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00
아카데미 담당 일진 100화
‘하아……. 이렇게 강하다고?’
다른 살수들의 도움이 있다면 나혁중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은 제이드의 크나큰 오판이었다.
나혁중의 무력은 그의 생각 이상이었다.
아무리 팔왕과 이제의 차이가 있다 한들, 이 정도로 격차가 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니, 격차라 표현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신호 마법을 받고 달려온 살수들 대부분이 일 초를 버티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일 초? 아니, 초식을 펼치지도 않았다.
그냥 그의 검에서 풍기는 기운을 버티지 못한 살수들이 절로 죽어 나갔을 뿐.
‘도망가야 해.’
쿨럭- 기침을 하며 객혈을 뿜어낸 제이드는 이어지는 공격을 피하고자 서둘러 바닥에 몸을 굴렸다.
이 동작은 무림인들 사이에선 뇌려타곤이라 불리며 가장 수치스러운 동작 중 하나로 불리었지만, 제이드는 무림인도 아닐뿐더러 목숨을 지킬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동작도 할 수 있었다.
나혁중은 땅바닥을 뒹굴 구르는 제이드를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세웠던 검을 내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개처럼 살기 위해 발악하는 네 모습을 다른 살수들이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느냐.”
“…….”
나혁중의 말에 제이드가 피식하며 입가를 끌어 올렸다.
‘저런 말에 흔들리면 안 된다.’
속으로는 당황했을지언정, 절대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 그만의 습관이었다.
활구자승어사정승(活狗子勝於死政丞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이라 했다. 괜히 자존심 부려서 죽느니 일단 살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제이드는 개새끼로 살지언정 등신처럼 죽을 생각은 없었다.
“……뭐, 좋게 생각하지 않겠소?”
“그래? 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본데.”
제이드는 그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살아남은 살수들은 어느샌가 나혁중에게 달려들고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차가운 눈초리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새끼들을 모아다가 기술도 가르쳐 주고 밥도 먹여줬더니…….”
그의 말을 들은 살루의 특급 살수 마크는 제이드를 보고 나지막이 말했다.
“루주. 살수답게 죽으시오. 그러면 우리가 목숨 걸고 복수는 해드리리다.”
살수답다?
저들에게 항상 강조해 왔던 말이었다.
살수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살수는 생각을 많이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살수다운 것이다.
저들에게 살수로서의 철학을 세뇌했던 것은 다루기 편하기에 그렇게 한 것이었지, 뭔가의 철학을 담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저 말이 이렇게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 줄이야.’
아, 물론 제이드 자신도 한때는 살수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저런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다.
텔로스라는 단체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 생각은 정반대로 바뀌었지만.
“생각이 길군.”
나혁중은 내려두었던 검을 슬쩍 올렸다.
“검제,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너는 앞으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독이 들었는지 확인…….”
“생각만큼 말도 길군.”
콰앙-
가볍게 휘두른 나혁중의 한 수에 제이드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이미 기절하고도 남았을 일격이었지만, 제이드는 금세 몸을 일으켰다.
일반 사람들은 제이드를 바람 마법과 환영 마법만을 극한으로 익힌 마도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무공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물론 경신법과 은신술 같은 잡기에 한해서지만.-
속에서 한 움큼 피를 토한 제이드는 환영 마법을 사용해 수십 개의 분신을 만들어내었다. 자신의 모습을 본뜬 분신이 아닌 주변 살수들의 모습을 한 분신이었다.
‘환영 마법으로는 나혁중의 눈을 속일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자신하는 신법과 함께라면 잠깐 눈을 어지럽게 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이다!’
분신을 좇던 나혁중의 눈이 자신의 움직임을 놓친 순간, 블링크 마법을 사용한 제이드는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검제, 두고 보자!”
그렇게 말한 제이드는 더욱더 땅을 거세게 박차고 도망쳤다.
이미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이 멀어진 상황, 당황할 법도 했건만 나혁중은 미간을 찌푸릴 뿐,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쓸데없는 짓.”
눈을 낮게 내리깐 나혁중이 검으로 허공을 그었다. 이윽고 공간이 살짝 갈라지며 허공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공간을 베는 천고의 기예.
하지만 그의 손에 쓰러진 것은 제이드가 아닌 살루의 살수였다.
“쥐새끼 같은 놈.”
순식간에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거리까지 멀어진 제이드.
살왕이라 불리는 제이드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망친다. 이런 제이드를 잡기란 요원할 터였다.
물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나혁중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단지 귀찮을 뿐.
그는 용천혈에 내공을 보내 지면을 박찼다.
스팟- 하는 소리와 함께 나혁중의 신형이 일렁이더니 잔상을 남긴 채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 이형환위(移形換位)?”
자리에 남겨진 마크는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하면서 눈을 비볐지만, 분명히 방금 그것은 이형환위가 맞았다.
‘진짜 검제구나!’
살왕이 검제니 뭐니 할 때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어물쩍 넘어갔지만, 막상 사건이 끝나고 보니 검제라는 인물이랑 싸웠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러니 이렇게 떼로 덤벼도 의미가 없지.’
한여름의 초파리처럼 바닥에 널브러진 살수들을 본 마크의 눈에 안타까움이 일었다. 그렇다고 복수를 할 생각은 없다.
‘성공할 상대도 아니고.’
그때, 남아 있던 살수들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나혁중과 다툰 시간은 일각(15분)이 채 되지 않았건만, 수백 명의 살수 중 남아 있는 살수는 백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마크 님. 이제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일단은 살루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밖을 돌아다닐 때는 항상 은신하며 다니던 그들은 몸도 숨기지 않은 채 터덜터덜 발을 돌렸다.
살수들까지 전부 사라지자 가게 문을 닫고 벌벌 떨던 암시장의 장사꾼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가, 갔어?”
“응……. 아까 그거 살왕 님 맞지? 그 살왕이 일방적으로 당했어.”
“살왕은 무슨, 십X끼. 살변이라 불러.”
“살새끼는 어때?”
“근데 암시장은 어떻게 운영되지?”
그들이 자랑하던 경호원들은 모두 살루에서 고용한 것. 살루에 남아 있는 특급 살수라고 해봐야 다섯이 채 되지 않는다.
이들로는 경호원을 고용할 돈은커녕 살루를 운영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였다.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오늘은 장사 접자고.”
* * *
차가운 공기와 어둠만이 그득히 내려앉은 공간.
바닥 주위로 초라하게 비추는 주황빛 조명만이 내부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뭐지?’
백십삼 호는 신체 부위 중 감각이 유일하게 통제되지 않은 귀를 움찔거렸다.
‘들리지 않는다.’
자신을 감시하는 이들의 숨소리가.
그들이 교대하는 시간마다 들리던 걸음 소리가.
그들의 행동마다 생겨나는 부자연스러운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뇌옥에 들어온 뒤로 여태까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항상 살수들은 시간을 맞춰 교대하러 들어왔다.
이 정도로 자리를 비운다는 건 필시 바깥에 무슨 일이 생긴 거다.
‘지금이 기회다. 빨리 탈출을 해야 하는데.’
급한 마음과 달리 그는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손과 발은 자유를 억압당해 꼼짝달싹할 수 없었고, 내공마저 금제되었기 때문.
‘미치겠네.’
이미 모든 걸 포기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건만, 어느덧 날아든 희망의 불씨는 그의 맘을 더욱 타들어 가게 했다.
그때 그의 귀가 움찔거렸다.
콰아아앙-
마치 광역 마법이라도 펼쳐진 듯한 굉음이었다.
‘뭐지?’
그 뒤로 5분 정도 지났을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저벅저벅.
‘발걸음에 자신을 숨기려는 습성이 없다. 살수가 아니다.’
그런데 살루에 살수가 아닌 자가 들어올 수 있던가? 자신이 알기로 여태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내 발걸음 소리는 더욱더 가까워졌다.
상대가 누군지 너무나 궁금했다. 시야를 가린 안대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누구지?’
그 순간, 스릉- 하며 검을 뽑는 소리가 뇌옥 안을 울렸다.
그다음 들린 것은 쇠와 쇠가 맞닿는 소리. 그다음은 귀에 익은 목소리.
“칼날이 무뎌져서 잘 베어지지 않는군.”
단 한 번밖에 본 적이 없는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마, 기억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조는 확신했다.
‘백일진이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으로 ‘백일진이 나를 구하러 올까?’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근데 사실상 그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곧 현실이 되었다.
쿵-
공간이 울리는 느낌과 함께 창살이 열리며 끼익- 하는 소음을 냈다. 이내 그를 구속하고 있던 족쇄들과 안대, 재갈이 풀리면서 감각들이 돌아왔다.
“주, 주군?”
“그래.”
“여기는 어떻게…….”
“조용히 해라. 독기를 억눌러야 하니.”
백일진은 우조의 혈을 눌러 내공의 금제까지 풀어냈다. 그리고 천마검에게 부탁해 우조의 독기를 다시 한번 눌렀다.
-내공을 금제한 덕에 독기는 아직 발작하지 않았나 보군.
서러움이 복받쳐 오른 것일까. 아니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탓일까.
“흑- 주군!”
답답했던 가슴을 뚫고 우조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백일진은 자신을 껴안으려고 하는 우조의 팔을 가볍게 뿌리쳤다.
“가자.”
되지도 않는 신파를 벌이고 싶지 않았던 백일진은 준비해 왔던 포션을 던져주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주군!”
“…?”
“주군,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챙길 게 있어서.”
“……?”
우조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돈이라도 챙기려고 그러나?
‘돈은 필요 없는데.’
-일단 가 보지.
잠시 후, 우조는 사면이 금으로 각인이 되어 있는 궤짝을 들고 나왔다. 사람이 두 명은 들어가도 남을 정도의 크기였다.
“주군, 혹시 아공간 있으십니까. 제가 아공간이 없어서…….”
백일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반지를 돌려 아공간을 열어주었다. 우조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한 아름 품고 온 종이 다발을 아공간에 쑤셔 넣었다.
“이제 됐습니다.”
“이건 뭐지?”
“상급 이상의 의뢰서들과 살루의 마법서, 무공비급, 그리고 구서락이 따로 챙겨두었던 패물들입니다. 살왕의 비고는 저도 어디 있는지 몰라서 챙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제야 요화루의 항만과 했던 약속이 생각난 백일진은 우조에게 다른 의뢰서들도 몽땅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중급 이하의 의뢰서는 쓰레기나 다름없는데…….”
“쓸 데가 있다.”
“주군,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조금 더 챙기겠습니다. 독이라든지, 암기라든지 하는…….”
“음. 알겠다.”
도둑질하는 것은 석연찮았지만, 굳이 뜯어말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백일진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대충 챙길 만한 것들은 모두 가져온 우조가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나가자. 내공은 사용할 수 있나.”
“주군 덕에 조금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백일진이 먼저 방에 있는 창문을 열고 빠르게 뛰어내렸다.
“주군, 밑에는 진법이……!”
우조는 떨리는 목소리로 들어오면서 손을 내밀었지만, 이미 진법은 파훼됐기 때문에 다시 발동하지 않았다.
‘진법을 파훼했다고?’
살왕이 설치한 대라환혼진은 절진까지는 아니어도 이렇게 막 파훼시킬 수 있는 허접한 진은 아니었다.
심지어 파훼된 모습을 보아하니, 살문을 열고 나온 것도 아니고 힘으로 부순 것처럼 보였다.
우조는 경악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백일진을 바라보았다.
“못 내려오겠나.”
백일진은 창틀에 올라탄 채 우두커니 앉아 있는 우조에게 시선을 던졌다.
“아, 아닙니다.”
살루를 빠져나온 우조는 일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물었으나 백일진은 그냥 단순히 하오문을 찾아가 살루의 위치를 물어 찾아왔다고 말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하오문에서 살루의 정보를 넘긴다고? 그게 말이 되나…….’
그들은 어느새 요동의 저잣거리로 들어왔다.
그 순간, 바로 그를 주시하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하오문인가 하는 녀석들인 것 같군. 왼쪽 테라스에 하나, 오른쪽 장원 담벼락에 둘, 사람들 뒤에 숨어 있는 녀석까지. 총 4명이다.
우조도 그것을 느꼈는지, 조심스레 백일진에게 귓속말을 했다.
“주군, 날파리가 붙은 것 같습니다.”
“신경 쓸 거 없다. 하오문이다.”
“네?”
백일진은 굳이 그들을 내쫓지 않고 요화루로 향했다. 약속했으니 값은 치러야 한다.
그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우조가 계속해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주군, 혹시 아공간 한 번만…….”
“왜 그러지?”
“잠시 다녀올 곳이 있는데, 아까 넣었던 것 중에 필요한 게 있습니다.”
백일진이 아공간을 열어주자 우조는 그 안을 한참 동안 뒤적거렸다.
이내 아공간에서 뭔가를 집어 든 우조는 백일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근데 다녀올 곳이 있다고?”
“네, 며칠만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백일진은 눈만 움직여 우조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에 다리는 절뚝인 채, 손은 가만히 있는데도 덜덜 떨고 있는 모습. 도저히 어딜 다녀올 수 있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몸도 안 좋아 보이는데 어딜 간다는 거지.”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직 할 일이 있습니다.”
우조의 굳은 다짐을 본 백일진은 턱을 살짝 끄덕였다.
“갔다 와라. 돌아올 때는 장안 시티로 오도록. 아, 참 그리고 여기 네가 먹은 독의 해약이다. 몸이 괜찮아지면 복용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백일진이 먼저 몸을 돌릴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우조는 백일진이 가고 나서야 허리를 세웠다.
백일진이 사라진 방향을 묵묵히 지켜보던 우조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펼쳐 들었다.
[의뢰인 – 방거충(방씨세가)]“……앞으로 더러운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