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26)
2-96. 내 친구 아셀(2)
#96
쓰레기 청소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위세등등하던 양아치들은 전부 병신이 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고통에 찬 신음, 절박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소리가 발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우욱···으엑.”
“사, 살려 줘. 제발···!”
칼은 한 번도 뽑지 않았다. 린에게 미안해서라도 이런 쓰레기들의 피를 먹일 수는 없었다.
님버튼의 이름 높은 자경단(웃음) 중에서 내 펀치를 한 번 이상 버틴 놈은 존재하지 않았다.
“운이 좋은 놈들이야. 예전 같았으면 칼을 겨누는 순간 죽여버렸을 텐데.”
“끄아악! 소, 손목이···!”
기절하지 않은 녀석들은 벼처럼 축 늘어진 손을 보며 질질 짜고 있었다.
손목뼈가 완전히 으깨졌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나는 녀석들을 전부 주먹 한 방에 쓰러뜨린 뒤, 감히 칼을 함부로 휘두른 손모가지를 모조리 밟아서 부숴 버렸다.
“따흐흑···흐어엉···.”
“듣기 싫으니까 짜지 마 병신들아. 마침 다같이 손을 못 쓰게 됐으니 적적할 때는 서로 빨아 주면 되겠네. 혹시 아냐? 일 년쯤 재활하면 단추 정도는 채울 수 있게 될 지.”
“크흑···흡!”
겁을 먹은 쓰레기들이 입을 다물었다. 농담이 아니라 얘네는 진짜 운이 좋았다.
원래대로라면 누나가 걱정되서 죄다 반 죽여버린 뒤 노예상에 팔아 버렸을 테지만, 누나의 힘을 알고 있는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누나가 원액이면···솔직히 내가 받은 피는 맑게 우려낸 국물 정도지.’
아버지의 피를 가장 진하게 물려받은 별의 딸.
진지하게 이런 양아치는 만 명이 달려들어도 우리 누나한테 피 한 방울 뽑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누나에게 놈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여기에서 가장 불쌍한, 귀도 잘리고 손목도 부러진 한스의 머리에 발을 올린 채 으르렁거렸다.
“잘 들어 한스. 오늘 밤까지 님버튼을 떠나지 않으면 그때는 발목까지 부러뜨릴 거다. 어디 동굴을 찾아 틀어박히던지 산속에 오두막을 짓던지 알아서 살 곳을 찾아 봐.”
“크흐윽···아, 알겠어···갈게.”
“좋아. 이제 꺼져. 저 난쟁이는 이제 너네랑 볼 일 없으니 두 번 다시 찾지 말고.”
검지를 뻗어 아셀을 가리켰다. 유일하게 손목이 부러지지 않은 자경단이었다. 녀석은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모든 참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아으아···.”
어지간한 여자보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쓰레기들을 등지고 아셀에게 다가갔다. 앞에 가서 쭈그려 앉자, 녀석은 나와 마주치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팍 깔았다.
“그럼 아셀. 우리 이야기를 해 볼까.”
“로, 로, 로난···내가, 내가 잘못했어.”
“나도 알아.”
“주, 죽이지 말아줘. 제발···! 다시는 이런 짓 안 할게.”
아셀이 웅크리며 손목을 감췄다. 예쁘장한 얼굴 아래로 눈물이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맥박에 버금갈 만큼 빨라진 호흡에서 녀석이 극도로 겁에 질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왁 놀래키면 오줌까지 지려 버리겠지.
솔직히 그건 좀 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이 화상아. 내가 너를 왜 죽이겠냐.”
“······응?”
“내가 미안하다. 죽이지도 때리지도 않을 거니까 그만 고개 들어.”
“미, 미안···하다고?”
아셀이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꼭 백짓장처럼 창백했는데 눈시울만 붉어져 있었다.
나는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그래. 사실 네 딴에서는 몇 년만에 나를 본 걸 텐데, 갑자기 튀어나와서 이 새끼가 뭐 하는 짓인가 싶었을 거야. 내가 너무 놀랐나 봐.”
급발진을 한 것 같아 미안했지만, 아셀의 타락은 그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녀석을 반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아셀은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어찌어찌 내 몸을 붙잡으며 기립에 성공했다.
“미, 미안해! 일부러 잡은 건 아니···”
“손에 똥오줌만 안 묻어 있으면 상관 없어. 설마 묻었냐?”
“···안 묻었어.”
“그럼 그냥 편하게 잡아. 어쩌다가 저런 양아치들이랑 어울리게 된 거냐?”
“그, 그게···.”
아셀이 말꼬리를 끌었다.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몇 초간 기다리던 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됐다. 그냥 나중에 시간 나면 말해. 일단 우리 집이나 같이 가자.”
“로, 로난네 집에?”
“엉. 내가 편지를 하나 써줄테니까 그걸 집 앞에 놓고 와 줘. 누나한테 들키고 싶지는 않아서.”
“으응?”
아셀이 갸웃거렸다. 나는 적당한 종이와 연필을 마을에서 구한 뒤 편지를 썼다. 단촐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검토한 내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말도 없이 집을 나가서 미안해. 금방 돌아올게.]이번 세상에서는 누나를 좀 나중에 만날 생각이었다. 여기서 누나를 만나게 된다면 시간이 소모될 뿐더러 나는 여기의 누나가 찾는 동생이 아니었다. 아셀은 내가 시키는 대로 편지를 우리 집 앞에 놓고 돌아왔다.
“후아아···! 들킬 뻔했네. 노, 놓고 왔어 로난.”
“고맙다. 누나는 잘 있지?”
“응. 건강하셔. 여전히 밝지만···나를 마주칠 때마다 로난 소식은 들은 적 없냐고 물어보셔. 직접 만나서 인사하는게 좋지 않을까?”
“나도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안 돼. 일단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영문 모를 말에 아셀의 눈매가 좁혀졌다.
누나가 가엾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반쪽짜리 재회를 할 바에는 아카샤를 추적하는 겸사겸사 이쪽 평행세계의 나. 즉, 로난3을 찾아서 두들겨 패고 돌려보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었다.
누나 걱정을 마친 내가 아셀을 내려보았다.
“그럼 아셀. 일단 한 대 맞아라.”
“···응?”
“죗값은 치러야지. 에라이 한심한 놈아.”
“끄아악!”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아셀이 정수리를 쥐어싸맸다.
최대한 힘조절을 한 거지만 아마 두개골이 금이 갔나 의심될 만큼 아찔했을 터였다.
나는 다시 쭈그려 앉은 채 훈계를 이어나갔다.
“아무리 못된 놈들이 꼬셔도 마법으로 그런 양아치 짓거리에 쓰면 되냐?”
“머, 머리···! 내 머리가!”
“안 죽으니까 엄살 집어지워. 이걸로 죄는 씻었으니 출발하자.”
“으윽···출발하자니? 어디로?”
“어디긴 어디야? 네 인생을 바로잡아줄 필레온 아카데미지. 너는 내가 책임지고 진짜 대마법사로 만들어 줄게.”
“피, 피, 피, 필레온 아카데미?!”
아셀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나는 적당히 아셀에게 설명해 주었다. 네 재능은 결코 범상하지 않으며 이런 촌구석에서 썩힐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외에 설득력을 챙길 수 있는 잡다한 정보를 양념삼아 뒤섞어 가면서.
“가,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그냥 들어 인마. 인생에 벼락처럼 찾아온 행운이라 생각하라고. 한대 더 맞을래?”
“히익! 아, 아니야···! 들을게!”
아셀이 양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어차피 싫다 해도 강제 연행할 생각이라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구잡이식 설득을 마친 내가 아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가는 거다? 참, 가기 전에 아셀 네 부모님께도 인사 드려야지. 깜빡할 뻔했네.”
“무, 무슨 말인지 솔직히 모르겠지만···인사 안 드려도 돼. 그냥 가자.”
“그게 무슨 불효막심한 소리야 인마. 삐뚤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아들내미가 말도 없이 사라지면 얼마나 근심이 크시겠어? 얼른 가서 인사 드리고 와.”
나는 아셀의 몸을 들어 마을 쪽으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녀석은 발등에 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왜 같잖게 개기는 거냐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쥐어박으려던 차였다.
“······없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2년 전에 돌아가셨어. 엄마는 병으로, 아빠는 엄마를 위해서 약초를 캐다가 낭떠러지에서 발을 헛디디셨거든···그래서 그냥 가도 돼.”
아셀이 쓴웃음을 지었다. 잠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냥 가도 된다는 한 마디가 메아리처럼 귓가에 울려 퍼졌다. 녀석의 말을 되뇌이던 내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빌어먹을. 어쩐지 지나치게 막 나가나 싶더니.’
아셀은 기본적으로 착한 놈이었다. 일탈의 이유가 있을 거라 넌지시 예상했지만 설마 양친을 여의었을 줄은 몰랐다. 원래 세상에서는 두 분 다 멀쩡하게 살아 계셨는데, 아셀이 필레온에 입학하고 모험과 장학금으로 돈을 잔뜩 벌어오면서 그 모든 불행이 사라진 것 같았다.
갑자기 팔을 타고 소름이 올라왔다. 그대로 꿀밤을 먹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쓰레기가 될 뻔했다. 괜스레 입술을 질겅이던 내가 안주머니에서 꺼낸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쭉 빨아들이고 내뱉자, 하얀 연기가 노을 속에 흩어졌다.
“그렇다 이거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우리집도 한 막장 하지만 이건 더 심각했다. 외동아들인 아셀에게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사랑을 줄 누나도 없었다. 말 그대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이었다.
물론 그 결여가 아셀이 대마법사가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할 터였다. 이 새끼의 재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고, 근 백여 년의 시간을 책으로 편찬한다면 틀림없이 주인공이거나 주인공 일행에 있을 천재니까.
하지만 이대로라면 행복한 대마법사가 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여러모로 서둘러야 하는 시기였지만 이미 봐 버린 이상 제일 친한 친구의 불행을 좌시할 수는 없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와중이었다.
“맞아. 그게 있었지.”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 바람처럼 뇌리를 스쳤다.
“어이. 필레온에 입학하기 전에 먼저 아칼루시아로 가자.”
“···아칼루시아?”
아셀이 나를 올려보았다. 부모님 생각이 났는지, 보라색 눈동자에는 울적함이 가득했다.
“설마 그 대가문 아칼루시아를 말하는 거야?”
“그래. 너는 필레온보다 거기의 양자로 들어가는 게 먼저일 것 같다. 내 친구 중에서 정말 괜찮은 녀석이 거기에 있거든. 나도 겸사겸사 볼일을 보고.”
이제는 아득하게 느껴지는 과거다. 나는 필레온의 입학 시험을 화려하게 마친 뒤 에르제베트 데 아칼루시아에게 가문의 초대장을 받았었다.
그랑시아와 제국을 양분하는 명가 아칼루시아는 재능 있는 원석들을 양자로 받아들인다.
‘원래 세상에서는 받기만 하고 안 갔었지. 완전히 잊고 있었어.’
실력만 보여준다면 그들은 쥐뿔도 없는 아셀에게 더없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터였다.
마냥 아셀을 위해서만도 아니었다.
그때보다 더 예전에, 나는 대장군님에게 아칼루시아 가문의 시험과, 보물 창고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마침 잘 됐어. 거기서 아카샤를 추격할 만한 물건을 찾아봐야겠군.’
혈계침이 쓸모가 없어진 이상 추격할 방법을 다시 찾아봐야 했다. 아칼루시아 정도 되는 대가문의 보물 창고라면 쓸모있는 물건이 한두개는 있을 만 했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잠깐 경로를 고민하던 내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럼 바로 출발하자 아셀.”
“응? 도시와 이어지는 길은 반대쪽인데···왜 거기로 가는 거야?”
“이 편이 빠르고 편하거든. 본류에 섞여들면 아칼루시아 영지까지도 단번에 갈 수 있어.”
“으응? 본류?”
아셀이 갸웃거렸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성큼성큼 언덕을 올랐다. 봉우리를 넘자 마을을 굽이도는 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땅한 이름조차 없는 물줄기는 노을과 같은 색으로 빛나는 중이었다.
“역시 있군.”
강변을 둘러보던 내 시선이 정지했다. 작고 낡은 뗏목 하나가 말뚝에 메어진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친구를 만난 사람처럼 뗏목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키야, 이거지. 그리운걸.”
“서, 설마···!”
아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의 미래를 짐작한 모양이었다. 내가 올라타 있는 뗏목은 동네 코흘리개들이 숭어를 잡거나 물장난을 칠 때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로, 로난···아니지?”
가쁜 숨을 들이내쉬던 녀석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해는 간다. 원래대로라면 이따위 나무토막을 타고 아칼루시아의 영지까지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필수로 거쳐야 할 본류, 제국의 젖줄인 타이멘 강은 긴 바다라고 부를 정도로 길고 넓은 강이었다.
‘오랜만에 강바람을 쐬겠군.’
만약 사람들을 모아 이 뗏목으로 타이멘 강을 항해할 거라 떠든다면 그들 중 대부분은 우리에게 푼돈이나마 적선을 해 줄 터였다. 저승길 노잣돈으로 쓰라면서.
물론 그런 건 알 바가 아니었기에, 나는 말뚝에 묶인 밧줄을 자르면서 아셀에게 손짓했다.
“뭐 하냐? 얼른 안 타고.”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