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460)
2-130. 조금 진지한 이야기(3)
#130
나는 아데샨과 이마를 맞댄 채 침묵하고 있었다. 전율이 혈관을 내달리고 있었다.
복잡한 기계장치가 작동하듯, 지금껏 보아온 아카샤의 기이한 행동 대부분이 단번에 이해가 됐다.
‘이걸 위해서였어.’
놈은 분명 이번 평행세계의 세니엘에게서도 생명력을 흡수했을 터였다.
구슬이 회귀를 가능케 하는 구조가 뭘까 종종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세계의 영혼 하나당 한 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던 것이다.
다만, 아카샤의 정체만큼은 더욱 깊숙한 의문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아카샤. 너는···.’
회귀를 가능케 하는 구슬은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미래의 인물이 이런 짓을 벌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소기의 목적이 구슬의 창조와 전달이었다면 어째서 자신이 온 세상을 파괴하려는 것인가.
“진짜 뭐 하는 새끼냐···?”
아무리 고민해도 그것만큼은 알 수 없었다. 사실 고민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기도 했다.
기침하던 아데샨이 당혹성을 내뱉었다.
“쿨럭, 컥! 이, 이게 뭐죠?!”
갑작스럽게 무언가를 삼켰다는 사실이 그녀를 공포에 질리게 한 것 같았다.
반응을 보아하니 통증은 잦아들었지만 청력이나 시력은 아직 회복되지 않은 듯했다.
“시간을 되돌리는 구슬이야. 내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면 최대 네 번까지 돌릴 수 있어.”
나는 맞닿았던 이마를 천천히 떼어냈다.
아데샨은 이제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웩. 오웩.”
“뱉지 마. 괜찮을 거야.”
나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굳어 있던 표정이 서서히 누그러졌다. 다행히도 촉각은 어느 정도 되돌아온 것 같았다.
목에 걸린 군번줄을 빼내자 아데샨의 눈이 번쩍 떠졌다.
“여, 역시 누군가 있군요···!”
피는 멎었지만 초점이 흐렸다. 역시 시력은 돌아오지 않은 채였다. 물론 나는 아름다운 잿빛 눈동자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걱정 말라는 의미로 정수리를 툭툭 쳐 주자 감격 어린 대답이 돌아왔다.
“감사합니다···정말로 감사합니다···쿨럭, 쿨럭! 일어나서 인사하지 못하는 걸 용서해 주세요.”
“괜찮으니까 이제 쉬어.”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죽기 전에 당신같은 사람을 만나서 정말 기뻐요···이제, 이제 안심하고 떠날 수 있어요···.”
아데샨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호흡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예상대로였다. 세니엘의 생명력은 고통을 덜어줬을 뿐, 죽음의 그림자를 거두어 간 게 아니었으니까. 잔혹한 역사는 그녀의 임종으로 시작될 터였다.
“······사실은 죽기 싫어요.”
불현듯, 아데샨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응?”
“너무, 너무 분해요···그런 괴물에게 이런 일을 당하고도···저는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어요.”
짙은 속눈썹 아래로 눈물이 샘솟고 있었다. 얼굴에 묻은 혈흔을 녹이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피와 별로 다를 바가 없이 붉었다.
그녀는 공허한 시선을 하늘에 둔 채, 흐느낌에 가까운 말을 이어나갔다.
“···않아요. 죽고 싶지 않아요···사람들을 지켜야 하는데···사람들을, 사람들을···!”
“아데샨.”
“누군가는···제 죽음을···하아···기억해 줄까요?”
상태를 보아하니 삼십 분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 아데샨은 어느새 내 손을 있는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 살을 파고드는 손톱은 꼭 몸을 떠나려는 영혼을 붙잡으려는 것 같았다.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린 채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철혈의 대장군을 만들어낸 반석이었다. 삶에 대한 집착이 거듭되어 내가 아는 대장군을 만들어낸 것이다.
“죽고···싶지 않···.”
오 분 정도 지나자 목소리가 끊어졌다. 맞잡은 손에서도 힘이 점점 풀리고 있었다. 죽음이 지척까지 다가온 것이다.
“···내 이름은 로난이야.”
비로소 생각을 갈무리한 내가 입을 열었다.
“하아···하아아···.”
“미래에서 온 나는 모든 결말을 알고 있어. 잘 들어. 너는 성공해. 나와 만나서 결과적으로 세상을 구하지. 이제 대머리는 모든 세상을 통틀어서 남아있지 않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애초에 듣지를 못할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다만 우리가 만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운명이라는게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더라. 엇갈리고, 만나기 전에 죽어 버리고···간신히 만났는데도 서로의 기량을 눈치채지 못하고 파국이 나는 경우도 있었지. 우리의 적은 워낙에 강하니까.”
“······.”
“그래도 결국에는 승리해. 당연하게도 너는 잊혀지지 않아. 위대한 업적을 쌓고, 영웅으로 추앙받고···네 어머니와 오빠들의 원수인 자이파마저도 나중에는 잘못을 뉘우친 뒤 네 밑에서 일하게 돼. 어때, 끝내주지?”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얀 손은 물에 젖은 자루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잠깐 숨을 고른 내가 그녀의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잠깐이었지만 너와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
바람이 잦아들고 있었다. 아데샨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잿빛 눈동자에 고인 파란색이 아름다웠다. 명멸하는 홍채의 빛이 끝을 알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 번째 삶의 막바지에도···”
목이 메어서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시야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옇게 변해 있었다. 눈을 감으며 말을 맺었다.
“꼭 저를 찾아 주세요. 대장군님.”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불현듯, 눈꺼풀의 어둠 너머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따뜻해.”
“네?”
황급히 눈을 떴다. 아데샨은 잠이 든 것처럼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는 숨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내가 입꼬리를 올렸다.
“···또 만나요.”
나는 그녀를 직접 묻어주려다 그만두었다. 황무지 너머에서부터 말발굽이 대지를 두들기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국에서 파견된 지원군이었다.
나는 피 묻은 군번줄을 아데샨의 손에 감아 주었다. 제국군은 전사자를 잘 챙기는 편이니 분명히 수습될 터였다. 아카샤가 거인 세상을 박살내러 갔으니 더는 위협 요소도 없는 것 같았다.
“가보실까.”
더는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돌아갈 시간이었다.
코트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유리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뚜껑을 따고 흩뿌리자 붉은 액체가 쏟아졌다. 허공에 흩어진 아카샤의 피가 딱 한 사람 통과할 크기의 균열을 만들었다.
원래 세상과 이어진 균열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장을 둘러본 내가 균열 속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전투가 끝난 것은 사흘째 저녁이었다.
“후우···후우우···.”
가까스로 숨을 고른 아데샨이 고개를 들었다. 지옥을 옮겨 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폭우가 쏟아지는 황무지는 철저하게 파괴당한 시체로 뒤덮여 있었다. 피와 내장으로 이루어진 강이 사방으로 범람하고 있었다.
자신은 거대한 바위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아하유테가 던진 창이 서른 걸음 앞에 박힌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먹구름의 바다가 머리 위에서 뇌광을 번득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윽.”
갑작스러운 격통을 느낀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시선을 내리자 팔꿈치 아래가 완전히 떨어져 나간 오른팔이 보였다.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단면으로 하얀 뼈가 드러나 있었다. 내장과 다리도 함께 다쳤는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성공···했나?”
하지만 그것은 별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작전의 결말에 쏠려 있었다.
더는 고막을 찢는 폭발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잠잠해진 전장에는 빗소리만 가득했다.
아하유테를 죽이는 데 성공했든, 제국군을 전멸시킨 녀석이 어딘가로 이동했든 결말이 났다는 증거였다.
[아무도 없나. 부상을 입어서 움직일 수가 없다.]눈을 감은 아데샨이 사방으로 전음 마법을 보냈다. 그녀에게는 결과를 확인할 의무가 있었다. 두아루와 니르바나는 각각 불의 어머니와 로르혼과 공멸했으니 남은 것은 그녀가 맡은 아하유테 뿐이었다.
[아무도···없나.]응답이 없어서 다시 전음을 보냈다. 그녀는 부디 성공했기를 바랬다.
이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 뿐이었다. 기껏 네 개의 목숨을 얻었건만 시행착오 때문에 두 번은 이 전장에 도달하지조차 못하고 죽어 버렸다.
“하아···하아···.”
어찌됐든 전음을 보냈으니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었다.
그녀는 최대한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빗물의 추위가 찢어진 제복을 뚫고 들어왔다.
문득 그녀는 작금의 풍경이 첫 번째 삶에서 죽기 직전에 보았던 것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크레이터가 곳곳에 아가리를 벌린, 시체가 즐비한 들녘.
그때와 다른 것은 지휘를 내린 주체가 자신이라는 것 뿐이었다.
“···젠장.”
쓴웃음을 지은 그녀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대장군님.”
익숙한 목소리가 지척에서 울려 퍼졌다.
아데샨이 고개를 들었다. 당장 죽을 것 같은 사내 한 명이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노을색 눈동자가 폭우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귀관은.”
“아데샨 대장군님.”
로난이 다시금 그녀를 불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도 꽤 놀란 것 같았다. 노을색 시선은 자신의 잘려나간 팔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데샨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로난은 작전의 주체였던 만큼, 전투의 결말에 대해서 알고 있을 터였다.
“로난···상병인가.”
표정관리가 어려웠다. 필사적으로 평정을 유지한 아데샨이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벽에 기댔다.
“질문 하나만 하지.”
반드시 물어봐야 했다.
잿더미를 연상케 하는 회색 눈동자가 로난을 응시했다.
“아하유테는?”
“제가 죽였어요.”
로난이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아데샨이 얼어붙었다. 확인차 다시 물어보니 멀지 않은 곳에 시체가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녀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그런가.”
숙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아하유테는 죽었다.
지저분한 뺨을 타고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죽었나.”
“젠장, 대장군님!”
로난이 달려왔다. 그는 무리해서 몸을 일으키려는 아데샨을 부축했다.
아데샨이 갸웃거렸다. 로난은 영웅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못난 상관의 안위에 더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이해할 수가 없군.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나인데.’
피부와 피부가 닿았다. 비를 맞아 차가워진 와중에도 어렴풋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온도였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그녀가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로난은 그렇게 말하며 픽 웃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는, 마치 나무에 걸린 어린아이의 신발을 빼내 줬을 때나 지을 것 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이었다. 머리카락을 푹 적신 빗물이 날카로운 턱선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아데샨의 심장 부근이 바늘로 찔린 것처럼 욱신거렸다.
‘뭐지?’
아데샨이 흠칫거렸다. 난생 처음 겪는 종류의 통증이었다. 괴로운 와중에도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도통 모르겠군.’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세 번의 삶을 겪은 뇌를 쥐어짜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녀는 통증의 정체도, 통증을 유발하는 감정을 뭐라 부르는지도, 로난의 체온이 익숙한 이유도 끝내 알아차리지 못했다.
포기하고 로난에게 어깨를 기댄 그녀가 설핏 미소지었다.
“···고맙다. 로난 상병.”
다만 아데샨은 이 칼잡이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하나 남은 삶을 양보해도 후회가 없을 만큼.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 5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