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39
아카데미 담당 일진 139화
눈을 뜬 백일진은 아직도 저릿저릿한 팔 부근을 주무르며 말했다.
‘방금 그건 뭐였지?’
-별건 없다. 그냥 의식이지. 천마기를 버틸 수 있나 없나 시험해 보는 거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
백일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천마검을 응시했다.
그는 천마신공을 익히지 않았을 때에도 천마기를 다룰 수 있었다.
그 말은 곧 천마기를 버텨내는 시험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는 것.
‘아니, 그럼 나는 할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닌가?’
-하하……. 그랬었지 참.
‘그랬었지, 참?’
백일진은 순간 천마검을 부숴 버릴까 고민했다.
-……미안하다.
덜덜 떠는 천마검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는지 개벽환이 천마검을 옹호했다.
-아니, 네가 천마기를 다룰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절차상 의식은 필수다.
-그, 그래. 필수긴 하지.
‘흠…….’
이렇게까지 하는데 더 뭐라고 하겠는가. 백일진은 작게 혀를 차고는 침대에 몸을 뉘였다.
‘그나저나 다른 애들은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했는지가 궁금하군.’
-이상한 생각은 그만하고 빨리 자라, 내일 또 늦잠 자지 말고.
‘그래야겠어.’
눈을 감고 부드러운 실크 이불을 턱까지 끌어 올리니 금세 수마가 그를 덮쳐왔다.
다음 날.
오랜만에 교복을 꺼내 입은 백일진은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추스르고는 방을 나섰다.
-이제 임무는 끝이냐?
‘라이비온 백작에게 평가서만 받아 가면 끝이다.’
때마침 백작이 보낸 사용인이 그를 찾아왔다.
“저, 마차를 준비해 놨습니다.”
“마차는 필요 없습니다.”
백작의 임시 거처는 전에 헤리안이 살고 있던 대저택이었다. 시가지에 있는 백일진의 숙소와는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걸어갈 생각이었다.
십 분 정도 걷다 보니 저택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착하니 집사가 그를 마중하기 위해 대문을 열어놓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오셨군요. 백일진 님.”
“안녕하세요.”
“백작님이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집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백일진은 사용인이 안내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그리인가 하는 그 녀석은 안 오나?
‘안 온다. 비그리 선배는 원래 이번 임무의 감독이었을 뿐이니, 굳이 평가서를 받는 자리까지 올 필요는 없지.’
-그렇군.
사용인은 거대한 금색 독수리 모양의 그림이 새겨진 문 앞에 멈춰 섰다.
“백작님의 거처는 이곳입니다.”
“감사합니다.”
천천히 고개를 숙인 사용인은 종종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계십니까.”
“들어와도 되네.”
백일진이 들어오자마자, 라이비온 백작은 얼굴 가득 미소를 꽃피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라이비온의 영웅이 찾아왔군, 얼른 저쪽에 앉으시게.”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한 백작은 검지를 뻗어 자신의 반대편 자리를 가리켰다.
“어때, 오늘 아침 식사는 맛있게 들었는가.”
“늦게 일어나서 못 먹었습니다.”
“음, 그럼 지금이라도 차려주겠네.”
“괜찮습니다. 백작성의 식사는 영 제 입맛에 맞지 않아서요.”
라이비온 백작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허허, 자네는 가식이 없어서 좋아. 그래 보상은 생각해 봤는가?”
“보상이라면…… 어떤 보상을 말씀하시는지.”
“사람 참, 이런 걸 까먹으면 어떻게 하나, 내가 분명히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라이비온 백작의 말을 들은 백일진은 며칠 전, 백작이 병실에 찾아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네들은 나와 내 딸아이 더 나아가서는 라이비온의 영지민들을 지킨 것과 다름없네. 내 그대들을 위해 선물을 주고 싶은데,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으니 원하는 바가 있으면 뭐든 말하게.’
‘원하는 바라…….’
한참을 생각해도 받을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자, 백일진은 고개를 까딱거렸다.
‘음……. 생각 안 해봤는데.’
백일진이 말을 하지 않고 어물쩍 자신을 바라보자, 한 번 더 호탕하게 웃은 라이비온 백작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내가 선택해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검은 어떤가? 자네가 가지고 다니는 검이 매우 낡아 보이던데 말이야.”
그렇게 말한 라이비온 백작은 소파 밑에 놓아두었던 검은색 상자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자네 혹시 오리하르콘이라고 들어봤는가?”
“네, 수업 때 들어는 봤는데…….”
오리하르콘.
다른 말로는 신이 내린 광물이라 불리는 오리하르콘은 그 이름답게 가치도 어마어마했는데 오리하르콘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100배 이상의 값을 구가했다.
지닌바 특성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한철을 뛰어넘는 강도, 마력을 튕겨내는 특성, 그럼에도 무겁지 않은 무게까지.
가히 신이 내린 광물이라는 이명이 부족하지 않은 특성이었다.
라이비온 백작은 흐뭇하게 웃으며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상자 내부에는 천마검과는 비교할 수 없이 세련된 검병과, 세상 무엇이든 가를 수 있을 것 같은 예기를 뽐내는 검신이 요요하게 자태를 빛내고 있었다.
-쓸 만해 보이는 검이군.
-저게 오리하르콘인가.
‘둘 다 본 적 없나.’
-들어만 봤지,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 이게 그 정도로 희귀한 건가.’
백일진이 동공을 키우며 꽤 놀란 표정을 짓자, 라이비온 백작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이 검이 바로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검이라네. 마력을 튕겨내는 오리하르콘의 특성상 아티팩트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검 자체로는 쓸 만할 거라네.”
백일진은 잠시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검을 응시했다.
“제 검병이 유품이라……. 다른 검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아, 그러면 검신만 따로 떼어주겠네. 검병은 아무 대장간이나 가서 맞춰달라고 하면 될 거라네.”
“감사합니다.”
“그래, 자네는 졸업이 얼마나 남았지?”
“이제 3년 반 정도 남았습니다.”
“3년 반? 흠……. 내 종종 연락하도록 하지. 혹여나 후원인이 필요하다거나, 금전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부담 없이 연락하게나.”
라이비온 백작이 백일진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이유는 단순했다.
‘사위로 삼고 싶어.’
물론 이미 딸아이에게 들었다. 백일진에게 마음을 거절당했다고.
다른 귀족 집안이었다면 그것만으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백일진이 아무리 아카데미 출신, 그것도 특임반의 학생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평민에 불과하다.
자신의 딸이 평민과 결혼하기를 원하는 귀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라이비온 백작은 평범한 귀족과는 생각의 궤를 달리하는 인물. 그는 절대로 백일진이라는 인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아르웬의 그 표정…….’
슬픔 가득한 자신의 딸아이를 보고 어떻게 백일진이 평민이니 포기하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절대 못 하지. 만일, 신분이 문제라면 내가 귀족으로 만들면 된다.’
라이비온 백작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백일진을 응시했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던 백일진은 살짝 몸을 뒤로 당겼다.
라이비온 백작이 왜 이렇게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부담감 때문에 호의를 거절하는 바보 같은 짓은 저지르지 않았다.
-천마신교 다섯 가지 계명, 세 번째.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면 보따리라도 받아내야 한다. 잘 지키고 있군.
-좋은 자세야.
‘쯧…….’
그 후로도 백일진의 신상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마친 라이비온 백작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대화를 마쳤다.
“아참, 자네 선배, 비그리 학생은 먼저 가서 기다린다고 했다네. 오후 세 시까지 오라고 전해달라고 하더군. 내가 준비해 둔 마차를 타고 가면 나가면 늦지는 않을 걸세.”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 자네의 임무 평가표라네. 당연히 우리 마을의 영웅이니 최고 점수를 줬지. 허허.”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치고 나온 백일진은 마차에 몸을 실었다.
‘꽤 편한데?’
로체트 남부 최대 부호인 라이비온 백작의 마차답게, 마차는 흔들림 방지 마법, 멀미 방지 마법, 공기 순환 마법 등 여러 가지 마법이 복합적으로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백일진은 마차에 타는 인물을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아르웬 님? 왜 여기에…….”
아르웬의 얼굴을 본 백일진은 마차 안의 편의 마법들이 전혀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시방석이군.’
이내 아르웬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얼굴은 봐야 할 것 같아서…….”
“마지막이라뇨?”
“저도 목표가 생겼거든요.”
아르웬은 결연한 눈빛으로 백일진을 바라보았다.
“어떤……?”
“저도 백일진 님처럼 학교에 들어가려구요!”
“아카데미요?”
“아니요, 아카데미는 아니지만 황실학원에 접수신청을 해놨어요.”
“잘됐네요.”
“저 진짜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그럴 리가요. 살다 보면 언젠간 마주칠 날도 있겠죠.”
아르웬은 단호하게 말을 끊는 백일진을 보고는 입술을 삐쭉였다.
“……네.”
그 말을 끝으로 마차 내부에는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마차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아르웬은 슬픈 눈망울로 마차에서 내리는 백일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나쁜 사람.”
워프 게이트 터미널 내부로 들어오니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 비그리가 보였다.
“백일진!”
“네, 선배. 안녕하세요.”
동시에 백일진을 발견한 비그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웬 표를 내밀었다.
“이쪽이다. 표는 내가 미리 사놨다.”
백일진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표를 받아 아공간에 넣은 백일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교수님은 어디계십니까?”
“교수님은 어제 아카데미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우리 차례까지는 꽤 시간이 남았으니 앉아 있어.”
“네.”
길게 늘어진 대기실 벤치에 살포시 앉은 백일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를 까먹은 것 같은데…….’
양미간을 붙잡고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던 백일진의 눈이 급하게 커졌다.
‘아, 우조!’
급박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우조의 존재를 잊게된 것.
-죽은 것 아니냐?
백일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단계홍이 데리고 있겠다 했으니 절대 죽었을 리는 없었다.
‘문제는 죽진 않았어도, 단계홍 교수님에게 잡혀 있으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겠지.’
-그 안대 녀석 성격이면 10할이지.
‘우조에게는 매번 이런 일들만 생기는 것 같군.’
우조의 존재를 모르는 개벽환은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조가 누구지?
-백일진 녀석을 모시겠다고 하는 살수 녀석이다.
-흠, 그럼 천마신교의 호위라고 보면 되는 건가.
-호위는 무슨, 폐급 살수 녀석이지.
-살수인가.
천마검은 간략하게 우조를 만나게 된 계기부터 몇 가지의 이야기를 개벽환에게 설명했다.
-음, 그랬었군.
-그래, 신기한 녀석이지?
그때, 비그리가 백일진을 툭툭 건드렸다.
“가자, 시간 다 됐어.”
“네, 선배.”
백일진은 돌아가면 당장 단계홍에게 가서 우조의 위치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워프 마법진 위에 발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