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39
아카데미 담당 일진 39화
느슨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백일진은 예상치 못한 얘기에 일순간 얼굴이 꿈틀거렸다.
‘천수백의 자식?’
부모라는 존재, 언젠가 할아버지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더랬다. 그때, 할아버지는 씁쓸한 표정으로 조용히 웃을 뿐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 후로 평생 부모라는 존재를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살았다. 다시는 할아버지의 그런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그런데 뜬금없이 낡은 검병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으니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잠시 뜸을 들인 그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네 녀석 먼저 대답해라. 천마신공을 익혔나?
“그런 적 없다. 천마신공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백일진은 놓아둔 검을 주워 들었다.
“이제 말해라, 천수백의 자식이라는 게 무슨 소리지?”
왠지는 모르지만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질문을 연발하는 백일진을 본 천마검의 말투에 이죽거림이 묻어 나왔다.
-뭐야, 제 부모도 모르는 건가?
백일진은 당장에라도 천마검을 부러뜨릴 듯 손에 힘을 주고 말했다.
“장난할 생각 없다.”
이번에는 진심인지 검푸른 내공이 백일진의 손을 덮고 있었다.
-젠장, 성격은 전혀 안 닮았군.
천마검이 계속 투덜거리기만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자, 백일진이 재차 손에 내공을 둘렀다.
-아, 알았다고! 내 생각에 너는 천수백의 자식이다.
“네 원래 소유자라던 그 사람?”
-그렇다, 16대 천마이자, 300년 역사의 천마신교를 말아먹은 빌어먹을 장본인이지.
천마검은 말을 하다가 열이 차올랐는지 본체를 부르르 떨어가면서 열변을 토했다. 백일진이 손을 올리니 바로 멈췄지만.
“그런데 그 사람이 내 아버지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너도 그놈 얼굴 봤으면 처음 봤어도 아빠라고 부르면서 뛰어가 안길 거다. 물론 네놈과 달리 그놈은 항상 웃고 있긴 했지만.
‘똑같이 생겼다라…….’
백일진은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확실히 자신의 표정은 비 온 뒤 굳은 땅처럼 메말라 있었다.
볼에 힘을 주고 입꼬리를 올렸다. 애교살을 게슴츠레 치켜 올려 눈웃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거울 속 자신을 마주했다.
‘이런 느낌일까.’
-똑같이 생겼군. 표정까지 그리 지으니 판박이가 따로 없어.
“눈도 없는 게, 보기는 아주 잘 보이는 모양이군.”
-주위에 천마기만 있다면, 오감을 깨우는 일쯤이야 쉬운 일이지.
어느새 얼굴에 경련이 온 백일진은 표정을 풀고 천마검을 바라봤다. 이제는 다음 질문을 할 차례다.
“음…….”
근데 커다란 산이 목을 막아버린 듯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슬픈 걸까? 아니면 혼란스러운 걸까.
“어……. 음.”
어울리지 않게 우물쭈물한 백일진의 모습을 보다 못한 천마검이 먼저 나서서 말을 꺼냈다.
-네 어미는 누구냐고?
어미라는 말에 백일진의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는 작게 입술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잘은 모른다. 냄새나는 파충류…… 억!
잘못된 단어 선택으로 순식간에 두 동강 날 뻔한 천마검이 투덜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나는 네 어미가 드래곤이라는 것밖에 모른다. 그 여자와 만날 때부터 네 아비와 내 사이가 급격히 멀어졌거든.
말을 하던 천마검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던 천마검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백일진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읽어주는 동화를 듣는 듯한 얼굴로 천마검의 말을 경청했다.
* * *
그때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지는 소나기가 멈추지 않던 초여름날이었다.
천수백은 우산도 쓰지 않고는 길가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빗물에 휩쓸려 길가에 둥둥 떠 있는 노오란 송홧가루를 손으로 휘저었다.
그의 얼굴에 띠어진 미소는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왠지 천마검은 그가 울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살던 곳엔 말이야, 놀이터라는 곳이 있었어.”
천마검은 묵묵히 그의 얘기를 들었다.
“놀이터에 쭈그려 앉아서 이 소나무 꽃가루를 휘젓고 있으면 엄마가 달려왔었지…….”
고여 있는 빗물에 손을 흔들어 씻어낸 천수백이 몸을 일으켰다.
“근데 지금은 아무도 안 와, 와줄 사람이 없어.”
-…….
그러고는 뜬금없이 말했다.
“나, 그 무신이란 분의 제자로 들어가려고. 무의 끝을 본다면 살던 곳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몰라.”
-뭐? 그 노인네 제자로 들어간다고? 그놈은 천마신교를 멸망시킨 장본인이다!
“천마신교는 이미 타락했어, 그분이 아니었더라도 끝은 좋지 않았을 거야.”
-그거야 네가……!
모질지 못해서, 강단 있게 쭉정이들을 솎아내지 못해서가 아니냐고 말하려던 천마검이 말을 멈췄다.
언젠가 들었다.
그가 살던 세상에서는 살인이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고.
그래서인지 천수백은 그 강한 무위를 지녔음에도, 누구에게도 손을 댄 적이 없는 나약한 녀석이었다.
-쳇, 내가 너를 싫어하는 이유가 그거다. 너란 녀석은 너무 나약해.
역대 가장 강한 천마이면서 가장 약한 천마, 그것이 천수백이었다.
“미안해, 천검. 내가 물러서.”
-흥, 어차피 교 따위 없어도 된다. 천마가 곧 천마신교 그 자체다. 너만 남아 있다면 나머지쯤은 사라져도 그만이야.
“고마워.”
그 후,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겠다는 약속을 한 천수백은 무신의 제자가 되었고 천수백의 무위는 날이 갈수록 늘었다.
그는 지켜보는 천마검마저 학을 뗄 정도로 자기 자신에게 가혹했다.
-너 괜찮은 거냐?
“괜찮아, 이제 확신이 섰어.”
-무슨 확신 말이냐.
“무의 끝을 본다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천마검은 서운한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감정 때문에 친우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알았다. 열심히 해라.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천수백이 천마검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의 상태가 이상했다. 피골이 상접해 있었고 퀭해진 눈은 마치 시체의 그것 같았다.
“……오랜만이야.”
-네놈! 상태가 왜 그러지?
“걱정 마, 단전을 폐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래.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혼자 걸을 힘도 없는 듯 옆엔 누군가 그를 부축하고 있었다.
-뭐? 단전을 폐해? 네가 정녕 미쳤구나!
“스승님께 한 맹세를 지키지 못했으니, 단전이라도 폐하고 떠나야지.”
맹세를 지키지 못해?
천수백이 한 맹세는 속세와의 연을 끊겠다는 것, 그 맹세를 어긴다는 것은 곧 고향에 돌아가길 포기했다는 것과 같았다.
-고향에 돌아간다면서!
천수백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 내공이 사라져 버려 어둡게 주저앉은 몸뚱어리와 달리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쿨럭쿨럭-
웃다가 기침을 한 그의 입에서 객혈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는 웃음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네가 생각해도 웃기지? 몇백 년을 돌아간다고 하던 놈이 이제 와서 이러니까.”
-미친놈.
“크큭, 사랑이라는 건 말이야. 정말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마법인 것 같아.”
그리고 자신을 부축하는 여인을 가리켰다.
천마검도 아무런 기운을 느낄 수 없는 여인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독특한 향기를 풍긴다는 것 정도.
“인사해, 내 정혼자 리시아린이야. 내 남은 평생을 보낼 새로운 고향이지.”
다 죽을 것같이 생겨서는 뭐가 저리 즐거운 거지? 저딴 오그라드는 말이나 내뱉으려고 단전까지 폐한 건가?
천마검은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한 친우의 이 선택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너는 천마신교도 버리고, 네 단전도 버리고, 고향에 있는 네 가족들까지 버렸다는 거구나. 그리고 선택한 게 저년이라는 거고.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어. 하지만 리시아린은 미워하지 말아줘.”
-네 녀석은 정말 나쁜 녀석이다.
그 후로 천마검은 입을 닫았다. 그럼에도 천수백은 늘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아니, 무슨 일이 없을 때에도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천검, 나도 아이가 생겼어. 하하……. 내가 이 세계에서 가정을 이룰 줄이야, 신기하지?”
-…….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스승님이 정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
속으로는 축하한다고, 스승이 지어줄 수 없다면 내가 지어주면 안 되겠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도 천마검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쯤 지났을까, 천수백이 천마검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천검, 갑자기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을까?”
-…….
“제발 대답해 줘, 천마기가 필요해.”
스스로 단전을 폐하고 돌아온 날마저 활기찼던 천수백의 목소리는 절박함으로 인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천마기를 빌려줄 수는 없다.
긴 침묵을 깬 천마검이 말했다.
-……안 된다.
단지, 천수백이 싫어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 심신이 허약해진 상태, 천마신공도 다루지 못하면서 천마기를 사용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천검……. 정말 부탁할게. 한 번만 도와줘…….”
-…….
안 된다. 라고 단호하게 말을 해야 하는데, 천수백에게 유약함이 물들어 버린 걸까? 쉬이 거절할 수 없었다.
“부탁할게.”
-가능한 조금만 사용해라. 지금 네놈 몸 상태로는 1분조차 버티기 힘들다.
“……고마워.”
허락을 받은 천수백은 천마검을 들고 어디론가 달렸다.
그곳은 집의 뒷마당이었다. 그곳에는 천수백의 부인 리시아린이 폴리모프가 풀린 채 쓰러져 있었다.
거대한 용의 몸체는 수백 개의 상흔으로 가득했다. 들숨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고 날숨에는 피가 새어 나왔다.
“천검, 부탁해.”
말과 동시에 천수백은 천마기를 뽑아갔다. 그는 생명력과 다름없는 선천지기를 사용해 그것을 다뤘다.
천마기는 리시아린의 몸을 뒤덮어 드래곤 하트에 담긴 기운을 유형화시켰다. 상처 입은 드래곤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모조리 내주었다.
기운을 내주고 눈을 감은 드래곤의 시체는 수초 만에 메말라 자연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천수백이 피를 내뿜었다.
쿨럭-
찢어진 왼쪽 폐가 너덜너덜하게 흩날렸다. 왼쪽 눈은 기운의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천수백은 마지막 남은 생명력까지 쥐어짜 가며 행동을 이어나갔다.
-자, 잠깐, 네 놈 지금 뭐 하는 거냐!
유형화시킨 모든 기운을 천마검에 박아 넣은 천수백이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입에선 쇳소리처럼 그릉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죽지 마라.
“천검, 나 천수백이야. 허어억, 몇백 년간 죽고 싶어도 죽지도 못한 그 천수백.”
천수백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지 쓰러진 상태에서도 계속 땅을 파냈다. 손톱이 갈라지고 손끝이 꺾여 나갔다. 그럼에도 깊은 구덩이를 파낸 그는 천마검을 파묻었다.
“허억, 천검. 그동안 고마웠다…….”
그리고 천수백은 돌아오지 않았다.
* * *
-여기까지다.
얘기를 모두 들은 백일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굳어 있는 얼굴과 다르게 초점은 빠르게 흔들렸다.
“그런가, 그런데 왜 너를 천마검이 아니라 천검이라고 부르는 거지?”
-친우의 이름에 마(魔) 자가 들어간 이름을 부르기가 싫대나……. 지는 천마라고 불리면서 말이야. 웃기는 녀석이지.
“그렇군.”
-무뚝뚝한 녀석이군.
“그 후로 천수백이라는 자가 찾아온 적은 없었나.”
-없었다. 그래서 네가 천수백이라고 착각을 한 거다. 근데…….
천마검이 뜸을 들이며 말을 끌더니, 뭔가가 떠오른 듯 말을 꺼냈다.
-몇 년 전에 눈이 작은 노란 머리 자식이 한 번 찾아와서 나를 쥐길래 혼을 내준 적은 있었지.
“노란 머리?”
-건방지게 네 어미의 기운을 탈취하려 들기에, 그대로 손바닥을 찢어줬지. 그러더니 다시는 쥘 생각도 못 하고 묻어두고 가더군.
왠지 모르게 몸이 덥다고 느껴진 백일진이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으며 물었다.
“근데, 그 드래곤을 공격한 자들은 누구지?”
-모른다, 그런데 찾아낼 방법은 있지.
“무슨 방법이냐.”
-개벽환.
“개벽환?”
-먹색으로 이루어진 반지다. 그 반지라면 네가 궁금한 걸 알 수 있을 거야. 그 녀석은 나와 달리 천수백과 사이가 좋았으니.
‘반지라…….’
백일진은 오른손을 들어 약지를 바라봤다. 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모험가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왼손에 끼면 되겠군.’
부모님의 유산이라면 찾아야 한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꼭.
생각을 마치고 눈을 뜬 백일진의 눈동자가 시퍼렇게 번뜩였다.