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
8. 백작이 될 소녀(2)
#8
“이거 좀 이상하군요.”
“뭐가요?”
두온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침음을 흘렸다. 그는 구체를 로난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도저히 재질이 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때는 애완동물도 취급했던지라 식견이 좁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이런 건 난생 처음 보는군요.”
“썅···정말 알이 아니라 똥이었나?”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언하는 말투에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가판대 아래를 뒤적이던 두온이 작은 망치 하나를 꺼냈다. 무쇠로 만들어진 머리의 한쪽 면에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미스릴을 덧씌운 감정용 망치입니다. 우리 가게에서 가장 비싼 물건 중 하나지요.”
그는 망치로 구체를 톡톡 두드렸다. 일반적인 타격음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로난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 소리는···.”
“미스릴의 특성을 알고 계신가요?”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속의 왕자라 불리는 미스릴은 그보다 단단하거나 동급의 경도를 지닌 물질과 부딫히면, 방금과 같은 고유한 소리를 내는 성질이 있었다.
“이리 줘 봐요.”
“어엇? 손님?!”
망치를 낚아챈 로난이 다시금 구체를 내리쳤다. 챠아앙! 요란스레 울려퍼지는 금속음에 시장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도대체 뭘 싸고 간 거냐.”
로난이 혀를 내둘렀다. 나름대로 힘을 주어 내리친 건데 구체에는 생채기 하나 남지 않았다. 구체의 경도가 미스릴과 비슷하거나 더 단단하다는 의미였다. 두온 역시 감탄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확실한 건···뭐든 간에 대단한 물건이군요.”
확실히 똥이든 알이든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로난은 후자의 경우가 조금 더 두렵게 느껴졌다. 만약 이게 알이라면, 어떤 생명체가 이 껍질을 깨며 나온다는 뜻이었으니.
“혹시 판매하실 건가요? 구매 의사는 있습니다만···.”
“예? 아뇨, 그냥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뭔지도 모르는 걸 팔 수는 없죠.”
“저도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감정을 받아 보세요.”
로난은 구체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궁금해서라도 팔고 싶지 않았다. 더 잘 아는 사람을 찾거나, 바렌이라는 작자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때 아셀이 로난의 등을 콕콕 찔렀다. 그는 입모양으로 ‘필레온’ 이라는 단어를 말해 보였다. 손뼉을 치며 몸을 돌린 로난이 다시 두온에게 말을 걸었다.
“참, 물건을 가리지 않고 사고파시는 거 같은데 혹시 필레온에 관련된 책도 있어요?”
“음? 필레온 아카데미 말씀이십니까?”
“예.”
로난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달에 입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라도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었다. 고개를 주억이며 사정을 듣던 두온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아하, 입학 지망생 분들이셨군요? 마침 잘 됐습니다.”
“잘 되다니요?”
“제 딸아이도 이번에 필레온에 응시하거든요. 작게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얘야!”
그는 가판대 뒤에 세워져 있는 마차를 돌아보며 외쳤다. 온갖 개조를 거친 짐마차는 이동 수단이자 상점이자 창고였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두온은 마차를 노크하듯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가! 마르야!”
“뭐야? 아가?”
그러자 마차의 지붕에서 머리통 하나가 쏙 빠져나왔다. 사자처럼 풍성한 금발이 인상적인 소녀였는데, 지금껏 로난이 본 여자 중에 가장 머리가 작았다.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영감태기···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오우.”
로난이 헛웃음 쳤다. 인형 같은 생김새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대사였다. 문득 머릿속에 기시감이 스쳤다.
‘음? 잠깐만. 분명···.’
작은 머리에 금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마르야. 마르야? 내가 얘를 어디서 봤더라?
기억이 날듯말듯 했다. 두온이 양손을 허리춤에 얹은 채 호통쳤다.
“마르야!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꼬우면···흐아암···독립시켜 주던가.”
“너 정말!”
마르야는 입도 가리지 않고 하품을 했다. 아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기지개를 쭉쭉 편 그녀가 단번에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사뿐한 착지는 고양이처럼 우아했다.
“그래서, 너희는 뭐야?”
그녀는 뒷짐을 진 채 소년들을 째려보았다. 나름대로 무게를 잡으려고 취한 자세 같은데, 키가 아셀보다 약간 큰 수준이라 별로 와 닿지는 않았다. 그때 두온이 그녀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아얏! 왜 때려!!”
“적당히 하려무나. 자, 인사하렴. 이번에 큰 거래를 해 주신 손님들인데, 내달에 필레온에 지원한다는구나.”
“씨이···손님이라고?”
맞은 부위를 문지르던 마르야가 소년들을 위아래로 훑었다. 꼬질꼬질한 행색은 둘째 치고 너무 어려 보였다. 그녀의 눈초리가 의심으로 가늘어졌다.
“뭘 팔았길래 큰 손님이래?”
“마르야. 상단의 철칙을 잊었니? 고객의 돈이나 물건의 출처를 묻지 않는다.”
“···아, 맞다. 죄송해요, 여러분.”
마르야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로난이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도 필레온이 아니라 ‘손님’ 이라는 점에 집중한 점도 그렇고, 싸가지는 없지만 상인으로서의 마음가짐 자체는 훌륭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두온이 함께 고개를 숙였다.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여러분. 제 하나뿐인 딸아이인데, 어릴 적부터 상단에서 남자들과 지내다 보니···다 부모인 제 잘못입니다.”
“괜찮아요. 그나저나 너, 고개 좀 들어 볼래?”
“네? 왜요?”
마르야가 고개를 들었다.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는 자로 잰 것처럼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물빛 눈동자는 남부의 바다처럼 은은한 초록색이 감돌았다.
상당한 미인이었다. 물론 이릴 누나에 비하면 병아리 오줌보다 못한 수준이지만.
“으으응?”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저씨, 하나뿐인 딸이라고요?”
“네? 아, 예. 그렇습니다.”
“이상하다···혹시 숨겨놓은 아들 같은 거 없어요?”
“예···?”
“잘 생각해 봐요. 왜, 우리 수컷들은 종종 실수를 하잖아요. 소위 말하는 젊은 날의 과오라던가···.”
두온의 얼굴에 당혹이 서렸다. 술을 다섯 병쯤 해치웠다 해도 딸 앞에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싸해진 분위기를 감지한 아셀이 로난의 소매를 꾹꾹 잡아당겼지만, 그의 주둥아리는 더욱 천박한 예시들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접시 닦는 하녀의 엉덩이가 유난히 탐스러워 보이던 밤이라던가···정말 없어요?”
“이게 진짜 듣자 듣자 하니까!”
짝! 바람처럼 날아온 마르야의 손바닥이 로난의 따귀를 후려쳤다. 홱 돌아간 고개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났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 우리 아빠한테 무슨 소릴 하는거야!”
“로, 로난···괜찮아?”
“이 손맛···.”
로난은 뺨을 매만지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성질이 확 뻗쳤지만, 동시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눈앞의 소녀는 자신이 알던 사람이 맞았다.
로난이 말했다.
“너, 중간 이름이 혹시 ‘센’이냐?”
씩씩대던 마르야의 눈동자가 커졌다. 열 살 즈음에 멋대로 지은, 오직 자신과 두온만 알고 있는 중간 이름이었다.
“그, 그걸 어떻게···!”
로난이 쓰게 웃었다. 역시 한 걸음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과거의 인연을 마주칠 줄이야.
‘제기랄, 아르말렌 백작. 당신···여자였군.’
****
로난이 그녀를(당시에는 ‘그’로 알고 있었지만) 처음 만난 것은 징벌병으로 구른 지 2년이 다 되어 갈 무렵이었다.
투칸 고원이라는 북부의 오지에서 웨어울프들과 두 달째 싸우고 있었는데, 웬 곱상한 귀족 나리께서 지원품을 잔뜩 싸들고 방문한 것이다.
“아르말렌을 다스리는 센 백작이라 하오.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하고자 찾아왔소.”
백작은 머리를 짧게 자른 중성적인 미남이었다. 비밀이 풀린 지금은 당연한 소리지만, 마르야와 똑 닮아 있었다.
그는 일 년은 먹을 군량으로도 모자라 전 장병에게 값비싼 은제 무기를 지급해 주었다. 황제 다음가는 자산가라는 소문에 걸맞은 씀씀이였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상인들은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하는 법이니까. 웨어울프의 약점인 은제 무기를 지급한 것은 빨리 저 털북숭이들을 내 사업장에서 내쫒으라는 의미와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의 속내를 알았다. 하지만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었기에, 로난을 비롯한 병사들은 백작의 이름을 연호하며 감사를 표했다.
“오우! 부자들이 이래서 좋다니까! 제 물구나무 박수를 보십쇼 센 백작님!”
“내 엉덩이를 가져요 센!”
아무튼 백작이 찾아온 당일, 그는 성대한 연회를 벌였다. 난생처음 보는 좋은 술과 음식의 향연에 징벌병들은 쌓여 있던 회포를 풀 수 있었다.
가장 우수한 전사인 로난은 백작의 옆자리에 앉았다. 센은 귀족답지 않게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잔이 서른 잔쯤 오갔을까? 술을 따라주던 로난이 혀가 잔뜩 꼬부라진 목소리로 지껄였다.
“히끅, 궁금한 게 있는데요 백작님···히끅, 아래쪽도···금색입니까?”
“끄윽, 아래쪽···이라니?”
“거 왜, 있잖습니까. 거시기랑, 뒷구녕 쪽에 난···털 말입니다···히끅! 귀족은 혹시 다르나 해서. 으헤헤.”
“···이놈!!”
얼굴이 시뻘게진 백작이 로난의 뺨을 후려쳤다. 두 바퀴를 구르며 나가떨어진 로난은 그대로 술병을 들어 백작의 머리를 내리쳤다. 와장창! 연회는 그렇게 끝났다.
‘···화를 내던 이유가 있었군.’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하유테와의 일전을 벌이던 때였다. 백작이 끌고 온 사병들의 규모는 일개 군단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그는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고자 선두에 섰고, 개전 첫날 폭발에 휩쓸려 죽었다.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로난은 입술을 비틀며 시선을 내렸다. 여전히 씩씩대고 있는 마르야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내리자 벌써부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가슴이 보였다. 도대체 저걸 어떻게 숨겼을까? 나중에는 더 커졌을 텐데.
“너 그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아니, 그보다 빨리 아빠한테 사과해!”
마르야가 빽 소리쳤다. 아셀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로난은 한쪽 손을 들어 딸을 혼내려는 두온을 제지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네요.”
아셀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두온은 안절부절못하며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로난은 그대로 굳어 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 뒤 다른 손님이 찾아와서 두온이 자리를 비우자, 로난은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마르야가 팔짱을 낀 채 콧방귀를 뀌었다.
“흥, 사과는 빨라서 좋네.”
“너한테 한 거 아니야. 이 싹퉁머리 없는 계집애야.”
빠아악! 몸을 일으킨 로난이 마르야의 정수리에 주먹을 꽂았다. 두온의 사랑이 담긴 꿀밤과는 차원이 다른 강도였다. 마르야는 거의 땅에 박히듯이 주저앉고 말았다.
“으아···으아아···!”
“뒈지기 싫으면 내 얼굴에 손대지 마. 알았냐?”
로난이 엄포했다. 아르말렌 백작이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남장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아는 백작은 대륙 최고의 거상(巨商)이었다. 친목을 쌓아두면 틀림없이 큰 힘이 될 터였다.
“알았냐고.”
“로, 로난···이제 그만···.”
그러나 굽신거리면서까지 친목을 쌓고 싶지는 않았다. 로난이 두온에게 한 말은 분명 무례한 처사였다. 딸의 입장으로서 분노하는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얼굴을 맞으면 기분이 나빴다. 그 외의 인과관계는 사실 알 바가 아니었다.
“히···히이이잉···아파아아···.”
마르야는 머리를 쥐어싼 채 일어나지 않았다. 기어코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셀이 로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너무 세게 때렸어···!”
“살살 때렸는데···젠장.”
작은 어깨가 처량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다가간 로난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그러니까 왜 그랬냐. 다음부터는 주제를 알고 차분하겍!”
쾅! 무릎을 피며 뛰어오른 마르야가 어퍼컷을 날렸다. 턱을 직격당한 로난의 몸이 휘청였다. 드러난 그녀의 얼굴에서는 눈물 비슷한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나쁜 놈아! 머리 쪼개지는 줄 알았잖아!”
주저없이 의자를 집어든 마르야가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콰작! 로난의 얼굴이 의자의 하판을 뚫고 튀어나왔다. 때 아닌 소란에 시장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소,손님! 마르야! 지금 이게 무슨···!”
“이 망할 년이…!”
로난의 주먹에 핏줄이 솟았다. 다른 손님을 맞이하던 두온은 돈까지 내던지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셀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이, 인비저블 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