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58)
59. 중간 평가(1)
#59
“너가 여기 왜 있냐?
“왔나. 로난.”
여전히 재수 없는 상판대기였다. 관리가 안 된 듯 길어진 뒷머리가 눈에 띠었다. 슐리펜은 한층 더 날카로워진 눈매로 로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화를 좀 하지.”
“대화?”
“그래. 기다려라.”
별안간 슐리펜이 교복의 앞주머니에서 손가락만 한 스크롤 하나를 꺼내 들었다. 슈우욱! 스크롤이 펼쳐짐과 동시에 반투명한 정육면체가 두 사람을 감쌌다.
내부의 소음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차단하는 사일런트 마법이었다. 로난이 헛웃음 쳤다.
“참 꼼꼼하셔.”
“너도 주의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쥐새끼는 말 그대로 어디에나 있으니까.”
슐리펜은 같은 스크롤 세 개를 더 꺼내서 로난에게 내밀었다. 가격이 상당할 텐데 역시 부잣집 도련님다운 씀씀이였다. 스크롤을 받아든 로난이 히죽 웃었다.
“잘 쓰마. 그런데 못 보던 새 고생 좀 했나 봐? 얼굴이 반쪽이 되셨어.”
“부정은 못 하겠군. 당장 오늘까지 대대적인 숙청 작업이 있었다.”
초췌한 몰골은 며칠씩 밤을 새운 사람 같았다. 쉬어 버린 목소리에서는 피로가 뚝뚝 묻어 나왔다. 슐리펜은 지난 한 달간 그랑시아 영지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설명했다.
“열아홉 명의 배신자가 있었고, 그 중 다섯 명을 내 손으로 처리했다. 나머지는 가문의 지하 감옥에 수감하거나 로돌란으로 보냈지.”
“생각보다는 적네. 공작 아저씨는?”
“무탈하시다. 안 그래도 네게 감사를 전하라 하시더군. 조만간 보상하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다행이네. 4년이라는 말만 들었을 때는 진짜 좆된 줄 알았는데.”
로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마 원래의 역사보다는 공작이 피살당할 가능성이 낮아졌을 터였다. 슐리펜이 말을 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
“무슨 문제?”
“금제를 이용한 색출법이 더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보름째부터는 네가 알려준 구절을 따라 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더군. 절반이 넘는 인원 중에 말이다.”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슐리펜에게 서신으로 ‘별의 도래는 별빛이 도래하는 날.’ 이라는 구절을 이용한 색출법을 알려 주었었다.
“그냥 다 잡아서 그런 건 아니겠지?”
“그렇다기에는 앞선 보름간 열두 명이 그 방법으로 검거되었다. 나머지 절반 중 배신자가 없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정보가 중간에 유출된 건가? 병신같이 한 곳에 모아서 안 하고 차례대로 해서 그런 거 아냐?”
“워낙 영지가 넓고 인원이 많아 한 번에 모아서 색출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또한 돌란의 입지상 당장 작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이 터질 위험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지. 하지만 숙청 도중에 정보 통제는 확실하게 했다고 자부한다.”
“빌어먹을, 아하유테 개새끼도 시켜 봤어?”
“그래. 딱히 달라지는 건 없더군. 추측이긴 하다만, 금제가 해제되었거나 그 내용이 수정된 것 같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금제라는 게 원격으로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꿀 수 있는 거냐?”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 호위 기사 중에서만 네 명의 배신자가 더 나왔으니까···.”
슐리펜이 입술을 비틀었다. 암청색 눈동자 너머로 불신과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가 그랑시아에서 겪은 일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기랄.”
로난이 담뱃대를 빼물었다. 만약 슐리펜의 말이 사실이라면 일이 보통 귀찮아지는 게 아니었다.
‘교단 측에서도 움직이고 있는 건가. 이거 골치 아픈데···.’
특유의 ‘반짝이는’마나를 자신이 감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수한 색출법이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로난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어차피 당장은 답이 나오지 않았다.
“후···다른 방법을 더 찾아봐야겠네. 그럼 나머지 절반은 어떡하냐?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다 자르는 게 안전하지 않아?”
“인원 감축은 없다. 숙청된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정상 근무 중이다.”
“엥? 왜?”
“만약 내보낸 이들 중에 조직원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랑시아가 아닌 외부를 어지럽힐 테니까. 그랑시아에 드리운 그림자는 그랑시아가 처리한다.”
슐리펜이 담담하게 말했다. 로난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재수는 없어도 괜찮은 자식이었다.
“새끼, 좀 멋진데.”
“당연한 일이다. 아무튼 내 용건은 이걸로 끝이다. 그랑시아에 준 도움에 감사하는 바다.”
이윽고 정육면체가 사라졌다. 막 발걸음을 옮기려던 슐리펜이 검지로 테이블 위를 쓸었다. 손가락에 도톰하게 묻어나는 먼지를 본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이런 곳에서 지내는 건가? 돼지우리도 이거보단 깨끗하겠군.”
“뭔 칭찬을 못 해주겠네. 꼬우면 니가 대걸레랑 행주 가져와서 싹 치워 인마.”
“그럴 이유가 없다. 이만 가보도록 하지. 닷새 뒤를 기대하겠다.”
“뭘 기대한다고?”
“너무 학업에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 중간 평가 말이다.”
“아하.”
최근들어 바쁘다 보니 잊고 있었다. 로난은 머지않아 필레온 아카데미가 중간 평가 기간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슐리펜은 나비로제의 담당 과목인 ‘실전 상급 검술’의 중간 평가를 말하고 있었다.
“설마 다른 약자들만 상대해서 승리를 거둘 생각은 아니겠지. 나는 네가 그렇게 비겁한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털도 제대로 안 났을 애새끼가 시건방지긴. 훈련 같은 헛짓거리를 하기보다는 목이나 박박 닦으면서 기다리는 게 더 생산적일 거다.”
물론 로난은 그게 무슨 시험인지 모르고 있었다. 기껏해야 대련의 일종이라 유추할 뿐이었다. 그걸 알 리가 없는 슐리펜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한순간 분노와 불신으로 번들거리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변태 자식. 하긴 전력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대상이 동급생 중에는 나밖에 없겠지.
“그럼 기대하겠다. 로난.”
“야, 잠깐만.”
로난이 떠나려던 슐리펜을 불러세웠다. 하마터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을 뻔했다.
“뭐지?”
“너 우리 동아리 들어와라.”
로난이 진지하게 말했다. 원래는 조금 천천히 영입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계획을 앞당겨야 할 것 같았다.
네뷸라 클라지에의 오래된 역사와 퍼져 있는 정도, 위험 인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슐리펜 같은 인재는 최대한 서둘러서 데려오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예상했던 반응이 돌아왔다.
“그런 하잘것없는 짓에 할애할 시간은 없다.”
슐리펜은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등을 돌렸다. 그가 막 문을 열고 나서려는 차였다. 목청을 가다듬은 로난이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했다.
“우리 누나가 곧 제도로 이사올 거 같은데.”
끼익쾅. 문이 다시 닫혔다. 재차 사일런트 스크롤을 발동시킨 슐리펜이 로난을 마주 보고 섰다. 그 표정이 용이라도 잡으러 가는 사람처럼 비장했다.
“말해 봐라. 자세하게.”
“싫어. 동아리 부원도 아닌 놈한테 그걸 왜 얘기해줘야 하는데.”
“참여 빈도를 조절할 수 있다면 입부를 고려해 보겠다.”
“그래. 입부 신청서 지금 줄까?”
“나중에 알아서 가져가겠다. 그건 그렇고 이사라니,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훌륭한 판단이군. 이런 흉흉한 시기에 언제까지고 그런 시골에 있는 것은 위험하니까. 로난, 거처를 고를 때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이릴 양의 경우는 누가 뭐래도 안전이 가장 중요하겠지. 마침 여기 지도가 있군. 자, 봐라.”
슐리펜은 코르크 보드에 붙어있는 제도의 조감도를 가리키며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주택 후보지를 제시하는 걸로 모자라 이릴과 그녀의 살림살이를 님버튼에서 안전하게 모셔오기 위한 ‘작전’을 세 개 정도 제안했다.
“이번에야말로 용병단을 고용해야 한다. 재물을 들고 이동하면 도적떼의 표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황야의 이리 정도면 괜찮은 용병단이지. 와이번도 무리 없이 사냥하는 노련한 전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랑시아도 진짜 큰일났네.”
로난이 고개를 내저었다. 슐리펜은 전혀 개의치 않고 염병에 가까운 설명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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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슐리펜과 만난 다음 날, 로난은 별도의 보고서를 작성해 교장 크라티르에게 제출했다.
거기에는 바렌에게 보여준 것과 달리 바이디안에서 겪은 대부분의 일이 적혀 있었다. 브리기아와의 전투와 사란테에 관한 이야기까지. 보고서를 받아든 크라티르가 껄껄 웃었다.
“허허, 첫 활동부터 시원하게 저질러 줬군. 바렌 그 친구가 핼쑥해진 것도 이해가 가.”
“에이, 그 미친년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꼬인 거지 다음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닐 거예요.”
“부디 그러기를 바라네. 필레온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당하고 싶지는 않거든. 어찌 됐건 다친 사람이 없어서 천만다행일세.”
“그럼 앞으로도 활동을 허락해 주시는 건가요?”
“이미 전에 약속해버린 걸 어떡하겠나.”
로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차였다. 다행히도 첫 활동부터 폐부가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별안간 크라티르가 정색하며 말했다.
“다만 부디 그 조직은 조심하게. 그랑시아의 경우를 보면 알겠지만 심상치가 않아. 황제께서도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사안이라네.”
로난 역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장실을 나선 그는 조금씩 여명 마탑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거리가 먼 탓에 중간 평가가 끝나는 대로 출발할 생각이었다.
‘나를 위해서도 해주를 서둘러야 해. 일정을 짜봐야겠군.’
그 다음 날은 마르야가 부원들을 동아리 건물로 불러모았다. 바이디안의 부산물을 팔아서 벌어들인 돈을 분배하기 위함이었다. 쾅! 마르야가 고급스러운 나무상자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자, 받아.”
“히이익···! 이, 이, 이게 다 얼마야?”
카라벨 상단의 문양이 새겨진 상자 내부는 번쩍이는 금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브라움이 간만에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와하하하! 상상 이상으로 굉장하군. 이걸 네 사람이 나눠 가지면 되는 건가?”
“무슨 소리야? 개인 몫인데. 자, 이건 너랑 귀염둥이 거.”
쾅! 쾅! 같은 상자 두 개가 탁자 위에 올라왔다. 브라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자신 몫의 금화를 만지작거리던 로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더 보태면 그 정신병자가 추천한 집을 살 수 있겠군.’
모자란 돈은 슐리펜에게 보태 달라 할 심산이었다. 그가 추천해준 집들은 매우 훌륭했지만 하나같이 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일행은 손을 바들거리며 평생 쥐어보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돈을 가지고 갔다. 로난은 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구)사란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또 신세를 졌네요.”
백색의 바위에서는 은은하게 마나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로난은 매일 아침 헝겊으로 그 돌멩이를 닦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밀린 일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덧 중간 평가 기간이 다가왔다. 브라움과 마르야는 양해를 구하고 동아리 활동을 일시 중단했다. 딱히 시험에 대한 걱정이 없는 로난과 아셀만이 동아리 건물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셀. 오늘 시험은 어때. 잘 봤냐?”
“으, 응···그럭저럭.”
“그런데 잘 본 놈이 표정이 왜 그래? 어디서 맞고 왔어?”
“아, 아니···어제부터 어떤 여자애가 자꾸 말을 걸어서···.”
“어떤 얼빠진 계집애가 너 같은 난쟁이를 따라다녀? 취향 한번 독특한 년일세.”
“에, 에르제베트···.”
“뭐?”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에르제베트가 접근한 것은 아셀이 세 개의 필기 과목 시험에서 그녀를 누르고 1등을 차지한 뒤부터라고 했다. 대충 경위를 파악한 로난이 낄낄 웃었다.
“하긴 고 계집애도 경쟁심 하나는 끝내주지. 너한테 뭐라고 말하디?”
“자, 자꾸 공부를 어떻게 하냐 물어봐. 누구한테 배웠는지도. 나는 그냥 수업에서 하라는 대로만 했는데···.”
“재수 없는 새끼.”
“우으으···솔직히 무서워 죽겠어. 나랑은 격이 다른 사람이 왜 그러는지도 모르겠고···.”
“야, 내가 누누이 강조하는 게 뭐냐. 찌질하게 굴지 말랬지? 좀 맞으면 당당함이 생길 것 같냐?”
“히이익!”
로난이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아셀이 머리를 가리며 몸을 웅크렸다. 문득 섬광과도 같은 발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잠깐만…이거 잘하면…’
로난은 양떼가 어쩌고 하던 에르제베트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쩌면 슐리펜에 이어 그녀도 영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했어. 아셀.”
“악!”
딱! 로난은 아셀의 이마에 딱밤을 한 대 때린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셀이 이마를 쥐어 싼 채 물었다.
“어, 어디 가?”
“시험 보러.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 먼저 가라.”
로난은 라만차를 붕붕 휘두르며 건물을 나섰다. 오늘의 집합 장소는 제 1투기장이 아닌 필레온 대광장이었다.
과연 대광장의 한복판에는 실전 상급 검술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해 있었다. 평상시의 교복 차림이 아닌 저마다 다른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는 것이 평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뭐야 시발. 나만 교복이야?’
심지어는 슐리펜마저 그랑시아 가의 인장이 새겨진 상의를 입고 있었다. 그때 로난의 모습을 발견한 아데샨이 생글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앗, 여기야 로난. 내 옆에 서.”
“뭐야, 선배도 이번 시험 봐요?”
“당연하지. 나도 엄연한 수강생인걸?”
그리 말하는 아데샨의 차림새도 평소와 달랐다. 경갑을 입은 그녀의 허리춤에는 정말로 괜찮아 보이는 롱소드 한 자루가 매달려 있었다.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칼 좋네요.”
“히히, 고마워. 열심히 모아서 마련했거든.”
“그런데 왜 투기장에 안 모이고 여기로 온 거예요? 얼마나 거창한 시험을 보려고.”
“어? 몰랐어? 그러니까···핫, 오셨다!”
별안간 아데샨이 로난의 어깨를 잡아 전방으로 돌렸다. 나비로제가 위엄 있는 걸음걸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를 뒤따르는 크라티르를 본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엥? 저 사람이 여길 왜 왔대.”
“저, 정말 몰랐구나. 그래서 교복을···어, 어떡해? 얼른 내 거라도 입어···!”
아데샨이 안절부절못하며 경갑을 고정하던 끈을 풀렀다. 가까스로 그녀를 말린 로난이 한마디 하려는 차였다. 나비로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모인 것 같군. 각오는 되었나?”
“네!!”
“다들 알다시피 시험은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된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이동해서 설명하지. 모두 준비해라.”
수강생들이 재차 외쳤다. 하나같이 비장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영문을 모르는 로난만이 인상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젠장, 뭔 짓을 시키려는 거야?”
기껏해야 지명제 대련으로 추측하고 있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나비로제의 옆에 서 있던 크라티르가 껄껄 웃으며 물었다.
“나비로제 양, 슬슬 괜찮겠나?”
“네. 부탁합니다.”
“허허, 그럼 이번에도 기대하고 있겠네.”
짝! 크라티르가 손뼉을 쳤다. 별안간 로난의 눈앞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