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89
아카데미 담당 일진 189화
천마검은 고함을 내질렀다.
-뭐 하는 거냐! 방금 정말 죽을 뻔했다고!
만약 천마검에게 얼굴이 있었다면 얼굴의 모든 부분이 구겨져 있을 것 같은 목소리였다.
‘……죽진 않았을 것 같은데.’
-아니, 복부가 난자당해 죽었을 것이다.
개벽환까지 그리 말하자 백일진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죽었으니 됐지 않나.’
몸에 묻은 눈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난 백일진은 관태산과 검을 섞고 있는 나혁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몸은?”
“괜찮습니다.”
쉼 없이 공방을 주고받으면서도 나혁중은 한 치의 흐트러짐조차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여긴 내가 맡을 테니, 넌 다른 곳을 돕도록.”
“아닙니다. 저자와는 해결할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해결할 문제……?”
“네, 제 아버…….”
그때였다.
“배, 백일진!”
백일진은 자신의 이름이 들린 방향으로 눈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아까 후방으로 보냈던 당봉이 침을 흘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당……몽?”
백일진만을 보고 달려왔기에 나혁중과 관태산이 공방을 나누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당봉은 백일진의 앞까지 다가와서 백일진의 소매를 붙잡았다.
“크, 큰일 났어! 도, 도와줘!”
“큰일?”
“후, 후방이 공격받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냐.”
“후방에 있는 빙궁 수색단이랑 마법사들이 공격받고 있는데 상황이 안 좋아!”
빙궁 수색단이 공격받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백일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빙궁이?”
“응, 빠, 빨리 가야 한다니까!”
-빙궁 수색단이면 그 설하윤인지 하는 아이가 있는 곳 아니냐?
‘맞다.’
백일진이 후방 쪽과 관태산 쪽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자, 나혁중은 관태산의 가슴 정중앙을 발로 쳐내며 말했다.
“가 봐라. 이자 때문에 못 가겠다면, 내 약속하지.”
“……?”
“이 녀석은 반드시 죽여주겠다고.”
나혁중의 몸에서는 살갗이 아릴 정도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백일진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할 거냐.
‘뭘 어떻게 해.’
물론 자신의 손으로 부모님을 죽이는 데 일조한 관태산을 죽이고 싶긴 했지만, 그 복수심보다는 설하윤을 구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백일진은 슬쩍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가자, 당몽.”
“……당봉인데.”
백일진이 당봉의 목덜미를 잡고 후방으로 달려가려는 순간, 어느새 다가온 관태산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순순히 보내줄 성싶으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백일진 이 녀석만큼은 놓칠 수 없었다.
‘천마신공을 대성하기 위해서는 천마검이 필요하다……!’
관태산은 한 걸음의 이동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대도를 휘둘렀지만, 나혁중의 무명검에 막힌 대도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허공을 향해 튕겨 나갔다.
나혁중은 관태산이 백일진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공격을 이었다.
“신경 쓰지 말고 가라.”
“……감사합니다.”
쉬이이이익-
푸르른 검강이 담긴 나혁중의 무명검은 공기를 찢는 듯한 파공음을 내며 휘둘렸다.
관태산은 흑색의 검강을 내뿜어 자신에게 쏘아지는 검격을 막아냈다.
콰아아아아앙-
나혁중과 관태산은 서로 두 걸음씩 물러났다.
“후.”
“흡.”
관태산은 이미 멀어진 백일진의 뒷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는 수 없지, 검제를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잡으러 간다.’
그런 관태산을 보던 나혁중의 입이 열렸다.
“한눈팔 여유도 있나 보군.”
나혁중은 그 자리에서 검을 휘둘렀다.
부우웅-
팔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관태산은 빠르게 대도를 들어 나혁중의 검을 막아내며, 막기 위해 가로로 눕혔던 대도를 그대로 밀어 나혁중의 쇄골을 노렸다.
카가가강-
나혁중의 검과 관태산의 대도가 맞닿으며 불똥이 튀어 올랐다.
합을 나눌수록 나혁중의 동공이 점차 커졌다. 관태산의 실력이 그의 예상을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
평범한 검으로는 끝이 나지 않겠다고 생각한 나혁중은 관태산의 대도를 쳐올려 튕겨낸 다음 뒤로 물러서서 검을 상단세에 놓았다.
‘이번으로 끝낸다.’
더 이상 관태산에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아카데미 학생들이 실혼인들에게 밀리기 시작했기 때문.
상단세에 놓인 검을 얼굴 뒤로 당긴 나혁중은 심호흡을 내뱉었다.
이내 그의 신형은 활시위가 당겨지듯 쏘아졌고 그의 검격은 하나의 선(線)이 되어 공간을 갈랐다.
지난 20년간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피눈물을 흘려가며 담금질한 검의 정수였다.
관태산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천마기를 이용해 대도에 담긴 자신의 내공을 넓게 펼쳤다.
그렇게 관태산의 검강은 면(面)이 되었다.
관태산의 수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나혁중의 검에 담긴 내공을 뒤흔들기 위해 천마신공을 이용해 남은 천마기를 나혁중에게 보냈다.
이윽고 선이 된 나혁중의 검과 면이 된 관태산의 대도가 부딪혔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 관태산은 알 수 있었다.
‘계속 정면으로 맞서면…….’
꿀꺽-
‘……죽는다.’
관태산은 최대한 나혁중의 공격을 미끄러뜨리기 위해 대도를 최대한 눕혔다.
다행인지 요행인지 관태산의 뜻대로 나혁중의 공격은 관태산의 대도를 타고 미끄러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벽히 공격을 피해낼 수는 없었고.
“크윽.”
관태산의 어깨 위에 붉은 실선이 생겨나더니 이내 팔이 매끄럽게 잘렸다.
툭-
눈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인조 팔을 바라보는 관태산의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지닌 천마기만 많았어도…….’
천마신공으로 나혁중의 기운을 제대로 뒤흔들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혁중의 기운은 관태산이 익힌 수박 겉핥기식의 천마신공으로는 뒤흔들 수 없을 만큼 정순했고 또 굳건했다.
‘……그런데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고?’
당연히 나혁중이 강하다는 것은 알았다.
검의 제왕이라는 이름은 가볍게 얻을 수 있는 허명이 아니었으니.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자신 또한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했다.
아주 조금이긴 했지만 나름 천마기를 가지고 있었고 지하드와 실혼인의 덕이라지만 사파 연맹의 맹주 자리에까지 올라 절세 비급이라 불리는 무공도 익혔다.
그런데 지금 이 차이는 뭔가.
이건 숫제 사자와 표범의 싸움이 아닌가.
아니, 표범도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나혁중 앞에 선 자신은 이리였다.
자신이 잘못 생각했었다.
나혁중은 괴물이 아닌 괴물 그 너머의 존재였다. 이 정도면 지하드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관태산의 눈빛이 패배감으로 물들었다.
눈에서부터 시작한 패배감은 그의 전신으로 치달았고 이내 그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사, 살아야 한다…….’
마음만 같아서는 도망이라도 쳐서 목숨을 부지하고 싶었으나 아무리 멀리 도망을 쳐도 금방 붙잡힐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면 목숨을 부지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로 대도를 들고 있던 관태산은 대도를 땅에 처박은 다음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을 들어 올렸다.
“사, 살려줘라…….”
“……뭐?”
평소 얼굴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나혁중마저도 관태산의 행동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맹한 표정을 지었다.
“사, 살려만 준다면 내가 다 말하겠다. 텔로스에 대해서도. 아, 그, 그, 그리고 천마검도 넘기겠다. 아, 아니, 천마신공까지도 다 포기하겠다.”
“……천마신공?”
나혁중은 눈빛에 의문을 담고 되물었다. 천마신공에 욕심이 생기거나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하니 반사적으로 되물었을 뿐.
하지만 관태산은 나혁중이 천마신공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급하게 말을 더듬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 그래. 아카데미 학생 중에 머리 긴 녀석 있지? 아까 네가 살려 보낸 녀석 말이다.”
백일진의 무공 실력을 떠올린 나혁중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답지 않게 강한 무력의 비결이 천마신공이었나?’
천마신공이 정확히 어떠한 능력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의 이름값이 있는 물건이라면 백일진의 강함도 이해가 됐다.
“그런데 어쩌라는 거지? 그딴 것엔 관심 없다.”
“처, 천마신공이 필요 없다면 텔로스에 대한 정보는 어떠냐. 네 자식을 죽인 이유를 말하겠다.”
나혁중은 ‘아들’이라는 단어를 듣고 우뚝 움직임을 멈췄다.
“……말해라.”
관태산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주저리주저리 떠들기 시작했다.
텔로스에서 네 자식을 죽인 것은 드래곤의 피가 섞였기 때문이며 수장은 지하드라는 이름의 마법사다.
또, 텔로스는 반천(反天)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이지만 지하드는 남몰래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등.
“이, 이게 내가 아는 전부다. 정말이야. 네가 나를 살려주면 지하드를 처리하는 것도 도와주겠다.”
공간 사이에 몸을 숨긴 채 그런 관태산을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흐음…… 추하네요.”
그는 포장만 요란한 선물을 뜯었을 때처럼 기대감이 팍- 식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강자란 강자의 품격을 갖출 의무가 있다. 특히나 관태산 정도 되는 강자라면 죽을 때도 굽히는 법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당신은 왜 이렇게 추한 거죠?”
아르무트가 텔로스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이유는 강자들의 죽음을 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온몸이 난자당하더라도 자존심을 지키는 강자들의 고고한 모습.
불구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 불굴의 눈빛.
‘그런데 당신은 왜……!’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고 사그라지는 장면을 기대했던 아르무트에게 있어 목숨을 구걸하는 관태산의 모습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늘 생글생글 미소를 짓던 그의 얼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아르무트는 공간 밖으로 발을 내뻗었다.
나혁중과 관태산 사이, 공간이 역동적인 물결처럼 유연해지며 일렁거렸다.
갑자기 나타난 아르무트를 본 나혁중은 고개를 까닥였다.
“……아르무트?”
나혁중은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 아르무트를 쳐다보았다.
‘저런 표정은 처음 보는군.’
평소와 다르게 흉악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아르무트는 자신조차도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르무트. 무슨 일이냐.”
저벅- 저벅-
나혁중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은 아르무트는 계속해서 관태산을 향해 걸었다.
관태산은 혹시 아르무트가 자신을 구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담긴 눈을 하고 입을 열었다.
“아, 아르…….”
하지만 아르무트는 관태산이 자신의 이름을 내뱉지 못하도록 관태산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어……얼, 얼얼……?”
관태산은 혀가 굳어 말이 나오지 않자 당황한 표정으로 아르무트를 쳐다봤다.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담은 듯한 눈빛을 하고.
“그냥 사라지세요. 이 벌레만도 못한 새끼야.”
관태산의 머리 주위에 생겨난 아홉 개의 마법진은 오색의 빛을 발하며 회전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태산의 얼굴에 있는 모든 혈관이 불뚝불뚝 올라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아르무트, 멈춰.”
나혁중의 제지에도 아르무트는 관태산의 머리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전신에 있는 모든 피가 쏠린 듯 붉어진 관태산의 얼굴은 이내 가스를 주입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퍼어어엉-
한계치까지 부푼 관태산의 머리통은 이내 사방에 피를 흩뿌리며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이게 무슨 짓이지?”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아르무트는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나혁중에게 고개를 돌렸다.
“벌레 청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