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2)
82. 이사 대작전(6)
#82
멋진 저녁이었다. 바람은 선선하고 하늘은 맑았다. 침몰하는 태양이 세상을 다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거기, 후방에는 아무 이상 없나?”
“그렇습니다.”
오솔길 양옆으로 펼쳐진 풀밭이 나긋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매미가 잠잠해진 숲에서는 소쩍새의 노래가 들려오고 있었다.
마음이 절로 풀어지는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황야의 이리 용병단원들의 얼굴에는 역력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기다란 전투망치를 비껴 찬 용병단장이 근엄하게 말했다.
“경계를 풀지 말도록. 어떤 적이 나와도 상대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고 있어라.”
“넵!”
“설마 소공작께서 직접 오실 줄이야···.”
스무 명 남짓 되는 용병들이 마차 두 대를 둘러싼 채 움직이고 있었다. 작은 오두막 정도는 그대로 집어넣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짐마차와 고급스러운 여행용 마차였다.
두 마차의 측면에는 그랑시아 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번에 용병단이 맡은 의뢰는 어느 여인을 님버튼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제도까지 호위하는 것. 의뢰자는 무려 제국의 샛별 슐리펜 시니반 데 그랑시아였다.
“···타국에서 망명한 공주라도 되는 건가?”
단장이 다시금 전방을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호위 대상인 여인의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평소에는 제멋대로던 단원들이 사명감에 타오르는 것도 틀림없이 그 때문일 터였다.
슐리펜은 줄곧 이릴이 타고 온 마차 곁을 지키고 있었다. 신경을 곤두세운 채 사방을 경계하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할 정도로 잠잠하군.’
몬스터들이 날뛰고 있다는 첩보와는 달리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길 한복판에서 낮잠을 자던 고양이를 안아서 치운 것이 여태껏 일어난 돌발 상황의 전부였다.
‘오히려 더 수상해.’
괜스레 불안해진 슐리펜이 마차 안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릴은 무릎 위에서 잠든 시타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우연히 슐리펜과 맞닿았다.
“아, 슐리펜 님!”
이릴이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주저앉으려는 심장을 간신히 붙든 슐리펜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는 헛기침을 몇 차례 한 뒤, 최대한 어른스러워 뵈는 투로 말을 건넸다.
“흠흠, 어디 불편한 데는 없소?”
“네, 너무너무 편해요! 슐리펜 님도 좀 쉬다 가세요!”
이릴은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탁탁 쳤다. 슐리펜의 뇌가 돌로 변했다. 그는 입안의 살을 상당히 강하게 씹고 나서야 말을 할 정도의 지적 능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 음. 그럴 수는 없소. 임무 중이니.”
“제가 뭐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이렇게 신세만 지기 너무 미안해서요. 다른 분들도 그렇고···.”
“전혀 아니오. 으음, 바깥은 위험하니 나오지 마시오.”
“네에? 늑대라도 나온 건가요?”
“···늑대. 그래, 늑대 같은 것도 있을 수 있소.”
“저, 정말요?”
이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한 겁을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고개를 처들었다.
그가 서둘러 실언을 정정하려던 차였다. 별안간 창문 밖으로 팔을 뻗은 이릴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조심해요. 귀족이시기 전에 제 동생의 친구인데,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아? 으음. 귀족? 그래. 난 귀족의 친구지.”
“네?”
“아니오. 아, 그러니까. 나는 동생분의 귀족이라는 소리였소.”
결국 치매가 재발한 슐리펜이 얼어붙었다. 그가 의미 없는 헛소리를 연신 뱉어대던 와중이었다. 용병 한 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도, 동쪽에서 뭔가 옵니다!”
찰나 형용할 수 없는 오싹함이 슐리펜의 전신을 내달렸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력한 무언가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무슨···!”
황급히 칼을 뽑아든 슐리펜이 행렬의 선두로 뛰쳐나갔다. 쿠웅! 거대한 그림자가 행렬 앞에 착지했다.
“드디어 나왔군!”
“쏴라!”
덩치로 보아하니 몬스터가 분명했다. 바짝 긴장하고 있던 용병들이 저마다 준비했던 공격을 퍼부으려는 차였다. 그림자의 정체를 눈치챈 단장이 다급히 소리쳤다.
“저, 정지! 모두 멈춰라!”
베테랑인 단장이 저리 당황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용병들은 황급히 칼자루와 시위에서 손을 뗐다.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펼쳤다. 시커먼 웨어타이거의 모습이 석양 아래 드러났다. 그 순간 용병들은 단장이 자기네들 모두를 살렸음을 깨달았다.
“자, 자이파?”
“검성이 왜 여기에···!”
수인 중에서도 월등히 거대한 몸집. 차라리 기둥에 가까운 언월도. 칼밥을 먹는 이들 중 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검성 자이파가 눈앞에 서 있었다.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알겠군. 이리도 나약한 이들에게 호위를 맡기다니.”
그는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며 용병단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때 자이파의 등 뒤에서 웬 소년 두 명이 뛰어내렸다. 용병들과 함께 굳어 있던 슐리펜의 눈이 커졌다.
“로난···?”
“다들 잘 하고 있었구만.”
“으에엑···어지러워.”
소년들의 정체는 로난과 아셀이었다. 로난은 용병들을 감평하듯 훑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아셀은 멀미라도 앓는 사람처럼 쭈그려 앉은 채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슐리펜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이가 없다 못해 작금의 상황이 현실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느닷없이 검성이 찾아온 건 둘째 치더라도 저것들이 왜 그의 등에 타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별일 없었냐?”
“···네가 왜 검성의 등에 타 있던 거지? 아니, 애초에 검성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
“그건···굉장히 길고 거지 같은 이야기니까 나중에 해 주마.”
로난이 픽 웃었다. 자조와 냉소가 반반씩 뒤섞인 웃음이었다. 피로로 절여진 그의 얼굴은 헤어졌던 몇 시간 동안 오 년은 늙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인마, 별일 없었냐고. 몬스터 안 나왔어?”
“···그렇다.”
슐리펜은 지금껏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것도 이상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개고생을 했는데 당연히 아무 일도 없어야지. 누나는?”
슐리펜이 눈짓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공작부인이나 탈법한 마차가 행렬 한가운데 떡하니 세워져 있었다.
제기랄, 저렇게 티를 내기도 어렵겠군. 헛웃음을 친 로난이 막 발걸음을 옮기려던 차였다. 갑자기 마차 문이 벌컥 열리며 이릴이 걸어 나왔다.
“로난? 너니?”
분명히 들었다. 로난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세상에! 로난!”
거진 세 달 만에 보는 동생의 얼굴에 이릴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로난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보냈다.
“누나.”
한달음에 달려온 이릴이 그를 확 끌어안았다. 로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르바스에서 피를 씻고 새 옷을 사 입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고개를 든 누이가 그의 얼굴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왜 이렇게 말랐어? 세상에, 얼굴 상한 것 좀 봐. 설마 아카데미에서 누가 괴롭혀?”
“아카데미는 아니고···세상이 나를 괴롭히는 거 같아.”
“으응?”
“농담이야. 누나는 잘 지냈지?”
“응, 나는 너무너무 잘 지냈어! 있지 들어봐, 네 얘기를 마을 사람들한테 해 줬는데···”
오랜만에 본 누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포근한 노을이 백은발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는 감자 스튜 말고 다른 것도 먹는지 여실히 나아진 혈색이 눈에 띄었다. 이릴이 한참 재잘거리던 와중이었다. 바로 뒤쪽에서 세상이 깨지는 듯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카아아아앙-!!
“꺄악!”
“염병, 뭐야?!”
로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그는 누이의 어깨를 감싸 안음과 동시에 칼끝으로 소리가 난 방향을 겨누었다. 무기를 맞대고 있는 자이파와 슐리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미친 늙은이가.”
대번에 상황을 파악한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두 괴물의 느닷없는 격돌에 용병들은 감히 끼어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이파는 흥미롭다는 듯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호오. 버텼나.”
“···이게 무슨 짓입니까. 검성.”
맞닿은 날붙이가 비적이고 있었다. 슐리펜은 이를 부러질 정도로 악문 채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바람만 조금 강하게 불어도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자이파가 말했다.
“단순한 인사다. 제국의 샛별.”
“인사?”
자이파는 대답하는 대신 언월도를 거두었다. 그리고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악수를 내밀었다.
“자이파 터르겅이다. 네 소문이 부풀려진 것이 아닌 걸 알게 되어 기쁘군.”
“그게 무슨···.”
슐리펜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그를 올려보고 있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로난이 짝다리를 짚은 채 쏘아붙였다.
“젠장, 꼭 여기서 그 지랄을 떨었어야 했수?”
“나 다음에는 너희 둘 중 하나겠군.”
“무슨 소리야?”
“차기 검성 말이다. 동족이었다면 내가 직접 키웠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두 소년의 눈이 커졌다. 설마 검성에게 직접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자이파는 정지해 있는 마차들을 쓱 훑어 보며 말했다.
“그래서 날라 줘야 할 짐은 이게 전부인가?”
“엉. 사람은 네 명.”
“크흐흐, 이 자이파가 살다 살다 남의 이사를 돕게 될 줄이야.”
자이파가 헛웃음 쳤다. ‘다른 건 됐고 이사나 도와줘.’ 그것이 네뷸라 클라지에를 체포한 대가로 로난이 요청한 보상이었다. 별안간 용병들 사이에서 이릴이 조심스레 걸어 나왔다.
“우와아아아···! 수, 수인족?”
자이파의 모습을 본 그녀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감탄했다. 자이파가 시선을 내렸다.
“먼젓번에 말했던 네 누이인가.”
“마, 말을 했어···! 안녕하세요!”
이릴은 귀여운 동물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다가왔다. 찬찬히 그녀를 살피던 자이파가 로난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끔찍이 여기는 이유를 알 것 같군.”
“그치?”
로난과 슐리펜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불현듯 자이파가 이릴에게 악수를 내밀었다. 두 사람이 당했던 지랄 맞은 인사가 아닌 평범하고 다정한 인사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손을 맞잡은 이릴이 손을 붕붕 흔들며 말했다.
“와아, 엄청나게 체격이 좋으시네요. 저 수인족은 처음 봐요!”
“아가씨는 이름이 뭐지.”
“저는 이릴이에요! 와아아, 손바닥이 말랑말랑해···조금만 더 만져도 될까요?”
“마음대로 해라.”
이릴은 아이처럼 웃으며 자이파의 육구를 만지작거렸다. 지켜보던 용병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그 자이파가 전사로서 인정하지 않은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모자라 손바닥을 만지게 해 주다니. 그때 용병 중 한 명이 다시금 동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뭐가 더 온다!”
“제, 제국군?”
거대한 그림자 몇 개가 숲 위로 솟구치더니 행렬 주변에 착지했다. 임무 때문에 잠시 떨어졌던 자이파의 부하들이었다. 부관이라 불리던 웨어라이온이 자이파에게 경례했다.
“대장님. 끝내고 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소년의 말대로 노인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아덴의 피바람이라 불리던 현상 수배범으로···”
부관이 말을 이었다. 그녀는 카디온을 로돌란에 송치한 것, 여인과 노인의 시체를 추렸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자이파와 로난은 묵묵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딱히 걸리는 것이 없는 걸로 보아 이번 네뷸라 클라지에의 음모를 저지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다, 단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황야의 이리 용병단은 전대미문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소공작과 검성 자이파로 모자라 느닷없이 불거진 제국군 수인들에게 포위당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단장 또한 들은 바가 없어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부하들과의 대화를 마친 자이파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입에서 특유의 압도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다들 걸리적거리니까 썩 사라져라.”
단장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밖에 없었다. 재작년에 와이번 무리를 잡았을 때보다 많은 돈을 선금으로 받아서 딱히 불만은 없었다.
다만 호위 대상인 여인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질 뿐이었다. 망명한 타국의 공주가 아니라 황제의 숨겨진 딸 정도는 되어야 납득이 될 것 같았다.
제국을 양분하는 그랑시아 가의 소공작. 역대 최강의 검성으로 불리는 자이파 터르겅과 그 직속 부하들. 묵례를 보낸 용병단장이 벙찐 채 입을 열었다.
“···행운을 빌겠소.”
짐마차를 들쳐 멘 수인들이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석양을 등진 채 질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디 나라 하나를 멸망시키러 가는 것처럼 보였다.
****
이사는 전대미문의 속도로 이루어졌다. 자이파를 비롯한 열세 명의 수인들이 이사를 도왔다.
로난과 이릴, 아셀과 슐리펜은 귀찮게 하지 말라는 자이파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마차에 탑승한 채 이동했다.
힘이 좋은 웨어베어와 웨어라이온들이 짐마차와 말을 날랐다. 로난 일행이 타고 있는 마차는 자이파가 직접 들어서 옮겼다.
마차를 들지 않는 인원들은 모두 호위에 투입되었다. 수인들은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입체적인 방어 진형을 펼쳤다. 무시무시한 행렬을 본 마르바스의 시민들이 소란을 일으켰다.
“기, 길을 비켜라! 검성이 지나간다!”
“누구의 마차지? 화, 황제 폐하라도 타 계신 건가?”
그들은 마차와 말을 짊어지고 있음에도 말보다 빠르게 길을 내달렸다. 자이파가 작전을 수행 중이라는 핑계를 댄 덕에 그들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산악도로를 넘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복실복실한 이사 업체는 월요일 아침이 밝기도 전에 제도에 도착했다. 수인들은 짐마차와 일행을 새로운 집 바로 앞에 친절하게 내려 놓았다. 마차에서 내린 로난이 자이파의 다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고마워. 덕분에 편하게 왔네.”
“흠. 제도는 오랜만이군.”
자이파는 감사에 답하는 대신 흥미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제도에 오는 것이 거의 삼 년 만이라고 설명했다. 언제나 임무 때문에 대륙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탓이었다.
“여, 여기가 정말 우리 집이야?”
“응.”
새 집을 본 이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2층짜리 석조 주택은 제도에서도 상당한 부유층이 살아가는 구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로난과 슐리펜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선택한 이 집은 안전이나 편의성은 물론, 필레온 아카데미의 동문에서 육로로 5분 거리로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접근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릴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로, 로난···아무리 봐도 집을 잘못 찾아온 거 같은데···.”
“우리 집 맞다니까. 들어가자.”
로난은 이릴의 손을 잡은 채 집안으로 들어섰다. 아셀과 슐리펜이 차례로 뒤를 따랐다. 자이파에게도 권유했지만 그는 간만에 제도의 공기를 만끽하고 싶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현관문을 열자 넓고 아름다운 실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로난은 이릴이 감탄할 여지를 주지 않고 곧바로 계단을 올라갔다. 별도의 조명이 켜져 있지 않은 2층은 고즈넉한 달빛에 휩싸여 있었다. 이릴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와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