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16)
2-39. 도망자(3)
#39
“캬.”
경쾌한 장면이었다.
순식간에 두 명을 해치워 버렸다.
슐리펜은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춤을 추는 듯한 검로가 뿌려졌다.
푸른 바람으로 만들어진 초승달 아홉 개가 사방으로 쏘아졌다.
대부분은 나무나 땅에 박혔지만 세 개는 놈들에게 적중했다.
“······!!”
“···.”
슐리펜의 오러가 발현하는 순간까지 친위대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검기가 머금고 있던 폭풍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칼바람이 놈들을 집어삼켰다.
콰콰과과과과!
아홉 개의 회오리가 교정 위로 솟구쳤다.
“후우우···.”
슐리펜이 숨을 골랐다.
한 번에 마나를 많이 써서 지친 듯했다.
문득 위화감이 느껴졌다.
회오리도 충분히 좋은 기술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폭풍검의 정수인 바람의 칼날을 활용하는 게 더욱 효과적일 터였다.
힘도 덜 들이면서 놈들을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이 자식. 설마 아직 각성을 못 했나?’
그럴싸한 의구심이 뇌리를 스쳤다.
원래 세상에서 슐리펜이 폭풍검을 각성한 것은 나와 함께 다인하르 여행을 갔을 때였다.
당시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각성한 것이었다.
‘아냐, 그걸 감안해도 이건 너무 느려.
겨울의 마녀도 벌써 잡았을 시기잖아.’
그래도 말이 안 됐다.
슐리펜이 오러를 각성하지 못했다면 제도는 눈과 얼음 속에 파묻혀 있었을 터였다.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전투는 이어지는 중이었다.
쏴아아아···!
갈기갈기 찢긴 살점과 내장이 부슬비에 뒤섞여 내리고 있었다.
남은 친위대는 두 명이었다.
놈들은 무작정 달려들지 않고 주변을 빙빙 돌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회오리의 장벽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서 돌입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용의주도한 움직임을 지켜보던 내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 새끼들, 사람 맞아?”
아까부터 느끼던 거지만 정말 괴상한 적수였다.
비단 으스스한 가면과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곱 명 중에서 다섯이 갈렸으면 주저할 만도 한데, 저 새끼들은 위축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생명체라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할 텐데도.
슐리펜이 혼잣말했다.
“벌써 친위대가 나타나다니···.”
이 자식의 태도도 기묘함을 더하고 있었다.
바람 너머를 노려보는 슐리펜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상대를 얕잡아 보지 않는 건 좋은 자세지만 이건 조금 지나치지 않나?
묵묵히 전투를 관전하던 내가 슐리펜을 불렀다.
“얌마. 뭐 저런 좆밥들한테 쫄고 그래?”
“너···!”
고개를 돌린 슐리펜의 눈이 커졌다.
전투에 집중하느라 내 존재조차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바람의 장벽과 나를 번갈아서 쳐다보던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제길, 왜 피신하지 않는 거냐!”
“놀래라. 애초에 도망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벌써 다섯이나 잡았잖아.”
“네놈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야. 바르카의 친위대는 죽지 않···”
슐리펜이 말을 잇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아홉 회오리의 틈새로 네 개의 그림자가 쇄도해 왔다.
바르카의 친위대였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치고 들어오는 놈들은 전원이 제국군 정복을 입고 있었다.
“잠깐만. 저거···.”
미간이 좁혀졌다.
정복과 가면이 피로 칠갑이 된 채였지만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넷중에 두 사람은 분명 전투가 개시되자마자 회오리에 갈린 놈들이었다.
“벌써 왔나···!”
검기를 뿌리기에는 늦었다.
두 명은 그대로 오고 두 명은 산개했다.
슐리펜은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두 친위대의 검격이 페일 로드를 강타했다.
카아아아앙!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세 개의 칼날이 대치하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으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친위대 한 놈의 손가락이 뚝 떨어져 나왔다.
꽁꽁 얼어붙은 절단면을 본 내가 감탄을 흘렸다.
“아, 저것도 사기였지.”
페일 로드에서 흘러나온 한기 탓이었다.
응축된 혹한은 칼날에 베인 적 뿐만이 아니라 교전 중인 상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검신을 타고 넘어간 한기는 손에 이어 몸까지 얼리기 시작했다.
“······.”
허나 친위대는 개의치 않았다.
놈들은 오히려 더욱 앞으로 들이대면서 맹공을 퍼부었다.
검과 검이 부딫힐 때마다 얼음과 불씨가 동시에 튀었다.
콰득!
결국 완전히 얼어붙은 친위대원의 양팔이 칼자루를 쥔 채로 부서졌다.
동시에 좌우의 사각에서 튀어나온 나머지 두 명이 슐리펜에게 달려들었다.
“큭!”
응수해야 마땅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친위대가 슐리펜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었다.
숨을 고른 그가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파아아아···!
페일 로드의 푸른 검신이 바람으로 화하며 흩어졌다.
“그건.”
내가 아는 그 폭풍검이었다.
슐리펜이 넓게 칼자루를 휘둘렀다.
경쾌한 바람이 호선을 그었다.
스각!
네 친위대의 몸이 위아래로 양단됐다.
“뭐야, 역시 쓸 수 있었잖아?”
더없이 깔끔한 일격이었다.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거칠기는 했지만 그래도 훌륭했다.
냄비를 엎은 것처럼 내장이 쏟아졌다.
여덟 토막의 고깃덩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맥이 빠질 만큼 허무한 결말이었다.
“진작에 이럴 것이지. 뭘 고민하던···엉?”
쓸데없이 답답한 싸움을 보여준 슐리펜에게 야유를 퍼부어 주려던 차였다.
촤아아아악!
토막났던 친위대원들의 몸이 자석처럼 들러붙었다.
빠져나온 피가 다시 들어가고, 동파당한 신체 일부도 제자자리를 되찾았다.
심지어는 손상된 군복과 가면마저도 저절로 접합되며 원형으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재생한 친위대가 동시에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벌써 재생했나.”
슐리펜이 입술을 비틀었다.
바람으로 화했던 검신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서서히 잦아드는 회오리 사이로 친위대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새끼들은···.”
면식이 있다.
일전의 둘과 마찬가지로 회오리에 갈렸던 놈들이었지만, 공장에서 막 찍어낸 인형처럼 멀끔하게 변해 있었다.
다시 일곱 명이 된 친위대가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슐리펜은 놈들에게 시선을 둔 채 입을 열었다.
“이게 바르카의 친위대가 성가신 이유다. 놈들은 죽지 않아.”
“아하, 왜 회오리만 썼는지 알겠네. 최대한 재생을 지연시키려 한 거구나.”
손가락을 튕겼다.
굳이 비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한 이유였다.
바람의 칼날을 사용한다면 놈들을 손쉽게 토막낼 수 있었지만, 순식간에 재생해 버리고 만다.
하긴.
머리도 좋은 놈이니 사서 멍청한 짓을 할 리는 없지.
내가 눈썹을 으쓱였다.
“흑마법의 일종인가? 저런 건 보통 심장 역할을 하는 부분을 파괴하면 되던데.”
“놈들의 체내에 핵 역할을 하는 기물이 있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파괴할 수 없더군.”
“무슨 수를 써도?”
“부술 수 있었다면 진작에 부쉈을 거다. 그럼 바르카에게 희생당한 무고한 이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겠지···하지만 나는, 끝내 실패했다.”
슐리펜의 푸른 눈동자가 증오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간 무슨 일을 겪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죽여도 죽지 않는 적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을 터였다.
불현듯, 나를 힐긋거린 슐리펜이 이를 악문 채 으르렁거렸다.
“그래서 네놈은 도대체, 언제 도망칠 생각이냐.”
“아.”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회오리를 배제하더라도 싸우는게 답답한 이유가 있었다.
이 새끼는 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던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혼자서 내뺄 수 있었음에도.
“새끼. 여전하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쪽 세상에서도 슐리펜은 슐리펜이었다.
역모의 누명을 뒤집어쓴 채 멸문지화를 당해도, 받들어 줄 시종 한 명 남아있지 않아도, 어디 벌목꾼에게나 어울리는 멍청한 수염을 얼굴에 달고 있어도 가장 고결한 귀족의 신념에는 실금 하나 가지 않았다.
나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린 뒤 입을 뗐다.
“좋아. 기분이다. 특별히 이쪽 세상에서도 만나게 해주지.”
“뭐라고?”
“너를 치매 환자로 만들 여자를 알고 있거든.
이 무렵이면 아직 님버튼에 있을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걱정이 극심했다.
서둘러 상황을 정리하고 가봐야 할 것 같았다.
검을 뽑아든 내가 말을 이었다.
“눈부실 테니까 잠깐만 뒤 돌아 있어.”
“도대체 지금 무슨 헛소리는 하는···”
슐리펜이 말을 잇던 와중이었다.
검을 치켜든 내가 칼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파아아아아···!
노을의 색채가 검신을 타고 차올랐다.
“큭!”
사방이 주홍색으로 물들었다.
슐리펜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 눈동자를 닮은 불빛은 친위대와 슐리펜, 비 내리는 교정을 휩쓸며 넓게 뻗어 나갔다.
머지않아 빛이 가라앉자, 옹기종기 내 앞에 모인 친위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 씹새끼들아.”
“······?!”
“남의 학교 첨탑은 왜 밟고 지랄이야?”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놈들이 움찔거렸다.
친위대는 곧장 대응하려 했지만 이미 나는 할 일을 마친 뒤였다.
피 묻은 검을 내리자 놈들의 몸 위로 붉은 선 수백 가닥이 그어졌다.
가장 빠른 친위대원이 뒤로 물러나는 순간이었다.
모든 선이 동시에 벌어졌다.
퍼어어어억!
전위대 전원이 피보라를 일으키며 폭발했다.
“무슨···!”
슐리펜이 헛숨을 들이켰다.
저 자식 정도면 내가 칼 휘두르는 동작을 봤을 터였다.
겨우 이 정도로 놀라는 걸 보면 아직 한참 멀었구만.
얼굴에 묻은 피를 닦은 내가 혀를 찼다.
“에이, 더러워.”
일곱 명이라 그런지 양이 많았다.
사방에 흩어진 살점과 뼈, 내장이 꾸무럭거리며 모여들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재생하겠지만, 다행히도 핵은 금새 찾을 수 있었다.
시커먼 쇳조각 일곱 개가 피바다 속에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어디 보자···.”
나는 그 중 하나를 주워들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가공을 했기에 그 슐리펜이 못 부수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구조를 알아채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아하. 코팅을 했구만.”
쇳조각의 표면 위로 반짝거리는 마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대머리 새끼들의 주특기인 별의 가호였다.
이러니까 계속 재생할 수밖에.
지극히 소량의 마나였지만, 여기 사람들이 핵을 녹일 만큼의 화력을 내려면 못 해도 나바르도제 누님이나 그 일족의 힘이 필요할 터였다.
“발전이 빠르기도 하네. 하여튼 머리는 기가 막히게 잘 굴려요.”
원래 세상에서는 본 적 없는 사용 방식이다.
저번 평행세계의 뿌리 같은 구조물에서나 적용된 기술인데, 방치하다 보니 네뷸라 클라지에의 수준도 많이 높아진 모양이었다.
물론 이제는 알 바가 아니었지만.
“엇차.”
나는 가볍게 칼을 휘둘렀다.
일곱 쇳조각이 동시에 갈라졌다.
스각!
쇳조각 내부에 각인되어 있던 흑마법이 검은 빛을 뿌리며 파괴됐다.
모여들던 피와 살점이 움직임을 멈췄다.
“······.”
그것이 끝이었다.
친위대는 두 번 다시 재생하지 않았다.
스아아아아아··· 바르카의 칙칙한 오러가 피 흥건한 포석 위로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너.”
슐리펜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벙찐 채 나를 쳐다보는 녀석의 얼굴은 사진으로 찍어서 소장하고 싶을 정도였다.
검을 칼집에 돌려 놓은 내가 픽 웃었다.
“출발하기 전에 수선화나 따 놔. 우리 누나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