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5)
6. 겁쟁이 아셀(4)
#6
피를 본 고블린들이 광분 상태에 빠졌다.
메이스가 깊숙이 박혀 있는 동료의 얼굴은 고블린의 관점에서 봐도 구역질이 치미는 것이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무기를 집어 들었다.
-캬아악?!
그때 한 마리가 제단을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 모아 놓은 공물의 절반가량이 사라져 있었다. 완전히 돌아버린 고블린들이 괴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뛰쳐나갔다.
머지않아 그들은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케아아악!
“드, 들켰다!”
아셀은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염력으로 자신의 몸을 띄우는 것은 아직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순식간에 발치로 몰려든 고블린들이 서로의 몸을 밟아 가며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끄아아아악! 저리 가!”
온갖 흉기가 바짓단을 스쳤다. 처절하게 다리를 버둥거리던 아셀은 마침내 고블린들이 다다를 수 없는 높이에 도달했다.
그는 바로 옆의 나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온몸의 관절을 펼친 끝에 돌출된 가지를 아슬아슬하게 붙잡을 수 있었다.
“허어억···! 허어억!”
문득 허벅지가 쓰라려 고개를 내렸다. 찢어진 바지 틈새로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아셀은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억누르며 큰 소리로 외쳤다.
“헉, 로난···! 헉, 올라왔어!!”
그 순간, 아셀이 매달린 나무 뒤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그림자는 곧장 고블린의 무리를 향해 쇄도했다. 아셀에게 시선이 쏠려 있는 고블린들은 로난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서걱!
은빛 호가 그려짐과 동시에 머리통 세 개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첫 획을 그어본 로난은 자신의 감각이 무뎌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안도했다.
촤악! 다시금 두 개의 머리가 선혈과 함께 솟구쳤다.
-캬륵? 캬아아악?!
그제야 고블린들은 침입자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물론 로난이 알 바는 아니었기에 그는 개의치 않고 칼을 휘둘렀다.
두리번거리던 고블린의 몸뚱어리가 세로로 쪼개졌다.
-캬억···!
폭발하듯 튀어 오른 피가 사방을 적셨다. 잘려나간 반신을 뻥 걷어차자, 꼬여 있던 창자가 술술 풀리며 고블린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어느새 무리의 중심에 도달한 로난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케,케르륵···!
“하나···둘···.”
잔혹극은 대성공이었다. 겁에 질린 고블린들은 쉽사리 로난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로난은 손가락을 까닥이며 남은 고블린의 수를 세었다. 벌써 팔이 욱신거리는 것이, 확실히 몸을 단련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우선 보이는 건 서른한 마리.
“열다섯 번.”
칼을 휘두를 횟수를 상정한 로난이 땅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
여명이 밝아온다. 서서히 드리우는 햇살에 나무와 풀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하고, 잠에서 깬 동물들이 기지개를 뻗는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지는 시간이었다. 하루아침에 멸망한 고블린 부락과,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로난을 제외하고는.
“안 다쳤냐?”
“으응. 난 괜찮아.”
아셀은 최대한 숨을 참으며 대답했다. 정신을 잃을 정도의 피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하고 있었다. 모닥불 주위는 토막 난 루나 고블린과 그들의 내용물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수고했다.”
로난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셀은 영혼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로난의 전투 장면이 반복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내가 뭘 본 거야.’
그것은 말 그대로 악몽 같은 광경이었다. 로난은 정확히 열네 번의 검격으로 이 참상을 그려냈다. 일말의 군더더기도 없는 학살은 어찌 보면 예술적이기까지 했다.
문득 아셀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로난의 지시에 따라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 뿐이었다. 로난은 그가 없더라도 틀림없이 비슷한 결과를 도출해 냈을 터였다.
“그런데···이러면 내가 필요 없던 거 아니야?”
“얌마, 실전 감각이 중요하댔잖아.”
“아니, 위험했고 이런 게 아니라···너한테 방해만 된 거 같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한 거야. 나중에는 너만 할 수 있는 일도 잔뜩 생길 거고.”
당연한, 마치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사실을 일러 주는 듯한 말투였다. 아셀은 부디 그리 되기를 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다리에 그건 뭐야?”
난데없이 로난이 정색하며 물었다. 다리를 내려다본 아셀은 허벅지에 길쭉한 자상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응? 아, 이건 아까···.”
“안 다쳤다면서?”
아셀은 별 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무로 올라가는 도중 다친 상처였는데, 그닥 깊지 않아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로난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상처를 살폈다.
“저 새끼들 손이 얼마나 더러운지 알아? 이상한 병이라도 옮기면 그냥 뒈지는 거야.”
별안간 제단으로 향한 로난이 잡동사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장식이 화려한 병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하여튼 반짝이기만 하면 다 챙기는구만. 쓸 줄도 모르면서, 멍청한 새끼들.”
“그게 뭐야?”
“상처나 이리 대.”
아셀은 그가 시키는 대로 상처를 내밀었다. 로난은 주저 없이 병 안의 액체를 뿌렸다. 액체가 닿은 부위가 따뜻해지더니,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어 버렸다.
“포, 포션···!”
아셀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진짜’ 포션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확한 가격은 모르지만, 이 정도의 포션을 구매하려면 최소한 금화 단위를 지불해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캬, 빨리도 낫네. 역시 이 공방 물건이 좋아. ‘성스러운 당나귀’ 너도 기억해 둬.”
“이, 이런 귀한 걸 나한테 써도 되는 거야? 난 아무것도···.”
“그건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그럼 안 다친 내가 쓰리?”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다 나았으면 얼른 물건이나 담아. 할 일이 많다.”
로난은 자루 주둥이를 벌리며 남은 포션을 던져 넣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셀도 주섬주섬 자루를 채우기 시작했다.
****
자루 스무 개를 채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문제는 옮기는 일이었다.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강가와 숲을 왕복했다. 로난은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자루를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이제 움직이면서 쓸 수 있구나.”
“응···그런데···! 조금···힘들어···!”
아셀은 미숙하게나마 움직이면서 염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부동자세에서 시전하는 것보다는 훨씬 불안정했지만, 아무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나저나 어떤 병신들인지 얼굴 한번 보고 싶네. 안 그러냐?”
“응···? 아, 응···!”
로난이 툴툴댔다. 그는 고블린들을 깨운 함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아셀이 다치고 자신이 피투성이가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전부 그 얼굴 모를 작자들의 잘못이었다.
어쨌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금방 갔다. 두 사람은 어느새 마지막 자루들을 옮기고 있었다. 앞을 보며 걷던 아셀이 별안간 제자리에 멈춰 섰다.
“어?”
쿵! 갑자기 아셀의 자루가 바닥에 떨어졌다. 로난이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왜 그래?”
아셀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무 틈새로 보이는 강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거 우리 뗏목 아니야?”
“뭐?”
로난은 아셀의 검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물 한복판에 무언가 둥둥 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추레한 뗏목. 로난이 자루를 내던지며 뛰쳐나갔다.
“이런 씨바아알!”
아셀도 황급히 뒤를 따랐다. 이윽고 강가에 도달한 로난은 자루들을 실은 채 떠내려가는 뗏목과, 그 위에서 낄낄대는 두 명의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푸헤헤헤! 우린 이제 부자다!”
“그 새도 그렇고 운수가 풀리는 날이구만! 우리도 이제 간부가 될 수 있어!”
행색을 보아하니 모험가나 사냥꾼 같았다. 어찌나 목청이 좋은지 강가에서도 그들의 대화를 무리 없이 들을 수 있었다.
아셀은 사내들의 목소리가 루나 고블린들을 깨운 것과 같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 그 목소리야! 이봐요! 멈춰!”
“이 오크 불알만도 못한 새끼들이!”
주저 없이 물에 뛰어든 로난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거기 서라! 도둑놈들아!!”
“엥? 주인이 있었나 본데?”
“그야 그렇겠지. 어이! 이건 우리가 자알~ 쓰겠수다!”
“네놈들을 모두 죽일 테다!”
로난의 이마에 핏줄이 솟구쳤다. 그는 칼자루를 입에 문 채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팔다리를 뻗을 때마다 치솟는 물보라에 무지개가 깜빡였다.
“오우, 수영 꽤나 하는 친구구만. 하지만 이 몸의 노젓기 실력은 더욱 대단하지.”
“눼놈두룰 뭐두 쥬길 퉤다~”
로난의 수영 속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러나 흐름을 탄 뗏목의 속도에는 아슬아슬하게 못 미쳤다. 사내들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로난을 조롱했다.
그때, 뗏목을 따라 강변을 달리던 아셀이 멈춰섰다. 지형이 험한 탓에 더는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는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오른팔을 뻗었다.
“헉···허어억···! 멈추라니까···요.”
뗏목의 모습이 손바닥에 가려졌다. 그가 아는 유일한 주문이 입술 사이로 새나왔다.
“으악!”
그와 동시에, 아셀의 몸이 강 쪽으로 확 끌려갔다.
****
가장 먼저 이변을 눈치챈 것은 노를 젓던 사내였다.
“엥? 뭐야?”
“왜 그래?”
“아니, 뗏목이 안 움직이는데?”
사내들은 당황하며 뗏목을 살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아무리 노를 저어 봐도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꼭 누가 잡고 있는 것처럼.
“어···그 말은?”
그제야 그들은 입에 칼을 문 채 다가오는 악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히이익!”
아득해 보였던 간격은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다. 물보라를 규칙적으로 가르며 나타나는 로난의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흉악했다.
위기를 느낀 사내들이 황급히 칼을 뽑아들었다.
“아, 아직 어린놈이야! 쫄 것 없어!”
“그래 이 새끼야! 목숨이 아까우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그러자 로난은 수면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느닷없이 찾아온 적막 속에서 사내들은 등을 맞붙인 채 경계 태세를 취했다.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잔잔하게 들려왔다.
-퐁!
그때, 숭어 한 마리가 물 위로 튀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솟구친 로난이 뗏목 위로 착지했다. 물고 있던 검은 어느새 손에 쥐어진 채였다.
“이 개새끼들! 손을 잘라서 후장에 처박아 주마!”
“주, 죽여!”
사내들이 달려들었다. 줄곧 뗏목을 응시하던 아셀이 고개를 돌렸다.
금속이 부딪히던 소리는 머지않아 처절한 비명으로 바뀌어 강물 위에서 울려 퍼졌다.
“갸아아아악-!!”
로난은 틀림없이 공약을 지킬 터였다. 내일 아침 즈음에 하류를 뒤져 보면 엉덩이에 손이 박힌 시체 두 구가 발견되겠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입꼬리가 자꾸 씰룩거렸다.
“아···하하하···.”
하반신이 차가웠다. 그의 몸은 허리까지 물에 잠겨 있었다. 강바닥에 발목까지 박아 넣은 뒤에야 뗏목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첨벙! 아셀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배우지 못한 소년은 그것이 마나 고갈 현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물에 둥둥 뜬 채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로난의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너만 할 수 있는 일이 잔뜩 생길 거랬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데.
“좋네, 실전 경험···.”
강바람이 선선했다. 완연하게 드러난 해가 강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아셀의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밤이 끝났다.
****
“이 새끼는 또 왜 이래?”
“으으···로난···몸이 안 움직여···.”
로난은 혼자서 노를 저어 돌아왔다.
그는 해파리처럼 물 위를 떠다니고 있는 아셀을 건져서 뗏목 위에 널어 놓았다. 옆구리를 간지럽혀도 웃기만 하고 못 일어나는 것이 완전히 탈진한 것 같았다.
뗏목의 한구석에는 핏자국이 흥건했다. 아셀은 사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구태여 묻지 않았다. 노를 내려놓은 로난이 그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았다.
“니가 멈춘 거지?”
“응···.”
“잘했어 인마.”
로난은 다시 아셀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아셀은 무력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느끼며 끅끅 웃었다.
그는 잘했다는 말 외에도 아셀의 실력이 말도 안 되게 발전했다는 점을 짚어서 칭찬했다.
“힉, 그, 그만해! 히극,나야말로 고마워.”
웃을 힘마저 소진한 아셀의 입에서는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만 나왔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발전이었다.
며칠 전까지는 아이 하나 드는 것도 버거워했는데, 이제는 무거운 뗏목을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모두 긴 꿈처럼 느껴졌다.
“짜잔.”
그때, 로난이 웬 자루 하나를 눈앞에 내밀었다. 아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이건···우리게 아닌 거 같은데?”
“맞아. 그 도둑놈들 거야.”
아셀의 말마따나 기존에는 없던 자루였다. 소년들이 들고 온 것들과는 달리 훨씬 두껍고 질긴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뗏목을 훔치려던 사내들이 두고(?) 간 물건이었다.
“이걸 필사적으로 지키더라고. 여기 오기 전에 뭘 또 훔쳤던 모양이야.”
“숲에서 지른 고함이랑 관련이 있을까?”
“열어 보면 알겠지.”
로난은 자루를 밀봉하고 있는 끈을 풀었다. 매듭은 차라리 자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마침내 끈을 푼 로난이 자루를 거꾸로 뒤집었다. 푸른빛을 띠는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