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200
아카데미 담당 일진 200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한 하늘이 유독 아름다운 아침.
백일진은 요란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신경 쓰여 눈이 번뜩 뜨였다.
낯설지만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레어?”
이곳은 그가 아카데미로 가기 전까지 평생을 살던 카프티스 산맥의 레어였다.
선선한 바람이 전해주는 산뜻한 풀 내음을 맡던 백일진은 환상인가 싶어 눈을 비볐지만, 아무리 봐도 이곳은 레어가 맞았다.
“일어났느냐.”
“할아버지……?”
백명학뿐만이 아니었다.
“맥스, 카니스, 벡스터……!”
반가운 이들의 얼굴을 본 백일진이 서둘러 상체를 세웠다.
“크윽.”
“도련님,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야, 백일진. 우리는 안 보이냐?”
스톤골렘, 맥스의 뒤에서 남궁종수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남궁종수의 옆에는 모용석, 황보철수, 그리고 남궁종수의 여자 친구인 예자원도 있었다.
“존스? 찰스, 용석……. 그리고 예자원 선배.”
“끝까지 존스라고 부르는군.”
“일진! 일어났어?”
“내 이름은 용석이 아니라. 석이다.”
그 뒤로도 다른 특임반 학생들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크리스 선배, 지태경 선배.”
“이렇게 집이 좋았으면 한 번 초대해 주지 그랬어. 맞지, 태경?”
“어? 존X…… 아니, 엄청 멋있네! 너희 집.”
“아, 네. 뭐 감사합니다.”
지태경은 백일진 너머에 있는 백명학의 눈치를 보며 황급히 내뱉은 말을 고쳤다.
그 뒤로는 다른 특임반 학생들과 단계홍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단계홍은 백일진의 방 바깥으로 뚫린 통창의 경치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바깥으로 보이는 경치는 겨울이라는 계절에 걸맞지 않게 초목은 자줏빛으로 선명했고 그 초목을 따라 흐르는 시내는 맑고 깨끗했다.
“켈켈- 이런 곳에 살면 태평연월(太平烟月)을 보낼 수가 있겠구나.”
백일진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백일진은 경치를 보며 감탄하는 단계홍을 놔두고 남궁종수에게 물었다.
“존스, 그런데 왜 다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히 북해에 있지 않았나.”
“북해에 있었지. 어제까지만 해도.”
“그런데?”
남궁종수가 백일진에게 어제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남궁종수의 이야기는 한 귀로 흘리던 백일진이었지만 이번에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그런데 있잖아……. 네가 드래곤처럼 몸이 변해서……. 실혼인을 다 죽이는데……. 그다음엔 브레스를 막고……. 그때 너희 할아버지가…….”
남궁종수의 말을 듣던 백일진이 붕대로 감싸진 자신의 몸을 훑었다.
‘내 몸이 드래곤처럼 변했다고……?’
정말 금제를 풀고 나서부터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몸이 드래곤처럼 변했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것도 완전히 드래곤이 된 것도 아니고 지금 몸에 날개와 비늘만 생겼단다.
‘다시는 풀면 안 되겠군.’
“그건 그렇고 레어에는 왜 다들 모여 있는 거지?”
“단계홍 교수님이 너희 할아버지에게 부탁하던데? 그래서 너희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로 다 같이 이동했지.”
“그래? 그랬었군.”
“야, 백일진. 그나저나 이런 많은 인원을 공간이동 시키는 아티팩트는 처음 봤다. 그건 어디서 난 거냐? 그리고…….”
남궁종수의 말이 길어지자 백일진은 손을 흔들어 말을 자르며 물었다.
“……근데 단계홍 교수님이 우리 할아버지한테 부탁했다고?”
“원래 너희 할아버지랑 단계홍 교수님이랑 알고 있던 사이 아니었어?”
“……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
백일진과 눈이 마주친 단계홍은 슬쩍 백일진에게 다가왔다.
단계홍이 능글맞은 표정을 짓고 다가오자 내심 거부감이 든 백일진은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단계홍이 다가오는 것이 더 빨랐다.
“켈켈- 이봐, 백일진 군.”
뜬금없이 귓속말로 자신을 부르는 단계홍을 본 백일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
“할아버님이 무신인 건 왜 말 안 했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저희 할아버지가 무…….”
백일진이 목소리를 키우자 단계홍이 황급히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자네도 몰랐던 모양이군. 알겠네. 그럼 이건…….”
그때였다.
누군가 백일진을 불렀다.
“일진!”
“일진.”
“야, 백일진!”
백일진의 귀가 처음으로 꿈틀거렸다.
백일진은 또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움찔거리는 단계홍의 어깨를 살포시 밀어내고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황보수정과 엘리아, 설하윤이 서 있었다.
“엘리아! 수정! 하윤!”
백일진에게 안기려고 팔을 벌리고 달려가려던 엘리아는 옆에서 양쪽 팔을 잡는 설하윤과 황보수정 때문에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너희 뭐 하는 거야. 이거 안 놔?”
“너야말로 뭐 하는 거야. 지금 일진이 몸 상태를 봐.”
엘리아는 붕대로 감싸진 백일진의 상체를 보고는 ‘쳇’ 소리를 내며 고개를 훽- 돌렸다.
백일진은 황보수정과 엘리아가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들의 얼굴을 보드랍게 쓰다듬었다.
설하윤은 속으로 부아가 치밀어 올랐으나 황보수정과 엘리아가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기에 굳이 티를 내지 않고 입술을 깨물었다.
“수, 수정, 엘리아 어떻게 된 거야?”
황보수정은 간략히 요약해 그간 있던 일들을 말했다.
“그리고 저분이 우리가 살아남는 데 도움을 많이 주셨어. 물론 마지막에 살려주신 것은 할아버님이지만.”
황보수정은 우조를 가리켰다.
단계홍 옆에 뻘쭘하게 서 있던 우조는 백일진의 눈이 닿자 황급히 묵례를 취했다.
‘아, 우조가 있었지.’
백일진은 우조에게 걸어갔다.
위태위태한 발걸음이었지만 용케 넘어지지 않았다.
“우조.”
“네, 도련님.”
“고생 많았다.”
그렇게 말한 백일진은 우조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이제 네게 자유를 주겠다.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네 삶을 살도록.”
“가, 감사합니다.”
백일진은 울먹거리는 우조를 뒤로하고 다시 황보수정과 설하윤, 엘리아의 앞으로 돌아와 얘기를 계속 나눴다.
그러던 도중 손가락과 허리가 허전하다는 것을 깨달은 백일진은 천마검과 개벽환을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디에 있는 거지?’
보통 때였으면 천마기를 일으켜 찾아봤겠지만, 지금의 몸 상태로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잠시 그러고 있자 스톤골렘 맥스가 백일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맥스?”
“도련님이 지니고 계셨던 물건은 전부 옆 방에 놓아두었습니다.”
백일진은 자신의 행동만으로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맥스를 보고 문득 맥스가 자신을 얼마나 보살피고 챙겨왔는지를 깨달았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지만 아카데미에 다니고부터는 느낄 수 있게 된 것.
백일진은 맥스의 손을 붙잡고 감사를 전했다.
“고맙다. 맥스.”
“아닙니다, 도련님.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할 일인데요.”
슬쩍 몸을 빼낸 백일진은 옆방으로 몸을 옮겨 천마검과 개벽환을 들었다.
-배, 백일진? 정신이 든 거냐?
-일진? 몸은 좀 괜찮나.
‘미안하다.’
-아니, 네 놈 할애비가 무신이었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그건 맞다, 일진. 이런 정보는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단계홍 교수님도 그렇고 무신, 무신 하는데 무신이 뭐냐.’
-하, 됐다.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 어찌 됐든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다.
* * *
천마검, 개벽환과도 대화를 마친 백일진은 하이린이나 다른 특임반 인원들과도 얘기를 나눴다.
대화 주제는 ‘정말 드래곤이 맞냐’, ‘할아버지는 뭐 하는 분이시냐’ 하는 질문들이 대다수였다.
그런 질문들을 받다 보니 조금 머리가 아파진 백일진은 밤하늘을 보기 위해 레어 밖으로 몸을 나섰다.
그곳에는 백명학이 먼저 나와 백일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다른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듯하니 보기가 좋구나. 할애비의 걱정이 기우였어.”
“할아버지, 감사해요. 레어에 제 친구들이 오는 게 불편하셨을 텐데…….”
백일진은 백명학이 속세와 연관된 이들을 레어에 들이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알았다.
그렇기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감사의 의미를 담아 백명학을 꼬옥 끌어안았다.
“허허, 신경 쓰지 말거라. 그보다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감정은 많이 깨우쳤느냐.”
“네.”
“하하하, 좋구나. 그러면 일진이 네가 깨우친 감정을 이 할애비에게 알려줄 수 있느냐?”
백일진은 문득 고개를 들어 형형히 빛나는 별들을 눈에 가득 담으며 입을 뗐다.
“기쁨(喜)은 제일이고, 분노(怒)는 처음이며, 슬픔은(哀) 최선이고, 즐거움(樂)은 최상, 욕망(欲)은 으뜸이었어요.”
백일진의 말을 듣던 백명학은 잠시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다가 말했다.
“다 똑같지 않으냐.”
“그만큼 모든 감정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전부 중요하니까요.”
백일진이 말한 감정 중에 두 가지가 빠졌다는 것을 알아챈 백명학이 물었다.
“그러면 미움(惡)은?”
백일진은 잠시 뜸을 들였다.
“천천히 말해도 된단다.”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백일진이 입을 열었다.
“……미움(惡)은 다른 감정들과 반대로 마지막 끝, 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끝 최악이라…….”
백명학은 백일진의 말을 곱씹듯이 되뇌었다.
“네.”
“좋구나. 그렇다면 사랑(愛)은?”
“예?”
“사랑말이다. 사랑.”
백일진의 머리로 황보수정, 엘리아, 설하윤의 얼굴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백일진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음…….”
“허허, 일진이가 말하기 곤란한 모양이구나.”
평생토록 이런 백일진의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백명학은 내심 기뻤다.
“사랑은…….”
“사랑은?”
“……!”
대답하려던 백일진은 뒤통수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세 쌍의 눈이 백일진을 향해 있었다.
‘엘리아, 수정, 하윤?’
눈의 주인들이 누구인지를 알아챈 백일진은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사, 사랑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백일진이 그렇게 말하자 뒤에 있는 나무에서 ‘읍’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부드럽고 산뜻한 것으로 보아 황보수정인 듯했다.
하지만 백일진은 못 들은 척하며 계속해서 고개를 뒤흔들었다.
“흐음, 그렇구나. 아직 사랑은 잘 모르겠다고?”
“네, 할아버지.”
“그래도 다른 감정은 얼추 되찾은 것 같으니, 아카데미는 그만 다녀도 되겠구나.”
백명학이 그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헙!’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범인은 목소리 톤이 가늘고 높은 엘리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것 따위에는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백명학이 아카데미를 그만 다니라고 한 것에 모든 신경이 쏠렸기 때문.
백일진은 허둥지둥 팔을 내저으며 말했다.
“하, 할아버지. 아카데미를 그만두라고요?”
“음? 왜 그러느냐.”
“아, 아직 배울 것도 많고…….”
“……많고?”
“또, 알아가야 할 것도 많고…….”
“알아가야 할 것들……?”
“네!”
우물쭈물하던 백일진은 슬쩍 입가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아카데미를 계속 다녀보려구요.”
“……”
백명학은 잠시 입을 다물고 백일진의 얼굴을 응시했다.
“할아버지?”
지금 백일진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봄처럼 따스하고 가을처럼 풍요로운 ‘진짜 웃음’이었으니.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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