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54)
55. 바이디안 산맥(4)
#55
로난의 눈이 커졌다. 여인은 틀림없이 사란테의 신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윽고 갈라진 입술 사이로 쐐기를 박는 발언이 흘러나왔다.
“사, 사란테···그분에게 절 데려다 주세요···.”
“사란테를 알아요?”
여인은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푹 떨구었다. 어깨를 흔들어 봐도 가쁜 숨을 토해낼 뿐 눈을 뜨지 못했다. 마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 다시 의식을 잃은 모양이었다.
“제기랄, 상태가 안 좋은데.”
“내가 데려다주고 올게.”
“발은 내가 제일 빨라. 금방 올 테니까 아셀이랑 합류해서 기다리고 있어.”
로난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여인을 들쳐멨다. 무슨 사정이 있었길래 엘프처럼 고귀한 종족이 이런 곳까지 기어 와서 죽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마르야와 브라움을 돌아보며 말했다.
“괜한 헛짓거리하다 다치지 마.”
로난은 그 말을 남긴 채 뛰어가기 시작했다. 사람 하나를 달고 있음에도 산을 타는 속도가 다람쥐처럼 빨랐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브라움이 껄껄 웃었다.
“참 착한 후배야.”
“응. 입이 더럽고 둔감해서 그렇지.”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어서 가자고.”
고개를 끄덕인 마르야가 하늘을 올려보았다. 아셀의 폭격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대단한데, 귀염둥이.”
지맥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훨씬 강력해진 염력이 눈에 띄었다. 차라리 강물에 휩쓸린 오크들이 더 신세가 낫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대검을 짊어진 두 사람이 발걸음을 옮겼다.
****
“사란테!”
“깜짝이야. 로난 님?”
로난은 삼십 분도 채 지나기 전에 신전에 도착했다. 세니엘의 신상을 닦던 사란테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결박당한 엘프 여인을 본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 분은..?”
“이 꼴로 오크 촌락 주변에서 뒹굴고 었어요. 기절하기 직전에 당신 이름을 부르길래 일단 데리고 왔고요.”
“저를 찾았다고요? 오크 촌락은 또 무슨 말씀이신지···.”
“제기랄, 일단 한번 봐요.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여요.”
로난은 여인을 길쭉한 의자 위에 조심스레 눕혀 놓았다. 다행히도 아직은 숨을 쉬고 있었다. 여인의 얼굴을 확인한 사란테가 경악하듯 외쳤다.
“세상에, 브리기아 님···!”
“아는 사람이에요?”
“네. 순례자 중 한 분입니다. 이백 년쯤 전에 뵌 게 마지막인데 어쩌다 이런 일을···!”
사란테는 그녀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세니엘을 믿는 신자라고 설명했다. 순례자들은 주기적으로 세니엘의 신상을 찾아 순례를 떠나는데, 아마 여기로 오는 도중 무슨 변고를 당한 것 같다고 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군요. 잠시만요.”
사란테는 말을 하다 말고 황급히 신전 안쪽으로 달려갔다.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작은 단지가 들려 있었다.
단지 안에는 꿀처럼 걸쭉한 액체가 들어 있었는데, 그것을 먹이자 여인의 안색이 확연하게 나아졌다. 사란테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후···일단 한시름 놓았군요.”
“빌어먹을,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포션도 잘 안 통하던데, 괜찮은 거예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증상으로 볼 때 독에 중독된 것 같아서 일단 중화제를 먹였습니다.”
“독이요?”
“네. 마나에 스며드는 계열의 독 같은데, 어디서 이렇게 강력한 독에 당했는지 모르겠군요.”
“그럼 이 밧줄은 정체가 뭐죠? 염병, 톱질하듯 썰어도 안 잘리던데.”
“이건···분명···.”
사란테가 밧줄을 살폈다. 일그러진 표정에서 평소의 나긋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윽고 밧줄에 손을 얹은 사란테가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엥?”
라만차로도 끊어지지 않던 밧줄이 교미를 마친 뱀처럼 저절로 풀어지기 시작했다. 로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어떻게 한 거예요?”
“다행히도 이 주문이 맞았군요. 아주 오래된 마도구입니다. 못 자르는 게 당연한 물건이었어요.”
그리 설명한 사란테는 브리기아를 안아서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 위에 눕혀 놓았다. 그는 물을 적신 수건을 브리기아의 이마 위에 얹어 두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큰 일을 하셨군요.”
“저 여자가 무슨 일을 당한 거죠?”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깨어나실 때까지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별 일이 다 있네요.”
사란테는 자신과 비슷한 시간을 살아온 브리기아가 어쩌다 저런 꼴이 되었는지는 도무지 추측할 수가 없다고 했다. 겨우 숨을 돌린 그가 로난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크 촌락에는 왜 다가가신 건가요?”
“네?”
“브리기아 님을 구해주신 건 정말 감사합니다. 다만 이건 듣고 싶군요. 굳이 그 위험한 곳까지 접근할 이유가 있었습니까? 잘못되셨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일부러 촌락 내부가 아니라 주변에서 발견했다 했는데도 지적을 당할 줄이야. 아마 물가에서 놀던 증손주를 혼내는 심정일 터였다.
“그게···.”
“그게?”
로난이 말꼬리를 끌었다.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틀림없이 미치광이 취급을 받을 터였다. 근 시일 내에 댁 신전을 박살낼 가능성이 높은 오크와 오우거를 말살하러 갔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그냥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다 보니 발걸음이 닿았어요. 조심할게요.”
“뒤지다니요? 뭔가 찾고 계신가요?”
“음···혹시 커스 아이라는 몬스터 알아요?”
로난은 지인이 저주에 걸렸고, 저주를 풀기 위해서 커스 아이를 잡으러 왔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사란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저주라.”
“네. 사실은 처음부터 물어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타이밍을 놓쳤네요.”
“확실히 이곳 바이디안은 커스 아이가 살 만한 장소기는 하죠.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헌데 왜 그런 위험한 해주를 하려고 하십니까?”
“예?”
“커스 아이를 활용하면 간편한 해주가 가능한 것이 사실입니다만, 저주에 걸린 이에게 상당한 부담이 가기 마련입니다. 정식적인 해주 절차를 걸치는 게 아니라 억지로 저주를 뽑아내는 거니까요.”
이건 또 처음 알게 된 정보였다. 사란테는 심하면 저주에 걸린 이가 미쳐 버리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얻을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커스 아이에게 빨린 이후 눈이 시도 때도 없이 간지럽던 것이 생각이 났다. 당시에는 마나가 보이게 될 전조현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장님이 될 전조였을 수도 있던 것이다.
“좆될 뻔했네···.”
“네?”
“아니에요. 그럼 다녀올게요 사란테.”
“다녀온다고요? 설마 이번에도 오크 촌락 쪽으로 가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없잖아요.”
로난이 등을 돌렸다. 설마 이렇게 또 신세를 지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수요일 밤까지 필레온까지 돌아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오늘 신전을 떠나야 했다.
****
“···거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니까.”
로난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촌락 하나가 추가로 궤멸해 있었다. 더는 움직이는 오크가 없는 촌락 한복판에 아셀과 마르야, 브라움이 모여 있었다.
“하하하! 혼자만 고생시킬 수는 없어서 말이지!”
브라움이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껄껄 웃었다. 그의 발치에는 대여섯 구의 오크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마르야가 대검을 크게 휘두르며 검신에 묻어 있던 피를 떨쳐냈다.
그녀의 금색 머리칼에는 붉은 핏방울이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로난이 눈썹을 으쓱이며 물었다.
“생각보다 할만했나 보다?”
“뭐, 몬스터 사냥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마음가짐이 좋네. 이 난쟁이는 아직도 한참 멀었는데.”
“그, 그러지 마아···.”
로난은 아셀의 머리를 손으로 가볍게 누른 채 앞뒤로 흔들었다. 마나를 과소모한 아셀의 눈가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참, 시타는?”
“강물에 휩쓸리고도 살아남은 오크들을 처리하고 있어. 로난 네가 시킨 거 아니었어?”
마르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난이 헛웃음 쳤다. 이제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척척 하는 것을 보니 조만간 사람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다들 고생했다. 시간도 얼마 없으니까 얼른 끝내고 가자.”
일행은 빠르게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미 이긴 상태에서 행해지는 살육은 체계적이고 확실하게 이루어졌다. 촌락 하나를 거칠수록 일행의 실력은 눈에 띄게 진보되었다.
“이, 인비저블 핸드!”
“취이익! 나 하늘 날고 있다!”
아셀은 오크들을 낙사시키는 방식으로 살생을 저질렀다. 투사체를 쏘아 살해하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는 이유였다.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높이 띄워 놓고 염력을 해제하는 주제에 그딴 소리를 해 대는 것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럼 이번에는 우리 대마법사님이 박살 내 놓은 곳으로 가 볼까.”
“히이이익···!”
아셀에게 폭격당한 두 개의 촌락에서는 거의 할 일이 없었다. 집채만 한 바위와 거목들은 건물과 오크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이미 촌락이라 부르기에도 어려운 폐허를 만들어 놓았다.
“장하다 아셀. 네 작품이야.”
역시 염력 마법이었다. 짝짝짝. 완전히 짓이겨져 있는 오크들의 시체와 건물을 보며 로난이 박수를 쳤다. 아셀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난 지옥에 갈 거야.”
그들은 촌락을 싹 뒤져서 챙길 만한 물건은 죄다 챙겼다. 그래도 오랫동안 존재해 온 촌락이었는지 모아놓은 전리품은 제법 있었다. 브리기아 외의 생존자는 보이지 않았다.
촌락 순회를 마친 일행은 다시 신전으로 복귀했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는 별개로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걸로 가장 큰 위협은 없앴다.’
사란테의 신전을 부순 것은 오크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몰려다니면서 약탈과 파괴를 일삼는 게 습성이었으니까.
개체수를 7할 이상 줄이고, 근거지가 될 촌락들을 완전히 파괴해버렸으니 살아남은 오크들은 바이디안을 떠나 뿔뿔히 흩어질 터였다.
이걸로 저 귀쟁이 영감은 한결 마음 편하게 약초를 캘 수 있겠지.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로난의 머릿속을 스쳤다.
‘이상하군. 오우거가 드물기는 해도 이 정도로 안 보이는 몬스터는 아닌데.’
사실 강물을 터트렸을 때 한두 마리 정도는 나타날 줄 알았다. 신전을 때려부순 것이 그 괴물일 가능성도 있었기에 로난은 나름 열심히 오우거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한 마리도 찾지 못했다.
‘약간 아쉽군.’
잠시 과거의 적수를 떠올린 로난이 입맛을 다셨다. 삼일 밤낮이 지나도록 승부를 내지 못한, 아마 바이디안의 패왕으로 군림했을 트윈 헤드 오우거. 지금이라도 결판을 내고 싶었는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했다. 비록 오크와 오우거. 천재지변이라는 세 개의 후보 중에서는 하나밖에 처리하지 못했지만, 오크를 제거한 이상 어지간해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터였다.
신전에 들어서자 명상을 하는 사란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로난이 인사를 건넸다.
“사란테, 우리 왔어요.”
“오셨군요. 오크 촌락 근처에는 다가가지 않았겠죠?”
“물론이죠. 그 여자는요?”
“···아직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독이 생각보다 강한 모양이에요.”
브리기아는 여전히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했다.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젠장, 괜히 신경쓰이네. 혹시 깨어나면 연락해주실 수 있어요?”
“물론이죠.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로난은 쪽지에 기숙사의 주소를 적어 건넸다. 애써 입꼬리를 올린 사란테가 말을 이었다.
“걱정 마세요. 아마 별 일 없을 겁니다. 되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브리기아 님은 꼼짝없이 참변을 당했을 거예요. 세상에 몇 남지 않은 세니엘의 신자를 잃을 뻔 했습니다.”
“첫날부터 궁금했는데, 그 세니엘이라는 게 도대체 뭐 하는 신인가요?”
“엄밀히 말하자면 신이 아닌 위대한 넋이지요. 시간을 초월하여 위대한 의지에 깃드는···.”
턱을 매만지던 사란테가 그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세니엘의 신상에 고정되어 있었다.
“옛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저 바위를 업어서 직접 다 코냐까지 옮겼었죠.”
“염병, 저걸 업어서 옮겼다고요? 다 코냐?”
“네. 세니엘을 믿는 이들의 성지입니다.”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사란테는 제국령과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다 코냐라는 성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언제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곳이지요. 우리는 천 년에 한 번씩 거대한 바위 천 개를 성지 한복판에 가져다 놓습니다. 그리고 천 년간 가만히 내버려 두지요. 천 년이 흐른 뒤에도 남아 있는 바위들이 세니엘의 신상이 되는 거랍니다.”
“그럼 바위 백 개가 남으면 그게 전부 세니엘이 되는 건가요?”
“정확합니다.”
“이런 말 하면 좀 미안한데, 진짜 이상한 종교네요. 어떻게 그걸 신상이라 부를 수 있죠?”
사란테는 신상에 손을 얹은 채 말을 이었다.
“세니엘은 신이 아닌 넋이니까요. 긍지나 신념, 사랑에 명확한 형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랍니다. 저희는 돌이 아닌,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기에 적루된 의지를 존중하여 세니엘의 신상으로 삼는 것이지요”
“난해하네요. 뭔가 멋지긴 한데···.”
천 년. 영원에 발을 들인 종족이 아니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짓거리였다. 기껏해야 엘프나 드래곤 정도일까? 세니엘에 대한 정보까지 들은 로난은 정말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일행의 짐은 올 때보다 몇 배는 많아져 있었다. 유령마가 제대로 달릴 수 있을 지나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막 신전을 뜨려는 차에 사란테가 자루 몇 개를 더 내밀었다.
“가져가세요. 여러분께 드리려고 준비해 뒀습니다.”
“뭐 이런걸 다 주고 그래요? 이미 충분히 받았어요.”
“어차피 제게는 이렇게까지 필요 없는 물건들입니다. 브리기아 님을 구해 주신 사례라 생각하시고 부디 받아 주세요.”
자루에는 지금껏 그가 줬던 약초나 마석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로난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사란테는 한사코 자루를 받을 것을 종용했다.
“이거 참···.”
나이가 최소 열 세기는 넘게 차이나는 늙은이가 그토록 저자세로 나오니 거절할 수도 없었다. 로난이 자루를 받아들었다. 사란테는 그제야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작별의 악수를 건넸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근 천년 동안 가장 즐거운 이틀이었습니다. 세니엘께서 그대들의 앞날을 축복하기를.”
“가끔 올게요. 잘 지내요.”
로난은 멋쩍게 웃으며 악수를 받았다. 사란테는 일행의 모습이 나무 뒤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먹구름 너머로 뇌광이 으르렁거리는 것이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악수한 손바닥을 바라보던 사란테가 작게 읊조렸다.
“로난.”
사란테는 한참이나 바깥에 서 있다가 신전으로 돌아왔다. 손님들이 떠난 신전에는 다시 외로운 침묵이 팽배해 있었다.
그는 굳건히 서 있는 세니엘의 신상을 지나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금까지 누워 있던 브리기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사란테는 조용히 찻주전자만 챙긴 뒤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늘 하던 것처럼 차를 한 잔 마신 뒤, 마른 헝겊으로 신상을 닦기 시작했다.
빠트리는 곳 없이 구석구석. 신상을 전부 닦은 사란테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못 본 새 많이 변했군요. 브리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