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01
아카데미 담당 일진 101화
백일진은 요화루로 몸을 틀었다.
약속한 대로 하오문이 살루에 제공한 정보들을 전부 넘기기 위해서였다.
굳이 다시 그곳에 가려는 백일진을 본 천마검이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굳이 다시 가야 하나? 거기 분위기가 역해서 껄끄럽다만.
그것은 백일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보조직은 알아두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한 백일진이 나지막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중에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군.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는 노릇이니.
얼마 걷지 않아 요화루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수갑과 채찍으로 인테리어를 한 간판은 다시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들어가겠습니다.”
끄덕-
미리 언질이 있었는지 요화루 정문 앞을 지키는 기도들은 백일진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안내하는 사람이 따로 없었기에 전과 똑같은 방을 찾아 들어온 백일진이 자리에 앉았다.
은연중 들리는 미묘하고 야릇한 음악만이 방 안을 감돌고 있는 상황,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으로 고개를 돌린 백일진은 항만의 차림새를 보고는 몸을 흠칫 떨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상의는 탈의한 멜빵 차림이었고 바지는 터질 것 같은 근육을 드러내는 붉은색 짧은 반바지였다.
거기다가 천장에서 비치는 조명을 반사하는 대머리까지 합세하니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냐! 저 옷차림은! 내가 이래서 오기 싫다고 한 거다.
‘……흠. 사람마다 취향을 존중해야 된다고 듣긴 했지만, 도저히 존중할 수가 없는 차림새군.’
-동감이다.
항만은 찻주전자와 찻잔을 내려놓으며 백일진의 맞은편에 앉았다.
“생각보다 빨리 다녀오셨군요.”
“네.”
“살루는 어떻던가요?”
“별거 없었습니다.”
“네?”
“정보 그대로 육 층에 뇌옥이 있고, 오 층에는 특급 살수들의 개인 공간이 있었습니다. 지하는 수련장, 일 층부터 삼 층까지는 일반 살수들의 공간이었습니다.”
항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는 아무도 없던가요?”
“네, 없었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그 후로도 항만은 백일진에게 뭔가를 더 캐내려는 듯 집요한 질문 공세를 이어갔다.
“혹시 안에 있던 의뢰서들은…… 챙기셨나요?”
“…….”
직접 챙긴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아공간에 의뢰서들이 들어 있었기에 백일진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챙기셨군요.”
“음.”
“그럼 혹시 그 의뢰서들을 한 번만 볼 수 있을까요.”
청부 의뢰서는 그 자체보다 안에 있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을 자연스럽게 보여달라고 하는 항만의 속내는 옷차림만큼이나 뻔뻔했다.
“아니요.”
“그러면 혹시 저희 하오문에 그 의뢰서들을 판매하실 생각은…….”
“없습니다.”
항만은 차를 홀짝이며 백일진의 낯을 살폈다. 하오문이라는 정보 문파의 요직까지 올라오면서 이토록 아무런 감정 없는 얼굴은 처음이다.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네. 이걸 확 힘으로 뺏을 수도 없고.’
무력으로라도 빼앗고 싶었지만,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백일진의 무위는 최소 절정, 자신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사내였다.
‘거기다가 특급 살수의 살행에서 살아남았으면…….’
아마 자신이 조사한 것보다 더 강할 수도 있었다. 위험한 모험을 하지 않는 주의인 항만은 빠르게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을 포기했다.
“만약, 그 의뢰서들을 저에게 파신다면 저희 하오문의 귀빈으로 모시겠습니다.”
항만은 하오문의 귀빈 패를 꺼내 들고는 빙그레 웃으며 백일진을 설득했다.
“귀빈?”
“앞으로 저희 하오문 어떤 지부에서도 정보를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원래는 구매하지 못한다는 겁니까.”
“뭐, 저희야 정보를 판매할 수도 있습니다만, 다른 지부는 또 모르기 때문에…….”
백일진은 찻잔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뭘 어떻게 하는 게 좋아, 그냥 팔아버려. 어차피 가지고 있어 봐야 쓰레기인데.
백일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네, 가격은…….”
“가격은 나중에 이곳으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단, 원본은 안 되고 필사본만 드리겠습니다.”
“필사본이라도 감사하죠.”
항만은 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앞니에 묻은 틴트는 지워지지 않은 채였다.
“그런데 저희에 관련된 정보는 언제……?”
“그것도 정리한 다음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원래 후불은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죠.”
뜨거웠던 찻주전자가 식어 더는 연기가 나지 않을 즈음, 백일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일어나겠습니다.”
“장안 시티로 가시나요?”
“네.”
“장안 시티에는 저희 하오문이 들어갈 수가 없으니, 거기까지 배웅을 해드리지는 못하겠네요.”
“그런 차림이라면 이 앞까지 배웅하는 것도 거절하겠습니다.”
항만은 입을 가리고 껄껄껄 웃더니 자신의 폭발적인 승모근을 양손으로 가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농담도 잘하십니다.”
“농담 아닙니다.”
백일진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항만은 찡긋- 윙크를 하며 뭔가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장안 시티로 가는 열차표인데 제가 미리 구매해 놨습니다. 제 고객님에 대한 배려죠.”
말은 배려라고 하지만, 요동을 떠날 때까지는 자신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함이리라.
“감사합니다.”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언제든지 들러주시길. 굳이 그게 아니어도 좋지만요.”
항만은 벽에 걸려 있는 채찍에 눈길을 보냈다. 순간, 등허리에 닭살이 돋은 백일진은 서둘러 몸을 돌려 요화루를 나왔다.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낄뻔했어.”
-마찬가지다.
* * *
장안 시티행 열차 승강장.
요동에서 장안 시티로 가는 열차는 하루에 하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대기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비어 있는 대기실에 가서 앉으려는 그의 눈에 누군가 들어왔다.
‘나혁중 학장님?’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검집. 하지만 그가 들고 있으니 오히려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올백으로 넘긴 머리는 그의 깔끔함을 보여주고 있었고, 검회색의 눈동자는 깊었다. 이마엔 약간의 주름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멋들어졌다.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공통으로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고급스러움과 차가움을 동시에 품은 미중년’이라고.
나혁중도 백일진을 알아봤는지 가볍게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안녕하십니까.”
“낯이 익은데 아카데미 학생인가?”
“네, 백일진이라고 합니다.”
나혁중은 턱을 끄덕였다. 이름을 들으니 정확하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소문의 천재인가.’
필기 전형으로 특별 합격도 모자라 단숨에 월간 아카 1학년 랭킹 1위까지 올라간 녀석,
아무리 아카데미 내의 소문을 찾아 듣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백일진의 유명세는 그의 귀에도 들려올 정도였다.
‘진명이도 자랐으면 이 나이쯤 되었겠군.’
아카데미 학장으로 지내며 수많은 학생을 보면서 한 번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건만, 백일진에게선 왠지 죽은 자신의 자식이 겹쳐 보였다.
“앉아라.”
“감사합니다.”
나혁중은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이고 나서야 자리에 앉는 백일진을 보고 생각했다.
‘듣기로는 예의라는 것이 없는 녀석이라고 들었는데 그래 보이지는 않는군.’
하기야, 여태껏 불량 학생이라고 불렸던 학생 중 자신의 앞에서까지 버릇없이 구는 학생은 본 적이 없긴 했다.
“요동은 무슨 일이지?”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
“개인적인 일입니다.”
“그래.”
나혁중은 더 캐묻지 않았다. 백일진도 더 입을 열지 않았다.
미묘한 적막이 서로에게 내려앉을 무렵, 열차가 뿌우- 소리를 내며 도착했다.
“먼저 타라.”
“감사합니다.”
백일진의 자리는 나혁중의 대각선 뒷자리였다. 둘은 아무런 말 없이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네가 왜.’
-둘이 분위기를 봐라.
‘무슨 분위기를 말하는 거지?’
-되었다.
열차의 좌석은 꽤나 안락했다. 푹신한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창문 밖을 구경하다 보니 스르륵 잠이 쏟아졌다.
‘피곤하다. 조금 자야겠어.’
* * *
요동에서 장안 시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밤새 잠을 자고도 반나절은 더 걸려서 왔으니.
“먼저 내리겠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먼저 내리는 나혁중을 바라본 백일진도 몸을 일으켰다. 열차에서 내리니 나혁중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바쁘신가 보군.’
찌뿌둥한 몸을 쭉쭉 뻗어 스트레칭을 한 백일진은 근처 가게에서 가볍게 와플 열두 개를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집에 오니까 좋네.”
-그러냐? 난 이 냄새부터 지긋지긋한데.
‘후각도 있었나.’
-미각을 제외한 감각은 전부 있다.
‘촉각도?’
-뜨겁거나 차가운 정도는 느낄 수 있지.
‘그렇군.’
백일진은 창문부터 열고 환기를 시작했다. 집을 관리하는 마법이 구형인 탓에 습도와 먼지 정도는 관리가 되었지만 퀴퀴한 냄새는 남아 있었기 때문.
“뒷마당의 잡초도 꽤 많이 자랐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천마검이 파묻혀 있던 곳을 제외한 뒷마당의 잡초는 무성히 자라 그의 무릎까지 올 정도였다.
“정리 한번 해야겠군.”
백일진은 목장갑을 낀 채 상의를 탈의했다. 그러자 떡 벌어진 어깨와 넓은 흉통 위에 아름답게 조각된 대흉근이 드러났다.
-갑자기 옷은 왜 처벗냐.
‘잡초 뽑으려고.’
-괴물 같은 놈, 수련도 안 한 놈이 몸은 오히려 더 좋아졌군.
‘그런가.’
천마검의 말마따나, 요즘 외공 수련을 많이 하지 못했음에도, 오히려 근육은 더욱 단단하고 미려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이유가 궁금한가?
‘별로…….’
-설명해 주지. 오러는 기본적으로 거친 기운을 품고 있는 탓에 자신을 담은 근섬유에 미세한 상처를 입히는 일이 잦다. 물론, 손상을 입은 근육은 자연스럽게 회복이 된다.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그때, 회복되는 몸은 오러의 거친 기운을 버티기 위해 근섬유를 회복하면서 근육을 더 탄탄하고 강하게 만들지. 네 몸이 지금 이런 상태라고 보면 된다.
천마검이 떠들든 말든 백일진은 계속해서 잡초를 뽑아 나갔다.
-그렇기에 기사들이 무림인, 마법사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완력이 강한 것이다. 물론 네놈이 무식할 정도의 근력 운동을 하는 탓도 있지만.
‘그럼 외공 수련자들은 다 나처럼 되는 건가?’
-아니지, 오러를 품은 외공 수련자라고 해서 모두가 너처럼 되면 누가 내가기공을 익히냐. 너처럼 되려면 압도적인 회복력, 오러의 상태, 근육의 질까지, 이 세 가지를 전부 갖춰야 한다.
천마검의 말마따나 일반적인 사람들은 백일진만큼의 트레이닝을 할 수 없어 최상의 오러를 얻을 수도 없었으며, 근육의 질이 그만큼 좋지 못하기에 단련되는 데 한계가 있고, 회복력도 부족하기에 단련되기까지 기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네놈은 천운을 타고났는지 그 삼박자를 고루 갖추고 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이 빠르게 상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지.
어느새 땅을 헤집어놓은 백일진이 마대 자루에 잡초를 집어넣으며 물었다.
‘그럼 영원히 몸이 발전한다는 소린가.’
-당연히 이런 식으로의 발전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환골탈태 혹은 바디체인지를 하지 않은 몸의 근육은 한계가 있으니까.
‘바디 체인지?’
-그래, 이 현상이 반복되면 근육은 점점 오러를 품기 좋게 탈바꿈하게 되고 그것이 극에 이르면 환골탈태 혹은 바디체인지라 불리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군.’
-한마디로 네놈이야 오러와 근육의 질이 좋으니, 아직은 환골탈태를 하지 않고도 계속해서 몸의 발전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답보 상태에 머물게 될 테고 벽을 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수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알겠느냐.
‘잡초 뽑느라 못 들었다.’
-뭐?! 이 자식이……! 귓등으로도 듣는 척은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더냐?! 목이 빠지게 설명을 해줬더니.
‘미안하다, 근데 설명은 짧게 해줬으면 좋겠군.’
어느새 잡초를 전부 다 뽑은 그는 바닥에 뽑아두었던 마대 자루를 아공간에 던져 넣었다. 잡초를 전부 뽑으니 뒷마당 구석마다 반쯤 깨진 마정석이 보였다.
‘아르무트 학장님이 말한 결계 마법의 흔적이군.’
아르무트 덕분에 개벽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아르무트에 대한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마정석의 잔해도 치우던 중, 마정석 잔해 사이로 웬 검은색 배지가 보였다.
‘이건 뭐지?’
여덟 개의 눈이 그려져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마법도 걸려 있지 않은 평범한 배지였다.
‘이게 뭐지?’
제자리에 멈춰서 뱃지를 둘러보며 상념에 빠져 있던 그를 일깨운 것은 천마검의 목소리였다.
-야, 인마. 잡생각은 그만하고. 아카데미는 내일부터 가냐?
‘아니. 열흘간은 공강이다.’
-그럼 그동안은 뭘 할 거냐.
‘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