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91
아카데미 담당 일진 191화
마법이 폭발하는 소리와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를 뚫고 백일진은 계속해서 후방으로 나아갔다.
베이스캠프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 백일진은 고개를 돌려가며 주위를 살폈다.
슬슬 빙궁의 수색 단원들이 보이기 시작함에도 설하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저쪽에 빙궁 녀석들의 텐트가 있는 쪽으로 가봐.
-차라리 빙궁의 수색 단원 한 명을 붙잡고 물어보는 게 낫지 않겠나?
-지금 싸우고 있는데 어디 있는지 쟤네가 어떻게 알겠어. 물어보는 것보다 직접 가보는 게 빠르다.
고개를 끄덕인 백일진이 빙궁 수색단의 텐트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린 순간,
콰앙-
백일진의 발 앞으로 떨어진 불덩이가 폭발을 일으켰다.
-어? 저 녀석.
바로 앞에서 전투 중인 상황이었기에 응당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백일진은 별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려다 천마검의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그 싸가지없던 마법사 녀석 아니냐?
-맞네.
‘……아.’
흑암대원들과 싸우고 있는 사람은 얼마 전 백일진의 무례를 힐난했던 마탑의 마법사 펠렌이었다.
펠렌은 빙궁의 수색 단원 한 명과 합을 맞춘 채 흑암대원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펠렌과 짝을 이룬 빙궁의 수색 단원은 이미 목숨이 경각에 이른 듯 검붉은 피를 토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펠렌도 수색 단원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잃게 될 상황.
백일진이 그쪽으로 다가서자 천마검이 물었다.
-도와줄 거냐? 그렇게 싸가지없게 굴었는데?
‘그때는 내 잘못이었으니까.’
-……그래, 뭐 네 맘대로 해라.
가볍게 발을 굴러 펠렌의 옆으로 당도한 백일진은 펠렌을 노리고 공격하던 흑암대원들의 검을 튕겨낸 다음 내공을 담은 손을 휘둘렀다.
“크아아악-”
“으어어억-”
순식간에 흑암대원 두 명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주변에 끈적한 혈액을 흩뿌렸다.
“……더럽군.”
-임마, 네가 더럽게 싸우는 거야. 그냥 깔끔하게 베면 되잖아. 가만 보면 이 자식도 은근 잔인한 구석이 있다니까.
-동감한다.
‘…….’
양손에 마법진을 두른 채 그런 백일진의 모습을 지켜보던 펠렌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뻐끔거렸다.
‘이, 이, 이 자식 뭐야.’
자신의 마법을 맞아도 끄떡없던 녀석들을 단 한 수에 해치웠다. 그것도 그냥 해치운 것도 아니고 종잇장을 찢어내듯 사람 몸을 찢어버렸다.
‘……하, 어이가 없네.’
백일진이 탐지마법을 단번에 배워서 펼치는 모습을 목도했을 때는 백일진이 지닌 바 재능이 너무 뛰어나 자신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흑암대원들을 죽이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그런 기분도 들지 않는다. 백일진은 같은 인간이 아닌 그냥 종이 다른 존재 같은 느낌이었다.
백일진은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이는 펠렌의 등을 툭 건드리며 물었다.
“혹시 여기서 다른 사람 본 적 없습니까?”
“다, 다른 사람?”
“네.”
펠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못 봤습니까?”
“주위에 널린 게 다른 사람인데 그런데 무슨 다른 사람을 찾는 거……요.”
백일진의 신위를 눈으로 확인한 펠렌은 저번처럼 반말지거리를 내뱉기에는 부담스러웠는지 슬쩍 눈치를 보며 말을 높였다.
“……음, 알겠습니다.”
“아, 잠시만.”
“……?”
“……혹시 그 덩치 큰 할아버지 말하는 건가? 그 할아버지라면 아까 얼굴을 가린 여자랑 저쪽으로 가던데.”
펠렌은 빙궁의 성벽을 가리켰다.
“……덩치 큰 할아버지?”
-그 호법 노인네 말하는 거 아닌가?
-맞는 것 같다. 전악인가 하는 그 노인을 말하는 것 같군.
뭔가 예감이 온 백일진은 펠렌에게 성큼 다가섰다.
“그 사람이 저기 성벽으로 갔습니까?”
순간 코앞까지 다가온 백일진에게 위압감을 느낀 펠렌은 슬쩍 고개를 뒤로 내빼면서 말했다.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소. 저, 저쪽으로 가보시오. 베이스캠프 바깥으로 나가 성벽 쪽으로 향하는 것만 봤소.”
“감사합니다.”
* * *
“쯧, 소궁주. 우리를 원망하지 마시게.”
일장로의 신호를 따라 나머지 여섯 장로가 설하윤의 주위를 둥그렇게 둘러쌌다.
그냥 설하윤을 죽이는 것이 더 간단함에도 장로들이 설하윤을 동그랗게 둘러싼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동그랗게 둘러싼 채 한 번씩 공격하면 누가 설하윤을 직접 죽였는지 알 수 없었고, 직접 죽인 사람을 알 수 없으니 어릴 적부터 자신들의 손으로 키워왔던 소궁주를 직접 손으로 죽였다는 책임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요약하자면 자신이 소궁주를 직접 죽였을 때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라는 것.
그런 그들의 의중을 읽은 설하윤은 경멸이 가득 담긴 눈빛을 하고 말했다.
“……끝까지 이기적이네요.”
장로들은 ‘음’ 소리만 낼 뿐 설하윤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삼장로는 찝찝한 표정으로 다른 장로들에게 말했다.
“……얼른 시작하시죠.”
“그러시죠.”
끄덕-
설하윤은 점점 자신을 압박해 오는 일곱 장로를 싸늘한 표정으로 지켜보다 이내 내공을 담은 양손을 휘둘렀다.
몸이 움직이는 것보다 한 박자 늦게 설하윤의 은발이 흐드러졌다.
“하아압-”
설하윤의 걸음을 타고 눈발이 일어났고 그녀의 손짓을 따라 서리가 흩날렸다.
움직임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동공이 점차 투명하게 결빙되기 시작했다.
쿠웅-
설하윤이 진각을 밟자 바닥에 쌓인 눈이 허공으로 치솟으며 육각형의 빙판길이 생성되었다.
그 빙판길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던 설하윤은 이내 몸을 회전하며 서리를 내뿜었다.
어두웠던 공간을 밝게 빛내던 서리들은 이내 한 점으로 뭉쳐 응축되더니 얼음으로 만들어진 거울이 되었다.
설하윤의 손에서 만들어진 빙경은 그녀의 의지에 따라 허공을 선회하며 점차 크기를 키워나갔다.
빙궁의 독문심법인 설화신공을 통해 펼친 극한의 소수빙공(素手氷功).
설하윤의 공격이 시작됐음에도 장로들은 공세를 취하지 않았다.
먼저 공격을 하기에는 내심 마음에 걸렸던 것.
장로들은 설하윤이 만들어낸 빙경을 보며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
“……소궁주의 무위가 궁주를 넘었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정말로 설화신공을 대성해 빙정을 만들어내었을 수도 있었겠어…….”
“……만년설을 찾아낸 이상 의미 없는 얘기일 뿐이요.”
다른 장로들이 설하윤이 무공을 사용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자, 사장로가 미간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것보다 저걸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거요?”
“그럼 사장로님이 먼저 공격을 하시겠소?”
“……크음.”
다른 장로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일장로를 바라봤다.
“음.”
일장로도 선뜻, 결정을 할 수 없었다.
저렇게 준비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공은 필시 위력이 강력하다는 뜻이다.
자칫 잘못하면 장로들도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다는 뜻.
하지만 그렇다고 먼저 공격을 하자고 말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저 능구렁이들이 나중에 책을 잡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아니, 분명히 먼저 소궁주를 공격하자고 말한 것을 빌미로 삼아 자신을 모함할 것이다.
지금 소궁주의 공격에 피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명분은 잃지 않아야 했다.
‘그 피해가 나한테만 안 오면 되니 말이야.’
생각을 마친 일장로가 입을 열었다.
“……소궁주가 먼저 공격을 하면 우리가 반격합시다.”
일장로의 말을 들은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설하윤은 모든 동작을 마무리했고 허공에 부유 중인 빙경을 장로들에게 쏘아냈다.
‘……최대한 빈틈을 노려야 해.’
얼음처럼 투명해진 눈으로 장로들을 흘겨보던 설하윤은 사장로의 틈을 발견하고 곧바로 달려들었다.
그녀가 파악한 장로들의 수준은 절정 상급에서 초절정에 걸친 정도.
여러 명이라는 점이 걸리긴 하지만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었다.
내심 설하윤의 실력을 무시하고 있던 사장로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그녀를 보고 코웃음 쳤다.
“하, 소궁주께서는 제가 가장 만만하셨나 보오?”
사장로는 검기를 굵게 뽑아낸 다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빙경을 후려쳤다.
하지만 사장로의 예상과 달리 빙경에 담긴 경력은 그의 생각 이상이었고.
콰앙-
예상치 못한 강함에 반응하지 못한 사장로는 눈밭을 굴렀다.
“커억-”
섬전처럼 솟구친 설하윤은 사장로의 눈에 수투를 박아 넣었다.
쩌저적-
사장로는 순식간에 뇌까지 냉동된 채 절명했다.
“사장로가 빠진 공간을 메우고 다시 둘러싸시오!”
설하윤의 공격에 사장로가 단숨에 쓰러지자 경각심을 느낀 장로들도 몸을 움직였다.
콰앙-
장로들은 모든 것을 얼려 버리는 설하윤의 손이 껄끄러웠는지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처음에는 설하윤이 우세를 잡는가 싶었지만, 숫자의 차이 때문인지 점점 밀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자신을 압박하는 장로들의 공격을 쳐내는 데만 급급하게 되었다.
그러한 와중에도 설하윤은 틈이 날 때마다 착용한 수옥수투에 빙기를 담아 장로들을 노렸으나 노련한 장로들은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설하윤이 공격할 거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지독한 소모전이 반복되니 설하윤의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설하윤이 만들어낸 빙경이 조금씩 작아졌다.
설하윤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러면 안 돼.’
처음부터 많은 내공을 사용한 상태, 이대로면 자신이 먼저 나가떨어질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이 이제 막 날아오르기 시작한 새라면 장로들은 노회한 사냥꾼들이었으니.
설하윤은 얼굴 앞을 가리던 왼쪽 손을 툭- 내렸다. 이는 방어를 포기하겠다는 의미.
‘하나라도 더 데려가야 해.’
그녀는 투명한 눈으로 일장로를 노려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일장로 당신 만큼은……!’
허공을 날아다니던 빙경을 전부 거둬들인 설하윤은 손에 내공을 담아 수강을 만들어내었다.
설하윤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방어를 포기한 그녀는 미친 듯이 움직이며 일장로 한 명만을 지독하게 노렸다.
“이익- 왜 나만!”
마침내 일장로의 멱을 잡은 순간 누군가의 주먹이 설하윤의 갈비뼈를 으스러뜨렸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팔이 설하윤의 어깻죽지를 박살 냈다.
그녀의 몸이 넝마가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설하윤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멈출 수 없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일장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모든 걸 걸어야 해.’
설하윤의 입가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렇게 설하윤이 잠력을 폭발시켜 일장로의 멱을 그대로 뜯어내려고 한순간.
누군가 설하윤의 몸을 휘감았다. 그런 다음 잠력을 폭발시키지 못하도록 억제했다.
순식간에 공력이 제압당한 설하윤이 자신을 감싼 이의 품 안에서 발버둥을 쳤으나―
“그만.”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안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안겨 있는 자세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흑요석보다 더 칠흑 같은 흑발, 감정 따윈 담기지 않은 듯한 무심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
“……배, 백일진?”
“구하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