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23
아카데미 담당 일진 23화
단계홍과 함께 발판 앞으로 걸어 나오는 백일진을 본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저기 교수님 뒤로 누가 따라 나오는데?”
“뭐야 쟤 그 필기전형 특별 합격생 백일진인가 걔 아니야?”
“또 쟤야? 쟤는 무슨 마가 꼈나, 교수마다 불러내네.”
“에휴- 교복 입은 꼬라지 봐라. 나 같아도 불러내겠다.”
시끄럽게 떠들던 학생들은 단계홍이 슬며시 대나무 뿌리를 꺼내 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백일진은 줄을 잡고 발판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학생들의 반응은 저마다 달랐다.
하이린은 ‘드래곤이 키운 사람이니 당연히 잘하겠지.’라는 마음으로 편하게 구경했다.
엘리아는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내심 걱정이 됐는지 움켜쥔 주먹에는 땀이 흥건했다.
설하윤, 남궁종수, 모용석, 제갈무혁 등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과 다르게 황보철수는 시끄럽게 소리를 쳐가며 백일진을 응원했다.
“일진! 파이팅! 플레이- 플레이- 백일진!”
“어휴, 조용히 좀 해! 부끄러워 죽겠어.”
시끄럽게 응원하는 황보철수를 진정시킨 황보수정은 걱정되는 마음에 똑바로 보지 못하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
물론 손바닥을 편 채로 가렸기 때문에 앞은 전부 보였다.
백일진이 1번 발판 위에 가볍게 안착하는 걸 본 단계홍이 턱에 손을 괴었다.
‘정말 뭔가 있는 녀석인가?’
아무것도 이해 못 했을 것 같은 녀석이 구석에서 이해한 척 고개를 끄덕이고 있길래 골려주려고 올려보냈는데, 지금 하는 꼴을 보니 꽤나 자신이 있어 보이지 않은가.
“절대 내공이나 마력은 사용하면 안 된다. 만약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싶으면 손을 들도록.”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시작하도록.”
단계홍의 목소리를 신호로 백일진은 망설임도 없이 2번 발판으로 발을 옮겼다. 계속해서 다음 발판을 밟아가는 그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었다.
단계홍만큼 흐느적거리며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불필요한 움직임이 전혀 없는 만큼 백일진의 폼은 고상했고 또 우아했다.
‘발판 위치가 생각보다 까다롭게 배치되어 있군.’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발은 조금의 멈춤도 없이 부드럽게 발판을 밟아나갔다.
10번 발판, 20번 발판 어느새 100번 발판까지 갔을 때,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질렀다.
“와…….”
“대박이다…….”
그것은 남궁종수도 마찬가지였다.
충격에 빠진 남궁종수는 어느새 팔짱도 풀고 경악한 눈으로 백일진의 움직임을 담았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내공도 없이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
남궁종수가 보기에 단계홍의 만취보는 걸쭉한 탁주나 화주를 잔뜩 걸치고 만취한 취객이 비틀대는 듯한 몸짓이었다면, 백일진은 마치 고급 와인이나 위스키를 먹고 오른 취기를 정제한 듯한 움직임이었다.
‘……천재다.’
벽.
넘을 수 없을 것 같이 아득히 높은 벽.
남궁종수는 자신 또한 천재라고 생각했었지만, 두 번의 벽을 느끼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바뀐 경험이 있었다.
‘황보철수, 모용석.’
황보철수는 천무지체(天武肢體 하늘이 무를 위해 내린 신체)를 가지고 있었고, 모용석 또한 격체전력(隔體傳力 타인에게 내공을 넘겨주는 것)을 통해 얻은 막대한 내공이 있었다.
하지만 그 두 개의 벽은 그에게 절망을 안겨주지는 않았다. 반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무지체니 격체전력이니 하는 출발선이 다른 것들을 제외한다면, 나의 노력하는 재능이 최고다.’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타협하며 살아왔으니.
그 결과, 영재들만이 모인다는 아카데미에서 무공전형 2등으로 입학을 했고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했다. 아니,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남궁종수는 살면서 다시는 마주할 거라 느끼지 못했던 벽을 다시 느꼈다. 이번에 느낀 벽은 그전에 느꼈던 벽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전에는 출발선이 불평등하다는 마음이라도 있었기에, 앞에 벽이 세워진 것이 아닌 옆에 세워졌다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그랬기에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자신의 출발선이 앞섰다.
‘이건, 내 앞길을 가로막는 벽이다…….’
허세라는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질투라는 그늘이 차올라 남궁종수를 잠식했다.
‘그럼 내 노력은 도대체 뭐가 되는 거지?’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것인가?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괴물을 마주쳐 버린 남궁종수는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하, 하하…….”
타인을 향한 시기심의 종착은 자신에 대한 증오라고 했던가.
남궁종수 본인도 모르게 단전에서 내공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흘러나온 내공은 그의 혈도를 역순으로 내달렸다.
이내 전신에 울긋불긋 핏줄이 드러났고, 눈에 있는 실핏줄은 전부 터져버려 안구가 붉게 물들었다.
‘남궁종수, 저 자식……!’
그런 남궁종수의 분위기를 빠르게 눈치챈 모용석이 순식간에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남궁종수의 뺨을 냅다 후려갈겼다.
쫘악-
백일진의 만취보를 구경하던 학생들은 갑작스레 들린 따귀 소리에 모용석과 남궁종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담당 교수 단계홍 또한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뒷짐을 진 채 구경에 나섰다.
“정신 차려라, 남궁종수.”
“……?!”
“그대로 망가질 생각인가?”
“……꺼져. 네가 뭘 알아, 처음부터 다 가진 네가 뭘 알아-!”
남궁종수는 감정이 담긴 악을 내질렀지만, 울부짖는 남궁종수를 보는 모용석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모른다. 그리고 굳이 알 필요도 없지.”
“뭐?”
“너는 남궁세가의 적자로 태어나서 너보다 가진 게 없이 태어난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살아왔나?”
“…….”
“한심한 자식.”
날카로운 눈을 한 모용석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네가 내게 출발선을 논하려 한다면 네놈부터 그걸 인식하면서 살아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그건…….”
“나는 네 녀석의 노력만큼은 진심이라 여겼다. 언젠가 나를 밟아주겠다는 너의 말에 긴장한 적도 있었지.”
“…….”
“하지만 시기심에 눈이 돌아버린 네 꼬라지를 보니까 버러지가 따로 없구나, 버틸 수 없을 것 같으면 지금 당장 꺼져라.”
그렇게 말한 모용석은 남궁종수의 배를 걷어차 넘어뜨리고는 단계홍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소란을 일으켰으니 벌점은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단계홍은 90도로 고개 숙인 자세로 일어나지 않는 모용석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켈켈, 벌점만 주기에는 애매한 상황 같으니 상점과 벌점을 상충해서 이번 일은 덮기로 하지.”
“감사합니다.”
단계홍은 모용석을 보고 뭔가 흡족한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놈.’
그리고 어느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눈빛을 다잡은 남궁종수로 고개를 돌렸다.
‘두 놈.’
마지막으로 백일진에게까지 시선을 주고 난 후 입가를 끌어 올렸다.
‘마지막 이 괴물 놈까지, 이번 신입생들은 물건이 많군.’
단계홍은 어느새 만취보를 마치고 내려온 백일진을 불렀다.
“예, 교수님.”
“자네는 만취보를 보면서, 또 해보면서 무슨 깨달음을 얻었나?”
깨달음이라는 말을 들은 학생들은 입을 닫은 채, 귀를 쫑긋 세우고 백일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한 실마리는 전형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관심 있는 주제였으니.
“극도로 효율적인 움직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켈켈켈-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취객의 발걸음이?”
“네.”
원했던 대답이 나오지 않자 학생들은 실망스러운 탄식을 했다. 하지만 단계홍은 웃음을 멈추지 않고 재차 물었다.
“그런데 자네의 만취보는 내 것과 사뭇 다르게 보이던데, 그렇게 보법을 펼친 이유는 뭔가?”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상체의 움직임을 변형했습니다.”
“그럼 상체의 움직임을 바꾼 것은 내가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뜻인가?”
“아닙니다. 단지, 교수님이 보여주신 만취보는 저의 체형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길래 그 부분을 제 체형에 맞췄을 뿐입니다.”
말하는 백일진은 무덤덤했다. 하지만 듣는 단계홍은 속으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단 한 번 보고 자기 체형에 맞춘 움직임을 만들었다라…… 켈켈. 물건일세! 물건이야!’
단계홍은 이 백일진이라는 녀석이 마음에 쏙 들었다. 교수라는 직책만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제자로 들이고 싶을 정도로.
“근데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이 하나 있네만.”
“네.”
“체형 때문에 움직임을 바꾼 것이라면…….”
“……?”
“내 체형에는 만취해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이 어울리고, 자네 몸에는 자네가 한 것처럼 쭉쭉 뻗는 동작이 어울린다는 뜻인가?”
백일진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시각에 따라 굉장히 무례한 대답이었지만, 솔직한 대답에 단계홍의 기분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
백일진의 어깨를 두드린 단계홍은 품에서 상점을 부여하는 증표를 꺼냈다.
“켈켈- 교복도 안 입고 등교한 불량한 녀석에게 상점을 줘보기는 또 처음이군.”
“감사합니다.”
“이제 자리로 돌아가도 좋네. 켈켈-”
백일진을 자리로 돌려보낸 단계홍은 학생들을 집합시켰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배치고사 전까지 연무장에는 발판을 그대로 놔둘 테니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도록.”
“네!”
* * *
수업이 끝나자마자 황보철수가 백일진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자리를 방방 뛰었다.
“일진! 무공에도 재능이 있구나! 상점 축하해!”
“고맙다.”
“그나저나 무공 수업은 재미없어 죽는 줄 알았어. 눈 뜨고 자는 방법을 몰랐다면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을 거야.”
황보수정은 황보철수의 자랑스러운 말을 듣고 그의 귀를 잡고 돌렸다.
“에휴- 그게 자랑이니? 황보세가 먹칠은 네가 다 시킨다.”
“아아아아! 아파!”
“그나저나 큰일이네. 만취보는 익히기 어려워 보이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배배 꼰 황보수정은 백일진을 힐끔 쳐다봤다.
“잘하는 사람이 도와주면 좋을 텐데…….”
“나 있잖아! 내가 도와줄…… 히이익!”
황보수정은 눈치 없이 끼어드는 황보철수에게 살기를 담은 눈빛을 보냈다.
“이, 일진. 나 대신 네가 크리스탈 좀 도와줄 수 있어?”
“알겠…….”
“내가 돕지.”
백일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옆에 다가온 설하윤이 백일진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며 말했다.
“보법을 배운다면 피치 못해 접촉이 일어날 수 있으니, 남자에게 배우는 것보다는 나에게 배우는 게 조금 더 편할 것이다. 저번에 잘못한 것도 있고 하니 성심성의껏 돕겠다.”
“뭐?!”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지? 나도 보법이라면 꽤 일가견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황보수정은 설하윤을 흘겨봤지만, 이런 상황에 백일진에게 배우겠다고 생떼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 인생!’
황보철수는 설하윤에게 황보수정을 맡기고 백일진과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연무장 문 앞에 서 있는 남궁종수를 발견한 황보철수가 인사를 건넸다.
“어? 존스! 너 뺨따구가 왜 그래, 괜찮아? 누구한테 맞은 것 같아!”
“제대로 맞은 것 같군.”
백일진은 만취보를 선보이느라 남궁종수가 맞은 걸 보지 못했고, 황보철수는 졸고 있느라 그 상황을 보지 못했다.
둘의 말에 잠시 얼굴을 붉힌 남궁종수가 말을 돌렸다.
“……그건 신경 쓸 것 없다. 백일진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다.”
끄덕-
돌연 남궁종수가 백일진에게 포권을 취하더니 소리쳤다.
“백일진, 할 말이 있다!”
“……?”
학생들이 웅성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주위를 둘러쌌다. 어느 정도 사람이 몰리자 남궁종수가 입을 열었다.
“백일진! 이 남궁종수는 너를 인정하기로 했다. 여기 있는 동기들 앞에서 맹세하도록 하지.”
“뭐라는 거냐.”
“나는 너에게 따라잡히지 않도록, 또 너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앞으로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 꺼억-!”
말을 하던 남궁종수의 시원한 용트림에 백일진이 미간을 찌푸린 채 코를 붙잡았다.
“뭐냐.”
때마침 바람이 불어 그 향취는 학생들에게도 전해졌다.
“이게 무슨 냄새야……?”
“불버거 썩은 냄새 같은데?”
“우웩- 남궁종수 이 자식 어디 갔어! 잡아!”
하지만 남궁종수는 이미 자리를 벗어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