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48)
2-118. 아버지의 이름으로(6)(수정)
#118
“반갑다 아들아. 진심으로.”
“저도요.”
카인이 웃었다. 서글서글한 웃음에 눈앞이 살짝 흐려졌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자는 내 아버지가 아니었지만 그리웠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를 위아래로 훑어본 내가 눈썹을 으쓱였다.
“그런데 어째 건강해 보이네요?”
빈말이 아니었다. 카인은 생명 유지 장치에 들어 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몸이 좋아져 있었다. 비쩍 말랐던 팔다리가 두툼해지고, 말려들었던 어깨도 떡 벌어진 채였다. 탈색된 피부만 제외하면 거의 나만큼 건강해 보였다.
“네가 구해다 준 거인의 피가 효과가 좋더구나. 거의 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야.”
카인은 장난스레 팔을 굽혀 보였다. 솟아오른 이두근이 조각처럼 선명했다. 원래 세상에서 봤던, 다 죽어가는 아저씨와는 차원이 달랐다. 어느 정도 약빨이 들 거라 생각해서 한 짓이긴 하다만 이 정도일 줄이야.
“잘 됐네요. 그래도 확실하게 하는 편이 낫겠죠?”
“음? 그게 무슨 소리냐.”
나는 코트 주머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미리 챙겨놓은 아벨의 피가 병 안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건···아. 그런가.”
말뜻을 알아들은 카인이 눈썹을 으쓱였다. 동생의 피라 그런지 잠시 주저하는 눈치였지만, 그는 결국 병을 건네받고 한 모금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만에 병은 텅 비어 버렸다.
입가를 닦은 카인이 천천히 주억거렸다.
“이거 참···여기서 더 나아질 수도 있는 거였군.”
“워우.”
나는 입을 둥글게 말며 감탄했다. 카인의 피부 위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생기가 더해지는 것을 나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근본적인 치료제였던만큼 아벨의 피는 확실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창백하던 피부는 서서히 원래의 혈색을 되찾고 있었다.
‘대단하군. 하긴 이 정도는 되어야 구원자 노릇 하는 거지.’
순수한 감탄이 치밀었다. 대머리 킹이나 근원을 흡수한 아벨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강함이 느껴졌다. 아득한 과거에서부터 중첩되어 왔던 내공이 다시 한 번 황금기를 맞이한 것 같았다.
카인이 말했다.
“네게 물어보고 싶은게 아주 많단다. 엘시아에게 들어서 얼추는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당사자에게 듣지 않고서는 믿기 힘든 이야기라 말이다.”
“저도 그래요.”
궁금한 게 많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 온 것은 원래 아는 장소에 엘시아가 보내줬으니 그렇다 쳐도, 아카샤의 무저갱을 파훼한 방법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이야기가 많이 길어질 것 같았다. 저 멀리서 아기새들과 재회한 알리시아가 흐느끼는 소리가 번지고 있었다. 내가 먼저 질문을 하려던 차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당혹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인···네가 어떻게···.”
우리는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아벨은 상체만 간신히 일으킨 채 카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탁한 눈동자 안쪽에는 두려움과 경악, 기쁨이 복잡하게 얽혀서 요동치고 있었다.
한참이나 동생을 바라보던 카인이 입을 뗐다.
“아벨. 오랜만이구나.”
“분명···너는 죽었을 텐데.”
“하마 떼한테 짓밟히기라도 한 몰골이군. 잘 지냈느냐?”
아벨은 대답하지 못했다. 천천히 다가간 카인이 그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뒤를 돌아본 그가 내게 양해를 구했다.
“로난. 미안하지만 동생과 먼저 대화를 나눠도 되겠나?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이야기는 여기서 할 만한 게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편하게 하쇼. 확실히 여긴 사람이 너무 많죠.”
“고맙구나.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란다.”
카인이 미소지었다. 그는 자애로운 손짓으로 아벨의 몸에 묻은 수초와 진흙을 털어 주고 있었다. 아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어 있었다.
머리카락에서 잔가지를 뽑아내준 카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역시 내 동생이 맞구나. 바지는 왜 그렇게 됐느냐?”
“······어떻게.”
“대답하기 싫다면 좋다. 너와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 내 아들이 나를 고쳐 줬던 일처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꾸나.”
“짚고 넘어가다니, 그게 무슨···”
아벨이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뻐억! 주먹을 움켜쥔 카인이 그의 복부에 짧은 정권을 꽂아 넣었다.
아벨의 몸이 앞으로 굽었다.
“커억!”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히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끝내 균형을 잃고 고꾸라진 아벨이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쿨럭! 쿨럭! 빌어먹을···!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글쎄. 네가 보기에는 뭘 하는 것 같느냐?”
그리 말한 카인이 아벨의 배를 걷어찼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몸뚱어리가 물 위에 처박혔다. 보통은 여기서 끝낼 법도 한데 카인은 옷이 물에 젖는 것 따위에 개의치 않았다. 첨벙거리며 호수로 들어간 그가 익사체처럼 떠 있는 동생을 물가로 끌고 왔다.
“응? 뭘 하는 것 같냐고 물었지 않느냐.”
“잠깐···잠깐만···걱!”
말을 잇던 아벨의 안면에 주먹이 처박혔다. 부러진 코가 순식간에 재생하는 걸 본 카인은 마음 놓고 구타를 시작했다. 무자비한 주먹과 발길질이 아벨을 폭격했다.
“이놈. 천하의 못된 놈.”
“억! 크악!”
“아무리 상황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하나뿐인 혈육을 뒤에서 칼로 찌르다니···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느냐? 이 카인이 그리도 만만하게 보였단 말이냐?”
“자, 잠깐만! 흐어억!”
아벨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나름대로 저항을 시도했지만, 전성기의 힘을 되찾은 카인의 무력은 꿈을 잃은 사나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물론, 르탄시에를 비롯한 대주교들조차 예상치 못한 전개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교, 교주님이···! 저, 저러다 죽겠어요!”
“안 죽을 거야. 아마도.”
“그런···!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구죠? 왜 갑자기 교주님을···”
“우리 아버지. 쌓인 게 많은 것 같으니까 그냥 내버려 두자고.”
나는 끼어들려는 날다람쥐를 만류했다.
어찌나 살벌하게 두들겨 패는지 누구도 말릴 생각을 못했다. 심지어는 교주의 제일가는 충견인 카일라시스조차 제자리에 박제처럼 굳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오 분 정도 아벨을 구타하던 카인이 나를 돌아보았다.
“후우···후···마침 좋은 게 있구나. 아들, 칼집 좀 다오.”
“네? 칼집이요?”
“그래. 내 과오를 단단히 바로잡아야겠다. 오랜만에 땀을 흘리니까 개운하고 좋구나.”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칼집을 내어 주었다. 카인이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칼집을 쥔 그가 감탄을 흘렸다.
“역시 훌륭하구나. 무게도 적당하고 아주 단단해. 수천 년 동안 내가 만져 본 몽둥이 중 손에 꼽는구나.”
“머, 멈춰라, 카인. 그만둬···!”
그렇게 맞고도 형을 이름으로 부르다니···후우, 원통에 갇혀 있는 동안 내 근력이 약해지긴 한 모양이군. 한탄스러울 뿐이야.”
카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근처에 있는 바위를 향해 칼집을 휘둘렀다.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바위가 두 동강이 났다.
칼집으로 동생을 겨눈 카인이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동생아. 오늘이야말로 내가 너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마.”
“가, 가까이 오지 마라! 멈춰!”
“너는 인간이 되고자 노력했던 미물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 테지. 그들은 하나같이 소중한 걸 바쳤다. 목소리라거나···기억이라거나···하지만 너는 아무것도 바치지 않고 인간이 될 수 있으니, 참으로 합리적이라 생각하지 않느냐?”
“그런 망발을···! 아, 아무나 이 미치광이를 멈춰 다오! 제발!”
아벨이 절규했다. 허나 그를 도와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잔인한 호선을 그리며 떨어진 칼집이 아벨의 정강이를 강타하는 순간이었다. 카인이 그토록 듣고자 했던 단어가 마법처럼 튀어 나왔다.
“크아아악!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카인이 빙긋 웃었다. 그는 이십 분이 지나 제국 산림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계도를 멈추지 않았다. 저러다 칼집이 부러지는게 아닐까 싶었지만 제도 최고의 명장이 만든 비보는 아벨의 뼈가 몽땅 부러질 때까지 꿋꿋하게 버텨 주었다. 아벨의 비명이 슬슬 잦아들 무렵이었다.
우우웅!
호반 위에 거대한 차원문이 열리며 수염 기른 노인 한 명이 걸어 나왔다.
피로물든 호수를 본 노인이 눈썹을 치켜떴다.
“맙소사. 이게 도대체 무슨···!”
“간만이네요. 로르혼.”
“···젊은이는 나를 아는가?”
나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긴급 연락을 받고 파견된 로르혼이었다.
이번 세상에서는 아직 별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치매 환자같은 면모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마법사 님이잖아요. 설명은 대충 들었죠?”
“어음, 그렇기는 하다만···여기 있는 전부를 호송하면 되는 겐가?”
“한 명만 빼고요.”
검지를 뻗어 카인을 가리켰다. 그는 자갈밭에 머리를 박고 있는 동생의 등 위에 올라타서 뭐라뭐라 훈수를 두고 있었다. 아벨은 온몸에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 연신 형님 말씀이 다 맞다는 대답만 복창하는 중이었다.
‘내가 누구를 닮았는지 알 것 같군.’
누나가 엄마를 닮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원래 세상에서 쌓여온 구원자의 신비로운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박살나고 있었지만 저건 저거대로 나쁘지 않았다. 아벨과 대주교들은 자기네들을 연행하러 온 로르혼에게 고분고분하게 협조했다. 내가 창백한 성에서 보여준 활약도 있었지만, 동생을 후들겨 패는 카인에게서도 무언가를 많이 느낀 듯했다.
연행되기 직전, 대주교 알리시아가 고개를 숙였다.
“신세를 졌군. 내 여자들을 구해 줘서 고맙다.”
“됐어. 애초에 죄 없는 아가씨들이었잖아.”
“용케도 알아봤군. 그 요상한 기술을 쓰는 개자식을 날려 버려.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왠지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큭큭거리면서 내 어깨를 쳤다. 저번 평행세계에서는 사지를 잘라 죽인 상대에게 격려를 받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묘했다. 로르혼은 범죄자 전원을 마법으로 구속하고 전이시켰다.
텅 비어버린 호반을 보며 혼잣말햇다.
“착하게 살자. 좀.”
길면서도 짧은 여행이었다. 어쨌거나 이걸로 네뷸라 클라지에와의 문제는 완전히 끝이났다. 남은 것은 카인과 아카샤 뿐이었다.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장소라···.”
푸른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때마침 적당한 곳이 하나 있기는 했다. 사흘이 지났으니 어쩌면 내가 부탁했던 일도 해결됐을지 모른다.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서도.
[그날 저녁.
아칼루시아 저택.
“좋은 저녁이에요 로난 님. 이렇게 빨리 재회할 줄은 몰랐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은 저녁이에요 가주님.”
아드리안이 웃었다. 아칼루시아의 가주인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내 뒤의 카인을 발견한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쪽의 신사분은?”
“제 아버지에요. 이쪽 세상의.”
“반갑소, 대가문을 다스리는 가주여. 카인이라고 하오.”
카인은 세상 정중한 자세로 예를 표했다.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것을 본 내가 기겁했다.
아드리안이 부채로 하관을 가렸다.
“어머···정중하기도 하시지.”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뺨이 살짝 붉어진 것 같았다.
나도 적당히 예를 표하며 입을 열었다.
“가주님. 그,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해서 죄송한데, 혹시 성공했나요?”
“······네.”
잠깐의 침묵이 맴돌았다. 한순간 굳어진 표정에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머뭇거리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월하지는 않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