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4)
45. 침식(1)
#45
“아홉 개라···.”
해주의 부작용인지는 몰라도 피로가 급격하게 몰려왔다. 로난은 시타의 깃털에 얼굴을 파묻은 채 잠이 들었다.
막 깊은 잠으로 접어들려는 차, 누군가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 똑똑똑.
아마도 침구를 정리하러 온 루시일 터였다. 살짝 잠이 깬 로난이 졸린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으응···나중에 와요 루시. 나 오후 수업까지 좀 잘 거에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타는 고개를 쳐든 채 방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재차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 똑똑똑.
“뭐야, 루시가 아닌가···? 아셀, 너냐?”
일어나서 확인하기에는 몸이 너무 무거웠다. 저러다가 말겠지. 베개를 집어든 로난이 양쪽 귀를 틀어 막았다.
– 똑. 똑. 똑.
“빌어먹을···.”
하지만 노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똑똑똑. 정확히 57번째 노크가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이불을 걷어찬 로난이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런 못 배워먹은 새끼가!”
잠은 달아난 지 오래였다. 희번득한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로난은 옷장에 기대져 있던 라만차를 집어들었다. 쾅! 속옷 차림 그대로 현관으로 향한 로난이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어떤 똥물에 튀겨 죽일 놈이 자는 사람 있는 방 문을 계속 두드려?! 니 머리도 잔칫날 탬버린처럼 좆나게 두들겨 주랴?”
문앞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사내가 서 있었다.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 두 명이 그의 뒤를 지키고 있었다. 로난의 말을 들은 사내의 눈이 커졌다.
“뭣이···!”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뒤에 있던 기사 중 한 명이 칼자루를 움켜쥐며 으르렁거렸다.
“무엄하다. 혀를 잘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당장 머리를 조아려라.”
돌덩이처럼 완고한 인상을 주는 기사였다. 기백이 사나운 것이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그의 말을 들었을 터였다. 물론 로난이 알 바는 아니었다.
“하, 무엄? 혀를 잘라?”
코웃음친 로난이 기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잘 자던 사람 깨운 놈들이 무엄? 니미, 내가 무엄한 게 뭔지 보여 줘?”
로난이 발밑에 침을 뱉었다. 위압하듯 마나를 방출한 기사가 당장이라도 로난을 벨 것처럼 앞으로 나섰다. 중년의 사내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괜찮네, 돌란. 아무래도 자고 있던 모양이군.”
“하오나···.”
돌란이라 불린 기사가 이를 악물었다. 문득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돌란의 칼집 주위에서 무언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뭐지?’
정확히는 돌란이 방출하는 마나 속에 무언가 옅게 반짝이고 있었다. 꼭 허공에서 튀기는 정전기 같았는데, 마나를 볼 수 있게 된 이후로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다만, 영문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
“괜찮다고 했네.”
“···알겠습니다.”
그때 돌란이 사내에게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그러자 발현되는 마나가 사그라듬과 동시에 반짝임도 사라졌다. 로난에게 시선을 돌린 사내가 말했다.
“자네도 그쯤 하게. 나는 자네가 깨어 있는 줄 알았어. 돌란의 언행에 대해서는 내가 사과하지.”
“뭐?”
로난이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중년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흥분을 한결 가라앉힌 로난이 입을 열었다.
“···날 알아요?”
“그래. 애초에 자네를 만나기 위해 온 거니까.”
중저음의 목소리에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암청색 머리카락과 멋스러운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문득 로난은 사내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슐리펜?’
제국의 샛별께서 곱게 늙으면 딱 이렇게 될 것 같았다. 머지않아 사내의 정체를 눈치챈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젠장, 그랑시아 공작님?”
“알아봐줘서 고맙군. 잠깐 들어가도 되겠나?”
“어, 잠시만요. 바지만 좀 입고요.”
쾅! 방문이 닫혔다. 호위 기사들의 얼굴이 굳었다. 눈앞에서 닫힌 문을 보며, 그랑시아 공작이 작게 중얼거렸다.
“예상했던 것과는···조금 다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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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깐 죄송했어요. 좀 피곤했어서.”
“신경 쓰지 말게. 내가 갑자기 찾아온 거니까.”
로난은 바지와 셔츠만 대충 걸친 채 공작을 맞이했다.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손님을 응접할 수 있는 탁자와 소파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편하게 계세요. 여기 차.”
“고맙네.”
로난은 직접 끓인 차를 공작 앞에 내려놓았다. 방에 들어올 때부터 연신 두리번거리던 공작이 입을 뗐다.
“흠··· 혹시 여기가 필레온에서 가장 좋은 기숙사 건물인가?”
“예? 어···그렇죠? 딱 봐도 그래 보이지 않나요?”
“심각하군···.”
그랑시아 저택의 사용인 숙소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었다. 고개를 내저은 공작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훅 올라오는 강렬한 향기에 그의 눈썹이 올라갔다.
“이거···자네가 직접 끓인 건가?”
“네. 괜찮죠?”
“검 뿐만이 아니라 다방면에 재능이 있군. 이런 건물에서 내오기엔 아까운 수준이야.”
공작은 그리 말하며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약간 기분이 좋아진 로난이 히죽 웃었다. 루시를 졸라서 배우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어쩐 일로 오신 건가요?”
“아···자네에게만 용건이 있어서 온 건 아니고, 잠시 기다려 주겠나?”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호위 기사들이 들어왔다. 뒤따라 들어온 아셀과 마르야의 모습에 로난의 눈이 커졌다.
“엥?”
“공작님. 데려왔습니다.”
묵례한 기사들이 옆으로 비켜섰다. 아셀과 마르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여, 여긴 로난 방인데···.”
“흐아암···갑자기 무슨 일이시죠?”
둘 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마르야는 기사들을 아예 필레온의 수위 정도로 착각하고 있었다.
“반갑네. 이걸로 세 영웅이 모두 모였군.”
그때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얼굴을 알아본 두 사람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 그, 그, 그, 그랑시아 공작님···?”
“여, 여긴 어쩐 일로···? 이럴 줄 알았으면 머리라도 빗고 오는 건데···.”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각종 매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그랑시아의 공작이자 슐리펜의 아버지. 제국을 양분하는 대가문의 가주가 눈앞에 서 있었다.
공작이 무표정한 얼굴로 악수를 건넸다.
“괜찮으니 그리 긴장하지 말도록. 나는 자네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거니까.”
“감사 인사요···?”
“그래. 우선 앉아서 이야기하지. 로난, 괜찮나?”
“설마 제 소파에 앉혀도 되는지 물어본 거예요? 당연하죠.”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갑고 권위적으로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제법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자식인 슐리펜의 인성이 되먹은 거겠지. 공작은 모두가 소파에 앉은 뒤 입을 열었다.
“그럼 정식으로 인사하지. 그랑시아 가문의 가주, 요제프 시니반 데 그랑시아일세.”
“로난이에요.”
“아, 아셀입니다···.”
“마르야 카라벨입니다 그랑시아 공작님,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개성 있는 인사들이 오갔다. 공작은 세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했다.
“로난 학생에게는 이미 말했지만, 오늘 자네들을 찾아온 이유는···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일세.”
“감사요?”
“그래. 그란 카파도키아를 구한 것에 대한 감사. 자네들도 알다시피 그 대장간의 최대 고객은 우리 그랑시아였거든. 자네들이 빠른 대처를 해 준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어.”
공작은 그란 카파도키아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는 사망자는 없다시피했다는 점, 새로운 그란 카파도키아가 로난이 발견한 대공동에서 재건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문득 엊그제 에르제베트가 각계에서 손님들이 찾아올 것이라 말한 것이 기억났다. 설마 바로 그랑시아가 올 줄은 몰랐는데.
감사 인사를 마친 공작이 문앞에 서 있는 기사들에게 손짓했다.
“가져오게.”
두 명의 기사는 잠시 방을 나갔다가 들어왔다. 돌아온 그들의 손에는 고급스러운 상자 세 개와, 길이가 2미터는 되어 보이는 대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이게 다 뭐예요?”
“도론 장인께서 자네들에게 전해달라 부탁한 물건들이지. 받게.”
기사들이 세 사람에게 물건을 전달했다. 로난 앞에는 좁고 길쭉한 상자가, 아셀 앞에는 작은 상자가 놓아졌다. 마르야의 대검은 그녀의 옆에 기대 놓았다.
로난이 먼저 상자를 열었다. 붉은 비단 위에 검고 매끈한 막대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뭐지?”
집어든 채 이리저리 살피는데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갑자기 로난이 탄성을 터뜨렸다. 막대기의 머리 부분에 얇은 홈이 나 있었다.
“아!”
로난은 라만차의 검끝을 홈에 밀어 넣었다. 철컥. 기름을 바른 듯 들어가던 검신은 정확히 손잡이 앞에서 멈춰섰다. 로난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젠장, 드디어 칼집이 생겼네. 고마워요.”
“복구 작업 도중 발견했다는군. 자네의 검과 같은 소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꼭 전해달라 하셨어.”
그러고 보니 칼집의 재질은 라만차의 검신과 매우 비슷했다. 로난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꽂은 채 허리춤에 매달아도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상자를 연 아셀의 입에서 당황 어린 목소리가 새나왔다.
“파, 팔찌···?”
아셀의 상자에는 한 쌍의 금속 팔찌가 들어 있었다. 이중나선이 원형을 이루는 형태가 인상적이었다. 고개를 들이민 로난이 낄낄 웃었다.
“어울리는데 아셀. 계집애처럼 소꿉놀이나 하라는 뜻 아닐까?”
“그, 그런···.”
“아, 그건 마도 델피움의 기술을 차용해서 만들었다 하셨네. 굉장히 흥분하면서 말하시던데, 나도 궁금하군. 한번 착용해 보겠나?”
고개를 끄덕인 아셀이 팔찌를 양 손목에 끼웠다. 헐렁하던 팔찌는 저절로 아셀의 손목에 맞게 조여들었다. 열 손가락 끝으로 모여드는 마나를 본 아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건···!”
마나의 흐름 자체가 달라졌다. 지팡이를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모자란 애처럼 입을 벌리며 감탄하는 와중, 로난이 끼어들었다.
“이야, 신기하네. 흐르는 방향 자체가 달라지는구나.”
“어···? 로난, 마나가 보여?!”
“그래 인마. 어젯밤부터 볼 수 있게 됐다.”
로난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흐름 하나하나가 세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팔찌와 그의 손가락을 타고 마나가 흐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셀이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추, 축하해! 드디어···!”
-쿵!
그때 바닥이 부서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방안의 사람들이 동시에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마르야의 대검이 보기 좋게 넘어져 있었다.
“아하하, 죄송해요···이게 생각보다 무겁네요.”
자리에서 일어난 마르야가 대검을 집어들었다. 하얀 팔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그녀는 양손을 모두 사용하고 나서야 대검을 원위치에 세워둘 수 있었다.
“내가 경고하는 걸 깜빡했군. 엄청난 무게의 대검이라 들었네.”
“네···일단 지금껏 들어본 무기 중에는 가장 무거웠어요.”
마르야가 손목을 돌리며 말했다. 제대로 휘두르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야 할 것 같았다. 공작은 대검의 배면에 새겨진 물결무늬에 시선을 둔 채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 대검이야말로 자네에게 가장 맞는 무기라 하시더군. 마나를 머금을수록 무거워지는 효과도 있다 말해 주셨네.”
“엑, 여기서 더 무거워진다고요?”
“도론 장인께서 생각이 있으신 거겠지. 어지간하면 따르는 걸 권장하네.”
공작이 담담하게 말했다. 도론에 대한 신뢰가 대단해 보였다. 하긴 몇 대째 그랑시아의 무구를 만들어 온 대장간의 장이니 관계가 깊은 것도 이해가 갔다.
마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검을 들고 온 기사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나저나 힘이 대단하시네요 기사님. 부러워요.”
기사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까 로난에게 칼을 뽑으려 했던 돌란이라는 작자였다. 머쓱해 하는 마르야를 본 공작이 입을 열었다.
“돌란 경이 힘이 좋기는 하지. 자네의 충성심은 높게 사지만, 이런 경우에는 좀 대답해 주게 돌란.”
“네, 공작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돌란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주군의 명령에만 따르는 것이 참으로 충직한 기사의 귀감이었다.
“자네가 이해하게. 워낙에 고지식한 남자라 말이야. 그래서 내 호위를 맡기는 거지만.”
“우아, 멋있어요. 혹시 오러도 개화하셨나요?”
“당연히. 그랑시아의 기사들은 거의 전원이 오러 발현자라네. 돌란은 그 중에서도 특출나고.”
“과찬이십니다. 공작님.”
공작과 돌란, 마르야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문득 아까의 상황을 떠올린 로난이 아셀에게 귓속말했다.
“야, 아셀.”
“으응?”
“잔말 말고 지금 저 딱정벌레같이 생긴 놈 봐봐. 마나가 좀 이상하지 않냐?”
로난이 턱끝으로 돌란을 가리켰다. 아셀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신경을 집중하자 돌란의 코어와 맥박치는 마나가 보였지만, 딱히 특별한 건 느껴지지 않았다.
“모, 모르겠는데···?”
“염병, 니가 그러고도 마법사냐? 마나 속에 반짝이는 거 안 보여?”
“바, 반짝이는 거라니?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지금은 보이지 않았지만 방금은 틀림없이 보였다. 감응력이 훨씬 뛰어난 아셀이라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드러나는 건가?
‘씨바···분명히 어디선가 느꼈는데.’
평소 같았으면 ‘불쾌한 기시감’ 정도로 치부하고 넘겼을 터였다. 하지만 실체가 눈으로 보였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로난은 아셀의 옆구리를 찌르며 속삭였다.
“자세히 보고 있어 봐. 한 번쯤은 다시 나타날 거 같으니까.”
“으, 응···.”
그때, 대화를 나누던 공작이 로난에게 시선을 돌렸다.
“참, 그러고 보니 자네에게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네.”
“네? 뭔데요?”
“어차피 며칠 뒤면 로돌란에서 공문이 올 테지만 궁금해서 말이지. 동굴 거인을 조종한 배후들을 잡은 게 자네라고 들었는데, 당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겠나?”
“아하, 그 병신 2인조요?”
그 순간 돌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반짝임이 뒤섞인 마나가 그의 어깨 위로 스멀스멀 올라왔다. 로난의 눈이 커졌다.
‘나왔다!’
로난이 다시금 아셀의 옆구리를 찔렀다. 하지만 아셀은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도리질을 할 뿐이었다. 돌란의 마나에서 아무런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젠장, 나만 보이는 거야? 로난은 눈을 부릅뜬 채 돌란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문득 한 줄기의 섬광이 로난의 머릿속을 가로질렀다.
‘생각났다.’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에두온과 시릴라. 그들에게서 풍기던 것과 같은 궤의 불길함이 돌란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마나 속에 어른거리는 반짝임은 그 불길함이 시각화된 것 같았다.
로난의 표정이 굳었다. 이상함을 느낀 공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그러나?”
“어···아니에요. 어디까지 얘기했죠?”
“2인조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던 차였네.”
“아, 그러니까···.”
로난은 다시 돌란을 힐끔 쳐다보았다. 마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한순간 감정의 동요로 마나를 흘린 모양이었다.
‘틀림없이 병신 2인조라는 말에 반응했어.’
아직 확신하기에는 일렀지만 분명히 촉이 왔다. 잠시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운 로난의 입꼬리가 음흉하게 올라갔다.
로난이 말했다. 시선은 돌란에게 고정된 채였다.
“공작님.”
“음?”
“혹시 별의 도래라는 말 들어 보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