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2
아카데미 담당 일진 12화
보건실 문을 부술 듯 열고 들어온 데칸트를 본 천수신의(天手新醫) 방백통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바둑돌을 내려놨다.
“자네는 노크라는 걸 모르는…….”
“후욱.”
“아니! 자네, 원래도 안 좋던 안색이 더 썩어버렸는데 무슨 일 있는 겐가?”
데칸트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어느새 그의 온몸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일……단 가비나 불러주십시오…….”
“가비는 출장 갔는데……. 내가 봐주도록 하겠네.”
그렇게 말한 천수신의는 데칸트가 뭐라 대꾸를 하기도 전에 그의 손을 낚아채 맥을 짚었다.
“이런, 기혈이 많이 상했군. 혹시 드레이크라도 잡고 오는 길인가?”
“신의님 말고 가비…….”
“거 참, 출장 갔다니까.”
데칸트가 방백통의 치료를 거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천수신의라는 별호에 걸맞게 실력은 출중했지만, 그에게 치료받는 과정은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
‘신성 마법 한 방이면 되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굉장히 굵어 보이는 은색 침을 입에 물고 오는 천수신의가 보였다.
‘저, 저거 젓가락 아니야?’
꿀꺽.
침이 절로 삼켜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가온 천수신의는 내공을 불어넣은 굵직한 침 다섯 개를 데칸트의 몸에 꽂아 넣었다. 침이 어찌나 굵었는지 꽂힐 때마다 투둑- 소리가 났다.
“기해(氣海), 건리(建里), 중완(中脘), 단중(膻中), 선기(璇璣).”
“끄아아아아아악.”
“자네, 임맥 쪽 혈이 많이 다쳤어. 당분간 마법 사용은 자중하시게.”
“제발 사, 살살!”
“거 사람 참, 엄살 하고는……. 이렇게 시끄러운 양반이 적막에 데칸트는 무슨.”
천수신의와 바둑을 두던 남자는 고통에 가득 찬 데칸트의 비명을 듣더니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데칸트 씨 꼴이 말이 아니네요.”
“끄응…….”
평소의 데칸트 같았으면 버럭 화를 낼 법도 하건만, 웃고 있는 남자를 본 데칸트는 속으로 화를 삼키고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아르무트 학장…….’
만능(萬能)의 아르무트.
마법 학부의 학장이자, 아홉 개의 마법진으로 모든 계열의 마법을 극한까지 사용할 수 있는 9성급 대마도사.
그의 외모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얼핏 보면 감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실 같은 눈이 인상적이었다.
‘괴물 같은 주안술(朱顔術 외관을 젊게 만드는 무공)은 여전하군.’
아르무트의 탱탱한 피부는 15년 전 처음 만났을 때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젊어 보였다.
“학장이란 사람이 이 시간에 내기바둑이나 두고, 뭐 하시는 겁니까.”
“신의 님이랑 의논할 게 있어서요. 그리고 제가 벌써 10만 골이나 땄다구요.”
“아르무트 이 짠돌이 녀석, 단 한 수를 안 물러줘!”
매번 이런 식이었다. 가끔은 ‘무공 학부 학장인 검제(劍帝) 나혁중이 마법 학부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르무트가 일하는 모습은 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10만 골이나 땄으면서…….’
매일 내기 바둑을 하면 돈을 쓸어감에도 회식을 할 때, 자기가 뭔가를 사는 꼴을 본 적이 없다. 돈에 미친 귀신이라도 들러붙은 모양.
‘흥! 만능의 아르무트? 짠돌이 아르무트겠지.’
“아 예…… 그러시겠죠.”
“그나저나 데칸트 씨는 수업한다고 들어가셔서 왜 만신창이가 돼서 오셨어요?”
“마법 시범을 보이다가 좀 무리했습니다.”
아르무트가 마치 굉장히 놀랐다는 듯이 과한 액션을 취했다.
“히에에엑! 우리 데칸트 씨가 시범을 보이다가 무리를 해요? 도대체 어떤 마법이길래! 설마, 메테오라도 보여주신 거예요?”
“아, 그건 아니고 결계 마법 시범을 보이다가…….”
“그럼 혹시 학생한테 정신력이 밀리신 건……. 에이 설마 우리 데칸트 씨가 그럴 리가 없죠. 암!”
얄궂은 표정으로 놀려대는 아르무트를 보니 데칸트는 다친 속이 더 울렁거려 왔다.
‘후, 머리통을 날려 버릴 수도 없고…….’
* * *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황보 쌍둥이가 백일진에게 달려왔다.
“일진,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어?”
“괜찮다.”
괜찮다고 말을 했음에도 황보수정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새까만 단약이었는데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대강의실 안을 메울 정도였다.
그 기막힌 냄새에 백일진도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으나 걱정이 가득 담긴 황보수정의 눈빛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이게 뭐지?”
“우리 가문 특제 비약, 패왕단이야! 먹으면 가벼운 내상은 금방 치료해 줄 거야.”
“패왕단……?”
“이, 일진! 그거 먹지……악.”
황보철수는 멀리 떨어진 채로 코를 막으며 백일진이 패왕단을 받아 드는 걸 말리려 했지만, 황보수정의 주먹이 배에 꽂히는 바람에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얘 말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먹어.”
“아, 알았다.”
황보철수의 반응을 보니 조금이나마 있던 먹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 당장 먹으라는 듯 눈치를 주는 황보수정을 바라본 백일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패왕단을 입에 털어 넣었다.
‘뭐…… 죽기야 하겠어?’
꿀꺽-
“윽.”
입에 들어간 패왕단은 순식간에 액체처럼 녹아내렸다. 식도를 타고 흘러간 패왕단이 위를 향할 때 즈음, 헛구역질이 그를 찾아왔다.
“우엑-”
이 지독한 냄새는 데칸트의 결계 마법보다 그를 더 고통스럽게 했다. 자꾸만 나오는 헛구역질에 옆에 있던 물을 벌컥 들이마신 백일진이 물었다.
“이 약…… 혹시 고통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치료하는 그런 건가?”
“무슨 소리야! 얼마나 좋은 약인데!”
“푸하하하하, 그러게 내가 먹지 말라고 했잖아.”
“찰스 말이 맞았군.”
황보수정은 낄낄대며 웃는 황보철수를 째릿- 바라봤다. 깔깔 웃던 황보철수는 황보수정의 표독한 눈빛에 얼른 웃음을 숨겼다.
“너 때문에 그러잖아.”
“또 뭐가 나 때문이야…….”
“네가 헛소리하니까 일진이도 거기에 휩쓸리는 거 아니야.”
황보철수의 경험상 또 황보수정의 잔소리가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럴 때는 재빨리 화제를 돌려야 한다.
“그나저나 일진.”
“……?”
“결계 안은 어땠어? 나 태어나서 결계 마법은 처음 봐!”
황보철수는 마법 마니아답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백일진은 결계 안에서의 상황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음…… 일단, 별건 없었다. 일단 처음으로는 환상이 보이더군.”
“일루전 마법! 무슨 환상이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아주 거대한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한 눈?”
황보철수는 마치 자신이 일루전 마법을 경험한 듯 몸을 흠칫 떨었다. 어느새 황보수정도 슬쩍 입가에 손을 올렸다.
“안 무서웠어?”
“무섭다고 하기보다는…… 뭔가 따뜻한 눈빛이었다.”
그 말마따나 그 눈빛은 정말 따뜻하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되지 않았다. 마치 할아버지가 그를 바라볼 때의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몸이 조금 무거워지더군. 그러고는 데칸트 교수가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는지 별거 없었다.”
데칸트가 들으면 깜짝 놀랄 소리를 내뱉는 백일진이었지만, 황보 쌍둥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딩동댕동- 강의 시간입니다.]그때,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황보철수는 뭔가를 더 물어보고 싶은 눈치였지만 황보수정이 그를 끌고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혼자 남은 백일진은 눈을 감고 결계 마법 안에서 봤던 거대한 눈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분명히 익숙한 눈빛이었는데…….’
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대 강의실의 앞문이 열리면서 데칸트가 들어왔다.
“자! 주목.”
데칸트의 목소리는 전 교시와 다르게 칼칼해져 있었다. 떠들던 학생들은 전기 마법을 맞고 기절해 버린 녀석들을 떠올리고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젠장, 수업을 뺄 수도 없고.’
데칸트는 공강 처리를 하고 휴식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산더미 같았지만, 다음 주에 있을 배치고사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아카데미의 배치고사는 열 개의 과목으로 시험을 치른다. 그리고 나온 결과에 따라 각자 성향에 맞는 반으로 배치를 하는 게 배치고사의 목적이었다.
문제는 이번 시간에 배울 마력 호흡법의 구결이 배치고사를 볼 때 시험을 볼 문제라는 것. 그렇기에 수업을 빼먹을 수는 없었다.
“저번 교시에는 결계 마법에 대해서 배웠었지. 이번 교시에는 무얼 한다고 했었지?”
“마력 호흡법을 가르쳐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정답이다.”
그렇게 말한 데칸트는 칠판에 마력 호흡법을 사용하는 방법을 적었다.
“마력을 쉽게 다루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게 마력 호흡법이지.”
데칸트가 적고 있는 마력 호흡법은 시중에 널린 싸구려 마력 호흡법이 아니라 마탑에서 배우는 제대로 된 마력 호흡법이었다.
웬일인지 데칸트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모든 것을 적어 내렸다. 학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함을 품었지만 이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력과 내공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건 마법사라면 다들 알고 있겠지.”
마법전형 학생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공전형 학생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공전형 학생들은 모르는 학생도 많을 거다. 대부분 학생이 마탑에서 공부하는 마법사들과 달리 무공은 각자 사문에서 배우는 게 대부분이니까.”
그렇게 말한 데칸트는 단상을 짚으며 수업을 이어나갔다.
“단전에서 곧바로 전신 임, 독맥으로 기운을 보내는 것이 내공이요, 심장에 있는 마력 회로를 거쳐 기운을 방출하면 그것이 마력이다.”
무공전형 학생들과 백일진은 처음 듣는 얘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수업에 집중했다.
“하지만!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상 무공전형도 마법을 배워야 할 것이고, 마법전형도 무공을 배우는 게 당연한 법!”
한참 뭔가를 설명하던 데칸트가 칠판을 가리켰다. 그리고 보드마카로 칠판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고로 오늘 이 마력 호흡법을 다 외우지 못한 녀석들은 집에 갈 수 없을 것이다.”
그 말이 끝난 순간, 학생들이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칠판에 적혀 있는 마력 호흡법은 대충 봐도 5,000자는 돼 보였기 때문.
말을 마친 데칸트도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데칸트는 단상 앞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의자에 앉은 그의 오른 다리가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후들후들거렸다.
‘젠장, 더 서 있을 힘이 없군…….’
천수신의의 치료 덕에 수업엔 들어올 수 있었지만,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쯧, 나도 참 연약하군.’
그때 어떤 학생이 손을 들고 일어났다. 아무런 특색 없어 보이는 마법전형 학생이었다.
“마법전형 128번 라트 엑스라고 합니다.”
“뭐냐.”
“마법전형 학생들은 이미 마력 호흡법의 구결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데칸트는 라트 엑스라는 학생을 보고 손을 훠이훠이 내저었다.
“가라.”
“예?”
“꼭, 두 번 말하게 만드는군. 마법전형은 집에 가도 좋다는 말이다.”
“예…….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들은 마법전형 학생들이 우루루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데칸트에게 인사를 마치고 강의실을 나서기 시작했다.
백일진도 일어나 그들을 따라 강의실을 나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데칸트가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거기 필기 학생.”
“예.”
데칸트는 고개를 돌아본 백일진을 보고는 ‘젠장 또 저녀석이야?’라는 생각과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내심 엮이기 싫은 마음이 들었지만, 규칙은 규칙. 어떤 학생에게도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내가 분명히 마력 호흡법을 다 외워야 집에 갈 수 있다고 말했을 텐데.”
“다 외웠습니다.”
백일진의 말을 들은 학생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봤다. 그중에는 비아냥이 섞인 말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필기 200번 주제에 벌써 마력 호흡법을 다 외웠다고?”
“그래도 특별 합격생이잖아.”
“도대체 200등이 어떻게 특별 합격을 한 거야. 이해가 안 되네.”
필기 1번인 제갈무혁이 일어나도 의아함을 품을 판에, 200번을 달고 있는 그가 마력 호흡법을 벌써 다 외웠다는 말은 믿기 힘들었다.
데칸트는 학생들을 조용히 시킨 후, 백일진을 불렀다.
“자네, 이쪽으로 나오게.”
“예, 알겠습니다.”
백일진은 예의 그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하며 단상 위에 올라섰다.
나가는 학생들에게 가려져 누군지를 보지 못했던 학생들은 백일진이 단상 위에 올라서는 걸 보고는 ‘또 저 녀석이야?’ 하며 웅성거렸다.
“한 번 읊어보게.”
“마력 호흡법은 일단 자연과 교감을 이루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략) 십이지장을 타고 들어간 기운들을 단전에 뭉친다. (중략) 내뿜을 때는 임맥과 독맥을 통하지 않고 심장에 있는 마력회로를 거쳐 사출한다.”
백일진은 마력 호흡법을 읊는 10분 동안 단 한 번도 머뭇거리거나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뭐라고 할 명분이 없었다. 데칸트는 놀란 속을 진정시키며 백일진을 칭찬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잘 외웠군……. 특별 합격생다워.”
“감사합니다.”
“집에 가도 좋다.”
어느새 몸을 돌려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본 학생들의 표정에는 여러 감정이 스쳤다.
부러움, 질투심, 불신, 의아함 등등.
하지만 그 모든 시선을 받아내는 백일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문밖을 나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