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05
아카데미 담당 일진 105화
음유시인 동아리실.
축제 팸플릿 준비 탓에 동아리실은 한창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베르만은 제갈무혁의 말을 듣고 눈을 부릅떴다.
“뭐라고?”
“백일진은 이번 대동제 토너먼트에 출전 안 한다니까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선배는 지금 백일진의 성격을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잘못 생각해? 그럴 리가 없다.
이때까지 해온 행동으로 유추했을 때, 백일진이라는 녀석은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고 싶어라 하는 전형적인 관심 종자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배와 시비가 붙었다고 선배의 얼굴을 만신창이로 만들거나 입학 후 첫 강의부터 지각하는 등의 미친 행동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백일진이 자신의 이름을 드높일 수 있는 아카데미 대동제 토너먼트를 거른다? 자신의 상식선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생각을 마친 베르만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내가 분석한 백일진이라면 분명히 이번 토너먼트에 출전한다.”
“에휴, 이래서 책상에 앉아서 펜대만 잡는 사람이랑은 무슨 말을 못 하지.”
“이 새끼가 회장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저는 같은 반이잖아요. 그래서 알아요, 백일진은 토너먼트 같은 거 나갈 성격이 아니라니까요.”
완강하게 말을 하는 제갈무혁의 모습에 베르만이 침음성을 삼키며 턱을 감싸 쥐었다.
“알았어, 들어볼게. 걔가 어떤 성격인데.”
“안 건드리면 먼저 나서지는 않는데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정도가 없이 응징을 하는? 뭐, 그런 성향? 아무튼, 뭐 그런 느낌이에요.”
“……음, 그런가?”
제갈무혁의 말을 들은 베르만은 마른세수를 하고는 백일진에 대해서 조사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입학 전에 방거충이라는 녀석과 다툼이 있었을 때도 먼저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고 들었고, 지태경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진철과의 일도 진철이 먼저 1학년 학생들한테 추잡스러운 짓거리를 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백일진이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생각을 거듭할수록 제갈무혁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진짜 안 나가는 거야?’
결과를 정해두고 과정을 진행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불량 학생’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는데 불량 학생이 아니었다니.
‘하, 병신같이 이걸 놓치고 있었네.’
이때까지 ‘불량 학생 백일진’이라는 메인 기사를 몇 번이나 내보냈다. 이미 아카데미를 포함해 ‘월간 아카’의 구독자라면 백일진을 쓰레기 양아치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 큰일 났네.’
베르만은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속이 답답해서 그런지 이마에 열이 올라 있었다.
자신이 백일진한테 불량 학생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게 미안해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이때까지 쌓아온 빌드업을 터뜨려야 하는 상황에 예상치도 못한 난항을 겪게 되니 답답했을 뿐.
‘이번에 토너먼트에 참가해서 참교육을 당하는 내용을 기사에 담으려고 했는데…….’
제갈무혁은 머리를 싸맨 채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흔드는 베르만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설마 백일진이 토너먼트 못 나가서 그래요?”
“시끄러워, 너 이제 자리로 좀 돌아가.”
“그래도 동아리전은 나가지 않을까요?”
“동아리전?”
“네, 이번 중앙 파벌을 놓고 동아리전 열린다잖아요.”
머리를 싸매고 있던 베르만이 슬쩍 손을 내리고는 눈을 들어 올렸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도 파티시에 소속이니까 알죠. 거기에 백일진이랑 친한 애들 있잖아요.”
“파티시에? 중앙의 그 제빵 동아리? 하, 너 양다리였냐?”
“크흠, 뭐 그것보다 아무튼 그래서 아마 동아리전은 참가할 거예요.”
“그래? 그렇다는 말이지?”
베르만은 언제 얼굴을 구겼었냐는 듯 싱글싱글 흡족한 표정으로 입가를 귀에 걸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토너먼트가 안 되면 동아리전을 무대로 삼으면 된다.
‘누구냐, 불량 학생을 참교육할 녀석은. 비그리? 프레이? 진하월?’
원래 생각했던 지대학, 언철진이 아닌 것은 조금 아쉽지만, 백일진이 참교육 당하는 장면을 기사로 담을 생각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갈무혁은 베르만의 표정만 보고도 지금 하는 생각을 알 것 같았다.
‘어쩜 생각하는 게 얼굴로 다 드러나냐.’
속으로 혀를 찬 제갈무혁이 말했다.
“근데 선배, 백일진이 쉽게 쓰러질까요? 걔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같은 특임반 급우로서 –친하진 않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백일진은 절대 누군가한테 쉽게 당할 녀석이 아니었다.
“무시? 내가 언제 무시를 했어.”
베르만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백일진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심지어 공식 비무 전적이 하나도 없는 녀석을 1학년 랭킹 1위로 올려둔 것도 자신이다.
“그래도 제가 본 백일진은 그렇게 쉽게 질 녀석이…….”
베르만은 손을 내밀어 제갈무혁의 말을 끊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나는 그 녀석을 무시하지 않아. 무시할 거였으면 메인 타이틀에 올리지도 않았고, 공식 비무도 아닌 승패 결과를 랭킹에 반영하지도 않았어.”
“그럼……?”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1학년 학생이 어떻게 4대 유력 동아리와 전면전을 펼치겠나.
“인마, 네가 비그리의 마법을 봤어?”
“봤는데요?”
“봤는데도 그렇게 말을 해?”
“…….”
막상 비그리의 마법을 떠올리니 백일진이 이기기는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인마. 할 말 없지?”
제갈무혁은 씰룩거리는 베르만의 얼굴을 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데 선배는 왜 그렇게 기사에 스토리를 담고 싶어 하세요? 굳이 그런 게 없어도 월간 아카는 충분히 많이 팔리지 않아요?”
“쯧, 네까짓 놈이 뭘 알겠냐.”
“비꼬지 말고요. 그래서 왜 그러는 건데요.”
잠시 뜸을 들이던 베르만은 천장을 바라보면서 혀로 입술을 핥았다.
“이슈와 특종이라는 건 말이다. 고급 식재료와 같아서 어떤 언론인이든 다루고 싶어 하지. 그게 우리 같은 황색언론이라고 해도 다를 건 없어.”
“…….”
“그런데 그 특종이 내가 만들어낸 빌드업에 의해서 터진다? 그 짜릿함은 천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
베르만의 번질거리는 눈동자를 본 제갈무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광기다.’
그 카리스 교수마저 기피한다는 사람답게 베르만은 뭔가에 심히 미쳐 있는 사람이었다.
“저…… 그럼 파티시에에 가 봐야 해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제갈무혁은 눈을 희번덕 뜨고 실실거리는 베르만을 뒤로하고 음유시인의 동아리실을 나섰다.
* * *
파티시에의 부회장 부기로는 치대던 반죽을 멈추고 고개를 틀었다.
그곳에는 모용석을 필두로 백일진, 남궁종수, 설하윤이 서 있었다.
“뭐야? 이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말했지만, 부기로의 목소리 끝에 섞인 기대감은 숨겨지지 않았다.
황보철수는 그런 부기로를 보고 씨익 미소 지었다.
“제 친구들인데 전부 도와주기로 했어요. 대신에 3개월간은 이 친구들한테는 빵을 무료로 하루에 두 개씩…….”
“다섯 개.”
백일진의 말에 몸을 움찔거린 황보철수가 말을 이었다.
“빵을 다섯 개씩 무료로 제공해 주셔야 해요.”
“진짜? 너희가 도와준다고? 도와주면 빵을 다섯 개가 뭐야, 열 개씩도 줄 수 있지. 맞지 회장?”
“응? 열 개는 좀…….”
부기로는 밀가루가 덕지덕지 묻은 손으로 눈치 없는 베리판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악- 여, 열 개 좋지!”
그러던 와중, 남궁종수가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내가 왜 도와줘야 하냐고! 밥 먹으러 가자고 하길래 따라왔더니 무슨 싸움을 시켜.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우기도 모자란 축제에서 싸움이나 하기는 싫다!”
그냥 성격상 본능적으로 투덜거리긴 했지만, 남궁종수도 진심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투덜거리던 그는 ‘쳇’ 하고 혀를 차며 의자에 앉았다.
그런 남궁종수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리던 모용석이 말했다.
“남사모 인원도 부르는 게 좋지 않겠나?”
“아니야, 중앙 소속 동아리원들이 아무리 인물이 없어도 걔네들보다는 강할 거야.”
남사모가 아무리 특임반이라고 해도 아직은 1학년 1학기밖에 되지 않았다. 중앙 파벌이 아무리 세가 약하다지만 그들보다는 강한 학생들은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남사모한테 부탁하기는 좀 그렇지.”
“그렇긴 하지.”
고개를 끄덕인 모용석이 베리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 총 몇 명이 출전하는 거죠?”
“동아리전은 스무 명이 출전해.”
“스무 명이나요?”
“응, 원래 동아리전은 기본 스무 명이야.”
모용석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금 동아리실에 들어온 라트 엑스와 제갈무혁을 바라봤다.
“야, 제갈무혁, 라트 엑스. 너네도 출전할 거냐?”
제갈무혁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고 라트 엑스는 겁먹은 듯 몸을 움츠리고 말했다.
“아니, 굳이 우리 쪽에서 더 나갈 필요는 없잖아. 이미 여덟 명이 우리 쪽에서 나가는데.”
“나, 나도 못 나갈 것 같아. 미, 미안.”
“그래, 그럼.”
“그, 그래도 대신 서포트는 제대로 할게!”
제갈무혁도 말을 거들었다.
“나는 동아리전의 순번을 정해주도록 하지.”
“순번?”
“몰랐나? 동아리전은 승자 연전이다.”
“승자 연전이 뭔데?”
“이긴 사람이 질 때까지 싸운다는 말이야.”
그제야 자신들이 동아리전의 규칙도 몰랐다는 것을 상기한 그들은 제갈무혁에게 규칙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룰? 룰은 일반 비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 순서는 어떻게 하면 되지?”
자리에서 일어난 제갈무혁이 그들의 순번을 정하기 시작했다.
‘베르만 선배가 백일진 경기는 최대한 뒤쪽에 배치하라고 했으니까…….’
왜 그런지는 몰라도, 음유시인 동아리실을 나오기 전 베르만은 자신에게 백일진의 경기를 반드시 가장 뒤쪽에 배치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일단 다른 동아리 열두 명을 앞 순번으로 한다. 그 사람들은 어차피 힘을 빼놓는 용도니까 지든 말든 신경 쓸 것 없어.”
“굳이?”
“열두 명이 연속으로 당하면 사기가 떨어질 텐데.”
모용석의 말에 제갈무혁이 검지를 까딱거렸다.
“아니, 그건 그 사람들에게 뭔가를 기대했을 때나 그런 거고 어차피 질 걸 알고 내보냈을 때는 이야기가 다르지. 그리고 열두 명이 연속으로 패배한다면 상대는 방심할 거다.”
“그래서 방심한 녀석들을 상대로 이겨라?”
황보철수는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너무 간단한데? 그게 작전이야? 상대도 다 알 것 같은 간단한 생각인데?”
제갈무혁은 ‘이 전략의 전 자도 모르는 애송이들이 왜 말대꾸지?’ 하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원래 알고 당하는 게 가장 무서운 거다. 그리고 어차피 패배한다고 생각했던 앞 순번 녀석들이 한두 사람이라도 잡아준다면 오히려 사기도 오를 거다.”
“뭐, 무혁이는 제갈 세가 출신이니까 알아서 잘해주겠지.”
“그래.”
회의를 마친 그들은 만들어둔 빵을 주워 먹으면서 담소를 시작했다. 달콤한 빵은 심각했던 분위기를 금세 부드럽게 녹였다.
“맞다, 그런데 동아리전은 언제 시작해요?”
“축제 첫날, 그니까 내일 오후 세 시.”
“네? 그럼 빨리 다른 동아리에도 연락해서 비무에 나갈 인원들 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마 다들 어느 정도는 준비가 되어 있을 거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희들은 빨리 가서 쉬어.”
* * *
다음 날 아침.
우웅- 우웅-
매트리스를 버렸기에 거실 쇼파에서 잠을 청하던 백일진은 집까지 울리는 앰프 소리에 눈을 번뜩 떴다.
축제가 시작한 모양이었다.
“아카데미랑 가깝다고 다 좋은 건 아니군.”
가볍게 몸을 풀고 클린 마법을 펼친 그는 옷방에 들어가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집을 나섰다.
“연무장에서 만나기로 했었지.”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아카데미의 앞은 벌써 시끌벅적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아카데미의 대동제는 장안시티의 축제라고 불린다더니 그 말이 정말인 모양이었다.
어느새 정문으로 들어서니 드넓게 펼쳐진 교정이 눈에 들어왔다. 한여름 아카데미의 교정은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분홍빛 하트 모양의 금낭화는 사랑을 노래하듯 옹기종기 떼 지어 있었고, 그 위에 심어진 상록수는 앰프에서 울려 퍼지는 진동에 맞춰 가지를 살랑였다.
어느새 연무장 입구에 도착한 그는 황보철수, 황보수정과 만나 연무장 안으로 들어섰다.
“뭐야, 무대는 언제 설치했대. 어제까지는 없었는데?”
“그러게.”
“근데 저기 위에 누가 있는데?”
황보수정의 말을 듣고 무대를 보니 무대 가운데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귀에 뭔가를 꼽고 있었다.
“진행자인가 보군.”
“유명한 사람일걸?”
“유명한 사람?”
“응, 2학년 아는 형한테 듣기로는 엄청 유명한 사람이래.”
어느새 음향 세팅이 끝났는지, 진행자는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잘 들리시나요?”
“네!”
“잘 들리시면 소리 한 번 질러주세요!”
“와아아아아-”
“벌써 올해도 여름이 다가왔네요. 저는 5년째 아카데미 축제 진행을 맡은 데이크라고 합니다!”
“와아아아-”
백일진네는 잘 몰랐지만, 데이크는 진행 분야에서는 가히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귀족들의 파티에도 자주 참석할 정도였으니.
“자, 축제를 시작하기에 앞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죠!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건 뭐죠? 하나, 둘, 셋 하면 다 같이 외쳐볼까요?!”
“네-!”
“하나, 둘, 셋!”
백일진과 황보수정, 황보철수는 어리둥절하며 고개를 까딱였지만, 연무장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외쳤다.
“불꽃놀이!”
“불꽃놀이요!”
“불!꽃!놀!이!”
황보철수는 피식 웃으며 위로 고개를 들었다. 아직 해가 중천이었기에 하늘은 푸르렀다.
“뭐야, 날이 이렇게 밝은데 무슨 불꽃놀이를…….”
쉬이이익-
때맞춰 황보철수의 입을 막은 불꽃이 하늘로 쏘아졌다.
“어?”
이윽고 퍼엉- 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불티가 그물이 펼쳐지듯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불꽃은 날이 밝음에도 선명했다. 아니 오히려 밤에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와, 이래서 아카데미 축제를 불꽃놀이로 시작하는 거구나…….”
“그러게.”
“너무 예쁘다.”
쉬이이익- 퍼엉-
“학생분들! 여러분들의 등록금 터지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와아아아-”
“그럼 지금부터 대동제를 시-작!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동제의 막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