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20
아카데미 담당 일진 120화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간 순간.
남궁종수가 울컥 피를 토했다. 그의 옷은 여기저기 찢겨 넝마가 되어 있었고, 그 사이로는 무수한 상처들이 보였다.
“뭐야, 남궁종수가 진 건가?”
“아니야, 지태경을 봐. 쓰러져 있잖아.”
“어, 진짜네?”
그들의 말대로 지태경은 젖은 수건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허나,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닌 듯 약간의 움직임이 보였다.
상처 입은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며 지태경에게 다가간 남궁종수는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고개를 숙이고는, 지태경의 귀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후욱- 지태경 선배, 들어보셨을지는 모르겠는데, 이게 벽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말한 남궁종수는 상체를 일으키며 읊조렸다.
“완벽.”
지태경은 분한 듯 몸을 거세게 꿈틀거렸으나 달리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관중들의 함성을 뒤로한 남궁종수가 비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그곳에는 축하하기 위해 미리 내려온 남사모 인원들이 모여 있었다.
“존스! 몸은 괜찮아?”
“안 괜찮아.”
“아무튼 우승 축하해!”
“고맙다.”
시상식은 남궁종수가 없이 시작되었다.
남궁종수는 기필코 자신이 올라가겠다고 말했으나, 그랑프리전을 나가기 위해서는 빠른 치유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남궁종수의 대리로 시상대 위로 올라간 것은 백일진이었다. 관중들은 이게 옳게 된 시상식이라고 말하며 열광적인 함성을 보냈다.
치료를 받으며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남궁종수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소리를 질렀다.
“아니 하필 왜 나가도 백일진이야?!”
“그럼 어떻게 해, 나는 네 세컨이라 네 옆에 있어야 하고, 용석이는 갑자기 수련하러 간다는데.”
“하, 죽 쒀서 개 줬네.”
“뭔 소리야?”
“후……. 아니야.”
시상식을 성황리에 마무리하고 내려온 백일진이 트로피와 메달을 건네며 말했다.
“올라가 달라고 부탁해서 갔다만, 왜 존스가 안 간 거지?”
“이제 존스는 그랑프리전에 나가야 하거든.”
백일진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랑프리전?”
“응, 왕중왕전이라고 보면 돼. 이거 봐, 대진표야.”
황보철수가 내민 것은 월간 아카에서 예측한 학년별 우승자 명단이었다.
1학년에는 지태경이 2학년에는 조운창, 3학년에는 강직 마브로, 마지막 4학년 명단에는 지대학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1학년부터 틀렸군.”
“그러게, 이쪽에서는 태경이 형을 존스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봐.”
“흠…… 근데 3학년 이름이 강직 마브로? 우리 반 티모스 마브로랑 비슷하네? 가족인가?”
“아니래, 드워프는 원래 같은 마을 출신은 성이 다 똑같대. 사촌지간인데 하프 드워프래.”
“존스는 이 중에 누구랑 붙지?”
“그건 아직 안 정해졌어. 기다려 봐야지.”
그때 2, 3, 4학년의 우승자가 순서대로 발표되었다. 상급생 우승자는 예상대로 혈사자회의 총무 월아검 조운창, 강직 마브로, 지대학이었다.
이제 조 추첨만을 남겨둔 상황.
‘어차피 우승은 글렀다.’
이미 단계홍의 수업 시간 때, 간접적으로나마 지대학의 무위를 느껴본 적이 있던 남궁종수는 우승보다는 결승전 자체를 노렸다.
‘제발 지대학 선배만 빼고……!’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추첨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토너먼트 그랑프리전 1차전의 주인공은?!
남궁종수는 주먹을 꼭 쥐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1학년의 남궁종수, 3학년의 강직 마브로!
발표가 난 순간 남궁종수는 쾌재를 불렀다.
“예스! 지대학 선배만 아니면 돼!”
환호성을 내지르며 길길이 날뛰고 있던 그때, 그의 대기실로 관계자가 찾아왔다.
“1학년의 남궁종수 학생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토너먼트 자체도 동아리전과 비교도 안 되는 규모에 놀랐었지만, 그랑프리전은 그 규모가 차원이 달랐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등장 이펙트 마법이었다.
남궁종수가 비무대 위로 올라간 순간, 번개가 치는 이펙트와 동시에 폭풍이 일어난 듯한 연출이 일어났다.
‘와, 대박이네.’
강직 마브로의 등장도 만만치 않았다. 비무대 위로 시뿌연 연기가 뿜어졌고 그 사이를 헤치고 강직 마브로가 걸어 나왔다.
처음 강직 마브로를 본 순간,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드워프 맞아? 오크나 오우거 아니야?’
드워프라고 부르기에는 커다란 키, 기다란 팔과 다리. 또 그 팔다리를 가득 채운 징그러울 정도로 큰 근육들까지. 그의 외모 중 하프 드워프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얼굴밖에 없었다.
“네가 남궁종수냐?”
“네? 아, 네.”
“백일진이라는 녀석과 붙어보길 기대했는데…….”
그 말에 울컥한 남궁종수가 소리쳤다.
“선배님, 저부터 이기고 그런 말씀 하시죠!”
“쯧,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선배님은 범보다는, 오우거를 닮았습니다!”
관중들은 남궁종수의 말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강직 마브로는 대답을 하지 않고 혀를 찼다.
‘쯧, 요즘 1학년들 버릇이 없다더니, 정말 버릇이 없긴 없군.’
원래 선배와 후배의 대결에서는 선배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겨야 본전이고 지면 손해였으니.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선배의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 강직 마브로가 제자리에서 허리를 돌린 채 주먹에 내공을 가득 담았다.
500년 전, 권존이라 불리던 사내가 드워프들에게 도움을 받고 전수해 준 무공, 그 전설적인 무공이 강직 마브로의 주먹을 통해 펼쳐졌다.
공명신권(空明神拳) 제3식 법원권근(法遠拳近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무, 무슨 주먹이 이렇게 커.’
강직 마브로가 휘두른 주먹은 마치 태산처럼 느껴졌다. 남궁종수는 그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아무런 반응조차 못 하고 휩쓸렸다.
‘너무 심하게 했나.’
비무대 바닥에 떨어진 채 다리만을 흔들거리는 남궁종수를 바라보던 강직 마브로는 고개를 내저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게 적당히 버릇이 없어야지.”
* * *
남궁종수가 번뜩 눈을 떴다. 그의 옆에서 물을 마시던 황보철수가 물을 꿀꺽 넘기고는 물었다.
“정신 차렸어? 몸은? 아픈 곳은 없어?”
“괜찮다, 결과는?”
“알잖아.”
“졌나 보군.”
“응, 1초식 만에…….”
“흠…….”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남궁종수는 의외로 태연했다. 그는 얼굴에 지워진 비비크림을 다시 바르며 말했다.
“뭐 딱히 아쉽지는 않다, 최선을 다해서 싸웠으니.”
“아니, 싸웠다고 하기에는…….”
“무인의 비무 결과를 가지고 놀리는 것은 좋지 않다, 황보철수.”
“아니, 놀리는 게 아니라…….”
그때, 그의 패배를 위로하기라도 하듯 수많은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다.
“불꽃놀이? 축제가 끝날 때가 됐나 보네.”
“가자.”
“어딜?”
“끝나니까, 보러 가야지.”
백일진은 이제 막 일어난 남궁종수를 재촉했다.
그 재촉 덕분인지 마지막으로 쏘아지는 불꽃놀이의 피날레는 직접 볼 수 있었다.
“자, 대동제를 마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데이크였구요, 올해의 대동제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남궁종수는 고개를 돌려 불꽃을 바라보는 백일진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자식도 독특하단 말이야. 은근 이런 걸 좋아해.’
그 후로 남사모 인원들과 가볍게 남궁종수의 축하파티를 한 그들은 밤이 늦어지기 전에 인사를 나눴다.
내일부터는 곧바로 강의가 시작되었기 때문.
“들어가, 다들.”
“응, 일진 너도 조심히 가.”
집에 돌아온 백일진은 간단하게 클린 마법으로 몸을 씻어낸 후, 옷을 갈아입었다.
-축제가 그렇게 재미있었나, 며칠 내내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재미? 재미있었지.’
동아리전에 나가면서 소속감도 느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다.
그리고 설하윤과 호숫가의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마셨을 때, 황보수정을 데려다주면서 같이 푸른 앵두를 먹었을 때.
그때 느껴졌던 미묘한 감정.
그 감정도 좋았다.
아직은 그 감정이 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새로운 감정에 대해서 느낀다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말한 백일진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입꼬리는 슬쩍 올라가 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그의 첫 축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 * *
다음 날,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아카데미에 등교했다.
교정은 어제까지 몇십만 명이 왔다 갔다 한 축제가 일어났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여름이 지나가려나, 오늘은 유독 덥군.’
백일진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강의실 문을 열었다.
강의실 안은 대동제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학생들을 모아놓고 그들 가운데에 선 남궁종수는 왕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의 무용담을 얘기했다.
물론 백일진이 들어오니 쥐 죽은 듯 입을 닫아버렸지만.
“그러고 보니, 오늘 수업은 오랜만에 당자인 교수님이군. 얼른 수업 준비를 하러 가야겠어.”
“뭐야, 백일진 오니까 그런 거 아니야?”
“에이, 존스. 너무 속 보인다.”
“크흠, 아니야-”
그래도 남궁종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늘 강의할 당자인 교수를 떠올려서였다.
‘우승 축하한다고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시면 좋겠어.’
라고 생각을 하면서 헤실헤실 미소를 짓던 도중, 문득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선 예자원이 남궁종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원 누나……?’
예자원은 남궁종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는데…….’
그래도 헤어진 전 연인에게 말을 거는 추태를 부릴 수는 없었다.
‘뭐, 할 말이 있으면 하겠지.’
[딩동댕동- 강의 시간입니다.]강의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문이 열리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당자인이 들어왔다.
“차렷, 경례.”
“안녕하십니까.”
교탁에 걸터앉아 학생들의 인사를 받은 당자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여러분 오랜만이네요, 대동제는 잘 보냈나요?”
“네!”
“아 참, 남궁종수 학생은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면서요?”
당자인의 시선이 자신에게 주어지자 남궁종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하하, 뭘 당연한 것 아닙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신 당자인 교수님께 지도를 받았는데요.”
“호호, 여전히 입은 살아 있네요.”
“그것 또한 제 매력이죠, 하하하.”
당자인은 이번에는 지태경에게 시선을 던졌다.
“태경 학생은 조금 아쉽겠어요?”
질문을 받은 지태경은 주머니에 쑤셔놓았던 손을 빼고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한 번 봐준 건데 저 녀석이 천둥벌거숭이처럼 신나 하는 꼴을 보니 봐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습니다.”
“뭐야? 한 번 더 할래요?”
“이번엔 안 봐줄 건데, 괜찮겠어?”
“자, 자! 조용.”
둘을 진정시킨 당자인은 칠판으로 다가섰다.
“재미있게 놀았으면 이제 공부를 해야죠?”
“네!”
“오늘은 독에 대해 강의를 해볼까 해요.”
“독?”
“독은 보조 무공학…….”
“맞아요, 독은 사실 단계홍 교수님의 보조 무공학에서 배워야 하는 건데, 여러분들도 제가 누군지 알잖아요?”
알다마다.
독희(毒姬) 당자인.
아카데미에 재학했을 당시에는 독봉(毒鳳)이라 불리었고, 언젠가 자신에게 추파를 던진 사파 고수의 아랫도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때는 독나찰(毒羅刹)이라 불리던 그녀였다.
여태껏 가진 모든 별호에 ‘독’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만 봐도 그녀의 독공 실력을 알 수 있었다.
꿀꺽-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들의 긴장한 모습을 보고 입매를 끌어 올리며 호호 웃은 당자인은 말을 이었다.
“아, 대신에 기초 무공학 수업 중 하나인 ‘공격을 흘리는 방법’ 강의는 단계홍 교수님께서 대신해 주신다고 하셨으니까 진도를 못 나갈까 봐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것도 싫었다.
‘공격을 흘리는 방법’이라는 것의 문제는 맞으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당자인이야 약하게 때려줄지 몰라도 단계홍에게 약하게 때려주는 것 따위는 기대할 수 없을 테니.
하아-
학생들은 앞으로 받아야 할 수많은 강의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