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11
아카데미 담당 일진 111화
땅을 울리는 진동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사라진 모용석이 공손휘의 앞에 나타나 유성권을 휘둘렀다.
쩌엉-
예상치 못한 공격에 복부를 제대로 얻어맞은 공손휘가 볼썽사납게 비무대 바닥을 굴렀다.
관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용석이 이기는 거 아니야?”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정무단의 부회장인데?”
“모용석은 모용세가의 공자라고.”
“공손휘도 공손세간데.”
“공손세가는 오대세가도 아니잖아.”
관객들의 대화가 들린 것일까. 공손휘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일어났다.
“다 때렸냐?.”
“……!”
겉으로 아무런 상해가 없어 보이는 공손휘의 모습에 모용석은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유성권을 정통으로 맞고도 멀쩡해?’
입가에 피라도 흐른다면 내상이라도 유추해 볼 수 있겠건만, 썩은 표정으로 조소를 짓고 있는 공손휘의 얼굴에는 피는커녕 침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이는 필시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는 증거. 하지만 모용석은 좌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쉽게 이길 생각은 없었다. 모자라면 채우면 된다, 좌절할 필요는 없어.’
애써 놀란 가슴을 눌러 내리고 기수식을 취한 모용석은 재차 공손휘에게 달려들었다.
“죽고 싶어 환장했군.”
파앗- 공손휘의 신형도 화살처럼 쏘아졌다.
“뒤져.”
잠시 후 모용석의 오른쪽에 몸을 드러낸 공손휘가 도를 휘둘러 모용석의 손목을 내려쳤다.
“이 미친 놈이……!”
보통 비무에서 이러한 공격은 도의 날이 아닌 옆면으로 치는 것이 상호 간의 예의였으나, 이미 눈이 돌아버린 공손휘는 그런 것 따위 생각하지 않았다.
급하게 팔을 빼낸 모용석이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공손휘는 집요하게 달라붙어 도를 휘둘렀다.
사악-
베어진 모용석의 왼쪽 오금에 붉은 실선이 생기더니 피가 쏟아져 나왔다.
“크윽.”
공손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날이 없는 반대 면으로 모용석의 울대를 때렸다.
커억-
순간 눈앞이 새하얘진 모용석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이내 그의 몸이 무너져 내리려는 찰나, 다가온 공손휘가 그의 옆통수를 걷어찼다.
“오대세가 별것도 아니…….”
말을 멈춘 공손휘가 자신의 갈비뼈를 붙잡았다. 갈비뼈에 금이 갔는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후우- 아까 주먹이……?’
분명히 내공으로 막아낸다고 막아냈건만, 모용석의 주먹에 담긴 위력이 그의 내공을 뚫고 들어온 것 같았다.
‘지금 티를 낼 수는 없어…….’
승기를 잡은 상황, 확실한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공손휘는 폐가 부풀어 오를 정도로 숨을 들이쉬었다. 이렇게 하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어느 정도 고통을 보낸 공손휘는 바닥에 널브러진 모용석의 목을 짓밟았다.
“나와라, 공손휘.”
언철진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모용석을 보더니 공손휘를 밀쳐내고는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
“아홉.”
그 순간 모용석이 몸을 꿈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언철진은 그런 그를 보고는 가볍게 눈을 빛냈다.
‘저 녀석…….’
눈동자를 보니 이미 의식이 없다. 단지 정신력으로 일어난 것이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모용석은 공손휘를 향해 느직느직 걸어갔다.
‘의지 하나는 대단하군. 이 꼴이 되어서도 싸우려고 하다니.’
저번에 지대학이 했던 말대로 정말 이번 신입생들은 그가 상상하기 힘든 재능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있었다.
‘남궁종수, 황보철수에 모용석. 셋 다 탐이 나.’
자신도 무인으로서 모용석의 의지를 존중해 계속 비무를 속행하게 놔두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 싸우게 할 수는 없다.’
이 이상 무리하다가는 정말 선천진기까지 사용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만.”
삐익- 언철진이 호각을 불며 정무단 쪽의 깃발을 들었다.
쿠웅-
경기가 끝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일까. 온몸에 힘이 풀린 모용석이 자리에서 쓰러졌다.
“결과는 정무단의 승리다. 중앙 동아리 연합은 다음 선수를 내보내도록.”
이제 정무단과 마찬가지로 중앙 동아리 연합은 두 명만이 남게 되었다.
“설하윤.”
수투를 착용하며 심호흡하고 있는 설하윤에게 다가간 백일진이 말을 건넸다.
“……?”
“힘내라.”
“고마워.”
옅은 미소를 지은 설하윤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뒤 비무대로 올랐다.
공손휘는 설하윤이 비무대 위로 올라온 순간, 품에서 뭔가를 꺼내 약지와 소지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것은 자신이 직접 만든 독이었다.
해약을 만들기가 어렵지 않았고, 비무에서 사용할 수 없는 극독도 아니었지만, 내공을 흩어버리는 산공독의 일종이었기에 중독 당시의 효력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독이었다.
공손휘는 빠르게 언철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얼른 시작해 달라는 의미.
‘몸 상태가 안 좋아. 이번엔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공손휘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런 평온한 태도 탓에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삐익-
호각 소리와 동시에 공손휘는 탐색전을 펼칠 틈도 없이 설하윤에게 달려들었다.
채앵-
설하윤의 수투와 공손휘의 도가 부딪히며 불똥이 튀겼다.
설하윤의 수투를 내려친 공손휘의 도가 튕겨 오르며 그의 오른팔이 들렸다.
순간, 그 틈으로 파고든 설하윤이 손에 냉기를 모았다.
공손휘는 급하게 허리를 틀었으나, 모용석에게 당했던 충격 탓에 허리가 굳어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필 이때……!’
설하윤은 기운을 모은 손바닥을 주욱 뻗었다. 그녀의 주위에는 반짝이는 서리들이 모여들었다.
극한의 소수빙공!
이내 한 점으로 모여든 서리들이 눈보라처럼 공손휘에게 휘몰아쳤다.
쾅-
겨우 중심을 잡은 공손휘는 급하게 도를 휘둘러 서리를 쳐낼 수 있었으나, 어찌나 위력이 강했는지 서리에 도가 닿을 때마다 충격을 받은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이 자식들 도대체 뭔데?!’
황보철수부터 시작해서 모용석, 설하윤까지. 동 나이 때의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속된 공격은 공손휘를 비무대 끝자락으로 밀어냈다. 그와 동시에 다가온 설하윤은 공손휘의 소매를 붙잡았다.
파스스슷-
새하얗고 매끄러운 손에 잡힌 소매는 찰나간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공손휘의 대처는 재빨랐다.
“이따위 것!”
쩌정! 소리와 함께 얼어붙은 공손휘의 옷소매가 부서졌다.
“하아…….”
“후.”
잠시간의 소강상태, 공손휘가 먼저 도를 들고 있지 않은 반대 손으로 설하윤의 복부를 노렸다.
빠르게 몸을 숙인 설하윤은 복부를 뒤로 뺐으나 공손휘의 목적은 그녀의 복부가 아니었다.
‘걸렸다.’
허리를 숙이니 자연히 그녀의 얼굴은 공손휘와 가까워졌고, 그 틈을 타 공손휘는 손에 쥐고 있던 초록색 가루들을 허공에 흩뿌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관중들이 아연실색하며 중얼거렸다.
“뭐야, 저거 독이야?”
“와, 공손휘……. 역시 극한효율(極限效率)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다니까.”
“진짜, 이기기 위해서는 별짓을 다 하는구나…….”
어느새 정신을 차린 남궁종수도 독이 뿌려지는 장면을 보고 소리쳤다.
“저 자식! 치사하게 독까지 썼어!”
“정무단 맞아?”
“정무단은 이미지에 신경 써야 해서 저런 짓 안 한다며!”
“공손휘는 외부의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집안이니까.”
돌연 설하윤의 입에서 마른기침과 함께 검붉은 색 피가 흘러나왔다.
쿨럭-
내공을 일으켜서 독기를 몰아내려고 했지만, 이미 온몸에 퍼진 독기 탓에 그조차 쉽지 않았다.
“……하아.”
원래도 새하얀 설하윤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푸른 기가 느껴질 정도.
공손휘는 그런 설하윤의 목에 도를 들이밀었다. 날카로운 도 날에 닿은 설하윤의 목에 붉은 실선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미 내공조차 사용할 수 없는 그녀는 달리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끝.”
독공을 사용한 사람은 비무가 끝나면 해약을 주는 것이 원칙. 공손휘는 해독약을 바닥에 던졌다.
“가져가라.”
그것을 받아 든 그녀는 이내 비무대 밑으로 내려왔다.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암묵적인 규칙을 깨뜨렸을 뿐, 공손휘는 비무의 규정을 아무것도 어기지 않았다.
그냥 실력이 부족해서 진 것이다. 대처가 조금만 빨랐으면 독에 중독되지 않을 수 있었다.
‘독을 썼든 뭘 했든 내가 진 거야.’
해독약을 먹은 그녀의 안색이 차츰 돌아왔다.
어느새 그녀의 상태를 진찰하기 위해 다가온 간호학 교수 가비가 그녀에게 약을 내밀었다.
“아무리 해독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미 입은 내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보름 정도 요양을 해야 할 거야.”
“네, 알겠습니다.”
“그래, 무슨 일 생기면 보건실로 찾아오고.”
“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설하윤이 시종일관 공손휘를 압도하고 있었기에 눈에 띄는 외상은 없다는 것.
설하윤은 문득 고개를 돌려 백일진을 찾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그는 그녀의 바로 옆에 있었다.
묵묵히 그녀를 마주 보던 백일진은 돌연 그녀의 앞머리 안으로 손을 넣어 이마를 짚었다. 설하윤의 얼굴이 급격히 달아올랐다.
“열은 없군, 아니, 있나.”
분명히 처음 손을 올렸을 때만 해도 냉랭하던 그녀의 이마는 손을 대고 있을수록 따뜻해졌다.
그것이 본인이 손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던 그는 자신의 이마를 만지고 다시 설하윤의 이마를 만지길 반복했다.
“여, 열은 없어.”
“그런가.”
“응.”
출전자를 호명하는 소리에 몸을 돌린 백일진이 설하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나.”
“응?”
그는 무심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죽여줄까?”
“……,”
내용만 보자면 절대 설렐 수가 없는 말. 하지만 이 순간, 그녀의 심장은 폭발할 듯 진동했다.
‘그냥 하는 말이겠지?’
그런데 왠지 백일진의 성격상 죽여달라고 하면 진짜 상대를 죽여 버릴 것 같았다. 아무리 공식 비무라지만 상대를 죽이는 것은 규정에 어긋나는 짓.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죽지 않을 정도만…….”
“할아버지와 똑같은 말을 하는군. 알겠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다.”
그녀를 뒤로한 백일진은 굳은 얼굴로 계단을 밟았다. 천마검은 그런 백일진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는지 눈치를 보며 물었다.
-……너 혹시 화났냐?
‘아니.’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백일진의 시선은 비무대에 오를 때까지 공손휘의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게 그 백일진이라는 녀석인가?”
“그 양아치라던 녀석? 월간 아카를 보니까 교복도 잘 안 입고 다닌다던데, 또 뭐가 있었지?”
“자기 선배를 두들겨 팼다는데? 첫 강의 시간에 지각도 했대.”
비무대 위를 오르는 백일진을 본 관중들이 술렁거렸다. 하지만 그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는 많지 않았다.
“우우-”
“죽어라-”
“쓰레기 같은 놈! 아카데미는 당장 퇴학 규정을 만들어라!”
“미꾸라지가 개울을 흙탕물로 만드는 법!”
월간 아카에서 만들어놓은 불량 학생이라는 이미지 때문.
관중들의 반응을 지켜보던 베르만이 씨익 미소지었다.
“좋아, 아주 좋아.”
열 명의 선동은 이내 백 명의 주장이 되었고 백 명의 주장은 곧이어 천 명의 의견이 되었다.
어느새 그들 사이에서 백일진은 졸지에 수백 가지의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모든 이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관중석 바로 앞, 학생회 전용 자리에 앉아 있던 지대학은 생긋 미소를 지으며 백일진의 등장을 지켜봤고.
“백일진, 기대되네?”
심판대 위에 있던 언철진도 백일진을 시야에 담고는 눈을 빛냈다.
“드디어 나왔군.”
그리고 저 멀리 또 다른 한 명, 백일진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드디어 나왔네요.”
어찌 되었든 이 순간, 그 모든 사람을 열광시킨 것은.
소문의 천재 괴물 백일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