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51)
52. 바이디안 산맥(1)
#52
특급 모험 동아리의 첫 여정은 돌아오는 토요일에 개시되었다.
돌아와야 하는 날은 다음 주 수요일. 원래는 주말만 부지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동아리 활동’이라는 명목이라면 평일에도 나가 있는 것이 가능했다.
그들은 로난의 의견에 따라 유령마를 타고 가기로 했다. 날쌘 준마를 타고도 이틀이 걸리는 시간을 반의반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유령마 대여는 제도의 북문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창백한 말 길드의 직원 뒤편에는 징그럽게 생긴 말 세 마리가 동상이라도 된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저, 저게 말이야···?”
“니미랄, 꿔야 할 악몽이 하나 늘었군.”
유령마를 본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번들거리는 눈동자에는 흰자만이 존재했다. 체모 없이 미끈한 몸체는 얼어 죽은 시체처럼 푸르죽죽했다.
어째서 유령마의 분류가 환상종이 아닌 몬스터에 한참 동안 머물러 있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직원은 일행에게 고글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예약하신 분들이군요. 우선 이것부터 받으시죠.”
“고글이네요?”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듦새가 좋은 것이 그리폰 라이더들이나 쓸 만한 물건이었다.
“네. 유령마를 탈 때 필수적이지요. 이게 없으면 눈을 뜨는 것도 버거울 겁니다.”
하긴 제국군 전령이 타고 다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들은 간단한 주의사항을 들은 뒤 유령마를 넘겨 받았다.
“위치 인식 마법을 걸어 놨으니 고삐를 붙잡고만 있으면 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절대로 달리는 와중에 상체를 세우지 마세요.”
“고마워요. 그럼 갈까.”
로난이 능숙한 동작으로 유령마 위에 올라탔다. 로난과 브라움이 각각 한 마리씩을, 상대적으로 가벼운 아셀과 마르야가 한 마리를 같이 탔다. 마르야가 아셀에게 물었다.
“귀염둥이, 말 몰아본 적 있어?”
“으, 응···! 내가 기수를 맡을게.”
아셀이 힘을 잔뜩 준 채 대답했다. 일전에 로난에게 말채찍으로 맞아 가며 승마를 배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늙은 노새와 유령마는 팽이버섯과 만드라고라 정도의 차이가 났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의외라는 듯 웃은 마르야가 아셀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오~제법인데? 그럼 잘 부탁해!”
“······!”
아셀이 얼어붙었다. 등을 누르는 양감이 굉장했다. 간신히 평정을 되찾은 아셀은 배운 것처럼 양쪽 발로 유령마의 옆구리를 살짝 찼다.
“이, 이랴!”
쾅! 그 순간 아셀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가속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령마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앞으로 발사되었다.
“끄아아아악!”
“아셀!”
아셀의 비명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바람에 삼켜졌다. 팔을 쭉 뻗은 마르야가 함께 고삐를 잡았다. 한발 늦게 출발한 로난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고삐를 움켜쥐었다.
“빌어먹을, 정도가 있지···!”
고글의 중요성을 깨닫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콰아아아! 생전 경험하지 못한 강풍이 얼굴 가죽을 뜯어갈 기세로 쏟아졌다.
가까운 풍경이 잔상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먼 곳의 풍경은 빠르게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지면을 타고 흐르는 듯한 유령마의 기묘한 주법은 정말로 하늘을 달리고 있다는 착각을 주었다.
“뺘아아-!”
시타는 거의 같은 속도로 바로 옆을 날고 있었다. 네 사람을 태운 유령들은 바람이 되어 북부 대로를 질주했다.
고개를 들자 저 멀리 등뼈처럼 솟아난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오늘의 목적지인 바이디안 산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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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에에에! 우에에엑!”
“귀염둥이, 괜찮아?”
“하하하! 나처럼 달리는 도중에 토를 해놨어야지!”
그들은 채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유령마가 멈춰서는 순간 일행은 한없이 낙마에 근접한 자세로 말에서 내렸다. 갈기 없는 말들은 일행을 내려놓기 무섭게 왔던 길로 돌아갔다.
“진짜 시발···어이가 없네.”
고개를 들자 바이디안 산맥의 장엄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제도에 있던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유령마와의 경주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시타는 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삐아아아아···삐아아아···.”
“그러게 천천히 따라오라니까 왜 무리해서는.”
로난은 탈진한 시타를 배낭에 넣었다. 아셀의 등을 두드리던 마르야가 입을 열었다.
“돌아갈 때는 어떻게 해?”
“이걸 불면 찾아온댄다. 어디에 있건 간에.”
로난은 주머니에서 새하얀 막대기 하나를 꺼내 보였다. 유령마를 부르는 호루라기였다. 그는 일행을 이끌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얼마나 가야 돼?”
“하루 정도. 야영해본 적 있지?”
“와하하! 기대되는군. 말로만 들었지, 지맥을 직접 가 보는 것은 처음이다!”
일행의 등에는 모두 큼직한 배낭이 하나씩 메어져 있었다. 지맥에서 꿀을 빨 대로 빨면서 커스 아이를 겸사겸사 찾는 것이 이번 여정의 목표였다.
“기억하지? 다들 눈깔 하나 달린 문어 같은 거 발견하면 꼭 잡아 줘. 바위 밑이나 나무그늘 아래처럼 음침한 곳에 있다고 하니까 참고하고.”
“응. 저주를 먹는 몬스터랬나?”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며칠 전 세 사람에게 자신의 저주에 관해 말해 주었다. 브라움이 자신의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외쳤다.
“걱정 마라! 내가 산더미처럼 가지고 돌아가게 해 줄 테니까!”
“고마워 브라움. 그런데 여기 몬스터가 좀 많이 나오는 곳이거든? 자다가 물려가기 싫으면 목소리는 좀 낮추자.”
“으음···! 알았다···!”
로난은 일행을 데리고 산맥 깊숙이 들어갔다. 지형이 험난했지만 지난 한 달간 체력이 증진된 세 사람은 별 무리 없이 산을 탔다.
‘임자가 없어야 할 텐데.’
바이디안 산의 지맥은 어떤 파괴된 유적의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어디서 굴러먹던 지 모를 용병단이 점거하고 있었다. 다짜고짜 통행료를 내라며 시비를 걸어오는 탓에, 로난은 열 명 중 일곱 명을 병신으로 만들고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밤까지 걷던 일행은 이름 모를 골짜기 아래에서 야영했다. 네 사람 가운데 피어오른 모닥불이 서늘한 한기를 무마시켜 주었다. 로난은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다음 날 여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충분히 쉬어 둬. 내일도 한참 걸어야 하니까.”
“으응, 그런데 여기서는 무슨 몬스터가 나와···?”
“다양하지. 가장 끔찍한 거랑 두 번째로 끔찍한 거. 둘 중에 뭐부터 들을래.”
“두, 두 번째로.”
“그래?”
다짜고짜 몸을 돌린 로난이 라만차를 던졌다. 직선을 그리며 날아간 검은 그대로 인근의 풀숲 사이로 사라졌다. 퍼억! 고기가 꿰뚫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섬뜩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키에에엑!”
“뭐,뭐야?!”
로난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풀숲으로 다가갔다. 라만차의 검신에는 웬 녹색 피부의 난쟁이 하나가 관통된 채 버둥대고 있었다.
“캬히익···! 카아악···!”
“어김없이 따라붙었구만. 내일은 속도를 더 높여야겠어.”
푹. 로난은 아직 살아 있는 난쟁이의 숨통을 끊은 뒤 일행 앞에 내던졌다. 난쟁이의 정체를 알아본 브라움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고블린···? 맞나?”
“엉. 그런데 이거 보이지?”
로난은 칼끝으로 고블린의 등을 가리켰다. 둥그런 원 모양의, 불로 지진 듯한 흉터 서너 개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주변의 오크 촌락에서 노예로 부리는 놈이야. 바이디안에서 도사리고 있는 몬스터 중에서 두 번째로 끔찍한 놈들이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로난이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산맥 곳곳에 오크들의 촌락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나고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오크는 어지간한 중견 모험가들도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그 새끼들의 가장 큰 문제는 머릿수가 좆나게 많다는 거야. 동굴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너희가 한번 봐야 하는데.”
“그, 그게 두 번째면 가장 끔찍한 건 뭔데···?”
“오우거.”
일행의 면면이 창백해졌다. 설마 그 이름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는 눈치였다. 로난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건 진짜 좆 같은 몬스터지. 가죽이 두꺼워서 칼도 잘 안 박히고, 힘은 또 얼마나 센지···.”
“싸, 싸운 적이 있어? 오우거랑?”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번 생에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바이디안의 지맥을 발견했을 당시였으니, 아마 열여덟 살 무렵의 일이었을 것이다. 청년과 괴물의 승부는 삼일 밤낮이 지나고도 결판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마냥 좆같기만 한 몬스터는 아니야. 산맥이 오크로 뒤덮이지 않은 건 오우거 몇 마리가 주기적으로 오크 촌락을 멸망시키기 때문이니까.”
오크 백 마리가 몰려와도 오우거 한 마리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여기 어딘가를 싸돌아다니고 있겠군.
아직 칼이 덜 여문 탓에 끝내 승부를 내지 못했던, 머리 두 개 달린 오우거의 모습을 떠올린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아무튼, 오크는 몰라도 오우거를 만나면 무조건 토껴. 지금의 너희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니까.”
“으, 응. 명심할게.”
“그러고 보니 오우거만큼 끔찍한 놈으로는 와이번이 있지. 잘 걷고 있는데 갑자기 발밑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밤은 이야기와 함께 무르익어갔다. 네 사람은 세 시간씩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섰다. 다행히도 처음의 고블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어느 절벽 위에 올라 산세를 살피던 로난이 말했다.
“찾았다. 여기부터는 기억이 나.”
지형지물의 배치가 익숙했다. 로난은 기억을 더듬으며 산길을 걸었다.
대기중의 마나가 서서히 짙어지는 것이 보였다. 몇 시간 뒤 나타난 지맥의 모습에, 일행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와아아아아···!”
“여, 여기가 지맥? 로난 너 이런 곳을 어떻게···.”
“와하하하! 이거 굉장하군! 마나가 끓어넘치고 있어!”
바이디안의 지맥은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주변에 자라난 나무들은 마나 과잉으로 기괴하게 비틀려 있었다.
일전에 갔던 페나르도 샘보다 훨씬 규모가 큰 지맥이었다. 발밑에 채이는 돌조각 하나까지 마나를 담뿍 머금은 채 빛을 뿜고 있었다. 지면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마나는 평소에 대기중에서 느낄 수 있는 마나보다 수십 배는 농축되어 있었다.
“뺘아아!”
완전히 기운을 차린 시타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지맥에 영글어 있던 마나가 시타의 몸에 흡수되는 것이 보였다.
역시 로난이 예상한 대로 아직 주인이 없는 지맥이었다. 배낭을 벗은 로난이 일행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돌조각 하나까지 돈이니까 최대한 많이 채워 가. 감응도 많이 해 두고. 아셀 네가 설명해줄 수 있지?”
“아, 응!”
로난은 그 말을 남기고 지맥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커스 아이를 찾기 위함이었다. 문득 과거에 봤던 유적의 풍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음침한 장소를 좋아한다고 했으니 건물의 잔해 아래 모여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머지않아 유적이 있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로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엥?”
분명 폐허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웬 번듯한 석조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눈을 부비고 봐도 마찬가지였다. 뾰족한 지붕과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이 인상적이었다.
“굉장히···오래 전에 부서진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멀쩡하다는 건 사 년 이내로 건물이 박살 난다는 소리였다. 건물에 다가간 로난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기둥을 쓰다듬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긴 했지만, 붕괴의 조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로난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일이군요. 여기까지 손님이 찾아오시다니.”
“뭐?”
낯선 사내의 목소리였다. 다가올 때까지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로난은 반사적으로 라만차를 뽑으며 몸을 돌렸다. 화들짝 놀란 사내가 들고 있던 바구니를 떨어뜨렸다.
“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진정하세요···!”
그는 자신이 무해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듯이 양손을 내밀어 보였다. 사내의 행색을 본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엘프?”
“네? 네, 보시다시피 그렇습니다.”
“···여기서 뭐 해요?”
로난이 칼을 내렸다. 중년의 엘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바구니를 주워들며 말했다.
“저는 세니엘을 모시는 사제입니다. 이 험지까지 찾아오시다니, 필히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