나둘씩 다가오더라. 고마워.”
“거 다행이네요.”
간만이라면 간만에 보는 그녀는 여전히 적응하기 힘든, 풋풋하고 사근사근한 분위기를 풍겼다. 로난은 말없이 아데샨의 작업을 거들기 시작했다.
“앗, 정말 안 도와줘도 돼···!”
“됐어요.”
“미안해. 급하다고 들었는데···무슨 저주에 걸렸다면서?”
“네. 정확히는 저주에 걸려 있었던 걸 깨달은 거지만.”
“걱정이네···정말로 도와줘도 되는 거 맞아? 저기 가서 앉아 있으면···”
“십 년이 넘도록 멀쩡했는데 이거 하나 거든다고 죽겠어요.”
확실히 두 사람이 들러붙자 작업이 금방 끝났다. 아데샨은 로난을 데리고 마법과의 건물이 모여 있는 구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음···기둥 공원. 거기서 만나기로 했거든. 마법과의 교수님들 중 저주 쪽에 조예가 깊은 분이 계신다고 해서 내 후배한테 안내를 부탁하려고.”
기둥 공원은 말 그대로 거대한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부지 내의 공원이었다.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안내? 교수 한 명 찾아가는데 안내씩이나 필요해요?”
“으음, 내가 마법과를 잘 모르는 것도 있고···워낙 특이하신 분이라고 들어서.”
“마법사 중에 변태가 많기는 하죠. 제기랄, 갑자기 무서워지네.”
“후후, 아주아주 대단한 후배니까 잘 안내해 줄 거야.”
아데샨이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히도 자랑스러운 후배인 듯했다. 기둥 공원에 도착한 아데샨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음?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아직 안 나왔나?”
한적한 기둥 공원에는 로난과 아데샨밖에 없었다. 그때 아데샨의 바로 뒤에 솟아 있던 기둥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더니, 갑자기 웬 소녀 하나가 튀어나왔다.
“아데샨 언니!”
“꺄악!”
소녀는 마법과의 교복인 검은 로브를 입고 있었다. 검보라색 머리가 물처럼 찰랑였다. 허공에서 나타난 소녀는 그대로 아데샨을 뒤에서 와락 끌어안았다.
“···음?”
어딘가 낯익은 얼굴에 로난의 눈이 커졌다. 아데샨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에리, 놀랐잖아.”
“히히, 이번에 새로 배운 마법이에요. 감쪽같죠?”
“응. 대단해, 역시 에리야.”
에리라는 이름의 소녀가 헤실헤실 웃었다. 눈을 부빈 로난이 다시 에리를 바라보았다. 눈꼬리가 고양이처럼 올라가 있는 소녀는 자신이 알던 사람이 맞았다.
“오늘 안내 잘 부탁해.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들어서.”
“아데샨 언니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 드려야죠. 자, 저를 따라오세요.”
에리는 그제야 로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쌍둥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에, 로난은 다소 조심스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에르제베트?”
“···아?”
에르제베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황급히 아데샨의 팔을 놓은 그녀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로난···님?”
로난은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마법과 신입생 수석. 에르제베트 데 아칼루시아.
재능 없는 이들을 양으로 취급하며 사자로 군림할 것을 종용하던, 아칼루시아 가의 영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