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01)
2-24. 대반격(11)
#24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막아야 한다. 그분께서 보고 계신다.』
『선왕의 존재를 알고 있는 필멸자를 조심해라.』
『불온한 필멸자 따위가 우리의 세계를 침범하다니···컥!』
뭐라 지껄이던 거인이 추락했다.
야만적인 양날 도끼가 그의 가슴팍 깊숙이 박힌 채였다.
판타시온이 손을 뻗자, 도끼는 다시 주인에게 돌아왔다.
“이걸로···거의 다 온 건가.”
“그런 것 같은데요! 흐얍!”
르탄시에가 등을 맞댄 채 외쳤다.
우리는 그녀가 조종하는 거인의 시체 위에 올라탄 채 이동하고 있었다.
르탄시에가 주문을 영창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힘의 급류가 거인의 진형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놈들을 마무리하는 것은 판타시온과 오르세, 아벨의 몫이었다.
“더러운 배신자 놈들.”
아벨이 읊조렸다.
솔직히 자기가 할 말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전투에 돌입한 그는 어떻게 자신이 네뷸라 클라지에의 교주 자리에 올랐는지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하얀 검이 빛을 뿌릴 때마다 지름이 20m에 이르는 초승달이 하늘을 가르며 쏘아졌다.
피한 대머리는 살아남고, 감히 막으려 들었던 대머리는 토막이 나며 추락했다.
다섯 마리가 단번에 격추당하는 것을 본 아벨이 클클거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이거 아주 괜찮구나. 조카야. 아예 몇 병을 만들어서 내게 주는 게 어떠냐.”
“누가 멋대로 그딴 식으로 부르래?”
“예민하기는···그래. 이제야 네 강함이 이해가 되는군.”
아벨은 감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원래는 대머리에게 참패했던 그는 내 피를 마시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심성이 비뚤어진 놈이라 줄까 말까 정말 고민했는데, 활약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검기를 날려 대던 아벨이 손가락을 뻗었다.
“저기가 차원문이다. 이렇게 빨리 도달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빛의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두 개의 구름바다를 잇는 광채에서는 화가 잔뜩 난 대머리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남은 거리는 기껏해야 수 킬로미터 정도.
나는 얼굴에 묻은 피를 문질러 닦으며 중얼거렸다.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 해. 내가 이 새끼들을 왜 살려두면서 갈 생각을 했을까.”
자원으로 전락한 영혼들이 내 초심을 되찾아 주었다.
칼잡이는 피 뒤집어쓰는 일을 귀찮아해서는 안 되며, 죽어 마땅할 놈들에게는 최대한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해줘야 했다.
우리는 도시의 중심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목적은 같았지만 더는 숨지 않는다는 점이 달랐다.
눈에 띄는 거인들은 모조리 죽이고 있었고, 창고와 같은 건물 역시 보이는 족족 파괴했다.
놈들의 도시에는 창고를 제외하고도 몇 가지 시설이 더 있었다.
뿌리가 보내오는 에너지를 받는 수정이라든가, 영혼을 보충할 수 있는 샘물 같은 거.
모두 역겹기 짝이 없는 시설이었지만, 그 중 최고봉은 역시 거인이 태어나는 요람이었다.
때마침 거대한 육각 기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로난 님! 요람이에요!”
“봤어. 내가 직접 부순다.”
저 좆같은 건물은 보기만 해도 혈압이 치솟는다.
어쩐지 중요한 부위가 없다 싶었는데, 대머리들의 번식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사랑도, 관능도 없는 무기질적인 방식으로.
막 참격을 날리려던 차였다.
“잠깐, 위다!”
판타시온이 외쳤다.
일행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아득한 하늘 위에서 수십 줄기의 벼락이 용처럼 내리꽂혔다.
대머리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빛의 창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에잇, 귀찮게.”
몸을 돌렸다.
정신을 집중하자 시간이 느려졌다.
그저 환한 빛으로만 인지되던 벼락의 형태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식물의 뿌리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전류 수억 가닥이 시야를 뒤덮으며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사방으로 검격을 흩뿌렸다.
가속된 참격은 촘촘한 반구를 만들며 빛과 열기를 막아냈다.
“나머지는 내가 막지.”
혹시라도 새어드는 공격은 아벨이 칼로 베어냈다.
나와 비슷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일행 중에 그 뿐이었다.
콰르르릉!
뒤늦은 천둥이 울려 퍼졌다.
섬광이 가라앉자 새카맣게 타 버린 대머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이제 같은 편도 막 갈아버리네.”
근처에 있다 휘말린 놈들이었다.
바람이 불자 석탄처럼 변한 몸이 잘게 부숴지며 날아가 버렸다.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르탄시에와 판타시온이 경악했다.
“흐약! 무, 무슨 일이었죠?”
“···막아낸 건가.”
“크으으! 이번에도 보지 못하다니!”
오르세가 이를 악물었다.
사실 비슷한 상황이 몇 번이고 벌어졌었다.
세 사람은 아직 나와 같은 세계를 볼 수 없었다.
오러를 쓰기 위해 시선을 올린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를 좀 쓰네.”
벼락을 던진 대머리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빛으로 이루어진 짐승들이 반딧불처럼 허공을 방황하고 있었다.
“캬륵! 캬아아악!”
“구어어어!”
일종의 방파제일 터였다.
눈을 가늘게 좁혔다.
짐승 무리 너머의 상공에서 수십 명의 대머리가 포진해 있는 것이 보였다.
대다수가 날개가 여섯 달린 놈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복장도 좀 다른 걸로 봐서는 뭔가 특수한 조직인 것 같았다.
그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침입자가 건재하다. 다음 공격을 준비하라.』
“덩치도 산만한 새끼들이 뾱뾱 쏴대기만 하고···남자답게 칼 한번 맞대는 게 그리 무섭냐?”
나는 하늘을 겨누며 으르렁거렸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수백 명의 동족을 잃은 대머리들은 이제서야 나를 상대하는 전략을 세웠다.
확실히 저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 오러를 적중시키기가 힘들었다.
중간중간 떠 있는 빛 군대도 거슬리고.
더욱 고도를 높인 대머리들이 다시금 벼락을 퍼부으려 하고 있었다.
손아귀에 머물던 전광이 분출되려던 차였다.
줄곧 놈들을 노려보던 오르세가 나를 돌아보았다.
“로난!”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다.
아까부터 지켜지기만 했던 점에 열이 오른 듯했다.
부연설명은 필요 없었다.
시선을 교환한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네 장의 날개가 펼쳐지며 오르세가 솟구쳤다.
콰아아아아!
강풍이 얼굴 가죽을 잡아당겼다.
반짝거리는 졸개 따위는 우리를 막지 못했다.
거인들이 반사적으로 내던진 벼락이 아슬아슬하게 옆을 스쳐지나갔다.
방어진을 돌파한 오르세가 있는 힘껏 나를 집어던졌다.
“크아아아압!!”
“좋았어!”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검신 위로 노을이 차올랐다.
탁 트인 하늘에서 대머리 특전대와 나를 가로막는 방해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놈들의 무리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고도를 높여라.』
『요격에 실패했다. 병사를 더 소환해···』
뭐라도 해 볼 생각인 것 같았지만 나는 그걸 내버려둘 용의가 없었다.
칼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자 노을이 거인들을 휘감았다.
놈들은 그물에 붙들린 청어떼처럼 내게 끌려왔다.
궤도가 겹쳤지만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새하얀 덩치들 사이를 통과하는 기분은 꼭 구름을 헤치며 나아가는 것 같았다.
대머리 특전대를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퍼어억!
수십 거인의 몸이 토막나며 폭발했다.
푸른 비가 구름의 바다를 적셨다.
근처에 있던 대머리가 탄식하듯 혼잣말했다.
『단죄부마저···컥.』
그리고 그 역시 추락했다.
오르세의 창이 미간을 꿰뚫은 채였다.
쾅!
나는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 도약했던 자리에 착지했다.
잠깐 눈을 뗐을 뿐인데 그새 모여든 거인 수백 명이 일행을 에워싸고 있었다.
『소멸하라.』
“오랜만이네. 이런 기분은.”
하지만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집에 있을 때보다 힘이 넘쳤다.
대머리 월드에 온 이후로 내 몸 상태는 실시간으로 고점을 갱신하고 있었다.
게다가 컨디션이 좋은 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히끅···끄으윽···.”
귓가에 딸꾹질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로 물든 성검이 진동하고 있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예기가 대기를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피를 흡수할수록 예리해지는 칼날은 이제 공간조차 베어버릴 것 같았다.
“린. 괜찮냐?”
“끄윽, 이히히···당연하징.”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소와는 달리 애교가 잔뜩 섞인 음성이었다.
피를 너무 많이 마시면 배가 부른 걸 넘어서 취하는 것 같았다.
혀가 베베 꼬인 걸 보니 만취한 지 오래였다.
잠깐 침묵하던 린이 입을 뗐다.
“······로난.”
“엉?”
“너 말야···끅, 좀 귀엽게 생겼다고 뻐기지 마···누나가 마음만 먹으면 너 같은 건 순식간에 꼬실 수 있거든? 후우···갑자기 열받네?”
한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창 진지한데 얘는 또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열받네···왜 옛날 모습이 안 돌아 오는 거야? 크흥, 언제까지 이런 몸으로 살아야 하는 거냐구우···.”
“별로 안 괜찮은 거 같은데.”
“로난아···누나가 원래는 진짜······하아. 끝내주는 여자였어···키도 크고···위아래로 빵빵해서···그 누구냐, 그래. 발론한테 가서 물어봐···히끅, 그 꼬맹이가 나를 얼마나 졸졸 따라다녔는지 알아?”
술이 없는데도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마 린이 말하는 발론이란 지금 옥좌에 앉은 영감님이 아닌, 역사책에 나오는 초대 황제를 일컫는 것일 터였다.
새삼 내가 쥐고 있는게 성검이라는 것이 체감됐다.
짬에서 나오는 주사가 아주 일품이었다.
더 받아주기에는 상황이 마땅치 않았기에, 나는 욕 먹을 것을 각오하고 일침을 날렸다.
“할머니. 많이 취하셨어요.”
“뭐, 뭐가 어째? 할머니?!”
“앗따가씨발!”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 했다.
정전기가 튄 것처럼 칼자루가 찌릿거렸다.
갑자기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넓은 검격을 뿌렸다.
“네가, 네가 감히 그딴 망발을 지껄여!”
검신이 용광로처럼 부글거리고 있었다.
검의 궤적이 드넓은 원을 그렸다.
수천 개의 검기가 모든 방향으로 비산했다.
피로 만든 탄환을 연상케 하는 예기의 덩어리들이 거인들의 몸을 무차별적으로 꿰뚫었다.
“워.”
감탄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방금의 일격으로 잔존해 있던 대머리의 대부분이 추락했다.
몸통과 머리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거인들은 구름 아래로 삼켜져서 다시는 올라오지 못했다.
일행은 모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감탄했지만, 내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격노에 찬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다시 말해봐! 뭐라고 했어. 엉?!”
“제기랄, 누나는 참 예쁜 사람이라 했어요!”
“······누나?”
“네. 같은 아카데미에 다녔으면 무슨 강의 듣냐고 물어보고 싶었을 것 같달까요. 그러니까 이제 좀 진정하세요 씨발!”
“후···후후후···그래. 누나라고···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이야···.”
실없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글거리던 검신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흐흥···그래. 그래야지. 참 좋은 울림이야···.”
“너는 나중에 보자 진짜···이제 정상적으로 싸워도 될까요?”
“으히히, 그럼. 우리 로난이 하고 싶은대로 해.”
그제야 린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무기로 돌아온 동반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성검의 정령에게 이런 술버릇이 있었을 줄이야.
야설 열람과 더불어 고약한 개성이었다.
르탄시에가 갸웃거렸다.
“로, 로난 님? 왜 갑자기 혼잣말을 하시고···.”
“별 거 아니야.”
별로 설명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손사래를 친 내가 다시 요람을 돌아보았다.
육각 기둥 아래에서 막 새로운 거인이 태어나고 있었다.
“쓰레기 놈들.”
몇 번을 봐도 구역질이 난다.
빛으로 이루어진 구체가 점점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팔다리가 돋아나고, 날개가 자라난다.
몸을 구성하는 것은 당연히 우주 곳곳에서 빼앗아온 영혼이다.
이렇게 보니 번식보다는 제조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쾅!
나는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때마침 내가 도착했을 때, 웅크리고 있던 거인이 눈을 떴다.
두터운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대는?』
“생일 축하한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검을 휘둘렀다.
수직선이 베이비 대머리와 요람을 동시에 양단했다.
콰르르릉!
두 개로 나뉜 고깃덩이와 건물이 구름 아래로 침몰했다.
근처에 있던 거인들이 당혹성을 흘렸다.
『요람이···!』
『무도한 자여, 심판이 두렵지 않은가.』
“심판?”
『그대의 죄악은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지옥의 고통이 영원토록 그대들의 영과 육을 벌할 것이다.』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막 태어난 존재를 죽이는 행위는 대머리 월드에서도 제법 중죄인 듯했다.
나는 놈들에게 다가가는 대신 오러를 발동했다.
노을이 하늘을 물들임과 동시에 방금 지껄였던 놈이 내 앞까지 끌려왔다.
서걱!
희멀건 머리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무슨.』
“심판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니들은 아무도 살아서 못 돌아가.”
다시금 푸른 피가 얼굴을 적셨다.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머리통에 검을 꽂아넣었다.
아직 감각이 남아 있는 거인의 눈동자가 커졌다.
얼굴을 가까이 들이댄 내가 놈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내가 너희들의 지옥이다.”
상황이 정리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원문의 빛이 우리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