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87)
87. 계절은 봄을 넘어 여름으로(4)
#87
콰장창!! 작은 동물들을 가둬 놓은 우리가 연달아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벽이 통째로 무너지는 듯한 광경을 본 로난의 입이 나지막이 벌어졌다.
“대장군님.”
저도 모르게 말이 헛나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능력이었다. 전생 때 본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미약했지만, 같은 궤의 힘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로난은 아데샨을 부축하며 동물원이 되어 가는 연구실을 감상했다.
“아직은 작은 동물들이 한계인가.”
-찍! 찍찍!
-피요오옷!
우리에서 벗어난 동물들이 마구 날뛰고 있었다. 참새들이 날아다니며 새똥을 갈겼다. 그새 무리를 이룬 새앙쥐들이 복잡한 기계장치 속으로 숨어들었다. 대부분이 설치류나 소형 조류인 터라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난장판을 만들기에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 난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동물을 가둔 우리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자로딘이 눈살을 찌푸렸다.
“젠장.”
값비싼 마도구들이 실시간으로 망가지고 있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석재로 된 바닥이 일어서며 벽면을 가로막았다. 기절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데샨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좀 괜찮아요?”
“로난? 핫···!”
아데샨이 눈을 떴다. 자신이 로난에게 안기다시피 기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미, 미안. 무거웠지···!”
“괜찮아요.”
로난이 픽 웃었다. 약간의 씁쓸함이 묻어나는 웃음이었다. 인간미가 넘치는 아데샨의 반응이 다시금 그를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알고 있었다. 능력을 개화한다고 당시 대장군의 인격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실을 둘러본 아데샨이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선배 작품이에요. 죽여주죠.”
“내가 한 거라고?”
“됐으니까 이리 모이라고 말해 봐요. 아직 생각만으로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영문 모를 소리에 아데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난은 턱 끝으로 동물들을 가리키며 대답을 대신했다. 결국 그녀의 입에서 의혹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리 모여?”
그 순간 이변이 벌어졌다. 요란하던 연구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이어서 난동을 부리거나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동물들이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발밑으로 몰려드는 들쥐들을 본 아데샨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뭐, 뭐야?!”
높은 곳에서 떨어진 동물들의 상태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날개가 부러져서 이족보행을 하는 카나리아도 있었고, 배에 유리조각이 박혀 죽어가는 들쥐도 있었다. 그럼에도 동물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아데샨에게 다가왔다. 로난이 말했다.
“그게 선배의 능력이에요.”
“···생쥐 모으기?”
“지금은 그렇죠. 이번에는 우리로 돌아가라고 말해 봐요.”
동물들은 제식 훈련을 받는 군인이라도 된 것처럼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해 있었다. 아데샨은 그들의 눈에 탁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가 재차 입을 열었다.
“우리로 돌아가.”
그러자 다시 이변이 발생했다. 모여 있던 동물들이 바닥에 널브러진 우리 중에서 멀쩡한 것 하나를 찾아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문득 극심한 현기증을 느낀 아데샨이 고개를 내저었다. 동물들의 눈에 끼어 있던 탁기가 사라졌다.
“끼이익?!”
“삣!”
제정신이 돌아온 동물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들이 다시금 사방으로 뛰쳐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쿠구궁! 바위로 이루어진 반구가 그들을 뒤덮었다. 뒤쪽에서 자로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했다.”
“교수님···!”
자로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곤욕을 치를 뻔 했다. 마도구 깊숙이 숨어든 동물들을 억지로 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대지 마법을 활용하여 난장판이 된 연구실을 복구했다. 바위로 이루어진 손 수십 개가 움직이며 잔해를 주워담았다. 아데샨이 어깨를 움츠러트리며 물었다.
“저, 저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로난이 칼을 휘두르더니 갑자기 의식이···.”
기분이 이상했다. 체내를 흐르던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로딘이 입을 열었다.
“네 체내에 있던 기존의 마나는 모두 사라졌다. 뭐가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네? 그 말은···.”
“그래. 너는 그림자 마나를 개화했다. 가슴 속에 덩어리 같은 것이 자리잡은 것이 느껴지나?”
아데샨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가슴 깊숙한 곳에서 서늘한 무언가가 맥박치고 있었다. 이질감은 들었지만 생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생을 다뤄 온 마나보다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게 앞으로 네가 길러 나가야 할 힘이다. 그림자의 마나로 이루어진 코어지.”
“코어···!”
“그래. 너는 이제 일반적인 마나가 아닌 그 힘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데샨의 눈이 커졌다.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생성하지 못한 코어였다. 자로딘은 그림자의 마나 역시 마나의 일종이므로 마나로 할 수 있는 행위는 전부 가능하다 설명했다. 검기를 발현한다거나, 오러를 각성한다거나 하는 것들.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아데샨은 단번에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지금 그녀의 실력은 소드 유저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존 자원으로 삼던 마나를 모두 잃어버린 탓이었다.
새로 얻은 능력과 그림자의 마나를 다루는데 숙달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터였다. 아데샨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 없어요.”
“자세가 좋군.”
자로딘이 미소지었다. 왜 나비로제의 총애를 받는지 알 것 같았다. 쌓아올린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그녀의 눈은 의지로 반짝이고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자로딘이 말을 이었다.
“문제는 네 그림자의 마나가 품은 능력이군. 너무 위험해.”
“맞아. 제 능력이 정확히 뭐죠?”
아데샨이 불안해하며 물었다. 작은 동물들은 분명 자신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맹목을 잃지 않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자세한 건 연구를 더 해봐야 알 것 같다. 우선 정신을 장악하는 능력인건 분명해 보인다만.”
“정신을 장악한다고요?”
“그래. 대마법사 로르혼 님조차 손에 넣지 못한 힘이지. 나 역시 공상의 영역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존할줄은 몰랐군.”
그는 아데샨의 능력에 관해 자신이 추측한 바를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들은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전생을 떠올린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누구에게 주어져도 과분할 힘이지.’
아데샨의 능력은 자신의 의지를 생명체에게 강요하고 인지시키는 것이었다. 눈속임에 불과한 환영 마법이나 광분화 같은 단순한 저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대상이 늘어날수록 위력이 줄어들고, 적을수록 강해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전생의 대장군 아데샨은 이 능력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그야말로 불패의 신화를 써냈다. 십만, 백만 단위의 인원에게 능력을 적용해 봤자 사기 진작과 명령을 똑바로 인지시키는 효과밖에 일구어내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마무시한 효율을 냈다.
마음만 먹으면 범위를 축소시켜 그녀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결사대를 조직할 수도 있었다. 최후의 결전 당시를 떠올린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능력이지.’
세 번 반복된 삶은 아데샨을 마모시켰다. 로난은 시간을 벌기 위해 아하유테를 향해 돌진하는 군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충성심과 자의만으로 명령을 이행하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멍청한 징벌병 동기들이나 명예를 간직한 몇몇 기사들을 제외하고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상당수의 눈동자는 방금 정신을 장악당한 짐승들처럼 탁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쩐지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이 소녀도 언젠가 그런 명령을 내리게 될까. 설명을 마친 자로딘이 고개를 돌렸다.
“먼저 돌아가라. 나는 뒷정리를 마치고 갈 테니까.”
“미안해요 자로딘. 멀쩡한 물건을 부숴먹어서.”
로난이 머리를 긁으며 사과했다. 무너진 육각 기둥들은 척 봐도 더럽게 비싸 보였다. 실제로도 저택 두어 채는 살만한 가격의 마도구였지만, 자로딘은 덤덤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됐다. 이 정도는 내가 진 신세에서 차감하도록 하지.”
“호쾌해서 좋네요.”
“마지막 하나까지 부서졌으면 조금 고민했을지도 모르겠군. 돌아가라.”
두 사람이 발걸음을 돌렸다. 아데샨이 왔던 길을 기억하고 있어서 무리 없이 본관을 벗어날 수 있었다. 여전히 하늘은 맑고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그들은 나란히 서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거리를 걸었다. 매미 소리가 먼 메아리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슬쩍 돌아본 아데샨은 입술을 앙다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로난은 굳이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당황스러울 만도 하지.’
그녀에게는 십 년과 같은 하루였을 터였다. 전대미문의 능력을 각성했고, 지금껏 쌓아온 모든 마나를 잃었다.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어쩐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이제 아데샨 또한 재능 있는 반푼이가 되었다.
그때 가로수 위에 앉아 짹짹거리는 뱁새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제자리에 멈춰선 아데샨이 손을 들어올렸다.
“이리 와.”
“짹짹.”
뱁새 한 마리가 날아와 그녀의 검지 위에 앉았다. 하얗고 보송보송한 생김새가 더할 나위 없이 귀여웠다. 하지만 아데샨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탁해진 뱁새의 눈동자를 본 그녀가 입을 열었다.
“로난. 나중에는 내 능력이 사람한테도 통할 거라고 했지?”
“네. 열심히만 하면요.”
“이런 능력이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 걸까.”
아데샨이 능력을 해제했다. 뱁새는 눈동자가 맑아지기 무섭게 도망치듯 날아가 버렸다. 로난이 말했다.
“선배라면 잘 활용할 수 있어요.”
“무서워. 나도 모르게 능력을 악용하게 될까봐.”
“그럴 수 있죠.”
“괴물이 될지도 몰라. 내키는 대로 남을 조종하고, 진심을 짓밟고, 의도적으로 싸움을 일으켜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아데샨이 말꼬리를 끌었다. 보통 같았으면 제 잇속을 챙길 방법이나 생각했을 텐데, 참 착한 사람이었다. 가만히 턱을 매만지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그때는 제가 말려 줄게요.”
“너까지 내가 조종하려 들면?”
“어떻게든 해야죠. 걱정하지 마요.”
로난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아데샨이 옅게 웃었다.
“그래, 그러면 안심이네.”
이후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딱히 눈에 띌 만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초여름에 찾아온 평화 속에서, 로난과 아데샨은 저마다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보름이 지난 뒤였다. 로난은 나무그늘 아래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아데샨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선배.”
“아···로난.”
“오호, 오늘은 다람쥐네요.”
“응···그때는 내가 미쳤었나 봐. 어떻게 그렇게 많이 조종한 거지···!”
아데샨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다람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로난은 제식 훈련을 하고 있는 다섯 마리의 다람쥐 분대를 보며 헛웃음을 쳤다.
정신 장악은 엄청난 심력을 소모했기에 꾸준한 훈련에서만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작은 동물들을 완벽하게 조종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마셔요.”
“앗, 고마워.”
로난은 그녀에게 물병 하나를 던져준 뒤 네스트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머지않아 질식사한 물고기처럼 널브러져 있는 부원들과 혼자만 쌩쌩한 슐리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눈빛으로 마르야와 브라움을 내려보고 있었다.
“이걸 왜 못 하는 거지. 하루에 오천 번씩 휘두르는 게 어려운 건가.”
“빠져가지고 그렇지. 이래서 요즘 애들은 안 된다니까.”
저마다 무기를 들고 있는 걸 보니 기초 검술 훈련을 한 모양이었다. 로난마저 그를 거들자 마르야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이 미친 종자들아! 세상 사람들이 다 너희 같은 줄 알아?!”
“와하···와하하하···.”
진작에 탈진한 브라움의 입에서 영혼 없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슐리펜의 합류 이후 무예과 부원들은 모두 그의 훈련 일정을 따라가야 했다. 당연하게도 로난을 제외하고는 슐리펜에게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도 불만이 많이 터져 나와 어느 날은 아데샨에게 상담을 했다. 일정표를 본 그녀가 기겁하며 외쳤다.
“후, 훈련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돼! 무슨 제국군 특수부대도 아니고···!”
“뭐 잘못된 거라도 있어요?”
“각자의 수준에 맞춰서 훈련을 해야지. 설마 여태까지 전부 이런 식으로 해 온 거야?”
“네.”
“···안 되겠다. 안내해 줄래?”
아데샨은 그날로 동아리를 오가며 부원 한명 한명을 분석했다. 마나를 잃었어도 예리한 통찰력은 여전히 건재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부원들은 개개인에게 맞춰진 최적의 훈련법을 받을 수 있었다. 아데샨의 지도를 받던 마르야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선배님. 저희 동아리 들어오면 안 돼요?”
“으응?”
“제발요. 저 미치광이가 선배님한테는 고분고분하단 말이예요. 잠깐, 그런데 둘이 무슨 관계에요?”
“무, 무슨 관계라 묻는다면···뭐라 대답해야 할지···.”
아데샨이 머뭇거리며 뺨을 긁적였다. 마르야는 감사와 경계의 중간쯤 되는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남자들은 키가 큰 여자는 별로 안 좋아한다는 선입견 덕에 마음을 놓고 있었지만, 은근히 둘이 많이 붙어 다니는 것이 솔직히 오필리아보다 위험해 보였다.
“마, 마르야···.”
아셀은 그녀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영문 모를 통증에 시달렸다. 뼈가 부러진 것도, 피가 흐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가슴 한켠이 불로 지져지듯 괴로웠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더욱 마법을 열심히 공부해도 괴로움은 잦아들지 않았다. 어쨌든 그럴 시기였다.
오필리아와 시타 또한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달이 떠오른 이후는 그들의 시간이었다. 어느날 밤, 오필리아는 시타에게 새로 가르쳐 준 마법이 있다며 로난을 몰래 부지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뺘아아앗!”
콰과광! 시타는 일전에 보여주었던 피 안개를 뿌린 뒤 단번에 폭발시키는 마법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형체를 잃고 박살난 나무 위에 앉아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오필리아가 자랑스럽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이번에 가르쳐 줬어···대량 학살에 특화된 마법이야. 멋지지···.”
“애한테 도대체 뭘 가르치고 있는 거야.”
쓸모는 있겠다만. 그리 덧붙인 로난이 픽 웃었다. 평화는 거의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그들은 학교생활과 저마다의 훈련에 집중했고, 차근차근 힘을 길렀다.
한여름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어느 날이었다. 로난은 제1투기장에서 웃통을 벗어제낀 채 검에 마나를 먹이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근 몇 달 사이에 그의 몸은 더욱 견고해져 있었다.
“적당히 봐라.”
정신이 팔려 구경하는 여학생들에게 주의를 준 나비로제가 로난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편지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나비로제가 말했다.
“여명 마탑이 복구됐다는군.”
“후우···후, 뭐라고요···?”
대충 땀을 문질러 닦은 로난이 고개를 돌렸다. 나비로제는 폭발 사고로 망가졌다는 여명 마탑이 복구 공사를 마치고 다시 사람들을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로난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드디어.”
사란테가 해주의 단서를 찾을 수 있으니 가보라고 했던 장소였다. 로난이 라만차에 깃들어 있던 마나를 거두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들었다. 마나를 검에 먹인 시간을 점검하기 위한 시계는 2시간이 지났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계절은 봄을 넘어 여름이 되었다. 다시 옷을 입은 로난이 투기장 밖으로 나섰다. 고개를 들자 한층 높아진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짙푸른 파랑 아래로 새하얀 뭉게구름이 미끄러지듯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