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60
아카데미 담당 일진 160화
“아, 그게, 이번에 나온 공지 사항 때문에…….”
크리스는 우물쭈물하며 말끝을 흐렸다.
“공지 사항?”
“네, 넵. 그 기말고사 임무 공지 사항이요.”
카리스는 크리스의 설명을 듣고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 기말고사 임무? 그것 때문이었어?”
기말고사 임무 때문이라면 학생들의 어수선함이 이해가 되었다. 교수들도 회의에서 그렇게 난리를 피웠는데 학생들이라고 어련할까.
“그래요, 이번 기말고사 임무 때문이면 그럴 수도 있죠. 자리에 앉으세요, 크리스 학생.”
카리스의 말투는 어느새 반말에서 존댓말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 빈자리는 누구죠?”
교탁 아래로 내려온 카리스가 비어 있는 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설하윤 학생의 자리입니다.”
“설하윤?”
“빙궁의…….”
“아.”
그 말만으로 상황을 알았다는 듯 턱을 까닥인 카리스가 다시 교탁으로 돌아왔다.
“교수님.”
“네, 황보수정 학생 말씀하세요.”
“아까 말이 나와서 여쭤보는 건데 혹시 이번 기말고사는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음, 굳이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게 될 거예요.”
“네?”
황보수정이 의문을 담은 얼굴로 되물었다.
“다음 교시에 강당에서 라트라제 교수님의 특강이 있을 거예요.”
“특강이요?”
“네,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시는 이번 임무에 관해서 얘기하는 자리예요.”
“아…….”
“그나저나 오늘 제 강의 시간은 한 시간밖에 없네요. 오랜만에 교탁에 복귀했는데 조금 아쉽군요.”
“아…….”
“기초 마법학 진도가 많이 부족한데……. 강의 시간도 벌써 30분밖에 안 남았네요. 어떻게 하지?”
“다음에 해요!”
“그럴까요?”
“네!”
카리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휘젓고는 들고 있던 교재를 탁- 소리 나게 덮었다.
“대신 다음 강의 때는 꼭 집중해야 해요!”
“네!”
강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카리스의 기초 마법학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딩동댕동- 시원한 공기를 마실 시간입니다.]“그럼 다음 교시는 강당으로 모이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 * *
강당에 모인 1학년 특임반 학생들은 문밖에서 들리는 북적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몸을 멈췄다.
“뭐야, 우리 말고 누가 또 오나?”
그렇게 말하던 남궁종수는 들어오는 학생들의 얼굴을 보고는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존스, 왜 그래?”
남궁종수는 말없이 문을 가리켰고 학생들은 일제히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2학년 선배들이잖아.”
“3학년 선배들도 있어!”
“뭐, 뭐야. 2, 3학년 선배들도 오는 거였어?”
“진짜네? 위층에는 4학년 선배들도 온다.”
긴장한 1학년 학생들은 허리를 바르게 곧추세웠다.
긴장한 것은 1학년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4학년을 제외하고는 2학년, 3학년 학생들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알베르토가 옆에 있는 프레이의 어깨를 쿡 찌르며 말했다.
“후, 저런 선배들이랑 임무를 같이 나간다고?”
“뭘 그렇게 떨고 그래? 선배들이랑 싸우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같이 임무를 가는 건데.”
“그건 그렇지만…….”
“괜찮아, 선배들도 어차피 별거 없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프레이도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언철진의 눈길이 자신에게 닿을 때면 저도 모르게 전신의 털이 비죽비죽 일어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물쩍하게 고개를 까닥거린 알베르토는 1학년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근데, 쟤는 긴장도 안 되나?”
“누구, 지태경?”
“아니, 그 앞에…….”
“뭐, 백일진?”
“응. 전혀 긴장한 티가 안 나는데?”
알베르토의 말대로 백일진은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한 채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쟤는 긴장할 필요가 없지.”
“하긴…….”
“학생회장을 이긴 순간, 아카데미에서 무력으로는 제일이라는 건데 긴장이 되겠어?”
“근데, 학생회장이 봐준 건 아니겠지?”
“네 눈으로 직접 봤잖아. 봐줬다기엔 초식의 구성이 너무 깔끔했어.”
“그건 그런데…….”
지대학의 천재성에 대해서는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부터 귀가 아플 정도로 들어왔었다.
그런 지대학이 이제 갓 아카데미에 들어온 1학년에게 패배했다? 아직도 믿기가 어려웠다.
만약 자신이 그 비무를 직접 보지 못했거나 혹은 상대가 비그리마저 이겼던 전적이 있는 백일진이 아니었다면 지대학이 패배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근데 선배들도 다들 쟤를 보는 것 같지?”
알베르토의 말대로 다른 학생들도 전부 백일진 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선을 끌 수밖에 없지. 아카데미의 뜨거운 감자인데.”
-다들 널 쳐다보는군. 신성룡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일진, 저런 거에 일일이 신경 쓰지 마.
‘이제 별로 신경 안 쓴다.’
이런저런 시선까지 신경을 쓰기에는 텔로스를 포함해서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았다.
그들의 시선은 이번 시간을 맡은 라트라제 교수가 들어오고 나서야 거두어졌다.
뚜벅- 뚜벅-
라트라제는 평소 자주 입던 정장 차림이 아닌 전투용 로브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비장한 분위기에 강당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전부 제 자리에 앉도록.”
단상으로 올라가 마이크를 집어 든 라트라제는 찡그린 표정으로 마이크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이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이크가 고장 났으니, 확성 마법을 사용해 말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말한 라트라제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화륜’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라트라제의 마법진은 이글거리는 불길이 감돌고 있는 모양이었다.
“와, 멋있다.”
“와, 저렇게 특이한 마법진은 처음 봐.”
“잘 들리나?”
“네!”
“모두 반갑다. 여기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도 있고 아직 내 강의를 한 번도 듣지 못한 학생들도 있으니 소개부터 하겠다.”
물론 7성급 마법사이자 ‘화륜’의 라트라제라고 불리는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정말 자신을 모르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듯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나는 매지컬 시티에 있는 마법사의 탑 총본부 출신, 라트라제다. 아카데미에 부임받아 강의를 시작한 지는 이제 햇수로 11년 차쯤 되었겠군. 반갑다.”
허황된 자랑 따위는 섞이지 않은 담백한 소개였다.
“와아아아-”
“오늘 여러분을 이곳에 모은 것은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기말고사 임무 때문이다.”
꿀꺽-
곳곳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임무에 관해서 설명해 주도록 하겠다.”
라트라제가 손짓하자 강단 뒤에 설치되어 있던 스크린이 위이잉-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이윽고 스크린이 점등되었고.
“이번 임무를 나갈 곳은 두 곳이다.”
학생들은 스크린이 켜지자마자 쓰여 있는 글자를 보고는 얼굴에 의아함을 품었다.
‘무림 연맹 본단?’
‘마법사의 탑 총본부?’
학생들이 의아함을 품은 이유는 이랬다.
아카데미에서는 연맹이나 마탑의 임무를 받지 않기로 유명했기 때문.
물론, 무림 연맹이나 마탑에 속한 문파나 연구실로 지원을 나간 적은 많았지만, 직접 연맹 본단이나 마탑 총본부로 나간 적은 거의 없었다.
아니, 근 20년간은 한 번도 없었다.
오죽하면 콧대가 높아진 아카데미가 연맹과 마탑을 무시한다는 소리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리 무림 연맹과 마법사의 탑에서 아카데미를 만들었다지만 아카데미는 무림 연맹과 마법사의 탑의 예하 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림 연맹과 마법사의 탑에서 직접 임무를 받다 보면 사람들에게는 아카데미가 그들의 예하 기관쯤으로 여겨질 테고, 결국 아카데미가 갖는 상징성이 무너질 수도 있었기에 무수한 임무 요청이 들어와도 거절한 것.
거기다가 연맹이나 마탑 소속이 아닌 아르무트, 카르도 마진, 나혁중 같은 인물들이 아카데미의 중진을 맡고 있었기에 이런 기조가 더욱 강해진 탓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맹과 마탑으로 임무를 나간다? 그것도 1, 2, 3, 4학년이 함께?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단번에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불안한 표정의 학생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라트라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쓰여 있다시피 이번 임무는 무림 연맹과 마법사의 탑으로 나갈 것이다.”
곳곳에서 탄식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눈빛으로 탄식을 내뱉은 이들을 훑은 라트라제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특수 임무반의 목적이 뭐지?”
“사마외도를 척결하는 데 앞장서서 특수한 임무를 해결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반응들이 왜 그러지?”
“…….”
“물론, 여러분들의 생각대로 이번 임무는 위험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가지 않을 건가?”
“아닙니다!”
“무림 연맹과 마법사의 탑을 도와 사마외도의 무리를 척결하는 게 무서운가?”
“아닙니다!!”
라트라제가 강단 뒤편에 앉아 있는 카리스에게 손짓했다.
카리스의 조작에 따라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 임무의 목적은 연맹과 마탑을 도와 북해를 수색하는 것이다. 최근 북해가 사마외도에게 침공을 당했다는 소문은 다들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알고 있었다. 아무리 빙궁의 세가 다른 곳보다 약하다고 하지만 명색이 육대문파 중 한 곳이다.
그런 곳이 침공을 당했다는 것을 모를 수는 없었다.
“이번 임무는 정말 위험할지도 모른다.”
“…….”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번 임무 동안은 우리 교수들도 함께할 테니.”
교수들이 함께한다는 말을 들은 학생들의 얼굴이 오묘해졌다. 이를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헷갈렸기 때문.
교수들이 나선다는 것은 임무가 생각 이상으로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막상 교수들의 실력을 생각해 보면 마음이 놓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라트라제의 손짓에 따라 스크린의 화면이 넘어갔다.
이번에는 Q&A라고 쓰여 있었다.
“내 설명이 미흡했다거나 궁금한 점 있으면 아무나 자유롭게 손을 들어 질문해도 된다.”
강당 2층에 앉아 있던 지대학이 손을 들고는 살랑살랑 흔들었다.
“우리 학생회장이군. 무슨 질문인가?”
“마탑과 연맹으로 가는 인원은 어떻게 나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간단하네, 무공전형은 연맹으로 마법전형은 마탑으로 갈 걸세. 다음 질문 있는 학생 있나?”
제갈무혁이 손을 번적 들었다.
“거기 학생 일어나게.”
“네, 저는 1학년 특임반 제갈무혁이라고 합니다. 교수님, 마법 전형은 마탑으로 무공전형은 무림 연맹으로 간다고 하셨는데 그럼 필기 전형은 어떻게 합니까?”
“필……기전형?”
예측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막연히 특수 임무반에는 필기 전형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
라트라제의 얼굴이 미세하게 떨렸다.
“학생이 필기전형인가?”
“네, 저와 여기 있는 백일진 학생이 필기 전형입니다.”
라트라제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일진 학생과 제갈무혁 학생은 무림 연맹으로 가면 된다.”
“네, 감사합니다.”
“또 질문 있는 학생 있나?”
“…….”
“그래, 없으면 오늘 특강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 오늘 강의가 일찍 끝났다고 너무 놀지 말고 일찍 집에 들어가시게들. 그럼 이상.”
* * *
학생들이 전부 나가고 난 후, 카리스가 라트라제에게 다가갔다.
“라트라제 교수님.”
“카리스 교수?”
“학생들에게 실혼인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지금도 이미 두려워하는 상태인데, 괜히 들쑤셔서 굳이 사기를 꺾을 필요는 없지 않겠나.”
“그렇군요.”
라트라제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주억거린 카리스는 강당의 뒷정리를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카리스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면서 엿가락처럼 길쭉하게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맞닿아 있는 라트라제의 그림자 안으로 파고들었다.
둘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 카리스의 그림자는 다시 일반적인 길이로 돌아왔고 라트라제의 그림자가 묘하게 길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