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62)
63. 중간 평가(5)
#63
-미안해요 아데샨. 그래도 나쁘지 않죠?
“아악!”
로난의 속삭임과 함께 시야가 어두워졌다. 아데샨은 자신의 목을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베, 베였어···!’
틀림없이 느꼈다. 무언가 예리하고 뜨거운 것이 목울대를 가르며 지나갔다. 바들거리며 손을 뗀 아데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피로 흥건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손에는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았다. 황급히 목을 더듬어 봤지만 상처 같은 건 나 있지 않았다. 불현듯 그녀의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군.”
“나, 나비로제 교관님?!”
아데샨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본 그녀는 비로소 여기가 나비로제의 수업이 진행되는 제1투기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탈락한 학생들이 삼삼오오씩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의료진들이 부상을 입은 학생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나비로제가 말했다.
“고개를 숙여라.”
“네?”
영문 모를 주문이었지만 아데샨은 일단 그렇게 했다. 별안간 나비로제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데샨이 당황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교, 교관님···?”
“축하한다. 삼 등이다.”
아데샨의 몸이 굳었다. 로난이 말한 대로였다. 한순간 밝아지려던 그녀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축 늘어진 머리카락 안쪽에서 음울한 목소리가 새나왔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걸요.”
“여지껏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후배를 졸졸 따라다니는게 고작이었어요.”
“아니. 에이운과의 전투에서 보여준 일격은 썩 나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말이다.”
“네? 그걸 어떻게···?”
“저길 봐라.”
아데샨이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그녀는 학생들이 전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투기장의 남쪽 벽면에 어떤 영상이 비춰지고 있었다. 새의 시야를 빌린 듯 공중에서 찍은 듯한 영상은 익숙한 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었다. 아데샨의 눈이 커졌다.
“우, 우리가 시험을 치렀던 곳이잖아요?”
“그래. 시험이 시작될 때부터 중계되고 있었다. 원래는 더 많은 시점이 있었지만 남은 건 저거 하나뿐이지.”
영상에서는 로난과 슐리펜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학생들은 제각각 할 일을 하면서도 영상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양심적으로 앞으로 저 두 명은 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검사가 아니라 마법사들의 대결 같군.”
두 개의 회오리가 몸부림치며 숲을 부수고 있었다. 로난과 슐리펜의 형체가 한순간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카아앙! 두 사람이 맞닿을 때마다 투기장이 진동할 정도의 금속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비로제가 말했다.
“저 둘을 참고하려 들지는 마라. 여러모로 이상한 놈들이니까.”
“···네. 알고 있어요.”
아데샨은 습관적으로 옷깃을 여몄다. 분석하고 싶어도 눈이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규격 외의 오러를 다루는 슐리펜도, 거기에 맞서는 로난도 정상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나비로제가 눈썹을 으쓱였다.
“그나저나 그 외투는 네 게 아닌거 같다만. 내가 생각하는 놈의 것이 맞나?”
“네? 이, 이건요···그러니까···.”
아데샨은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붉어진 조교의 얼굴을 올려보던 나비로제가 코웃음 쳤다.
“됐다. 사나워도 괜찮은 놈이니 잘 해 봐라.”
“그런 거 아니에요!”
아데샨이 빽 소리쳤다. 그녀는 이 성급한 염문설을 필사적으로 부정했지만 끝내 외투를 벗지는 않았다. 영상 속의 전투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카앙! 금속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학생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전투가 개시된 지 삼십 분이 지났다. 언덕을 내려온 로난과 슐리펜은 숲을 전장 삼아 싸우고 있었다. 슈아악! 슐리펜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발사되는 검기가 나무들을 토막내고 있었다. 가까스로 몸을 숙여 검기를 피한 로난이 그에게 쇄도하며 소리쳤다.
“뒈져라!”
로난이 쓰러진 나무를 밟으며 도약했다. 그는 수직으로 제비를 돌며 검을 내리쳤다. 마나의 흐름을 타고 가속된 나비로제의 회전검이었다.
“윽···!”
막거나 흘릴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슐리펜은 전방으로 검기를 쏘아내며 반동으로 몸을 뺐다. 콰아앙! 그가 있던 자리의 지면이 깔끔하게 양단되며 깔려 있던 낙엽들이 위로 솟구쳤다. 로난이 땅에 박힌 라만차를 뽑아드는 찰나, 슐리펜의 참격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염병···!”
로난은 황급히 검을 들어 올렸다. 카가강! 허공에 불똥이 튀어 오르며 세 번의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낙엽을 걷어차서 시야를 가린 로난이 몸을 뒤로 물렸다.
“이 당돌한 새끼. 그건 또 언제 베꼈냐?”
“좋은 기술이더군.”
“내가 이래서 천재들이 싫어.”
로난이 헛웃음 쳤다. 한 번의 획으로 압축된 세 번의 참격. 로난이 슐리펜과의 첫 대면 당시 사용한 기술이었다. 질세라 뛰쳐나간 로난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 연달아 충돌하던 두 칼날이 맞닿은 채 멈춰 섰다.
두 사람은 비적이는 칼날 너머로 서로의 행색을 훑을 수 있었다. 핏기가 빠져나간 슐리펜의 얼굴을 본 로난이 낄낄 웃었다.
“꼴이 볼 만 하구만. 슬슬 어지럽지?”
늘상 차분하던 암청색 머리칼은 헝클어진 지 오래였다. 그의 오른쪽 옆구리와 왼쪽 어깻죽지에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피가 멎지 않는 것이, 시간만 끌면 과다출혈로 쓰러질 것 같았다. 슐리펜이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만.”
“그건 맞아.”
하지만 로난의 상태도 결코 더 낫다고는 할 수 없었다. 심하다면 더 심한 수준이었다. 앞머리에 맺힌 핏방울이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미처 자르거나 피해내지 못한 폭풍검의 여파는 그의 전신에 수십 획의 깊고 얕은 자상을 새겨 놓았다. 이미 넝마가 된 상의는 피에 절어서 몸에 들러붙어 있는 수준이었다. 서서히 다리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젠장, 끝을 내긴 해야 하는데.’
슐리펜은 로난의 속도에 점점 적응하고 있었다. 과연 대륙 제일의 천재였다. 변수를 유발할 지형지물이 많은 숲에서 승부를 내야 했다. 별안간 슐리펜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난 기쁘다. 로난.”
“갑자기 뭔 개소리야?”
“진심이다. 너 같은 맞수를 내려준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웃기는 새끼네 이거. 얌마, 세상에서 너가 가장 센 줄 알아?”
로난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물론 몇 년 뒤에는 그렇게 될 것이다. 약관을 넘긴 슐리펜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륙 제일의 검사였다.
허나 지금은 아니다. 당장 나비로제의 오러만 봐도 뱀 앞의 쥐새끼처럼 굳어 버릴 것이고, 현 검성 자이파와는 세 합도 겨루지 못한 채 목이 날아갈 터였다. 로난이 그의 오만함을 꾸짖으려는 차였다.
“물론 세상에는 나보다 강한 이들이 많다. 아직은 말이지. 하지만 내게는 그들을 모조리 뛰어넘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자이파나 나비로제 누님도?”
“그렇다.”
“이거 내 생각보다 더 재수 없는 놈일세.”
로난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슐리펜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로난, 네게서는 유일하게 그런 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 너는 더 강해질 거다. 어쩌면 나보다 강해질지도 모르지.”
“그건 나도 알아.”
“나는 이 승부에서 모든 것을 보여줄 생각이다. 그러니 너도···”
순간 주위의 마나가 슐리펜의 몸으로 소용돌이치며 빨려들었다. 로난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피를 마신 라만차의 검신 위로 예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검을 밀어낸 슐리펜이 토해내듯 외쳤다.
“전부를 보여라!”
두 사람의 몸이 떨어졌다. 마나의 기류를 읽은 로난이 다시금 강격을 준비하는 차였다. 폭풍의 오러가 슐리펜의 검을 휘감으며 올라왔다.
“또 지랄을···!”
욕지거리를 내뱉은 로난이 황급히 멈춰섰다. 사선으로 뿌려진 슐리펜의 검이 넓은 호를 그렸다. 후우웅! 거대한 반달 형상의 검기가 로난을 향해 쏘아졌다.
‘자르면 안 돼.’
폭풍검은 다른 검기와는 달랐다. 섣부르게 잘랐다가는 착탄 지점에서 솟구친 회오리에 당할 수도 있었다.
지금 입은 부상 대부분도 싸움 초반에 생긴 것이었다. 멋모르고 베어낸 검기는 두 개의 회오리가 되었고, 그대로 로난의 몸을 찢어 놓았다.
“흐으읍!”
거의 닿을 때까지 검기를 노려보던 로난이 어깨를 비틀었다. 쐐애액! 종이 한 장 차이로 콧방울을 스친 검기가 로난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안도한 로난이 땅을 박차고 달려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쉭! 비스듬한 각도로 날아온 또 다른 검기가 로난의 발밑에 처박혔다. 로난의 눈이 커졌다.
“이 개새끼가 잔재주를···!”
먼젓번의 검기에 겹쳐 있던 탓에 보이지가 않았다. 로난은 서둘러 몸을 물리려 했지만 슐리펜이 다시 검기를 쏘아 동작을 저지했다. 콰아아아아! 폭발하듯 펼쳐진 마나의 폭풍이 로난을 집어삼켰다.
“크아아악!”
피가 튀었다. 순식간에 몸 곳곳에 깊은 자상이 새겨졌다. 로난은 검격으로 그물을 치듯 검을 휘둘렀다. 상황이 잠깐 나아지나 싶었지만, 한 번 불기 시작한 바람은 끊기지 않고 휘몰아쳤다.
머지않아 형체 없던 폭풍은 반경이 10M에 이르는 회오리로 모습을 변모했다. 가닥가닥이 검격과 같은 참격의 회오리였다. 낙엽과 바위, 송두리째 뽑힌 나무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며 분해되고 있었다.
“······후우.”
로난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더는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털썩. 슐리펜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옆구리와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발밑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잔재주라···.”
슐리펜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는 일반적인 검기 뒤에 오러를 실은 검기를 숨겨서 쏘았다. 원래의 그였다면 상상도 못할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런 승부수를 두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싸우는 도중 로난에게 허용한 두 번의 참격은 모두 심각한 중상이었다.
‘정말···짐승 같은 놈이군.’
마나로 전신의 신체능력을 강화하고 나서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슐리펜이 입에 고여 있던 피를 뱉어냈다. 그때 손목에 채워져 있는 인식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우승자는···어떤 식으로 복귀하는 거지···?’
눈앞이 흐렸다.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정상적인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람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하늘 높이 떠올랐던 물체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대부분은 형체도 없이 분해되었지만, 굵직한 아름드리나무 몇 그루만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무가 만들어낸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웠다. 적당히 베어내기 위해 칼을 집어드는 차였다. 형용할 수 없는 오싹함이 슐리펜의 몸을 타고 내달렸다.
“설마.”
슐리펜이 고개를 들었다. 나무 위쪽에서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로난과 눈이 마주친 그의 얼굴이 굳었다.
“탈락한 게 아니었나···!”
로난은 방금 지옥의 가마솥에서 건져낸 사람처럼 피를 흝뿌리고 있었다. 그는 거대한 나무에 들러붙은 뒤 쇄도해 오는 바람을 필사적으로 쳐냈다. 탈락은 면했지만, 중상을 입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이번에 끝내야 해.’
로난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는 순간 의식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는 곧장 검을 앞세운 채 슐리펜을 향해 낙하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슐리펜이 요격하듯 검기를 날렸다. 서걱! 불안정한 검기는 로난의 참격에 양단되며 그대로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슐리펜이 이를 악물었다.
“로난···!”
로난과 라만차는 어느새 목전까지 다가와 있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거리였다.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치켜든 슐리펜이 자신의 발아래를 찍었다. 콰앙! 반경이 1m정도 되는 회오리가 로난을 향해 솟구쳤다.
‘미친 자식!’
칼바람이 로난을 덮쳤다. 방어를 위해 칼을 휘두를 때마다 낙하 궤도가 틀어졌다.
간신히 고개를 치켜든 로난이 슐리펜을 노려보았다. 새똥만 맞아도 죽을 것처럼 위태로운 상태였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차이로 검이 닿지 않는 거리였다.
‘어떻게든 한 번만···!’
결국 로난은 방어를 포기하고 자세를 잡았다. 순식간에 파고든 예기 서린 바람이 몸 곳곳을 할퀴며 지나갔다. 숨을 고른 슐리펜이 참격을 날렸다. 그때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이 로난의 전신을 타고 내달렸다.
“씨발!”
원인불명의 통증에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의문을 가질 새는 없었다. 그는 참격이라도 받아칠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찰나의 순간, 로난은 아주 가느다란 파장 같은 것이 자신의 검로를 따라 쏘아지는 것을 보았다.
“어?”
서걱! 슐리펜의 가슴에 붉은 선이 생기며 피가 튀었다. 동시에 궤도를 비튼 참격이 로난의 목을 내리쳤다. 두 사람의 모습이 일그러지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