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52)
53. 바이디안 산맥(2)
#53
로난이 칼을 내렸다. 중년의 엘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바구니를 주워들며 말했다.
“저는 세니엘을 모시는 사제입니다. 이 험지까지 오시다니, 필히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요.”
“세니엘?”
“네. 해묵은 넋이지요. 이제는 극소수만이 그 이름을 기억하는···저는 틀림없이 그분을 모시는 순례자가 찾아온 줄만 알았습니다.”
세니엘.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사내는 바구니에서 쏟아진 약초와 버섯을 주섬주섬 줍기 시작했다. 로난도 따라서 줍는 것을 도왔다.
“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때문에 엎은 건데 당연한 거죠. 그런데 이거 다 먹는 거예요?”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나같이 요상하게 생겨먹은 풀떼기들은 여태껏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악마의 수염처럼 시꺼먼 뿌리를 집어든 사내가 허허 웃었다.
“이래 뵈도 아주 좋은 약초들이랍니다. 여기처럼 마나가 고이는 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종이지요.”
“생긴 것만 보면 엉덩이에 꼬리가 자라도 안 이상할 거 같은데···그리 말하니 궁금하긴 하네요.”
“들어오시지요. 변변찮은 차라도 내 오겠습니다. 저도 순례자가 아닌 분을 만난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군요.”
“좋죠. 그런데 제가 일행이 있는데, 데리고 와도 될까요?”
“아아, 어쩐지 인기척이 느껴지더라니. 물론입니다.”
엘프 사내는 흔쾌히 로난의 제안에 응했다. 머지않아 아셀과 마르야, 브라움이 신전 앞에 도착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런 험지에 신전이 세워져 있는 사실에 감탄하며 두리번거렸다. 사내가 양 손바닥을 모으며 허리를 숙였다.
“라 세니엘. 사란테 레마티온이라고 합니다.”
“레마티온?”
레마티온이라는 성을 들은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로돌란에 처박혀 있는 엘프 시릴라의 성이 레마티온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어머니 나무의 이름을 성으로 쓰는 귀쟁이들의 관례상 성이 겹치는 경우는 흔했고, 레마티온은 그 중에서도 흔한 성씨였으니까. 로난 일행도 돌아가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로난이에요.”
“아, 안녕하세요···아셀이에요.”
“안녕하세요 사란테. 마르야 카라벨이라고 합니다.”
“와하하! 브라움이외다!”
사란테는 다시 합장한 뒤 일행을 신전으로 안내했다. 직사각형의 실내에는 신전 특유의 금욕적이면서도 적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르야가 부조가 새겨진 벽면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처음 보는 건축 양식이야.”
의자나 단상을 비롯한 대부분의 구조물은 석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투박했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것이 굉장히 섬세한 솜씨로 다듬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신전을 살피던 로난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이건…?”
신전의 중앙에는 웬 못생긴 바위 하나가 솟아나 있었다. 다른 종교의 신전 같으면 성물이라든가, 제단 같은 중요한 것이 놓여 있어야 할 위치였다. 그때 뒤쪽에서 사란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건 세니엘의 신상입니다.”
“신이라고요? 이게?”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먹다 남긴 옥수수처럼 생긴 바위의 어디에서도 신의 형상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간 이 돌멩이가 겪었을 세월과 노고만이 마모된 표면을 통해 전해질 뿐이었다.
참 이상한 종교였다.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내심 시릴라와 같은 것도 영 신경쓰이던 차였다.
“저기요, 사란테.”
“음? 왜 그러시죠?”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내 말 한번 따라해 볼래요? 별의 도래는 별빛이 내려오는 날.”
사란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난은 언제라도 칼자루를 잡아당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곧 알려줄게요. 일단 따라해 봐요. 어서.”
일행의 시선은 모두 사란테를 향해 있었다. 마르야는 갑자기 대검을 손질하기 시작했고, 브라움은 부조를 구경하는 척하면서 입구를 막고 섰다. 이윽고 사란테가 입을 열었다.
“그러죠. 별의 도래는 별빛이 내려오는 날.”
“음.”
“이제 무슨 뜻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요즘 바깥 세상에 유행하는 주문 같은 건가요?”
사란테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로난의 말을 따라 했다. 아하유테를 모욕하는 말을 시켜 봐도 마찬가지였다.
로난은 그제야 안도하며 칼자루에서 손을 뗐다. 그는 네뷸라 클라지에라는 조직에 관해 대충 설명해 주었다. 사란테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릇된 신앙으로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세력은 언제나 존재했죠. 그러고 보니 릭소다 7세가 통치하던 때도 비슷한 조직이 있던 거 같은데···.”
“릭소다···?”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역사 수업 시간에나 들어본 이름이었다. 천년제국 발론이 아직 변방의 소국에 불과할 때 대륙 중부를 다스렸던 왕국이었다. 로난의 침묵을 해석한 사란테가 무안하다는 듯 웃었다.
“음, 또 이 땅의 주인이 바뀌었나 보군요.”
“당신 도대체 몇 살이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세는 것은 천 년도 전에 그만둬서요.”
로난이 고개를 내저었다. 장수 종족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종종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이 파괴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란테는 현재 대륙의 정세에 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해 왔다.
“허어, 그 마룡 오르세가 패주하다니. 이건 정말 놀랍군요. 필멸자들의 격이 그토록 높아졌을 줄이야.”
“초대 황제와 오르세의 전쟁은 이제 동화책에나 나오는 이야기죠.”
“저도 백 년에 한 번씩은 바깥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군요···아, 드시지요. 이곳 바이디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차입니다.”
대화를 마친 사란테는 일행에게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건넸다. 푸른빛을 띠는 차에서는 온갖 허브의 향취를 극대화해놓은 듯한 향이 났다.
“아, 고마워요.”
사상검증은 끝났지만 아직 방심할 수는 없었다. 로난은 사란테가 잔을 비우는 걸 보고 나서야 차를 마셨다. 뜨거운 액체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로난의 눈앞이 부옇게 변했다.
“어? 이게 왜···.”
로난이 연신 눈을 깜빡였다. 흐릿한 시야 저편에서 사란테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후후후···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누, 눈이!”
“이게 무슨···!”
다른 일행의 당황 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제기랄, 독이라도 넣은 건가? 로난이 라만차를 뽑아들려는 차였다. 별안간 흐리멍텅한 시야가 맑게 개이더니 박하밭에 들어간 것처럼 눈이 시원해졌다.
“···개운하네?”
“후후···그뿐만이 아닐 겁니다.”
눈의 피로가 싹 사라져 있었다. 사란테는 당황하는 일행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아셀이 감탄을 터트렸다.
“마, 마나가···! 너무 잘 보여···!”
“와하하! 이거 굉장하군, 내가 오러를 개화하기라도 한 건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브라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로난은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눈을 비벼댔다. 주위를 떠다니는 마나가 몇 배는 선명하게 보였다.
“니미, 이게 뭔···.”
눈알을 뽑아서 포션에 씻은 뒤 다시 집어넣은 것 같았다. 범위도 훨씬 넓어지고, 미약하게나마 사람들의 몸 속에 있는 마나도 언뜻언뜻 보이고 있었다.
마법사의 자질을 타고난 게 아니라면 원래는 오러 개화 수준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체득할 수 있는 시야였다. 로난이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제기랄, 뭘 먹인 거예요?”
“마나 친화력을 높여주는 약초를 배합해서 만든 차입니다. 지금은 한시적인 효과에 불과하지만, 꾸준히 마시면 분명 장기적으로도 친화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겁니다.”
“엄청 고맙긴 한데, 이건 무서울 정돈데요.”
“후후···이것도 받으시죠.”
사란테가 큼직한 자루를 내밀었다. 안에는 그가 바구니에 담고 있던 것과 같은 약초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또한 사란테는 일행 개개인에게 그런 자루를 하나씩 주면서 차의 레시피까지 알려 주었다.
“참,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아예 며칠 머물다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머물다 가라고요?”
“네. 혹시 불편하시면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렇게 어리고 유망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워낙에 드물어서요.”
하긴 순례자들이라고 해봤자 사란테처럼 최소 천 년씩은 묵은 엘프 늙은이들일 터였다.
로난은 일행을 돌아보았다. 하나같이 수상쩍은 차의 효능에 놀라워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난 좋은데 니들은 어때, 괜찮아?”
“나, 나도 좋아. 그 말을 타려면 마음의 준비도 조금 필요하구···.”
“나도 찬성. 지맥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
“와하하하! 나는 아무 상관 없다! 이거 한 잔만 더 주시겠습니까!”
일행은 전원 찬성표를 던졌다. 침묵하던 로난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약한 의구심만으로 거절하기에는 너무 좋은 제안이었다.
“그럼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해요 사란테.”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신전에서의 짧은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란테는 로난 일행을 극진히 대접했다. 그는 지맥의 부산물을 채취해 가는 것을 막지 않았고, 되려 더 좋은 것들을 가져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날 오후 사란테는 일행을 데리고 어느 동굴 안으로 향했다. 종유석까지 마석화가 진행되어 있을 정도로 마나의 밀도가 높은 곳이었다. 사란테는 동굴 깊숙한 곳에 널려 있는 마석들을 두루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여기에서 나는 마석들이 그나마 괜찮더군요.”
“괘,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대부분 최고 등급을 받고도 남을 마석이에요···!”
“필요하시다면 마음껏 가져가세요. 누군가는 사용해야 의미가 생기는 존재들이니.”
마르야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녀는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말과 함께 엄선한 마석들을 골라서 배낭에 담았다. 보람찬 하루를 마친 그날 밤. 사란테는 큼직한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왔다.
“오늘 저녁은 이걸로 하시죠. 바이디안의 마나를 머금고 있어서 맛이 썩 훌륭하답니다.”
“···당신 엘프 맞아요?”
“허허,그 선입견은 아마 엘프가 멸종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 같군요. 물론 육식을 지양하는 동족이 다수기는 하지만, 저처럼 세니엘을 숭상하는 이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닌 순환의 시작이니까요.”
사란테는 여지껏 보아온 엘프와는 사고방식이 달랐다. 자기네들의 영역에서 토끼 한 마리라도 죽이면 화살을 쏴붙이는 여타 귀쟁이들과는 달리 자연이 소모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전의 뒤편에는 고기를 굽기 위한 화덕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란테는 매우 능숙한 솜씨로 멧돼지 고기를 요리해서 대접했다.
과연 마나를 듬뿍 머금은 고기는 지금까지 먹어온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란테는 정신없이 고기를 뜯고 있는 일행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후후후···내일은 더 특별한 고기를 맛보여 드리겠습니다.”
우연찮게 그 말을 들은 로난의 눈이 커졌다. 끔찍한 가능성 몇 개가 머릿속에 번득였다.
사란테의 표정만 보면 오늘 밤 아셀이 사라지고 다음날 식탁 위에 난생 처음 보는 고기가 올라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르야가 이빨에 끼어 있는 빨간 머리카락을 발견하는 것으로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지. 이상하게 친절하다 했는데,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시는군.’
하지만 로난의 염려가 무색하게도 그날 밤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사란테는 다음 날 점심 거대한 사슴 한 마리를 잡아왔다. 어지간한 순록보다 덩치가 큰 사슴이었다.
‘···시발?’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표정을 본 사란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혹시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뇨···그냥 어제 특별한 고기가 어쩌고 하시는 걸 들었는데,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어서요. 내가 오해를 한 모양이네요.”
“핫···! 그걸 보셨습니까···?”
“네. 나는 틀림없이 우리 중 하나가 밥상에 올라올 줄 알았지 뭐예요.”
“아아···불안하게 해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귀한 손님들이 간만에 찾아오신 터라 주책맞게 들떠 버렸군요.”
사란테가 면목없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사슴고기는 그날 저녁에 바로 식탁에 올라왔다. 과연 특별한 고기라 그런지 맛이 끝내줬다. 뒷다리 한 쪽을 통째로 해치운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무 예민했군.’
이쯤 되면 인정해야 했다. 사란테는 그냥 사람 좋은 늙은이였다. 문득 이렇게 괜찮은 작자가 살던 신전을 누가 파괴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누가 앙심을 품고 저지른 짓은 아닌 거 같고.’
신전이 아직까지 건재하다는 점과 폐허에서 느껴지던 세월감을 대조해 본 로난은 그 일련의 파괴 행위가 조만간 벌어진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로난은 기억을 더듬으며 폐허의 풍경을 떠올렸다. 기둥 몇 개만 남긴 채 완전히 박살 나 있던 신전의 잔해에서는 어떤 악의나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로난은 신전을 그 꼴로 만들 만한 유력한 후보들을 간추리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세 개의 후보가 나왔는데, 하나는 어찌할 수 없어도 두 개는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잘 됐군. 몸도 근질근질했는데.’
로난은 그날 밤 사란테가 없는 자리에 일행을 불러 모았다. 자다 깬 마르야가 하품을 하며 물었다.
“흐아아아암···이 밤중에 무슨 일이야?”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나서.”
“좋은 생각···?
“여기 뜨기 전에 근처에 있는 오크 촌락들이나 치우고 가자. 커스 아이도 더 찾아볼 겸.”
“뭐?”
마르야를 비롯한 일행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게 갑자기 무슨 개소린가 싶었다. 로난은 담뱃대를 입에 문 채 말을 이었다.
“우리 전부 저 귀쟁이 어르신한테 신세만 지고 있잖아. 먹었으면 일을 해야지.”
“그, 그렇긴 한데···.”
“그리고 실력을 늘리는 데는 실전 경험만한 게 없어요. 그렇지, 아셀?”
“히이이익···!”
아셀이 뒷걸음질쳤다. 로난은 그때 루나 고블린의 재물을 훔치러 가자 제안할 때와 같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다들 따라와.”
로난은 막무가내로 일행을 끌고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광활한 바이디안 산맥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로난은 여기저기서 아롱이는 불빛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다 좆같은 오크 촌락이야. 촌락 하나당 백에서 삼백 마리쯤 살고 있다 생각하면 돼.”
“사, 삼백 마리···!”
“우리는 오늘내일 중으로 저걸 다 치울 거야. 장담컨데 제법 괜찮은 경험이 될 거다.”
로난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행의 면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저···저걸 다?”
촌락은 족히 여섯 개는 되어 보였다. 오크 개개인의 강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수가 너무 많았다. 로난은 그런 동료들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좆나게 오래 걸릴 거 같아서 그러는 거지?”
“솔직히 그렇다. 아무리 잘 싸운다 해도 체력에 한계가 올 거다!”
브라움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이라도 지치는 순간 오크들에게 뒤덮여 버릴 터였다. 로난이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우리가 막상 칼을 맞댈 놈은 몇 마리 안 되니까.”
“음?”
로난은 눈웃음을 치며 오크 촌락들을 바라보았다. 여섯 개 중 네 개의 촌락은 산맥의 밑둥을 따라 굽이치는 강 주변에 위치해 있었다. 그는 바싹 쫄아 있는 아셀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싸우는 거랑 죽이는 건 엄연히 다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