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13
아카데미 담당 일진 113화
대장전(大將戰).
말 그대로 우두머리끼리 싸워서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다른 이들을 제외하고 단둘이서 결판을 짓자는 말이었다.
‘그런데 굳이 대정전을 펼치겠다고?’
언철진은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비그리를 바라봤다.
그가 알기로 중앙 파벌에서는 더 이상 차출할 멤버가 없다. 한마디로 전에 나왔던 멤버들이 간단한 치료만 받은 채 다시 나와야 한다는 것.
이 말은 기존 방식대로 결승전이 펼쳐졌을 경우, 혈사자회가 우승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얘기.
비그리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무슨 생각이지?’
언철진은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비그리의 표정을 살폈다.
비그리의 오른쪽 눈에는 특유의 초록 기운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비그리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드러나 있었으니.
‘호승심이군.’
자신조차도 백일진을 보면 전신의 근육이 움찔움찔 떨려대는데 아직 한창인 2학년이면 오죽하겠는가.
‘호승심이 아니더라도 시험하고 싶겠지.’
백일진이라는 녀석의 재능을.
‘그리고 자신의 재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하겠지.’
이것은 천재라 불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증상이다. 자신의 재능과 타인의 재능을 비교해 보는 것.
‘그리고 다른 천재의 벽이 되는 것.’
한때는 언철진 자신도 저랬던 시절이 있었다.
지대학이라는 녀석을 알게 되고 난 이후에 그런 마음은 싹 사라졌지만.
‘뭐 이건 내 추측이고 그래도 물어보기는 해야 하겠지.’
언철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갑자기 대장전을 원하는 이유가 뭐지?”
“상대는 어차피 나올 상대도 없는 데다가, 시간도 시간이고…….”
언철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긴, 여기서 한 번 더 단체 비무를 진행한다면 새카만 밤이 되겠군.’
계속 말하라는 듯, 언철진이 턱을 까딱였다.
“또, 백일진이라는 후배와 붙어보고 싶어서요.”
“음…….”
언철진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그리의 제안은 중앙 파벌 동아리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아마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
그렇다 한들 자신에게는 규칙을 바꿀 권한이 없었다. 결정은 중앙 동아리 쪽에서 하는 것이다.
‘물론 거절하지는 않겠지.’
언철진은 고개를 돌려 백일진을 쳐다봤다.
“네 생각은 어떠하지?”
“일단, 대기실에 돌아가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본 다음, 한 시간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시간 뒤에 말해주겠다는 것은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에 통보하겠다는 의미.
후배가 간을 본다는 것이 기분이 나쁠 법도 하건만 비그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언철진은 비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백일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생각할 게 뭐 있어, 중앙 입장에서는 날로 먹을 기회인데.’
* * *
그의 예상대로 중앙 동아리 연합의 대기실은 축제라도 펼쳐진 듯,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대장전이라고? 그럼 우리는 안 싸워도 되는 거잖아요!”
“그렇지! 빨리 가서 받아들인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모용석은 신이 난 중앙 파벌의 동아리원들을 보고는 눈살을 꿈틀거렸다.
‘백일진의 출전을 너무 당연시하는군.’
물론 대장전을 펼친다면 나갈 사람이 백일진밖에 없는 것은 맞다.
승산이 있는 것도 백일진뿐이고.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백일진의 출전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좀 아니다 싶었던 모용석은 급히 손을 들어 나가려는 이의 팔목을 붙잡았다.
“잠깐! 결정을 우리가 해도 되는 겁니까?”
“그럼…… 누가?”
“당연히 출전자 본인이 해야죠.”
“…….”
모용석의 말을 들은 중앙 소속 동아리원들은 묵묵히 앉아 있는 백일진을 보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백일진이 출전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 아닙니까?”
“그, 그건……”
“…….”
할 말이 없어진 중앙 파벌의 간부들은 고개를 숙였다.
간과하고 있었다. 사실상 그들과 백일진은 일면식도, 말 한 번 섞어본 적도 없는 사이라는 것을.
“미, 미안하다.”
“저한테 미안할 건 없고 당사자한테 하시죠.”
“백일진, 미안하다. 너무 당연하게 여겼어.”
“됐습니다.”
하지만 모용석은 거기서 그칠 생각이 없는 듯, 계속해서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을 뱉었다.
“제과제빵 동아리는 백일진에게 3개월간 빵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각자 동아리에서도 뭔가 혜택을 제공하시죠.”
“그, 그래야지. 하하…….”
각 동아리의 간부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하더니,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꽃꽂이한 작품을 준다거나, 옷을 만들어준다거나 하는 대부분 쓸데없는 것들이었지만, 모용석은 만족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맞는 거지.’
호의를 베풀었으면 돌아오는 것이 있어야 한다. 돌아오는 것이 쓸데가 있고 없고는 둘째 치더라도.
‘한두 번 어물쩍 넘기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당연해진다.’
모용석이 굳이 분위기를 망쳐가면서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그 꼴을 보기 싫었기 때문.
백일진은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려고 하다 천마검의 만류에 입을 다물었다.
-모용세가라고 그랬나, 역시 선비족의 피가 섞여 있어 계산은 확실하군. 공짜로 일을 시킬 바엔 뭐라도 내놓으라고 하는 거지. 그게 아무리 필요 없는 쓰레기라고 할지라도 말이야.
‘선비족? 그게 뭐지?’
-그런 게 있다.
굳이 궁금하지 않았던 백일진은 더는 묻지 않았다. 어느새 그들과 협상을 마친 모용석이 그에게 다가왔다.
“백일진, 저 정도 조건이면 괜찮나?”
조건이라고 해봤자 꽃꽂이 작품, 십자수로 만든 호랑이 액자, 스웨터 세 벌, 아이스커피 3개월 무료 등 쓸데없는 제안들이었다.
저들도 그것을 아는지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백일진은 어차피 저런 조건이 없어도 나갈 생각이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좋다네요. 그럼 그렇게 하시죠.”
* * *
한 시간 뒤.
밤하늘은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하건만 관객석은 여전히 빈자리 없이 가득 메워져 있었다.
물론 사람이 많다 보니 그들 중에는 싸우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에도 근육 보여주세요!”
“이봐, 아지매. 그건 집에 가서 당신 남편 거나 봐.”
“뭐? 아지매? 이 냄새 나는 노땅 자식이. 코털이나 밀고 얘기해.”
이런저런 함성 가운데 우뚝 선 백일진은 비그리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대장전, 받아들이겠습니다.”
관중들은 백일진의 말에 큰 함성으로 화답했다.
“멋있다! 백일진!”
“화끈하다!”
미디어실에 눕듯이 뒤로 몸을 빼고 앉아서 발가락 사이를 쑤시던 베르만도 쾌재를 외쳤다.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그런 베르만을 바라보던 제갈무혁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선배, 그러다가 백일진이 이기면 어떻게 해요?”
“……백일진이? 이겨?”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백일진이 이긴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니 눈곱이 아니라 전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도 백일진이 이기지 못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가능성은 조금 달라졌다.
“눈곱보다는 커졌지.”
“갑자기 무슨 눈곱이요.”
“백일진이 이길 확률 말이야.”
“아…….”
“만약에 백일진이 이기면…….”
잠시 말을 멈췄던 베르만이 말을 이었다.
“주제만 바꾸면 돼.”
“네?”
“모로 가도 장안으로만 가면 된다는 말 모르나? 백일진이 참교육당하지 못하더라도 백일진이 이긴 것만으로 특종이다.”
베르만은 눈을 번질번질하게 뜨며 말했다.
“내가 띄운 녀석이 스타가 되는 거지.”
제갈무혁은 광기 가득한 베르만을 보고서는 그와 살짝 거리를 띄웠다.
‘내가 본 사람 중에 진짜 제일 미친놈이야.’
* * *
언철진은 비무대에 올라온 둘의 기세를 가늠했다.
비그리의 기세는 언철진마저도 놀랄 정도였다. 자세히 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저릿저릿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으니.
‘비그리는 겉으로 보기에도 많이 성장했군.’
몇 달 전, 동아리 간의 전쟁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수준.
동 나이대의 자신과 비교해서는?
‘그래도 내가 좀 더 낫지 않겠나.’
확언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무림인이고 비그리는 마법사. 겉으로 드러나는 기세만으로는 정확하게 판단이 되지 않았으니.
비그리에게서 눈을 뗀 언철진은 백일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흐음, 이 녀석은…….’
보통 무림인들의 실력을 알아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드러나는 기세로 상대를 파악하는 것.
하지만 늘 그랬듯, 이 백일진이라는 녀석은 기세라는 것이 없다. 아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그리고 두 번째, 눈가 옆에 있는 태양혈을 확인하는 것. 무림인은 익힌 내공이 심후할수록 태양혈이 볼록해진다.
‘이마 옆에 있는 태양혈이라도 확인하면 뭔가 짐작이라도 가겠건만, 긴 머리 탓에 그것조차 볼 수 없군.’
비그리도 특이한 체질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지만, 이 백일진이라는 녀석은 그 정도가 심했다.
마치 상식을 파괴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누가 이길까.’
알 수 없었다. 천재와 천재의 대결에서는 종잇장만큼의 재능이라도 엄청난 차이로 나타나게 되는 법.
‘그래도 한 살이라도 더 많은 비그리가 우세할 것 같긴 하군. 사용할 리는 없겠지만 그것도 있고…….’
언철진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이내 번뜩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호각 소리가 비무대 위를 덮었다.
비무가 시작된 순간.
백일진과 비그리의 시선이 비무대 한가운데서 맞부딪쳤다. 비그리의 오른쪽 눈에서는 초록색의 기운이 터질 듯이 일렁이고 있었다.
“백일진.”
“네.”
“너도 증명하고 싶지 않나. 나의 재능보다 네 재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
백일진은 뜬금없이 철학적인 개소리를 내뱉는 비그리를 보고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래?”
비그리는 백일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백일진이 일부러 티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 뭐 본인이 나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그리고 본인의 재능은 타인과 비교 불가한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저것은 벽을 느낀 적이 없을 때나 가능하다.
단 한 번이라도 벽을 마주하게 된다면 자신이 실은 천재라 불릴 자격이 없진 않을까, 재능이 모자라진 않을까 늘 전전긍긍하면서 살게 된다.
백일진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녀석은 한 번도 벽 같은 것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렇게 오만하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언철진이라는 벽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렇기에 저런 오만함을 치료해 줄 방법을 알고 있다.
‘내가 네놈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주겠다.’
백일진은 기수식을 취했고 비그리는 다섯 개의 마법진을 생성시켰다.
“그럼 시작한다.”
“네.”
다섯 개의 마법진이 맹렬하게 돌아가는 것을 본 천마검이 진중한 목소리로 백일진에게 말했다.
-이번엔 조심해라. 전에 나왔던 녀석이랑은 달리 방심을 하지 않고 있다.
‘알았다.’
진하월은 무리하게 백일진과 정면 승부를 펼쳤기에 쉽게 잡아낼 수 있었지만 비그리는 그의 실력을 인정하고 집중한 상태였기에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백일진이 천마검을 뽑아 들었다. 무뎌진 칼날 탓에 뽑히는 소리는 유난히 둔탁했다.
“저게 뭐야.”
“저게 검이야?”
“아니, 누가 검을 저런 걸 써.”
“그래도 소재는 한철 아니야?”
“소재가 좋으면 뭐 하냐고. 그리고 검병 봐, 쓰레기야 쓰레기.”
“그러게 다 낡아서 고물상에 갖다 팔아도 10만 골도 못 받겠다.”
화면에 줌인 된 천마검의 모습에 관중들이 실망한 듯 비웃음 섞인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백일진의 움직임이 시작된 순간, 그들은 전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가 검을 통해 뿜어내는 압도적인 기세 탓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