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25
아카데미 담당 일진 125화
“어떤 임무를 하면 되는 겁니까?”
탁상에 올려진 과자를 하나 집어 든 비그리가 포장을 벗기며 물었다.
“아, 참 내가 그걸 말을 안 해줬군, 호위다.”
비그리와 백일진은 동시에 과자를 씹던 것을 멈추고 단계홍에게 시선을 돌렸다.
“호위요? 누구의…….”
“라이비온 가문의 백작, 이라스 라이비온.”
“라이……비온?”
비그리는 이라스라는 이름은 몰랐지만 라이비온 가문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중부 평야의 대토지를 소유한 가문.
‘라이비온 영지면 수도와는 거리가 꽤 먼 곳이군.’
아무래도 수도에 가야 하는 임무라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수도 있었기에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라이비온 가문은 자신의 가문인 그리니쉬 가문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영지 간의 거리도 멀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사람이 없었다.
비그리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근데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뭐지?”
“라이비온 백작 정도 되는 사람이 호위가 필요합니까? 그 정도의 대영주라면 휘하에 실력이 뛰어난 기사들도 많을 텐데요.”
단계홍은 자세한 내막을 설명해 줄까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남의 가족사는 입에 올리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임무에 관한 내용만 설명하면 충분하다.’
유일하게 걸리는 점이 실혼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지만, 단계홍은 그것도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굳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어차피 라이비온 영지에는 나도 따라갈 생각이니.’
교수가 개인 임무에 따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실혼인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학생들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내부 사정이니 자세한 설명은 의뢰인에게 듣도록. 그리고 그런 사정과 관계없이 우린 우리의 임무에 집중한다.”
“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비그리는 과자를 입에 집어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내부 사정?’
호위 임무를 프로도 아니고 아직 아마추어인 아카데미 학생-물론 웬만한 프로보다 강하긴 하겠지만-에게 의뢰를 한다?
이는 필시 영지 내부에 믿을 만한 인물이 없다는 뜻이었다. 아예 없지는 않더라도 부족한 것은 확실했다.
‘뭐 때문이지? 반란인가? 아니면 영지전? 아니, 아무리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개인 호위를 일개 아카데미 학생에게 의뢰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비그리는 턱을 괴고 있던 오른손으로 본인의 볼을 툭툭 건드렸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우물거리던 과자를 꿀꺽- 넘긴 비그리가 단계홍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교수님, 이거 의뢰, 받아도 되는 겁니까?”
점점 입가를 올리는 비그리의 얼굴, 이미 모든 것을 다 파악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래서 눈치 빠른 녀석들은 싫다니까?’
단계홍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비그리의 눈을 마주했다.
“음…….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호위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백일진은 선문답 같은 둘의 대화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거지?’
-아마, 이번 의뢰를 받는 것이 약간 문제 되는 부분이 있나 보군. 뭐 호위만 하면 된다니 크게 신경을 쓸 건 없겠어.
‘그렇군.’
그때, 단계홍이 백일진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백일진, 자네는 달리 궁금한 점이나 할 말 같은 건 없는가.”
“없습니다.”
“걱정도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가서 보면 알겠죠.”
태평한 건지 아니면 자신이 있는 건지, 어느 것이든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 단계홍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야 원 워낙 표정이 드러나질 않으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유추할 수도 없고.’
백일진은 단계홍이 자신을 요리조리 살피며 쳐다보자 살짝 얼굴을 돌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켈켈- 무슨 일은. 그보다 의뢰인을 소개해야겠지?”
“의뢰인이요?”
“어디에…….”
쿵- 쿵-
단계홍은 연구실 옆 방 벽을 두들겼다. 벽에 금이 가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수님 갑자기 뭐 하시는…….”
“기다려 봐. 옆 방에 의뢰인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 거니까.”
“아…….”
단계홍의 말대로 잠시 후, 연구실 문이 열리고, 얼굴에 홍조를 가득 띄운 아르웬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백일진 님!”
“아르웬 님이 여긴 왜…….”
말을 하던 백일진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르웬 님 가문이 라이비온이라고 했었지.’
비그리는 수줍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르웬과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백일진을 번갈아 보았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
“네, 오다가다 몇 번 본 사이입니다.”
“오다가다 몇 번 봤다니요, 제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이신데요. 제가 단 교수님께 백일…….”
“크흠!”
단계홍은 크게 헛기침을 하며 아르웬의 말을 황급히 막았다.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비그리는 눈가를 좁히고는 단계홍을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마치 ‘설마, 의뢰인이 요구하는 사람에게 직접 의뢰를 주신 겁니까?’라는 물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
슬쩍 비그리의 눈을 피한 단계홍이 안대를 고쳐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켈켈- 벌써 강의에 들어가 볼 시간이 되었군. 그럼 천천히 인사들 나누시게. 의뢰에 나가면 몇 주간은 봐야 할 사이이니.”
“네, 알겠습니다.”
“네, 단 교수님, 감사합니다!”
과할 정도로 허리를 굽히는 아르웬, 명문 귀족가의 여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예의가 바른 모습이었다.
아무리 단계홍이 무림인이라고는 하지만 신분상 평민이다. 그럼에도 저리 깊게 허리를 숙인다는 것은 뭔가 둘 사이에 커미션이 있다는 뜻.
‘단 교수님이 일부러 백일진을 붙여준 것이 확실하군.’
하지만 비그리는 굳이 그것을 캐묻지는 않았다. 백일진을 붙여주든 지대학을 붙여주든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었으니.
단계홍이 나가고 나서야 다시 자리에 앉은 아르웬은 비그리를 보며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르웬 라이비온이라고 합니다.”
아르웬은 허리를 살짝 숙인 채, 집게손가락으로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귀족가 특유의 인사 자세, 적당한 정중함과 적당한 기품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네, 반갑습니다. 2학년의 비로…… 아니, 비그리라고 합니다. 이번 임무에서 백일진 학생의 관리,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와, 그럼 이번 임무의 점수를 주시는 건가요?”
웬일인지, 인사를 하던 아르웬의 허리가 조금 더 굽혀졌다.
“아니요, 점수는 의뢰인이 주시는 거죠. 저는 중간중간 백일진 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비그리 님도 저희 영지에 오시겠네요?”
“그렇죠.”
“와, 저희 호위가 비그리 님 팬인데 잘됐네요! 혹시 사인도 해주실 수 있죠?”
“네, 그럼요.”
비그리는 다 식어버린 녹차를 마저 들이마시고는 아르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자세한 의뢰 내용을 들어보도록 하죠. 교수님께서는 단순 호위만 하면 된다고 하시던데.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까요.”
아르웬은 잠시 주저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겠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씀드리자면 길어질 것 같으니 저희 영지에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 후로도 30여 분가량 더 대화를 나눈 후,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먼저 짐을 챙긴 비그리가 문고리를 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 먼저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식사라도 같이…….”
“선약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비그리는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는 문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비그리가 나가니 자연스럽게 아르웬과 백일진만이 남게 되었다.
‘어떡해……. 비그리 님이 가버렸어.’
셋이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얘기를 할 수 있었는데, 이런 좁은 공간에 백일진과 둘만 남으니 가슴이 떨려 말이 나오지 않는다.
‘시, 식사라도 같이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저희도 일어나죠.”
“……네.”
결국, 아카데미 정문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입을 열지 못했다.
“저도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네…….”
아르웬은 점점 멀어지는 백일진의 등판을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매정하시긴…….”
집으로 돌아오니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버터 향과 육 향이 어우러진 것으로 보아 스테이크를 굽는 냄새인 듯했다.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그 차림은 뭐지?”
백일진은 우조가 입고 있는 분홍색 꽃무늬 앞치마를 가리켰다.
“아, 주군께서, 아니, 도련님께서 음식을 음미하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길래 연습 중이었습니다.”
전직 살수의 앞치마 차림, 눈이 시려울 정도로 보기 싫다. 티 나지 않게 미간을 찌푸린 백일진은 교복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
“앞으로 그런 귀찮은 짓은 하지 말도록. 식사는 사 먹으면 되니까.”
“아, 넵! 알겠습니다.”
“그보다 라이비온에 갈 일이 생겼으니 알고 있어라.”
다른 곳에 갈 일이 생겼다는 말에 우조가 들고 있던 스테이크용 나이프를 역수로 쥐었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밴 버릇이었다.
“라이비온이요? 언제부터……입니까?”
“다음 주.”
“그럼 제가 먼저 가서 조사하겠습니다.”
“조사? 뭐를?”
“당연히 죽일 사람을……. 아, 살행을 나서신다는 것 아니었습니까?”
“아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우조,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백일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검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저 자식도 백일진 못지않게 얼빠진 놈이군.
* * *
소파에 드러누운 채 자신의 손에 들린 배지를 이리저리 굴리며 바라보던 카리스는 뻔뻔하게 웃음을 짓던 아르무트를 떠올렸다.
‘오- 카리스 씨. 그게 뭐예요? 정장에 착용하는 배지인가요?’
‘모르는 척하지 마시죠. 학장님이라면 알고 계실 텐데요?’
‘흐응- 저는 잘 모르겠네요.’
다른 이들에겐 아르무트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통할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아니었다. 순간 통찰안으로 기운이 요동치는 걸 보았으니 확신할 수 있었다.
‘통찰안이 아니었으면 나조차 속아 넘어갔겠지.’
아마 아르무트도 들킨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르무트는 모르는 척 능청을 떨었다.
‘진짜, 그 양반은 얼굴에 철면을 몇 겹을 두른 거야.’
만약, 아르무트가 텔로스가 확실하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천마와 천마의 부인이라던 드래곤의 관계.
‘그것이 사실이라면…….’
만약 백일진이 천마의 자식이라는 자신의 가설이 들어맞는다면,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부모의 복수를 하겠답시고 난리를 피우면 어떻게 하지?’
백일진이 자신의 부모를 죽인 책임을 묻겠다고 말한다면, 카리스 본인은 기꺼이 ‘그러거라’라고 말하며 목을 대줄 수 있었다.
부모를 죽인 원수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다.
‘나였어도 증오심에 몸부림쳤을 테니까.’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가문의 연좌는 카리스 본인에게까지만이었다.
만일, 백일진이 황보철수나 황보수정에게도 손을 대려 한다면.
‘목숨을 걸고 백일진을 죽인다.’
피식- 카리스는 배지를 테이블에 던지고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어디까지 생각을 하는 거야,’
아직 확실한 건 하나도 없다. 전부 다 자신의 가설일 뿐이고, 그냥 우연의 일치로 천마의 얼굴과 백일진이 닮은 것일 수도 있다.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머리가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아, 생각할 게 너무 많아.’
평소 잘 사용하지도 않던 머리를 굴리려니 오히려 더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자신은 몸을 쓰는 타입이지 사마진처럼 고뇌를 하는 타입이 아니다.
‘잠깐, 사마진?’
사마진 교수라면 자신보다는 더욱 나을지도 모른다.
‘말이라도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