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22
아카데미 담당 일진 122화
재회(再會).
다시 만난다는 뜻.
누군가에겐 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만나는 것을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 뵙는 일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만큼 재회라는 것은 대부분 반가운 일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헤어진 연인 사이에서의 재회는 무작정 반갑지만은 않다.
특히 우연히 마주쳤을 때는 더욱더.
“헉.”
남궁종수는 다리 건너편에 보이는 예자원을 보고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 저기로 가야 하는데 어떡하지? 그냥 못 본 척하고 건너가야겠다.’
예자원도 그를 보고 당황한 듯 자꾸만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겼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못 본 척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남궁종수가 한 발자국.
예자원이 한 발자국.
내디딘 발걸음이 열 번쯤 되었을까. 두 사람은 이내 다리 한가운데서 교차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나치려고 한 순간.
“야, 남궁종수!”
예자원의 보드라운 입술 사이로 남궁종수를 부르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멈칫-
발을 멈춰 선 남궁종수의 머릿속에 수십 가지의 생각이 뒤엉켰다.
‘반말로 대답해야 하나? 아니면 존댓말? 아니, 그냥 못 들은 척할까? 멈춰도 되나?’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에? 예?”
─였다.
예자원은 그런 얼빵한 남궁종수를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잘 지냈어?”
“……강의실에서 맨날 봐놓고 뭘 물어봐요.”
그렇게 말한 남궁종수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그대로 그녀를 지나쳤다.
“또 피할 거야?”
“……?”
“저번에도 마음대로 오해하고 끝내놓고 이번에도 또 도망칠 거야?”
“그때는 도망친 게 아니라 바빴어요…….”
내뱉는 자신도 알고 있었다. 지금 하는 말이 변명이라는 것을.
“시간 있으면 잠깐 근처 카페 가서 얘기 좀 할래?”
“……네.”
진하게 탄 투 샷 커피 두 잔과 티라미수 하나.
그들이 데이트할 때 늘 먹던 메뉴였다. 테라스 좌석에 커피를 내려놓고 의자에 앉은 남궁종수는 애먼 케이크에만 시선을 두었다.
“케이크 먹고 싶어?”
“아, 아니요…….”
“계속 존댓말 할 거야?”
“아, 아니. 그냥 어색해서.”
도합 50여 권의 연애 베스트셀러를 독파한 그였지만, 그 모든 활자 중에 생각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뭐야, 편하게 대해. 우리가 싸워서 헤어진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다행히 예자원이 계속해서 먼저 말을 걸고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기 때문에 둘의 분위기는 급격하게 풀렸다.
십여 분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예자원이 남궁종수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 종수……. 예전엔 참 재미있는 남자였는데.”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재미있게 해줘?”
박력 넘치는 남궁종수의 모습에 예자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내가 퀴즈 하나 낼게.”
“응?”
“세상에서 제일 야한 것은?”
“……뭐야, 이 퀴즈? 기분 나빠.”
예자원의 얼굴에서 서서히 미소가 사라지는 것을 본 남궁수의 허리춤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저, 정답은 이불! 하하, 개야 하니까.”
“…….”
회심의 정답을 말했음에도 예자원의 얼굴에서 자취를 감춰 버린 미소는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X 됐다.’
왜 하필 이런 타이밍에 황보철수한테 들었던 썩어버린 개그가 떠오른 걸까.
그래도 다행인 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
‘누나가 착하긴 해.’
어느새 다시 미소가 돌아온 예자원이 고개를 틀며 물었다.
“그럼 나도 퀴즈 하나 내봐도 돼?”
“응! 내봐, 다 맞혀줄게.”
“지금 내 가슴의 무게는?”
남궁종수는 커피를 푸욱 하고 내뱉었다.
“이, 이런 질문 대답해도 돼?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
“뭐래, 이 변태가. 정답은 4근이었어!”
“4근? 왜?”
“이유는 알아서 생각해 봐.”
처음엔 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남궁종수는 자신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나서야 정답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아, 가슴이 두근두근하니까…… 4근!’
남궁종수는 제멋대로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눈만 돌려 힐끔 예자원을 훔쳐보았다.
‘뭐지? 이 퀴즈는……. 누나가 아직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뜻인가?’
* * *
백일진은 문을 마저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지.”
“네, 알겠습니다.”
집에 들어온 그는 창문을 열어 내부를 환기하고는 소파에 걸터앉으며 반대편 스툴을 가리켰다.
“앉아.”
“감사합니다.”
“그래, 해야 할 일은 잘 처리한 모양이군.”
“네, 그렇지 않아도 보고드리려고 했습니다.”
우조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멈칫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시작은 이랬습니다.”
우조는 백일진이 요화루에 가자마자 살루에 다시 돌아갔다.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너무 급하게 나온 나머지 여러 가지 흔적들이 남겨져 있었다. 백일진의 발자국부터 머리카락까지.
‘다행이었지.’
생존한 살수들이 살루에 돌아오는 것과 자신이 살루에서 다시 나오는 시간이 겹치지 않았기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음은 방거충을 처리한 일입니다.”
우조는 그날 바로 요동을 빠져나왔다. 방씨세가가 있는 화남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방씨세가는 별다른 세력이 터를 잡지 않은 한 지방의 상인 가문이었는데, 그래도 세가라는 이름이 붙었듯이 지역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곳이었다.
“그래서 침입하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몸 상태도 여의치 않아…….”
“음…….”
백일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계속하라는 의미.
“은신으로 잠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싶어, 방씨세가의 시종으로 변장해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방씨세가 내부에는 시종이 많아 서로의 얼굴을 잘 모르고 윗사람들은 아랫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는 유형이 아니었기에 쉬웠습니다.”
성공적으로 잠입을 마친 그는 겨우 방거충의 처소를 찾아 들어갔다. 가주전을 제외한다면 가장 큰 방이었기에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근데, 거기서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문제? 무슨 문제.”
“방거충이라는 녀석이 주색잡기에 빠져 방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그런가.”
“물론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나,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우조는 모든 생리현상을 참아가면서 방거충의 침대에서 버티고 또 버텼다. 결국, 3일째가 되어서야, 여느 때처럼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방거충을 처리할 수 있었다.
우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일진은 뭔가 의아한 점이 있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잘했다. 근데…… 방거충이 누구지?”
“예?”
벙찐 표정을 한 우조는 고개를 들어 백일진의 얼굴을 살폈다. 백일진은 정말로 방거충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다는 듯,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다.
‘지. 진짜 모르는 것 같은데……. 근데 왜 방거충은 주군을 죽이려고 의뢰를 한 거지?’
의뢰를 한 사람은 살수에 의뢰까지 넣을 정도로 원망을 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의뢰인을 모른다라, 해괴망측한 경우였다.
한마디로 백일진에게는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간 작은 일일 뿐이지만, 그것을 당한 당사자는 살심을 품을 정도의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하긴─’
자신이 백일진을 알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대충 성격은 파악할 수 있었다.
‘─혼자서 살루에 쳐들어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이런 상황이라면 백일진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는 사람이 더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이러면…….’
그는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지?”
“아닙니다, 주군.”
“흠, 그리고 앞으로는 주군이라 부르지 말도록.”
“네?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무슨 귀족도 아니고 주군이라는 말은 너무 낯간지러웠던 백일진은 눈을 감고 고개를 내저었다.
‘주군이라고 부르는 건 들어도 들어도 적응되지가 않아.’
-왜 그래, 듣기 좋기만 한데.
‘아니.’
백일진이 아무런 말이 없자, 우조가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정 불편하시면 그냥 도련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이것만큼은 허락해 주십시오.”
‘도련님’이라는 호칭은 레어에 살 때, 패밀리어들에게 많이 들어봤었기에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알았다.”
“네, 감사합니다, 주…… 아, 도련님.”
“네 방은 저쪽이다, 이제 들어가 쉬도록.”
손을 들어 방의 위치를 가리켜 알려준 백일진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저, 주군…….”
“응?”
“실례지만 혹시 제 무공을 조금만 봐주실 수 있으신지…….”
무공을 봐달라고 말을 하는 것은 때에 따라 굉장히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우조의 말투는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건방진 자식이군.
소파 앞에서 잠시 몸을 멈춘 백일진은 가만히 우조를 응시했다.
‘무공이라…….’
우조의 무공 실력이 늘어난다면 편한 것은 자신이다. 우조에게 지시할 수 있는 일들도 더 많아질 테고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할 일도 적어질 테니까.
그렇지만 자신은 남에게 가르쳐 줄 정도로 무공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그래도…….’
물론, 무공을 가르치는 데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들에겐 아주 수다스러운 일타강사가 있었으니.
‘부탁한다, 천마검.’
-응? 내가 왜.
천마검은 오랜만에 자신이 주도권을 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뻣뻣하게 대답했다.
-네 녀석, 요즘 아티팩트를 잘 안 주던데…….
천마검의 귀여운 협박에 백일진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조만간 네가 흡수할 만한 아티팩트를 주도록 하겠다.’
어차피 이가 다 나가 버린 검신을 갈아야 하므로 무기 상점이나 대장간에 한 번쯤은 들렀어야 했다.
그러자, 천마검은 언제 거절했냐는 듯, 한껏 뻗대며 말했다.
-하긴, 네놈은 가르치는 데는 별 재능이 없겠군. 내가 가르치는 게 낫긴 하지, 하하하.
‘…….’
-뭐, 상심할 것은 없다. 노래도, 그림도, 춤도, 무공도 잘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니까.
‘너는 무공을 펼치는 것만 잘하지, 가르치는 것에는 젬병이다.’라는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그래서 가르쳐 줄 거냐?’
-뭐, 가르쳐 보도록 하지, 근데 너도 같이 배우는 게 좋을 것이다.
‘같이?’
-저 살수 녀석이 배운 무공은 기본적으로 은신이나 잠행 같은 잡기일 것이다. 네 녀석도 언젠간 필수로 익혀두어야 할 것이지.
‘그렇군.’
천마검의 말에 수긍한 백일진은 우조와 함께 뒷마당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앞으로 수련은 여기서 하면 된다.”
“네, 알겠습니다.”
우조는 고개를 돌려가며 뒷마당을 살폈다.
‘이, 이건 또 뭐야. 땅이 왜 이래.’
무슨 마법이라도 때려 맞은 것처럼 바닥이 움푹 패어 있었다. 백일진이 스틸 바디빌딩을 익히며 생긴 흔적이었다.
“흠.”
백일진은 아공간을 열어 살루에서 가져온 모든 비급을 꺼냈다. 독공부터 암기술, 단검술, 잠행술까지 전부 있었지만, 막상 모아보니 서책의 권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백일진은 비급을 들고 한 번씩 훑어보며 물었다.
“일단, 네가 익힌 무공이 여기서 무엇이지?”
“여기 있는 것 전부 익혔습니다.”
우조는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천마검은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대부분이 다 조잡한 것들이군. 신교에 있었으면 고구마를 구워 먹을 때 불쏘시개로나 썼겠어.
‘그런가.’
-하기사 그럴 수밖에. 살수란 녀석들은 숨어 있다가 목만 찌르면 되는데 동작이 화려한 상승무공은 필요가 없지.
‘그렇군.’
-이미 여기 있는 모든 무공을 익혔다니 잘됐군, 저 녀석은 그냥 기초 체력단련이나 시키는 게 낫겠어.
‘스틸 바디빌딩?’
-그건 잘못 익히다가는 허리가 부러져 죽는다. 그냥 아주 기본적인 체력운동 먼저 하는 것이 맞다.
‘……?’
-그리고 네 녀석은 잠형술(潜形術)을 익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