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62
아카데미 담당 일진 162화
천마검은 집으로 돌아와 몸을 뉜 백일진에게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네가 정말 미친 줄 알았다.
-미친 게 맞지. 이때까지 수많은 미친놈을 봤지만, 자결할 것도 아니고 수련한답시고 스스로 할복하는 미친놈은 처음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뭐가 어쩔 수 없어!
‘확인을 해봐야 했으니까.’
이번 기말고사 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물론 교수들도 같이 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대비라는 건 미리 해둘수록 좋은 법이다.
-쯧, 그래서 어떻더냐?
‘뭐가.’
-봉인이 풀리니까 어떻더냐고.
살포시 눈을 감은 백일진은 봉인이 풀렸을 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마치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몸 위에 비늘이 덮여갈 때의 그 오묘한 느낌과 둔해지는 감각.
마치 악어나 드레이크의 가죽을 잘라다 질긴 본드를 바른 후 배에다 덕지덕지 붙여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군, 금제를 통제하는 건 괜찮았나?
‘아니.’
통제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유리잔으로 저글링을 하는 느낌이랄까, 만약 자신이 조금만 더 늦게 천마기를 빼냈으면 온몸의 금제가 전부 다 풀렸을 것이다.
-그건 큰일이군.
‘조절해야지.’
-이성적으로는 괜찮았나?
뜬금없는 소리에 백일진이 눈가를 꿈틀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 이성을 잃지 않았냐는 말이다.
‘이성이라…….’
애매했다.
확실히 이번에 봉인을 풀었을 때는 이성을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또렷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모든 봉인을 풀었을 때, 이성을 잃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는 섣불리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복부의 봉인만 풀었는데도 깨질 듯한 고통이 동반되며 머리가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전신의 금제가 전부 풀린다면?
‘모르겠군.’
이성을 잃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이성을 잃고 날뛰며 자멸하게 될 수도 있었지만 백일진은 굳이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확인해 봐야 아는 거니까.’
-그렇군.
-것보다, 일진. 이 짓을 매일 할 건가?
백일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기말고사 임무에 나가기 전까지 매일 반복할 생각이었다. 오늘은 복부였으니 내일은 팔, 모레는 다리, 그다음 날은 등과 허리 이런 식으로 전신의 금제를 통제할 수 있는지 확인할 참이었다.
-목은 확인하지 마라.
-나도 똑같은 생각 했다.
‘……알았다.’
천마검, 개벽환과 짧은 대화를 마친 백일진은 이불을 턱까지 끌어 올리고는 눈을 감았다.
* * *
다음 날부터는 특임반 1, 2, 3, 4학년의 합동 훈련이 시행되었다.
기말고사 임무를 대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강의는 무공 전형과 마법 전형이 나뉘어서 받았는데 아무래도 이번 임무가 마법 전형과 무공 전형 학생들이 따로 임무를 나가기 때문인 듯싶었다.
첫 강의는 단계홍 교수의 강의였다.
어느덧 완연한 가을이 다가왔기 때문인지 아침 바람은 조금 차가웠다.
연무장 바닥의 흙모래들도 추위를 타는지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며 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켈켈- 날씨가 아주 좋구나, 오늘부터는 조금 힘들 게다.”
단계홍의 첫마디였다.
“흐익-”
“하아.”
“후우…….”
학년과 관계없이 단계홍의 말을 들은 학생들은 마치 강도 협박이나 당하는 사람처럼 얼굴이 샛노랗게 질렸다.
“전부 이쪽으로 집합.”
“집합!”
무공 전형만 따로 떼어놓고 보니 1학년 23명 + 필기전형 2명, 2학년 18명, 3학년 14명, 4학년 11명으로 1학년에서 4학년을 합쳐도 학생들은 70명이 채 되지 않았다.
휴학을 한 학생들도 있고, 졸업하지 못할 것 같아 자퇴를 한 학생들도 있었기 때문.
단계홍은 손가락으로 연무장의 좌우 중앙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주로 사용하는 무기가 검인 사람들은 왼쪽, 주먹인 사람들은 오른쪽, 그 외 다른 병장기일 경우 중앙에 서도록.”
백일진은 우루루 움직이는 학생들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검을 사용하는 사람이 가장 많군.’
“지금부터 조 편성을 실시한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조를 편성하도록.”
지대학이 손을 들었다.
“몇 명씩 편성하면 되겠습니까.”
“어디 보자, 인원이 68명이니까…… 4인 17개 조.”
“네, 알겠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말고 그냥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랑 조를 짜도록.”
“알겠습니다!”
백일진과 조가 된 것은 남궁종수와 2학년의 조운창, 진철이었다.
진철은 예전 술집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는지 민망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비틀어 백일진의 시선을 피했다.
그때, 남궁종수가 진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비아냥 섞인 어조로 말을 걸었다.
“와, 진철 선배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다.”
“와, 근데 낯이 두껍긴 하십디다? 아직도 아카데미에 다니시네.”
“…….”
“나 같으면 그냥 자퇴하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검이 아니라 얼굴로 싸웠으면 선배가 천하제일이 되기도 어렵지는 않겠네요.”
애꿎은 주먹만 꾹 쥔 진철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봐요…….”
“그만해.”
백일진이 자신을 말리자 남궁종수는 거칠게 ‘흥’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주위의 2학년 학생들은 남궁종수의 행동을 보고 눈을 뾰족하게 만들며 저들끼리 떠들었지만,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진철이 먼저 잘못한 걸 알고 있기도 했고, 옆에 있는 백일진이 부담스럽기도 했기 때문.
“남궁종수, 저거 너무 싸가지없는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진철이 선밴데…….”
“그러게, 아무리 남궁세가 출신이라도 아카데미에서는 선배잖아. 내가 가서 한마디 할까?”
“에헤이, 그냥 놔둬. 선배고 뭐고 그때 진철이 먼저 잘못한 건 맞잖아.”
“그건 그래, 그리고 저기 백일진도 있는데 한마디 하러 갔다가 창피하기만 할걸?”
조운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조 한번 기가 막히게 편성됐군.”
남궁종수의 어깨를 한 번 툭 건드린 백일진이 진철에게 다가갔다.
“……화이팅.”
“……?”
뜬금없는 백일진의 말에 조운창도 남궁종수도 힐끔 그들을 훔쳐보던 학생들도 전부 얼굴이 굳어버렸다.
진철은 입술을 움찔거리며 머뭇거리다 이내 툭-
“화, 화이팅!”
이라고 내뱉었다.
삐이익-
단계홍이 호각을 불어 학생들을 집중시켰다.
“자, 지금부터 검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모인 단을 검단(劍團), 주먹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모인 단을 권단(拳團), 그 밖에 다른 무기를 사용하는 학생들은 외단(外團)이라고 부르겠다.”
외단이라 불린 학생들은 잠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단계홍의 부리부리한 눈을 보고는 착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단계홍은 안대를 고쳐 쓰고는 입가를 히죽 끌어 올렸다.
“켈켈- 너희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편, 수, 조, 창, 도 단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는 없지 않으냐.”
“맞습니다!”
단계홍은 어느새 전부 짜인 조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얼추 조는 다 만들어진 것 같으니 일단 일자로 서보도록.”
단계홍의 말을 들은 세 개의 단은 4명씩 조별로 맞추어 섰다.
“검단 24명. 권단 20명 외단 24명이군. 딱 맞춰지는 게 아주 좋아.”
숫자는 딱 맞아떨어질지언정, 조별로 무력의 편차가 너무 컸다.
3, 4학년 학생들이 모여 있는 조는 1, 2학년만 모여 있는 조보다 훨씬 강할 것이 분명했으니.
학생들은 도대체 이렇게 구분을 지어서 어떻게 합동 훈련을 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단계홍을 지켜봤다.
“네놈들 눈빛을 보니까 합동 훈련이라는 게 못 미덥나 본데…….”
학생들은 아니라는 듯 딴청을 피웠지만, 은연중 나타나는 기색 자체를 숨길 수는 없었다.
“어차피 상관없다. 오늘 너희는 1학년이든 4학년이든 똑같이 힘들 테니.”
그때 가장 앞에 있던 학생이 손을 들고 물었다.
“훈련 내용을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체력단련이다.”
“네? 체력단련이요……?”
몇몇 학생들이 이마를 붙잡으며 자신 없다는 듯 허탈한 얼굴을 했다. 개중에는 4학년 학생들도 섞여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무력이 강하다면 무조건 체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그것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체력이 뛰어날수록 더욱 강한 훈련을 소화할 수 있고 전투를 할 때도 더욱 오래 지속할 수 있을 테니.
그러나 그 말은 곧 ‘어느 정도’만 그 말에 부합한다는 뜻도 된다.
체력이란 깨달음과 상관없이 타고나거나 직접 단련을 해야만 늘릴 수 있다.
아무리 성취가 뛰어나 밥만 먹어도 깨달음을 얻는 천재라도, 체력단련을 하지 않는 이상 체력은 평범할 수밖에 없다는 뜻.
이제야 단계홍이 학년을 나누지 않고 그냥 대충 옆에 있는 사람과 조를 이루라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 나 체력 자신 없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그들의 표정이 죽어가건 말건 단계홍은 지휘봉을 들어 학생들을 가리키고 소리쳤다.
“1번 3번 조원은 2번 4번 조원들을 어깨에 얹어라.”
“네?”
“어깨에 얹으라고. 못 알아들었나?”
아니, 알아들었다.
그런데 무공 전형에는 한 가지 성별의 학생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학생과 남학생이 두루 뭉쳐 있다는 뜻.
이를 의식한 몇몇 학생들이 거부감을 표출했다.
“교수님, 저희 조는 저 빼고 다 여자인데요.”
“저희 조는 저 빼고 다 남자입니다!”
검지를 좌우로 까딱거린 단계홍은 ‘쓰읍-’ 하는 소리를 내며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목말을 태우라는 게 아니다.”
“그럼……?”
“2번 4번 학생들이 1번 3번 학생의 어깨 위로 올라가서 선다.”
그렇게 말한 단계홍이 가장 앞에 있는 학생의 어깨 위에 살포시 올라가서 섰다.
“이렇게.”
“아…….”
“그리고, 연무장 한 바퀴를 뛰고 난 후, 올라와 있는 사람과 어깨를 내어준 사람이 교대해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말을 하다 목이 메었는지 단계홍은 단상 위로 돌아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올라 서 있는 사람은 절대 떨어져선 안 되고 손으로 어깨를 내어준 사람의 머리를 잡거나 무언가를 잡아서는 안 된다.”
“네?”
“그럼…….”
“균형을 같이 잡아야지. 오늘 할 훈련은 체력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균형감각까지 같이 키우는 게 목적이니까.”
학생들은 ‘아!’ 하는 표정을 하고 옆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오늘 훈련에서는 회복하는 데 사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내공 사용을 금한다.”
“네?”
“그게 무슨…….”
이번에는 언철진이나 지태경마저도 쓴 얼굴을 하고 단계홍을 쳐다봤으나 바뀌는 것은 없었다.
내공을 사용하고 체력단련을 하더라도 체력이 증진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단련을 하는 것이 더욱 증진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
단계홍의 말을 들은 1학년 학생들은 그나마 ‘버티자!’라는 느낌으로 고개를 주억거렸으나, 고학년 학생들은 집에 침입자가 들어온 말벌이라도 된 듯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다 1학년 애들보다 먼저 나가떨어지는 것 아니야?’
‘아, 1학년 애들보다 먼저 쓰러지면 그게 뭔 쪽이야.’
‘이 악물고 버틴다.’
그렇게 미묘한 기 싸움 속에서 지옥의 체력단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