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12)
2-35. 일출을 볼 때마다
#35
“이, 이봐···!
자네 눈이!”
“눈이 왜?”
“뭉개졌던 안구가 재생됐어! 피를 좀 닦아 보게. 세상에, 이런 기적이 있나!”
주변이 부산스러웠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생명의 입자는 온갖 중상도 치유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그저 기적을 목도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나바르도제가 깨어났다는 사실조차 아주 잠깐 잊은 채.
그녀를 마주보던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갈 거기는 한데···갑자기요?”
“그래. 심상치가 않구나.”
나바르도제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경직된 표정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놈이 나를 공격한 것은 전투가 막 시작된 순간 뿐이었다.”
“뭐라고요?”
“놈은 구체에 들어간 내내 공간을 뒤틀면서 도망치기만 했다. 아카샤는···애초에 싸울 생각이 없는 것 같았어.”
미간이 좁혀졌다.
이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었다.
둘이서 그렇게 난리를 피웠으면서 싸우지도 않았다니?
“어이가 없네. 그럼 구체 안쪽에서 번쩍거리던 건 뭐에요? 누님은 갑자기 왜 추락한 거고?”
“대부분이 내 공격이었다. 목숨을 불사르는 한이 있더라도 놈을 죽일 생각으로 퍼부었거든. 하지만 아카샤는 처음 몇 번만 제외하면 응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내가 의식을 잃은 것은···회복으로 인한 충격 때문이었다.”
“회복?”
“그래. 순식간이었지. 구체 중심에서 터져 나온 파동이 내 몸에 누적된 부상을 단번에 치료했다. 먼 과거부터 입었던, 영원히 함께할 거라 생각했던 흉터마저도···.”
나바르도제가 주변을 훑었다.
상처가 나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모든 힘을 소진한 오르세는 옆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녀가 부차적인 설명을 이어나가려던 차였다.
파지직!
머리 위 높은 곳에서 번개가 튀기는 듯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뭐야?”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군.”
우리는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나바르도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 하늘 한복판에 붉은 균열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아카샤가 도주한 균열이었다.
내가 베기 전까지는 남아 있던 균열들과는 달리, 빠르게 아물며 소멸하고 있었다.
“뭐야, 왜 저래?”
“···내 생각에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구나. 가자!”
“어엇.”
갑자기 나바르도제가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녀의 등 뒤로 붉은 날개가 펼쳐졌다.
몸이 떠오르는 감각과 함께 지상이 멀어졌다.
“로, 로난 님?!”
“나바르도제 님! 가, 갑자기 어디 가십니까?”
아래쪽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당혹성을 내뱉었다.
뭐라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짬도 없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균열 앞에 도착했다.
붉은 아가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작아지고 있었다.
나바르도제가 손가락을 튕겼다.
쿠구구구···!
바다를 찢으며 떠오른 암초 하나가 균열로 들어가는 발판이 되어 주었다.
함께 착지한 나바르도제가 내 양어깨를 쥐며 경고했다.
“조심하거라, 로난. 그 마법사의 힘은 상상을 초월해. 솔직히 나는 내 공격이 티끌만큼이라도 통했는지조차 모르겠구나.”
“걱정 마세요. 저 못 믿어요?”
“당연히 세상 누구보다 믿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란다. 그리고···페엣!”
“으악, 뭐야?!”
갑자기 나바르도제가 입에서 무언가를 뱉어냈다.
내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반짝거리는 광석 파편 하나가 그녀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후우···받거라.”
“···이건?”
파편은 끈적한 침으로 범벅이 된 채였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원래는 거대한 보석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파편은 어디서 많이 본 색채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맞아, 아카샤를 만나기 직전에 세니엘에서 발견했던 부분이었다.
나바르도제가 말을 이었다.
“놈과 싸우는 도중에 삼켜둔 거란다. 세니엘을 구성하던 파편이었지. 나보다는 네게 도움이 될 것 같구나.”
“이게요?”
“그래. 너는 아카샤를 계속 추격해야 하니까···다음 평행세계도 우리의 세상처럼 망가져 있다면 이게 쓸모가 있지 않겠니? 물론 확신하지는 못하겠다만.”
나바르도제가 입맛을 다셨다.
조금 자신이 없는 눈치였다.
지금 퍼져 나가는 입자처럼 엄청나게 강력한 힘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생명력이 다 뽑히고 남은 찌꺼기겠지.
“고마워요. 잘 쓸게요.”
그럼에도 나는 파편을 챙겼다.
상대적으로 약할 뿐이지, 상당한 생명력을 머금고 있는 것 같았으니.
시타도 없는 평행세계에서는 요긴하게 쓰일 여지가 있었다.
“갑자기 보내게 되서 미안하구나. 제대로 작별인사를 나눠야 마땅하거늘.”
“괜찮아요. 결국에는 벌어졌을 일인걸요.”
“···역시 보내기 싫구나. 어쩔 수 없는걸 알면서도.”
적막한 하늘에서는 바람소리만 들려왔다.
어둑한 수평선 위로 해의 정수리가 떠오르는 중이었다.
문득, 나를 응시하던 나바르도제가 입을 뗐다.
“아이야. 잠깐만 가까이 와 보겠니?”
“엉? 왜 그래요?”
별 생각 없이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쪽.
갑자기 까치발을 든 나바르도제가 내 뺨에 입을 맞췄다.
“어.”
뭐라 반응할 새도 없었다.
발뒤꿈치를 내린 그녀가 눈웃음쳤다.
“후후, 우리 세상을 구해 줘서 고맙다. 잘 가거라..”
“···나바르도제.”
“아데샨 그 아이가 부럽구나. 너는 분명 좋은 배우자가 될 거란다.”
나바르도제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입술이 닿았던 자리가 뜨거웠다.
그녀 나름의 인사였던 모양이다.
코끝이 찡해지는 걸로 봐서는 상당히 근사한 작별인사였다.
그런데 이걸 어쩐다, 사실 나도 이 순간을 대비해서 준비한 말이 있었다.
뺨을 문지르던 내가 허리를 숙였다.
“가, 갑자기 왜 그러느냐···?”
“별 거 아니에요. 저도 가기 전에 한 마디만.”
나바르도제가 움찔거렸다.
가까이에서 본 진홍색 눈동자에는 이미 물기가 잔뜩 맺혀 있었다.
여자를 울리는 취미는 없지만 별 수 없었다.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으니까.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은 내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건강하세요. 어머니.”
“······!”
“지나가는 비였을 뿐이에요. 생명이라는 불씨가 꺼지지 않는 한 세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거에요. 아무리 혹독한 겨울도 결국에는 봄이 되듯이.”
짧은 포옹을 마친 내가 허리를 폈다.
나바르도제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얼어 있었다.
수평선 위로 본격적인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노을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인상을 주는 풍경이다.
세상을 향해 빛을 흩뿌리는, 바람 따라 춤추는 물비늘이 아름다웠다.
“마지막까지 믿어줘서 고마워요. 진짜 아들처럼 잘해준 거, 잊지 않을게요.”
“나, 나는···.”
“감히 내 아이를 건드리냐고 화내준 것도요. 솔직히 어릴 때 부러웠거든요. 엄마 있는 애들.”
나바르도제가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흘러넘친 눈물이 뺨을 타고 미끄러졌다.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 세게 물어서 자국이 생긴 입술 사이로, 메인 목소리가 새나왔다.
“······일출을 볼 때마다 너를 떠올리겠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히죽 웃었다.
서광이 너무 밝아서 그런지 눈앞이 부옇게 변했다.
고개를 돌렸다.
점점 작아지던 균열은 이제 한 사람 겨우 통과할 크기로 변한 채였다.
마지막으로 손을 한 번 흔들어 보인 내가 균열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아침이 한창이었다.
균열이 사라진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청명했다.
바다새의 무리가 신선한 공기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문득, 잔해를 수복하던 저항군 사내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타고 들어왔다.
“우에에엥···우에에에···!”
“응?”
어린아이가 우는 듯한 소리였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별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차였다.
“흐으윽, 아무도 없어요? 다리가···다리가···!”
“마, 맙소사!”
이번에는 확실했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본 사내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엉망이 된 해변 한복판에 여인 한 명이 드러누워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흐느끼는 그녀는 양쪽 다리가 무릎 아래로 사라진 채였다.
사내가 황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댓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르탄시에를 알아본 사람들이 경악했다.
“세상에, 메이지 르탄시에!”
“죽은 거 아니었나?! 어쩌다가 이런 곳에···!”
“저, 흐으윽, 저도 모르겠어요···갑자기 풍경이 바뀌더니 다리가···!”
르탄시에는 로난과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의식을 잃었다 설명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싸움은 끝난 뒤였다.
그녀가 깨어나서 다리가 잘린 것을 확인한 것은 정말로 조금 전의 일이었다.
“저, 저는 이제 두 번 다시 못 걷는 건가요? 흐윽···흐에에···.”
“울지 말게나. 어디 한번 봅세.”
때마침 근처에 있던 군의관이 다가왔다.
세심하게 상처를 살피던 그가 이마를 치며 감탄했다.
“허, 아주 깔끔하게 잘렸는데···! 이 정도면 문제없이 다시 붙일 수 있겠어.”
“지, 진짜요?”
“그럼. 기적이 따로 없구만.”
생명력을 품은 입자 덕분인지 세포가 괴사하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원래 다리도 보관하고 있겠다, 본부의 첨단 장비를 동원한다면 완벽하게 접합하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흥분한 군의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아파요! 끼야악!”
“이크, 얼른 가지. 조금만 참으시게.”
“다시는 나쁜 짓 안 할게요! 흐아앙! 제발 살려주세요!”
르탄시에가 비명을 지르며 바동거렸다.
사람들은 그녀를 조심스레 부축해서 의무실로 옮겼다.
“흠.”
판타시온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그 희극을 바라보고 있었다.
폐허에서 르탄시에의 다리를 찾아준 것이 바로 그였다.
불현듯,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팔도 붙이지 그러나. 판타시온.”
“···필요없다.”
뒤를 힐긋거린 판타시온이 고개를 내저었다.
거지꼴이 된 아벨이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같이 고생을 해서 그런지 이제 별로 화는 나지 않는다.
아카샤에게 당해서 추락한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내가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겠다. 필히 르탄시에도 그런 거겠지···그 아카샤라는 존재는, 우리의 죗값을 징수하기 위해 찾아온 사자였다 생각한다.”
“오호, 참으로 흥미로운 주장이군.”
“왜 몸을 던져 가면서 로난을 도운 거냐.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던 주제에.”
“답답해서 그랬을 뿐이다. 당연히 무시하려 했는데, 옛날 생각이 자꾸 나더군.”
“옛날 생각?”
“그래···너 같은 솜털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지.”
아벨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는 아직도 가끔씩 카인과 손을 잡고 설원을 거닐던 꿈을 꾸고는 했다.
유골을 뿌릴 때 스쳤던 애송이의 손은, 자신의 형제와 굉장히 느낌이 비슷했다.
“나는 이대로 사라질 생각이다. 새로운 시대에 악당이 끼어들 자리는 없으니까···같이 가겠나?”
“썩 꺼져라.”
“그럴 줄 알았지. 그렇다면 옛 상사로서 조언을 하나 해주마. 네가 정말 속죄를 하고 싶다면, 개똥철학을 늘어놓으며 폼을 잡기보다는 두 팔을 이용해서 소처럼 일하는게 좋을 거다.”
비웃음 섞인 목소리였다.
판타시온의 이마에 핏줄이 솟구쳤다.
“네놈.”
음절 하나하나가 뒷목을 자극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문제였다.
하지만 판타시온이 몸을 돌렸을 때 아벨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대신, 잘려나간 자신의 왼팔이 아벨이 앉아 있던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중지를 곧게 치켜든 채로.
“······빌어먹을 녀석.”
판타시온이 으르렁거렸다.
아무리 둘러봐도 놈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던 그가 왼팔을 챙겼다.
이윽고 르탄시에의 비명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을 지켜보던 나바르도제가 바다로 시선을 옮겼다.
“후후. 좋은 생각이구나.”
판타시온의 선택은 썩 만족스러웠다.
마냥 고통만 받는다고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철썩거리는 파도가 발등을 적셨다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와라, 로난! 이 빌어먹을 놈이 인사도 없이 도망쳐!】
“저 아이도 참.”
갑자기 바다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로난과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한 오르세가 균열이 있던 부근을 선회하며 불을 뿜고 있었다.
솔직하지 못해서 그렇지, 참 정이 많은 아이다.
“로난.”
나바르도제가 혼잣말했다.
로난을 떠나보낸 그녀는 지상과 바다를 번갈아서 쳐다보는 중이었다.
일출이 절정에 치닫고 있었다.
완연하게 모습을 드러낸 아침해가 세상에 빛을 뿌리고 있었다.
떠나보낸 막내아들을 닮은 풍경에, 다시금 눈앞이 부옇게 물들었다.
“···로난.”
함께했던 몇 개월이 눈앞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찰나에 불과했지만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잊을 수 없을 터였다.
짧지만 아름다웠던, 여명과도 같은 시간.
태양에서 시선을 뗸 그녀가 몸을 돌렸다.
생명력 넘치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엉망이 된 대지 위로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망가진 것을 고치고 있었다.
현실.
삶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될, 해뜰 무렵을 제외하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었다.
“지나가는 비라···.”
로난이 해줬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가혹한 폭우도 결국에는 그친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
지금 내 눈에 담긴 모든 것이 그 증명이었다.
눈가를 문질러 닦은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읊조렸다.
“그래, 다시 해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